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30.

고교 선택제의 딜레마

최근 서울시 교육청이 고교 선택제 폐지를 놓고 갑론을박하다가 결국 올해는 현행대로 진행하기로 한 것에 대해 말들이 있다. 특히 진보진영에서 실망성 발언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곽노현 교육감이 고교선택제 폐지를 포기했고, 이것은 결국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투항한 것이다 류의 실망감을 토로하는 분들이 많았다.

보수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거봐라" 류의 기사를 쏟아내었다. 예를 들면 한국경제는 "곽노현, 고교선택제 폐지 포기"(3월 29일)라는 제하에 곽노현 교육감이 자기 정책의 오류를 시인했다는 식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그러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 운운하는 어느 교장의 멘트를 인용했다. 서울신문에서는 "혼란만 키우다 원점"이라고 제목을 붙이면서 보수진영의 전가의 보도인 "혼란론"을 내어 걸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 혼란은 애시당초 이명박 정권과 공정택 교육감이 자율형 사립고와 고교 선택제를 끌고 들어오면서 부터 생긴 혼란이며, 이걸 원상복귀하는 과정이 지난한 것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 자율고+고교선택제는 특히 공립고등학교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쳤으며, 그 동안 어려운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입시실적이 좋지 않은 학교를 더더욱 어려운 학생들만 모이는 학교로, 그래서 문자 그대로 똥통으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재 지역내 빈부차가 심한 구의 예를 들면, 어려운 가정이 많은 A고는 그 지역의 그나마 공부할만한 학생들이 그 학교를 외면하고, 다른 지역의 어려운 학생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거의 수업이 불가능할 정도의 학교가 되고 말았다.

고등학교 교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학급은 중상급 학생들이 많은 학급니다. 중학교때 내신이 15%~25%정도의 학생들이 수업분위기를 좌우한다. 그런데 이들을 자율고가 대폭 흡수해 버렸다. 그리고 25%~60% 정도의 학생들 중 능동적인 학생들 상당수가 특성화고로 진학했다. 그 나마 나머지는 자기 지역 학교가 아니라 다소 거리가 있더라도 인기 많은 학교(사실 이 인기의 이유도 매우 모호하고 단지 편견에 불과하다)를 지망한다.

결국 A고와 같은 학교는 특목고에서 떨어진 최상위권 학생 몇몇과 이리저리 밀리다 온 하위권 학생들로만 구성된다. 하위권이라 그러면 감이 잘 안올수도 있는데, 현재 내신 98% 정도인 학생도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98%면 어느 정도 수준이냐 하면 중학교 3학년이 1/2+1/3=1/5 이라고 대답하는 수준이다. 이들을 데리고 과연 정상적인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운영되겠는가? 5% 이내의 상위권과 70% 이후의 하위권으로 이루어진 학교. 그러니 A고는 정규 수업시간은 편안하게 보내고, 방과후에 소수의 상위권을 데리고 수업을 하는 이중학교가 되는 것이다. 이런 파행을 과연 방치해야 옳겠는가?

그렇다면 곽노현 교육감은 왜 고교선택제 폐지를 유보했는가? 그리고 왜 5월부터 공개 대토론회를 제안한 것을까? 그것은 몇 차례의 가배정과 시물레이션 결과 자율형 사립고와 특목고가 존재하고, 학부모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한 백만번을 돌려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이 확인 되었기 때문이지, 결코 고교선택제 폐지를 포기해서 아니다. 공개토론이 필요한 이유는 자율형 사립고, 특목고를 선호하는 학부모들의 성향때문에 이를 축소하려면 충분한 논의와 설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문제의 핵심은 고교선택제가 아니라 특목고, 자율고에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즉 이미 특목고, 자사고, 자율고, 일반고의 등급이 나누어져 있는 상황이 고교선택제인데, 여기서 앞의 세 위계는 내버려 둔 채 최하등급인 일반고 안에서의 선택제만 이리저리 개선해 본들,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곽노현 교육감이 고교선택제 폐지를 포기했다고 보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다. 오히려 우리는 지금부터 특목고, 자율고를 포괄하는 전반적인 고교 체제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가며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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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27.

곽노현 교육감, 박명기 교수 항소심의 포인트

곽노현 교육감 항소심 세번째 공판이 끝났다. 그런데 이 공판을 보도한 신문 기사의 타이틀이 아주 애매한 표현을 써서 사건의 쟁점을 엉뚱한 프레임으로 몰고가고 있다. 사실 이 사건의 쟁점은 아주 간단하다. 판사 입장에서는 곽노현, 박명기 두 사람에게 각각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며, 여기에 대해 검사와 변호사가 공방을 벌이는 것이다.

먼저 곽노현 측에 던지는 질문이다.

1. 박명기 당시 후보에게 사퇴하는 댓가로 어떤 이익의 제공을 약속한 적이 있는가?

여기에 대해 1) 검찰은 약속한 적이 있었거나, 약속을 추인했다고 주장하며, 2) 곽노현 측은 약속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만약 약속한 적이 있었다면 이 재판은 하나 마나다. 하지만 약속한 적이 없었다면 계속해서 다음의 질문이 추가된다.

2. 만약 약속한 적이 없었다면 대체 왜 선거 끝나고 8개월이나 지나서 돈을 주었나?
여기에 대해 1) 검찰은 사퇴한 데 대한 대가라고 주장하며, 2) 곽노현 측은 사정이 딱하게 된 박명기 후보를 돕기 위해서라 주장한다.

1심 재판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다. 당시 재판부는 1의 질문에 대해 곽노현은 박명기의 사퇴의 댓가로 어떤 약속도 한 적이 없으며, 선거 끝나고 몇달이 지나서야 양측 캠프의 몇몇이 모여서 아무런 문서도 뭐도 없는 구두 합의를 했음을 알았을 뿐이며, 알고 난 다음에도 그 약속을 이행할 생각이 없었음을 분명히 했다. 다음 2의 질문에 대해서는 곽노현이 돈을 준 동기는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 안스러움, 연민, 동정심, 강경선 교수의 설득, 종교심, 혹시 문제가 될지 모르는 상대방에 대한 입막음(정치적 이익) 등등, 한마디로 선의(도덕적 의미가 아니라 법적 의미)가 주된 동기였음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는 박명기 쪽이 사퇴의 대가라고 여길수 있는 정황에서 주었고, 또 어설프게나마 댓가에 대한 합의를 캠프 사람들끼리 했었으니, 그 책임을 지라면서 벌금형을 선고했다. 즉 곽노현 교육감은 매수행위를 한 적도 없고, 돈을 준 이유도 선의임은 밝혀졌지만, 다른 사람들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이상한 연좌죄에 얽혀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을 따지자는 것이 항소심의 핵심이다.

