지금 필요한 것은 KTX 민영화가 아니라 코레일의 이원화

KTX민영화 시도 때문에 아주 말이 많다. 코레일의 선진화 합리화가 흑자 보고 있는 KTX만 쏙 빼서 민영화하는 것이라니 어린 아이도 웃을 말인 것은 맞다. 진짜 민영화가 합리화 방법이라면 적자노선들만 패키지로 묶어서 민간에 넘겨서 효율의 세례를 받게 해야 할것이 아닌가?

그런데 KTX가 3200억 흑자 보는 노선이라는 말에 너무 쉽게 고개를 끄덕여선 안된다. 이럼 마치 KTX가 운영을 잘하고 있고, 코레일이 훌륭한 공기업인것처럼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KTX에서 흑자를 보니까 시골 기차들 적자보고 다닌다는 말은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코레일은 그딴거 생각 안한다. 이미 경영합리화란 이름으로 무수한 시골 노선들 폐선되었고, 비둘기호, 통일호 사라졌다. KTX의 흑자와 공공의 이익은 무관하다.
사실 이 흑자는 코레일이 잘한 것이 아니라 울며 겨자먹기로 탄 승객들 주머니를 털은 돈에 가깝다. KTX를 강매하다시피 하는 코레일의 술수는 뻔히 보이는데도 어쩔수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철도와 열차가 다 코레일 것이기 때문이다.  주머니 터는 방식은 간단하다. 그것은 다음의 네가지 조건에서부터 출발한다.

1. KTX는 비싸다.
2. 일반 열차는 싸다. 심지어 새마을호도 KTX보다 싸다.
3. KTX는 비좁고 불편하다.
4. 새마을호는 넓고 편안하다.

여기서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아주 급하지 않은 다음에야 넓고 편안한 새마을호를 선호할 것이다. 다음의 표를 보라. 새마을호가 요즘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90년대만 해도 새마을호로 대전까지 가는데 1시간 30분 걸렸다. 그리고 KTX는 1시간 정도 걸린다. 결국 30분 차이인데, 이 정도 차이 때문에 굳이 돈 더 쓰고 짐짝처럼 찌그러져 갈 이유는 없는 것이다.  서울에서 동대구까지도 새마을호는 3시간 정도에 주파했는데 KTX는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결국 80분 정도 차이가 나는데 이 정도는 긴급한 출장객이 아닌 다음에야 비좁은 좌석과 훨씬 비싼 요금이란 비용을 치룰 정도가 아니다.

1990년대 새마을호 시간표

서   울 8:00 10:00 11:00 12:00 13:00 14:00
대   전 9:33 11:33 12:33 13:33 14:33 15:33
동대구 11:04 13:04 14:04 15:04 16:04 17:04
부   산 12:10 14:10 15:10 16:10 17:10 18:10


심지어 다음 표를 보면 무궁화호도 요즘의 새마을호보다 빠르게 운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시간 30분이면 동대구까지 갔다. 게다가 새마을 호나 무궁화호에는 식당차도 있다. 그러니  KTX는 그다지 시간을 벌어 주지도 못했다. 기차 내려서 밥 먹느라 한시간 까먹느니, 차라리 달리는 기차 안에서 밥을 먹고, 넓은 좌석에서 편안히 가는게 훨씬 났기 때문이다.

1990년대 무궁화호 시간표

서   울 8:15 9:15 9:45 10:15 10:45 11:15
영등포 8:24 9:24 9:54 10:24 10:54 11:24
수   원 8:43 9:43 10:13 10:43 11:13 11:43
천   안 9:16 10:16 10:46 11:16 11:46 12:16
조치원 9:36 10:36 11:36 12:36
대   전 10:02 11:02 11:36 12:02 12:36 13:02
영   동 10:32 11:32 12:32 13:32
김   천 11:01 12:01 12:34 13:01 13:34 14:01
구   미 11:16 12:16 12:49 13:16 13:49 14:16
왜   관 11:30 12:30 13:30 14:30
대   구 11:46 12:46 13:17 13:46 14:17 14:46
동대구 11:50 12:50 13:21 13:50 14:21 14:50
밀   양 12:26 13:26 13:56 14:26 14:59 15:26
구   포 12:53 13:53 14:23 14:53 15:24 15:53
부   산 13:05 14:05 14:35 15:05 15:36 16:05