특히 이번 항소심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강경선 교수의 입장이다. 강경선 교수는 자신이 단지 곽노현 교육감의 돈 전달 심부름꾼이 아니라, 박명기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입장이라고 밝혔다. 사실 이는 1심 판결문에서도 어느정도 드러난 사실이다.

이렇게 강경선 교수를 중심으로 사건을 다시 쓰면 이렇게 된다. 1) 강경선 교수는 사이가 벌어진 곽교육감과 박교수 사이를 중재하고, 무슨 어설픈 약속이 있었건 간에 그런 것은 불가능함을 분명히 했다. 2) 다만 정책공조는 앞으로 잘 해 나가자고 화해를 시켰고, 박명기도 이것을 받아들였다. 그 증거는 2010년 11월 이후 박명기가 어떤 금전적 요구도 하지 않았던 것에서도 드러난다. 3)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강교수는 박교수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되고 동정심이 움직여서 그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하기 위한 일종의 모금을 했다. 4) 그런데 불행히도 곽교육감 외에는 그 모금에 응한 사람이 없었다.혹은 나머지는 익명이었다.  즉 한 마디로 "나는 곽노현의 돈 셔틀이 아니다. 내가 오히려 돈을 주자고 했다."이다.

다음은 박명기 측에 던지는 질문들이다.

1. 후보를 사퇴할때 어떤 댓가를 약속받거나 혹은 약속 받았다고 생각하고 사퇴했는가?

여기에 대해 1) 검찰은 곽노현과 직접 약속했거나 혹은 적어도 곽노현에게 보고된 것을 확인하고 사퇴했다고 주장하며, 2) 박명기 측은 그런 약속과 무관하게 단지 대의를 위해 사퇴했다라고 주장한다.

2. 선거가 끝난 뒤 교육감에게 돈을 요구한 적이 있는가?

여기에 대해 1) 검찰은 수차례 돈을 요구한 녹취록 등을 제시하고 있다. 2) 박명기 측은 곽교육감에게 찾아가서 항의한 것은 돈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정책 공조와 인사추천 문제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3. 선거 끝난 뒤 8개월이나 지나서 왜 돈을 받았는가?

여기에 대해 1) 검찰은 사퇴에 대한 댓가라고 여기면서 받았다고 주장한다. 2) 박명기 측은 진보진영에서 사퇴한 자신의 손실을 어느 정도 보전해 주는 것이라 여기며 받았다고 주장한다. 즉 대의를 위해 큰 손실을 감수하고 사퇴한 박명기를 돕기 위해 진보인사들이 발벗고 나선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4. 정말 그 정도로 경제적 사정이 어려웠는가?

여기에 대해 특이하게도 검찰이나 박명기 측이나 모두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안타깝게 박명기측의 이 주장들은 1심에서 거의 탄핵당한다. 1심 재판부는 박명기측이 먼저 댓가를 요구한 뒤 그 요구가 받아들여졌다는 착각 속에서 사퇴했으며, 그 가공의 댓가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곽교육감을 집요하게 괴롭혔고, 곽교육감의 선의의 지원을 댓가라 여기면서 받았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니 이 주장들을 종합하면 1) 검찰측은 곽노현과 박명기가 댓가를 합의하고, 박명기가 사퇴하고, 나중에 곽노현이 약속한 돈을 주었다고 주장하며, 2) 곽노현측은 박명기는 대의를 위해 사퇴한 것으로 알며, 나중에 박명기의 사정이 매우 딱한 것으로 보여 대의를 위해 가난에 처한 사람을 외면할 수 없어서 강경선이 진보진영의 모금을 시도했으나, 불행히도 곽교육감 외에는 나서지 않았던 것으로 주장하며, 3) 박명기 측은  대의를 위해 사퇴했고, 사퇴한 뒤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으나, 곽노현측에서 지들 멋대로 아주 가난에 빠진걸로 착각하고 돈을 걷어다 주었고, 선거 사퇴하느라 손해도 막심하고 하니 스스로 주는 돈을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어서 받았다라고 주장한다.

그러고 보면 박명기측의 감정적 대응과 다소 어리석은 증언들 때문에 본질이 많이 흐려지지만 핵심적인 쟁점에서 곽측과 박측은 주장이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다.

1. 박명기 후보의 사퇴: 양측 모두 금전적 댓가와 무관한 사퇴로 주장
2. 댓가에 대한 요구: 양측 모두 금전이 아니라 정책공조에 대한 요구로 주장
3. 2억원을 주고 받은 동기: 곽측은 박측의 어려움을 도와야 한다는 강경선의 호소, 박측은 대의를 위해 사퇴한 자신을 돕기 위한 진보진영의 도움이라 생각.

그런데 이 주장 중 박명기측의 주장만 탄핵된 이유는 당시 박명기 선거캠프장인 양**이 5억, 7억 그러면서 협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박명기측은 참 재미있는 주장을 내세우는대 양**은 박명기를 사퇴시키기 위해 나중에 들어온 스파이라는 것이다. 즉 5억이니 7억이니 요구한 것은 양**, 김**이 자기들끼리 요구한 것이지 박명기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보도하는 신문의 타이틀은 참 엉뚱하다.
곽노현 측 “선의의 돈” vs 박명기 측 “선거 완주할 수 있었다”(아시아 투데이)

이건 얼핏보면 논쟁이 되는 주장같지만, 두 주장은 전혀 맥락에 맞지 않다. 이 타이틀만 보면 마치 곽노현이 돈줄테니 사퇴하라 요구했지만, 박명기는 선거 완주할 수 있어서 그 돈을 요구할 필요가 없었다 처럼 들린다. 하지만 "선의의 돈"은 선거 끝나고 8개월 뒤의 상황이고, "선거 완주할 수 있었다."는 선거 끝나기 한달 전의 상황이다. 도대체 이 두 주장이 무슨 근거로 vs 양측에 배치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굳이 표현하자면 "곽노현측 박명기 캠프 사실상 와해단계로 파악 vs 박명기측 선거 완주할 수 있었다"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후보매수가 더더욱 성립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어차피 주저앉을 후보에게 돈 약속 따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곽노현 공판 증인신문 대가성 놓고 공방(국민일보)
이 기사도 아주 이상하다. 타이틀을 보면 곽노현이 준 돈이 댓가성이냐 아니냐를 놓고 치열하게 논란이 벌어진것 같지만, 막상 본문을 보면 그런 논란은 전혀 없다. 곽측이나 박측이나 모두 저마다 댓가성이 없었다고 주장할 뿐이다. 다만 논란은 곽측은 박측이 몹시 딱해보였다고 주장한 반면, 박측은 그렇게까지 딱하지는 않았지만, 댁들의 착각은 자유 이런식으로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곽노현 교육감은 돈을 준 동기가 선의임은 1심 재판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돈을 받은 박명기가 댓가로 인식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즉 관심법을 쓰지 못했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았다. 그러니 이 사건의 키포인트는 돈 받을 당시 박명기의 마음이다. 그런데 그 마음이 후보 사퇴에 대한 댓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항소심에서 나온 내용은 이게 전부다.

이제 공은 검찰에게 넘어갔다. 어차피 곽교육감이 댓가 지급 약속을 했거나 승인했다는 증거를 찾아낼 가망이 없는 상황이라면 박명기 교수에게 관심법을 사용해서 "그때 댓가라고 인식하고 있었잖아?"라고 추궁하던가 그런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1심 판사는 박명기 교수가 2억을 받은 뒤에도 추가로 1억을 더 요구했다는 점을 들어 박명기가 선의로 받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사실 이럴떄 박명기가 "내가 당시 얼마나 찌질했으면 교육감에게 자꾸 손을 벌렸겠는가? 당시 정말 길바닥에 나앉을 거라는 공포를 느꼈다." 이렇게 말하면 이 사건은 끝난셈이다. 하지만 박명기 교수의 자존심이 이걸 용납하지 못한단다. 정말 그렇게 딱하진 않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충분히 사정이 딱한데 자존심 때문에 한사코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여기에 키가 있다.

1심때는 박명기가 "내가 그 정도로 사정이 딱하거나 길바닥에 나앉을 상황이 아니었다."라면서 자존심을 지켰고, 그러자 판사는 "사정이 딱하지도 않은데 2억을 받아? 너 댓가라고 생각한거 맞네." 이렇게 판단했던 것이다. 만약 여전히 박명기가 자신의 궁핍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명예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어리석은 처사이며, 여전히 자기가 교육감이 될 수 있었던 사람이라는 옛 생각에 잡혀 있다면, 정말 교육감이 되어서는 안됬을 사람임을 증명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 기사들을 보면 또 하나 신기한 것이 검사의 증인심문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검사는 대체 어디 갔을까? 대체 어디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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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25.

이주호 장관은 왜 교수들의 불신임을 받았나?

이틀 건너 한번씩 곽노현 교육감 타격에 여념이 없던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엉뚱한데서 뒤통수를 맞았다. 37개 국립대 교수들이 교과부 장관 불신임을 선언한 것이다. 전체 교수들의 80%가 참가해서 90% 이상이 불신임에 찬성했으니 적어도 국립대 교수 72% 이상이 이주호 장관의 퇴진을 요구한 셈이다. 이런 일은 전두환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부산일보 기사 원문 링크)

이게 이미 조짐이 보였던 것이, 작년 10월에 은사님과 식사를 하는데, 이주호 장관에 대해 거의 직설적인 비판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 분은 결코 진보진영도 좌파도 아닌, 차라리 새누리당 쪽에 가까운 분이었는데도 말이다. 대체 무엇이 이토록 교수들을 분노하게 했을까?

국교연을 대표하는 이병운(부산대 교수회 회장)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이번 투표 결과는 국립대 법인화, 총장 직선제 폐지, 성과급적 연봉제 추진 등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모든 교육 정책에 대한 불신을 의미한다. ,,이런 식의 잘못된 국립대학 정책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에 상응하는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국교련은 28일 기자회견에 이어 4·11 총선을 통해 19대 국회가 구성되면 이주호 장관 해임건의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마 국교련이 해임건의안을 제출하면 전교조도 가만 있지는 않을 것이니, 총선과 함께 이주호 장관의 운명은 풍전등화가 될 것 같다.

결국 대학에 신자유주의 혹은 경제논리를 끌고 들어 온것에 대한 반발이다. 국립대학을 법인화 한다는 것은 결국 이사진들이 운영하는 일종의 기업처럼 만든다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교수들은 대학 운영의 주체가 아니라 단지 피고용인에 불과하기 때문에 경영에 참여할 수 없고, 모든 대학 운영은 기업처럼 이사회에서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이게 총장 직선제 폐지(결국 이사회에서 결정)로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교수들의 발언권은 크게 약해지는데, 여기에 연봉을 차등 성과급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까지 더해지면 교수들끼리 경쟁하느라 정신을 못차리게 된다.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연봉을 차등성과급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인데, 얼핏 보기로는 이 차등 등급에 따라 명색이 교수의 연봉이 2000만원까지 내려갈수도 있었다. 연봉 2000만원짜리 교수와 연봉 몇억짜리 교수가 한 캠퍼스에 있게 되면 그 대학의 분위기가 어떻게 될지 가히 짐작할만하다. 경쟁, 경쟁 뿐이다.

그런데 그 경쟁도 순전 기업마인드에 입각한 경쟁이라, 논문 편수, 그리고 외국 논문 가산점 등이 들어가는 점수 경쟁이다. 논문의 질, 그리고 학문 분야의 특수성 따위는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아마 이런 방식의 경쟁체제라면 비트겐슈타인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은 결코 대학에 붙어있지 못했을 것이다. 소쉬르도 논문 편수가 적어서 최하등급 연봉 받다 쫓겨났을 것이며, 허버트 미드도 마찬가지 운명이 되었을 것이다. 또 바하나 슈베르트같이 작품이 많은 작곡가는 인정받았겠지만 브람스나 차이코프스키처럼 작품수가 적은 작곡가는 퇴출되었을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게다가 외국 논문 가산점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생겼다. 교육학의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교육학, 청소년학 논문들 중 퀄리티가 높은 것들은 우리나라 학술지에서 볼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엉뚱하게 우리나라가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 학술지에서 영어로 된 논문으로 읽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완전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그런데 더 한심한 것은 이주호 장관은 자신의 경제중심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초중등 교육에는 손도 대지 못한채 대학에만 쏟아 부었다는 것이다. 현재 초중등 교육은 신자유주의 관점에서 보아도 엉망진창이다. 특히 교장, 교감 승진이 학력신장 능력이 아니라 온갖 해괴한 점수와 인맥으로 결정된다는 것, 교사들이 학력신장이 아니라 온갖 해괴한 행정업무에 매달려 있다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가장 혐오하는 비전문화, 비효율의 극치다.