그래서 초창기 KTX는 지금처럼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KTX가 새마을호나 무궁화호에 비해 경쟁력이 없었던 것이다. 새마을 호 외에 KTX의 또 다른 경쟁자는 침대차가 있는 야간열차였다. KTX는 "전국이 하루 생활권"이라는 것이 모토다. 그런데 어차피 잠잘시간에 이동하는 것을 선택한다면 구태여 비좁은 KTX를 탈 이유가 없다. 밤에 부산가는 침대차를 타고 잘자고 아침에 도착해서 일 본 다음에 새마을호를 타고 올라오면 되는거다.
좀더 성질 뻗치게 하기 위해 이번에는 사라진 통일호 시간표를 참고해 본다. 눈썰미 있는 사람은 금방 알겠지만, 요즘 새마을호 속도와 거의 비슷하다.

1990년대 통일호 시간표

서   울 6:10 7:00 7:30 8:30
영등포 6:19 7:09 7:39 8:39
수   원 6:39 7:29 7:59 8:59
평   택 7:00 7:50 8:20 9:20
천   안 7:14 8:04 8:34 9:34
조치원 7:35 8:25 8:55 9:55
신탄진 7:51 8:41
대   전 8:04 8:55 9:23 10:23
옥   천 8:18
영   동 8:39 9:28 10:02 11:02
황   간 9:40
김   천 9:10 10:00 10:32 11:32
구   미 9:26 10:16 10:48 11:48
왜   관 9:40 10:30 11:03 12:03
대   구 9:57 10:48 11:20 12:20
동대구 10:02 10:53 11:24 12:24
청   도 10:29 11:17 11:49 12:49
유   천 10:37
밀   양 10:44 11:37 12:03 13:03
삼랑진 10:54 11:47 12:13 13:13
구   포 11:13 12:06 12:32 13:32
부   산 11:27 12:20 12:45 13:45


 자, 여기서 아주 우스운 일이 발생한다. KTX의 강력한 라이벌은 바로 새마을호, 무궁화호, 식당칸, 그리고 침대차인데, 이 모든 것들이 코레일이 운영하는 것이다. 즉 값싼 자기 회사 상품이 값비싸고 초기비용도 많이 들어간 자기 회사 신상품의 강력한 경쟁자인 것이다. 모든 기업은 경쟁자를 제거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경쟁상품도 자사 상품이라면?

여기서 코레일은 다음과 같은 행동을 선택했다.

"새마을호와 무궁화호의 편성을 줄이고, 속도도 늦춘다. 정차역도 늘리고, 식당칸과 침대칸은 폐지한다. 그리고 KTX 편성을 늘리면서 KTX정차역도 늘린다. 그래서 KTX가 늦어지면 새마을호, 무궁화호도 따라 늦춰서 경쟁이 안되게 한다."

그 결과 통일호는 아예 폐지되었고, 새마을호의 운행소요시간은 대폭 증가하여 1990년의 무궁화호보다도 더 느리게 되어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가격을 인하한 것은 절대 아니다. 게다가 식당차도 폐지되고 카페열차가 되면서 거의 인스턴트 식품만 취급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렇게 느려진 새마을호를 타고 부산을 가면 반드시 점심시간에 배를 굶주리며 가게 생겼다. 침대차도 없어졌기 때문에 불편하게 의자에서 밤을 지새우며 올 생각이 아니라면 늦게라도 출발하는 KTX를 타고 돌아와야 한다. 이렇게 해서 아주 급하게 다녀올 사람이 아닌 일반 승객들까지도 KTX를 강요당하게 되었다. 80-90분에 불과했던 서울-동대구간의 새마을호와 KTX 소요시간 차이가 130분으로 늘어났고, 이 정도면 충분한 유인이 된다. 물론 KTX가 빨라져서 생긴 차이가 아니라 새마을호가 느려져서 생긴 차이라는 것이 문제다.