그래서 이주호 장관은 2006년부터 현행 교장승진제도는 완전히 폐지하고, 내부형 공모제, 개방형 공모제로 가서 권위주의, 위계서열이 아니라 실력으로 경쟁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교사들이 본연의 업무인 공부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엉뚱한 업무, 행정 따위로 경쟁하는 체제를 완전히 개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원래 이주호는 초중고 교사들을 엄청 경쟁시킬 생각이었다. 곽노현 경쟁 후보였던 이원희의 슬로건이 무었이었던가? "이제부턴 선생님들의 경쟁이 시작됩니다"였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을 가지고 경쟁하느냐였다. 이주호는 내심 "성적 올리기"로 경쟁붙일 생각이었다. 그럼 전교조 교사들은 이념이나 신경쓰고 실력이 없어서 퇴출될거라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뿔싸, 뚜껑을 열어보니 전교조는 이념세력, 교총은 입시교육 전문가가 아니었다. 의외로 전교조 교사들은 입시교육에도 능한 사람들이 많은 반면, 교총은 입시교육은 커녕 아예 교육보다 행정직 승진에 관심이 더 많은 집단이었다. 성적 올리기 경쟁으로 교사들의 보수와 승진 등을 결정한다고 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집단은 전교조가 아니라 교총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부형, 개방형 교장 공모제는 도리어 전교조가 지지하고 교총이 반대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교총은 기존의 족보도 없고, 심지어 성적 올리기 실적과도 무관한 괴상한 각종 가산점으로 이루어진 승진제도를 양보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었다. 더군다나 교사들에게서 행정업무를 배제하는 정책도 전교조가 지지하고 교총이 반대하고 있었다. 심지어 교원업무 정상화는 눈엣 가시 곽노현이 앞장서서 실시하고 있다. 여기서 이주호는 스텝이 꼬였다. 전교조, 곽노현이 미운 나머지 비효율, 권위주의, 낡은 위계서열 중심의 이익집단인 교총과 손을 잡고, 자기가 그토록 소신껏 주장했던 교장공모제를 스스로 무력화 시켜버리고, 교원업무 정상화에 교묘하게 물타기를 한 것이다.

적어도 초중등 교육 정책에 관한한 이주호 장관은 신자유주의자 조차도 되지 못했다. 그냥 낡은 봉건주의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자가 되지 못한 한 풀이를 전교조도 교총도 없고, 기본적으로 조직적 저항 자체가 별로 없는 대학에다 쏟아 부은 것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교사한테 빰맞고 교수한테 눈 홀긴 셈이다.

그런데 이럴수가.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이제 교수들도 조직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면 이제 교수들이 이주호가 이명박 대통령 순장조라는 것을 간파했는지도 모른다. 의원 출신 장관인데 다음 선거 공천도 받지 못한 임기말 장관이다. 그러니 조직적 행동 안하기로 유명한 우리나라 교수님들이지만 더 이상 참고 보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주호가 이 난관을 돌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낡은 봉건집단, 낡은 우파 이념집단인 교총과의 밀월을 끝내고, 신자유주의, 자유시장주의로 돌아가라. 차라리 그게 더 이주호 답고, 그래야 비판 당하고 깨지더라도 체면은 남는다. 적어도 시장주의는 냉정하기는 해도 최소한 합리적이긴 하지 않은가? 이제 이 기회에 이주호를 비롯한 자유시장주의자들은 뉴라이트 이념집단과 선을 긋고 스스로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 그리고 물러나기 전에 최소한 한 두개의 봉건잔재는 처치하기 바란다.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2012. 3. 24.

자꾸 이정희와 곽노현 이중잣대라고 하는 헛소리들이 있다.

누구라고 말 안해도 알겠지만, 이번 이정희 의원 사퇴와 관련하여 곽노현은 옹호하던 진보진영(?)이 이정희는 버렸다면서 이중잣대라고 핏대를 올리는 몇몇이 있다. 그 중 한 사람은 수꼴재단 대학의 교수인 모양이다.

1. 진보진영은 2중잣대이며 도착증에 걸렸나?

사회학자 입장에선 이 진영이란 말이 영 찜찜하다. 진보진영은 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조작적으로 정의가 가능한가? 그리고 곽감을 옹호하던 진보진영과 이정희 사퇴를 주장하던 진보진영은 동일인물인가? 그래서 몇몇 진보 이빨들을 좀 조사해 봤다.

2011년 8월 26일 이후 곽노현 교육감을 옹호하는데 앞장섰던 진보진영(?)의 주요 이빨들을 골라봤다. 1) 서영석, 나, 김빙삼, 김용민, 박동천, 조기숙, 노루귀, 문성호, 허재현, 이기명 등등을 중심으로  곽노현 교육감을 옹호하는 흐름이 결집되었다. 더 자세한건 졸라 복잡한 네트워크 분석 해 봐야 알겠지만.  그리고 곽노현 교육감에게 사퇴를 촉구하고, 검찰보다 더 준엄한 비판글을 써댔던 이빨들은 주로 2) 박지원, 진중권, 고재열, 이털남, 손병관, 허지웅, 그리고 진보의 도덕성 그룹 등을 중심으로 형성 되었었다.

자, 이제 진중권이 말한 도착증(대체 이 용어가 여기서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라깡 읽은 티를 내고 싶은건지. 용례도 맞지 않는 것 같은데...)이 성립되려면 1)에 해당되었던 사람들이 이정희 사퇴를 종용했어야 한다. 그렇다면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1)에 해당되는 이빨들은 한결같이 이정희 사퇴를 반대하거나, 재경선 정도 주장했다. 그 중에는 경기동부를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은 있었을지언정, 이정희를 까는 흐름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정희 사퇴하라고 목소리 드높인 집단은 누구일까? 주로 2)였다. 즉 곽노현 사퇴를 요구한 집단은 일관되게 이정희 사퇴를 요구했고, 곽노현 버티기를 요구한 집단은 일관되게 이정희 버티기를 요구했던 것이다. 특히 진중권은 그 예의 주사파에 대한 적개심에 활활 타오르기까지 했다. 그래도 수위는 재경선 정도에 그쳤지만.

물론 몇몇 파워 트위터러만 놓고 결론 내리는 건 한계가 있지만, 하룻밤만에 수많은 트위터를 다 뒤질 수 없으니, 또 트위터의 속성상 파워 트위터러의 영향력이 매우 크니 이 정도 해 두겠다.

자, 그렇다면 2중잣대는 어디에 있는가? 없다. 곽노현 교육감은 2) 쪽에서 강하게 사퇴를 요구했으나 그 요구가 1)쪽의 반론에 쳐 발렸고 대중의 마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사퇴 반대로 흐름이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정희 의원은 역시 2)쪽에서 사퇴를 요구했지만 1) 쪽에서 열심히 사퇴 반대를 주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퇴한 케이스에 속한다. 즉 곽감을 옹호한 세력이 이정희에게 사퇴를 종용했다는 것은 진보진영을 모두 뭉뚱그리거나 아니면 곽감때는 진중권 반대편, 이정희때는 진중권 편을 든 사람만 진보진영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그 도착이 누구에게서 일어났는지 확연하지 않는가?

2. 곽노현은 이정희보다 더 큰 도덕적 책무를 져야 하나?

진중권은 곽노현이 1심 판결에서 당선무효형보다 훨씬 많은 5000만원(사실오류. 3000만원)이라는 사실을 들어서 법적으로 저촉되지 않는 이정희 캠프보다 책임이 무겁다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굳이 따지면 이것 역시 도착적인 주장이다.

1심 판결의 요지는 이렇다. 1) 곽노현은 합의에 응하지도 않았고, 2) 합의를 알지도 못했으며, 3) 박명기에게 돈을 준 동기도 나중에라도 알게 된 합의를 이행한 것이 아니며, 4) 공소시효도 다 지나가서  2억이라는 돈을 주어 봐야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대에게 준것은, 종교적 동기, 그리고 강경선 교수의 강한 권유(이게 결정적) 등 선의에 의한것임은 명백하지만, 6) 받는 박명기가 그걸 사퇴의 대가라고 생각할 여지를 남겨두었고, 7) 이전에 합의를 했던 캠프 책임자의 책임도 있으니 벌을 받아라. 즉, 이건 캠프 책임자인 최**과 이**이 받을 벌을 대신 받아라, 박명기 마음속에 댓가성에 대한 인식이 떠오르게 만들었으니 벌을 받아라는 연좌죄식 판결이다.

진보진영의 대다수가 곽노현교육감을 옹호했던것은 설사 유죄판결이 나더라도, 이는 단일하 이후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대 후보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과 상대 후보가 지출한 비용을 초과하는 뇌물을 원천적으로 구별하지 않은 현행 선거법의 빈틈(미국은 구별한다), 그리고 그 빈틈을 알고서도 상대의 처지를 외면하지 못하고 고난을 자처한 곽감의 인품때문이지 무슨 진영논리, 우리편이 하면 로맨스 때문이 아니다. 굳이 진영논리를 들이댄다면 "우리편 다 죽기 전에 네가 먼저 죽어라"하고 외쳐댄 박지원과 진중권 무리들이 더 철저하게 진영논리의 입장에 서 있었다고 본다.

3. 곽노현이 사퇴했으면 진보진영의 도덕성은 지켜졌을까?

진중권은 처음에는 이 3번의 이유로 사퇴를 요구했다가, 나중에는 슬그머니 진영논리 비판, 도덕성 등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당시 사퇴를 요구한 진중권 등의 주장대로 곽노현 교육감이 사퇴했으면 과연 이 국면이 조성되었을까? 저들이 곽감을 타격한 로직을 봐야 한다. 그것은 바로 단일화에 대한 타격이다. 박명기측 주장대로 단일화시 그동안 지출한 비용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보전은 관례다. 곽노현은 그 조차 안하겠다고 해서 감정대립까지 갔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후보들도 그럴까? 그러니 곽노현 타격의 메시지는 "네들 단일화 했다간 봐라. 몽땅 잡아 넣어버리겠어" 였던 것이며, "단일화=후보매수"의 프레임을 걸어버렸던 것이다. 따라서 기자회견 하고 곽노현이 즉시 사퇴했다면, 즉 그 도덕적 부담을 그대로 싸안고 사퇴했다면,  이는 저 프레임을 완성시키는 결과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곽노현은 그 프레임에 저항했고, 대중은 그것을 수난으로 인식했고, 여러 독립 언론들은 법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도덕적으로는 곽노현의 부담감을 다 털어 주었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을 빨대 언론을 이용해서 파렴치범으로 몰고간 떡검과 조중동의 행태는 대중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이것이 안철수 열풍, 박원순 열풍의 진원지가 되었던 것이다.

만약 곽노현이 즉시 사퇴했더라면 지금 서울시장과 또다른 진보교육감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진중권의 주장은 이런 당시 정세를 전혀 판단하지 못하고 한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우리는 나경원 시장과 보수교육감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9월 12일 이후에는 곽노현 교육감이 사퇴하는 것이 정세에 유리하다고 봤고, 권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이미 그 시점은 도덕적 부담감은 다 털어 버렸을 시기이며, 32억 반환의 부담도 털어버림과 동시에  10월 26일 박원순 시장과 새로운 진보교육감이 동시 탄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윈윈인 것이다. 하지만 그걸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때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들은 이정희에게도 강요하지 않았다. 이정희 역시 본인의 문제가 아니라 캠프의 문제이며, 단지 진보진영의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사퇴가 요구되었다. 유일한 차이는 당시 곽노현 교육감은 즉시 사퇴하지 않고 좀 버티는 것이 유리했고, 이정희 의원은 즉시 사퇴하는 것이 유리했다는 정도다.
하지만 이런 정치공학적 관점을 버리면, 곽노현 교육감은 재판 끝날때 까지 버티는게 합리적이고, 이정희 의원은 책임자를 문책하고 재경선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진중권 눈에 곽빠로 보였던 논객들 중 이정희 의원에게 그 이상을 요구한 사람들은 없다.

그럼에도 도착 운운 하는 이유는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다만 진중권은 자기 주장은 항상 소수이며, 자기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항상 다수 대중이며, 이 대중은 우매하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폼고 있지 않나 추측할 뿐이다. 그래서 자신이 재경선을 주장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이상의 것, 즉 사퇴를 외치는 무리들은 필경 곽노현 교육감떄 자기 반대편에 섰던 무리들일 것이라 지레짐작한 모양이다. 물론 이는 도착적인 생각이다.


여하튼 어제의 곽빠가 왜 오늘은 이까? 너희는 모두 도착적이야 라는 어느 수꼴대학 교수의 화려한 언변은 자신의 눈이 도착적임을 증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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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23.

다급해진 한국 교총의 헛소리를 자근자근 밟아주마

전교조가 보은인사 감사청구 맞불을 놓으니 교총이 다급해진 모양이다. 교총회장 안양옥이 흥분한 모습이 역력한 인터뷰와 성명서를 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죄다 엉터리다. 토론을 할때는 상대의 말을 잘 듣는게 기본이다. 그래서 자기가 이전에 했던 주장이 이미 깨어졌는지 아닌지 확인한 뒤에 해야 한다. 그런데 말을 듣지 않다보니 이미 깨어진 주장을 또 반복하고 있다. 바보 아니면 아집이다.