이제 승객들은 비싼돈 내고 옛날 통일호 만큼 오래걸리는 새마을호 탈래, 아니면 조금 더 보태서 빨리 가는 KTX탈래 하는 선택에 직면하고, 이 경우 KTX가 선택되는 것은 당연하다. 한 마디로 KTX는 급히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물론, 그렇게 빨리 갈 필요는 없는 사람들에게 까지 어쩔수 없이 표를 사도록 만듦으로써 초과이윤을 획득했던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까닭은 코레일이 독점기업이기 때문이다. 코레일 외에는 철도회사가 없으니 저렴한 노선과 편성은 점점 줄이거나 무력화시키고 값비싼 KTX만 늘릴수 있었던 것이다. 경부고속철도가 완공되어 신경주역이 개통되자마자 제일 먼저 일어난 일이 서울-경주 새마을호의 폐지였으니....

따라서 지금 코레일의 횡포를 막고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서 독점을 해체하는 것은 타당하다. 코레일은 KTX부문과 일반철도 부문이 분리되어야 한다. 그래야  KTX는 정확도와 속도로 승부를 걸고, 일반철도는 안락함과 접근성으로 승부를 걸수 있어 둘 다 서비스가 더 좋아진다. 이렇게 성공한 케이스로 2004년에 고속철도를 갖춘 타이완을 들 수 있다. 타이완의 철도는 타이완 철도(대철)와 고속철도(고철) 두 회사로 운영되고 있다. 일반철도는 대부분의 역이 주요 도시 도심을 지나지만 고속철도는 그러지 않기 때문에 두 회사의 경쟁은 치열하다. 일반철도는 모두 전철화 되었으며 속도와 편성 모두 빨라지고 늘어났다. 비둘기호를 폐지한 코레일과 달리 구간차라는 로컬 열차를 증원하여 웬만한 지방도시에서 전철의 기능을 하도록 했다.

고속철도는 1분도 연착하지 않는 고도의 정확성과 KTX와는 비교도 안되는 넓은 좌석, 그리고 시내에서 떨어진 역과 시내를 연결하는 셔틀버스 제공등으로 맞섰다. 그 결과 승객들은 고속철도에서도 우리나라 새마을호처럼 넓직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쯤 되면 KTX민영화가 타당한 것 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대만철도, 대만고속철도 모두 국영기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누가 더 많이 이윤을 보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국민 만족도가 높으냐를 놓고 경쟁하게 되어 있다. 만약 코레일이 한국철도공사와 한국고속철도 로 분사되고 각각 국민만족도에 따라 정부의 차등보상을 받는다고 하자.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런데 꼼꼼한 집단은 KTX분사를 은근슬쩍 KTX민영화로 둔갑을 시켰다. 두개의 공기업이 경쟁할때는 국민들의 만족이 다투어야 할 희소한 자원지미나, 민간기업이 그 경쟁을 맡게되면 다만 이윤 외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기에 이후 KTX값 상승과 서비스 악화는 너무 당연한 일이다.

정리하자.

1. 그 동안 독점기업으로서 코레일은 공익보다는 이윤을 중시하는 행태를 보이면서 KTX를 강매해 왔다.
2. 이런 독점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코레일은 몇개의 기업으로 분할되어 서로 경쟁해야 한다.
3. 하지만 이 분할은 공기업으로서 분할되어야지 민간화가 되어서는 안된다.
4. 따라서 이 경쟁은 고객만족도를 놓고 다투는 서비스 경쟁이지 이윤다툼이 아니다.
5. 코레일의 분사와 코레일 일부부문의 민영화 매각은 전혀 다른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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