그런데 교총회장은 이거 혹시 아나 모르겠다. 이번에 교총에게 맞불 놓고 감사 청구하고 성명서 발표한 주체는 전교조가 아니라 전교조 서울지부장이다. 서울지부장이 내어 놓은 성명서에 발끈해서 회장까지 나서는 모양새가 영 보기 안좋다. 하긴 교총의 위상은 전교조 서울지부급이라고 겸허하게 생각해서라면 상관 없기는 하다. 그럼 이제부터 교총의 주장을 살펴보자.

교총은 말한다.

"교총 회장의 파견 근무가 국가공무원법, 교육공무원임용령 등 관련법령의 적법성을 가짐을 물론 교과부와 교총간 단체교섭 합의를 통해 18만 교총 전회원의 직선을 통해 선출된 교총회장의 파견을 허용토록 한 사항(2008년 상·하반기 교섭·합의) 등에 따라 교과부 및 행안부의 승인을 거친 절차적 정당성을 가진 것"

그러면서 그 근거로 "교총이 각종 연구대회 전국단위 행사, 수탁 연구 등등등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국가적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므로 이 파견은 1호 파견에 해당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법을 보면,

교육공무원 임용령 제7조의3(파견근무) ①-1. 교육기관·교육행정기관 및 교육연구기관외의 기관 또는 단체에서 국가적 사업으로 교육·연구·학술진흥등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특히 필요한 경우라고 한정되어 있다.

즉, 교총이 교육부나 정부의 업무를 공식적으로 위임받았고, 그 업무가 교육,연구, 학술진흥이고, 파견된 당사자가 그 업무를 직접 담당해야 이 파견이 성립된다. 교총회장이 교육 하는가? 교총회장이 연구하는가? 교총회장이 학술진흥원에서 일하나? 차라리 교총에 특별 연구원 등이 파견되었다면 그것은 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자면 가서 하는 일이 국가적 사업이라야 한다.

그러자 교총은 "전국현장교육연구대회, 전국교육자료전, 원격교육연수원 등 교원의 전문성 신장을 위하여 국가적 사무를 분담하여 수행하고 있으며, 교육현안에 대한 연구과제를 위탁 수행하고 있고, 회장은 연구과제, 법제개선 업무수행, 정부와 스승의 날 공동 개최 등 교원의 사기와 의욕을 고취시키는 사무 등의 다양하고도 광범위한 업무 추진을 하고 있다." 면서 국가적 업무를 하고 있으니 1호 파견이 성립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모든 교원단체가 다 하는 일이다."

전교조 역시 "전국 참교육 실천대회, 원격교육연수원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교육현안에 대한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고, 법제개선 운동 열심히 하고 있으며, 정부 및 지자체와 각종 행사를 공동 개최하고 있다." 그러나 전교조 위원장에 대한 파견근무는 허용되지 않아, 위원장은 휴직을 하고 조합비에서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그러니 저것이 특혜가 아니면 뭔가?

다시 교총은 말한다. "교총회장의 파견에 대해 스스로 떳떳하게 감사원에 감사를 요구할 것임을 밝힌다." 오, 듣던중 반가운 소리다. 하루 빨리 스스로 감사원에 걸어가기 바란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치하게 회원수 자랑질이다."교장·교감 등 관리직과 대학교원이 배제되어 있는 교원노조와 달리 유·초·중·고교의 교사·원감·교감·원장·교장, 대학의 교수부터 총장까지 대한민국 모든 교원을 가입대상으로 하고 있는 명실상부 최대 통합 교원단체"라는 것이다. 오호라 말 잘 했다. 그래서 교총은 항상 교수의 이익, 교장, 교감의 이익을 대변해 왔다. 이렇게 정체를 커밍아웃 해 주니 너무 고맙다.

아직도 교총에 회비를 내고 있는 10만 교사들에게 고한다. 당신들의 쪽수와 회비로 교장, 교감, 교수들 정치놀음을 도와주고 있다. 전교조에 가입하라고는 하지 않겠다. 그냥 나와라. 그리고 회비라도 건져라.

교총은 다시 말한다. " 2008년도 교과부와의 교섭(2009.1.29합의)을 통해,교육기본법 제15조에 의한 교원단체에 교원이 본부에서 상근할 회장(단)으로 선출된 경우 파견근무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라고 합의한 바 있는 만큼" 이라고. 바로 그렇다. 그 합의가 특혜라는 것이며, 위법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교총은 전교조가 서울시교육청과 맺은 단체협약을 법적으로 문제 있다고 사사건건 트집잡지 않았던가? 전교조도 바로 그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교총은 말한다. " 전교조의 교총회장 파견 감사청구 추진은 서울시교육청의 특혜·보은인사를 모면하려는 물타기식 행태이므로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오히려 반대로 말하겠다. 교총의 서울교육청 파견교사 감사청구는 교육개혁 정책이 실행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물타기 행태니까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다시 교총은 말한다. "서울시교육청의 특정교사 파견은 이미 교과부가 부당성을 인정하여 임용을 취소한 바 있고". 이건 무슨 헛소린가? 교과부가 임용을 취소한 것은 파견교사가 아니라 사립 해직교사의 공립 특채다. 명색이 최대 조직 운운하는 단체를 대표하는 자가 이런 기초적인 오류까지 범하는가? 게다가 교과부가 부당성을 인정하면 이미 부당한건가? 교과부 장관의 말씀이 곧 법인가? 좋다. 그럼 1년만 기다려라. 그 말씀이 법이 되는 세상 한 번 맞이해 봐라.

교총은 또 주절댄다. " 감사원조차도 한국교총의 감사청구이유에 대해서 타당성을 인정하고 감사에 착수한 바 있다."  이 사람들 선생 맞나 싶다. 감사원이 착수하면 이미 잘못된건가? 그럼 나는 교총회장에 대해 고발장을 써서 경찰서에 접수시키겠다. 그리고 말하겠다. 경찰서에서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했으니 당신은 죄인이라고.

교총은 참 말도 많다. "따라서 교총회장의 적법하고 정당한 파견과 원칙에 어긋한 서울시교육청의 교사파견근무를 동일선상에서 다루려고 하는 것은 교직단체로서의 정당한 행위가 아니다." 아직 감사도 끝나지 않았고, 경우에 따라 행정소송도 감수해야 할 사안인데 미리부터 지들은 적법, 정당이고 서울 교육청은 불법이란다. 그러니까 진짜 그런지 같이 견줘 보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원칙에 어긋난 파견인 이유가 "6명이 탄원서와 구명운동을 했고". "15명 중 13명이 전교조라 편향될 것이기" 때문이란다. 이쯤 되면 졸린 상태에서 글을 썼다고 의심할 수 밖에 없다. 탄원서와 구명운동을 했다는 6명은 서명운동조차 해 본적이 없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탄원서와 구명운동이 특혜 거리라면 곽노현 교육감은 수백, 수천명의 교사들에게 특혜를 주어야 했다. 즉 구명운동에 참가한 정도로는 특혜를 받을만한 공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전교조 측에서는 파견된 교사들의 전문성이 교수급들임을 입증한 바 있다. 말 하면 좀 들어라. 아마 중앙일보 3월 6일자 기사보고 그러는 모양인데, 조중동 소설을 기사로 믿었다가 패가망신한 사람 여럿있다. 그 소설 믿고 전교조 이상하게 생각하고 덤벼들면 조전혁 꼴 된다. 부디 조심하기 바란다.  참 그리고 13명이 아니라 12명이다.

편향성 운운하는데, 교총은 적어도 편향된 교육을 하지 않는 단체임은 나도 인정한다. 편향할 방향도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교육을 해야 편향을 하던가 말던가 할 것 아닌가? 참, 그리고 1월 19일 곽노현 교육감이 복귀하기가 무섭게 당장 사퇴하라며 기자회견하고 난리 친 사람이 어느 단체 회장인지 되새겨 보기 바란다. 어떤 바보같은 교육감이 자기 퇴진하라고 하는 단체 회원들을 파견교사로 데려 가겠는가? 그러니 만약 파견교사가 특혜라면 교총 회원들은 편향된(!) 회장 때문에 그 혜택을 못 누린 것이니 당장 탄핵하기 바란다.

교총은 이제 멘붕 상태가 된다. "전교조는 교원노조법 및 교과부와의 단체교섭 합의를 통해 중앙 및 시·도에 100여명에 달하는 상근자가 근무하고 있고, 상근경력이 근무경력 및 공무원·사립연금법상 재직기간에 삽입되는 상황을 감안할 때"

남의 상근자 타령은 왜 하는지. 그리고 상근자는 교사 아니다. 상근자는 전교조의 피고용인이며, 교사가 휴직하고 나가 있는 경우는 전임자라 한다. 그리고 전임자의 수는 40여명 선이다. 그나마 그들의 월급은 모조리 전교조 조합비에서 나간다. 그러니 교총회장도 깨끗하게 감사받을 정도로 쿨한 사람이라면, 그까짓 월급, 국고 말고 교총 회비에서 챙겨라. 교총 부자 아닌가?

그리고, 스스로 전교조 서울지부장하고 동격에 서는 겸손함은 크게 칭찬해줄 만하지만, 서울지부의 성명에 대해서는 서울지부의 성명으로 화답하라.

아, 참. 교과부에  파견된, 아무리 봐도 위법한 2호 파견으로 보이는 26명의 교사에 대해서는 왜 변호 안하고 회장님 변호만 하나? 아무리 교수, 교장, 교감 단체라지만, 같은 파견이라도 교수 파견은 변호하고, 교사 파견은 무시하나? 정말 교총 회원들 회비 아깝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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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22.

삽질 해 놓고 자화자찬하는 교과부의 학교폭력 대책

요즘 교과부가 멘붕 상태다. 장관만 멘붕이 아니라 이제는 차관도 멘붕인 것 같다. 여기에 기자들이 파업중인 방송사들의 멘붕까지 합세하니 별 해괴한 보도가 다 튀어나온다. 여기에 그 극치라 할 만한 사례가 하나 있다.

지금 교과부는 학교폭력 예방을 빌미로 온갖 해괴한 정책을 졸속적으로 쏟아내어 학교를 일대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고는 정작 아주 큰 효과가 있는 양 선전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의 흐리멍텅한 눈으로 보아도 효과는 커녕 혼란만 일어나고 있음은 명약관화다.  그러자 교과부는 느닷없이 진보교육감들의 비협조 때문에 자기들의 훌륭한 정책이 잘 되지 않고 있다고 둘러대고 있다. KBS가 이런 말도 안되는 자화자찬과 견강부회에 한 몫 단단히 하며 거들고 있다. 이제 그 사례를 보자.

3월 22일 KBS뉴스는 이제 땡이 뉴스가 이명박 뿐 아니라 이주호에게 까지 봉사하고 있는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KBS 기사 링크

뉴스 요지는 이렇다. 교과부는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체육 시수를 늘리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그 이행률이 예상보다 저조하다. 그 이유는 진보교육감들이 협조를 안해서다. 아, 이 좋은 정책을 단지 이념적인 이유 때문에 협조하지 않는다니, 진보교육감 나쁜 것들. 대충 이렇다.

하지만 이 뉴스에는 교과부가 체육 시수를 1시간 이상 늘리라는 특단의 조치를 새 학년 시작이 한달도 안 남은 시점에,  교사들 인사 이동 다 끝나고, 상당수 학교에서는 이미 새학기 시간표까지 다 짠 다음에 느닷없이 내 던졌다는 사실은 쏙 빼놓고 말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2012학년도 들어 교과부가 교사 정원을 10%나 줄여서 체육교사도 예외없이 줄어들었다는 말도 쏙 빠졌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체육 시간을 늘리라고 요구하는 교과부의 방침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아 챌 것이다.

교과부 차관은  한 수 더 떠서 진보교육감이 협조를 안한 탓에 체육시수 늘리는게 얼마나 좋은지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이 정부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소통이 부족하다고 문제제기하면 홍보를 늘리겠다고 대답한다. 참 딱하다. 게다가 KBS에서 붙인 보도 타이틀을 보라. "학교 체육수업 확대... 일부 교육청 참여율 저조"다.  정확한 타이틀은 "학교 체육수업 확대 파행, 편법"이라야 할 것이다.

당장 친여 성향의 SBS 보도만 봐도 교과부의 주장이 엉터리임이 단박에 드러난다. 보도 타이틀이  "시간만 늘린 체육수업.... 콩나물 시루 운동장"이다. 한 마디로 준비와 여건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졸속 정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실시되고 있다고 보고한 교육청들을 의심해야 하는 것이 정답이다. 진보교육감들은 교과부를 방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일선 학교의 불만을 진지하게 고려했기 때문에 이 정책의 실시에 소극적인 것이다. SBS 기사 링크

복수담임제에 대한 반응 역시 처참하다. 한겨레나 경향이 아니라 기자들이 파업해서 친여 성향의 직원들이 제작중인 YTN YTN기사 링크의 보도에서도 그렇다. "겉도는 복수 담임제... 학교폭력 예방효과 '의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건 예견된 실패다. 그러니 YTN이 제대로 된 언론이었다면 이렇게 뒷북이나 칠게 아니라 교과부 대책이 발표 되었을때 바로 정면에서 비판했어야 한다. 즉 겉돌면서 수백억의 예산을 낭비하기 전에 문제제기 했어야 했다. 지금 우리나라 중학교 교사의 배치 기준은 학급당 1.5명 이상이다. 산술적으로도 복수담임은 불가능하다. 이걸 시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교사 수가 학급수의 두배 이상이 되는 것이다.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더군다나 교과부는 교과부가 교사 정원을 학급당 1.67명에서 1.55명으로 대폭 감축했다. 교과부 관료들은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학생수가 줄어들면 학급당 학생수 줄일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교사 수를 줄이려 든다.
그 결과 23학급인 송파구의 P중학교를 예를 들면  2011년에는 23학급에 교사 38명이 근무했었는데 지금은 34명만 근무하고 있다. 23학급이니 담임교사 23명, 여기에 학년부장이 아닌 부장교사 8명을 더하면 벌써 31명이다. 담임도 부장도 아닌 교사는 이제 달랑 세명 남는다. 그리고 학교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이 세명이 어떤 사람인지 알수 있을 것이다. 건강이 안 좋거나, 연로하신 분들이거나 출산이 예정된 임산부들이다. 그래서 담임을 빼 놓은 것인데 느닷없이 2학년 담임 하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행정업무를 전담키로 하고 부장이 된 것이기 때문에 담임업무를 볼 여력이 없다. 학교에서 3년만 근무해 봐도 뻔히 결말이 보이는 정책을 명색이 수십년 교육경력을 가진 고위 교육관료들이 생각해 내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이런 상식적 관점에서의 비판이 어떤 뉴스에서도 잡히지 않는다.

오히려 교과부가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별도의 교사 충원 없이 효율적인 업무분담 모델등을 발굴해 복수담임제를 정착시킬 방침"이라고 우기는 모습만 클로즈업 하고 있다. 이것 정말 언어의 마술이다. "교사는 충원하지 않으면서 담임은 두배로 늘린다!" 놀랍지 아니한가? 그렇다면 나는 지불하는 돈은 늘리지 않으면서 받아가는 상품은 두배로 늘리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정말 말이 안되는 말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체육 시수 증가나 복수담임제가 정말 학교폭력 예방대책으로 검증되었는지를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과부도 기자들도 학교폭력 예방 하면 NO1,2를 다투는 권위자인 단 올베우스, 크리스티나 살미발리를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명색이 기자라면 학교폭력이 화두가 될때 이 두 사람 정도는 반드시 찾아 보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두사람의 학교 폭력 예방프로그램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보았다면, 복수담임제니 체육수업시수 확대니 하는 것이 학교 폭력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고 의심했어야 한다. 나 역시 학교 폭력과 관련한 국내외 논문 190여 편을 검토해 보았지만 체육 수업을 늘리고 담임을 두명씩 배당해서 학교 폭력을 막는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이들의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연극, 영화, 게임, 그리고 토론을 통해 학급, 가정, 학교, 지역사회가 모두 성장해 나가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하고 있다.  올베우스는 학교 규칙을 민주주의가 정착될 수 있도록 개선하고, 학교 폭력이 발생한 학급의 구성원 전체가 참가하는 연극, 토론 등의 활동을 통해 이를 예방하고 있다. 살미발리는 10차시로 이루어진 특별한 학생교육 프로그램(영화, 토론, 연극 등이 포함됨), 학교폭력 상황을 가상으로 체험하고 선택해보는 컴퓨터 게임 등을 활용하여 학교폭력이 발생할때 방관자들이 피해자를 돕도록 나서게 하는 공감증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반면 체육시수 확대나 복수담임제는 가해자, 소위 일진들을 보다 촘촘하게 감시하고 억압함으로써 학교폭력을 막겠다는 발상에 가깝다. 아니 차라리 그런 발상이기라도 하면 좋겠다. 교과부의 학교폭력 대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아예 족보가 없다는 것이다. 즉 즉흥적이고 아무 이론없는 그런 대책인 것이다. 한 마디로 교육을 놓고 아님 말고 식의 정책을 던졌다는 것이다.

교육은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국가 사업이다. 그래서 교사를 전문직이라고 한다. 그리고 명색이 교과부에서 일하는 교육전문직들은 그 교사들 중에서 선발되었다고 서로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어떤 정책을 내어 놓기 전에 먼저 그 정책의 이론적, 과학적 배경을 제시하고, 효과를 예측하고 검증하고, 예상되는 결과, 반향, 부작용 등을 충분히 검토한 다음에 내어놓았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애들 장난같은 정책을 폭력 예방 대책이라고 내어 놓고는 진보교육감이 협조를 안해서라고 투덜거린다. 그 동안 이런 무리들에게 우리 교육을 맡겨 놓았던 것이다.

참고로 교과부 관료들을 위해  올베우스 프로그램 과  살미발리 프로그램 링크 걸어둔다. 번역은 제공하지 않는다. 아린지 정권의 교과부니까 영어는 기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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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20.

전교조는 교총에게 파견교사 특혜 준 교과부에 대한 감사를 청구하라

지금 서울시 교육청에는 감사원에서 감사관들이 나와 있다. 어제는 해직되었다가 복직했으나 다시 교과부장관이 임용취소해버린 교사 세명이 특혜 채용인가 아닌가를 따진 모양이다. 오늘부터는 파견교사 15명이 곽노현 교육감 구명운동을 한 댓가로 받은 특혜인사인가 아닌가를 따지겠다고 한다.

파견교사가 특혜라고 불릴만한 건지 아닌지는 논외로 하겠다. 문제는 이 감사가 감사원의 독자판단이 아니라 한국교총이 청구한 국민감사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교총이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지를 좀 따져 보아야 한다. 우선 교총 회장인 안양옥 조차 서울교대에서 근무하지 않고, 한국교총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나랏돈으로 월급받는 파견교수다. 파견교사들이야 학교라는 관공서에서 교육청이라는 다른 관공서에서 일 하고 있으니 나랏돈 받는게 하등 문제 없다지만, 일개 사단법인에서 일하면서 나랏돈으로 월급 받는 것은 특혜라고밖에 볼 수 없다. 참고로 전교조 위원장의 월급은 전교조 회비에서 충당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정작 교과부에는 파견교사가 무려 60명이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2명을 빼면 모두 교총 소속이라는 것이다. 다음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10801&PAGE_CD=N0000&BLCK_CD=N0000&CMPT_CD=M0011

만약 파견교사가 나름 떡고물이 떨어지는 좋은 자리라면 아무래도 서울교육청 파견보다는 교과부 파견의 떡고물이 커도 몇 갑절 더 클 것이다. 더군다나 교과부에 파견나간 교총 교사들 중 상당수가 인사정책을 담당하는 교원정책과에 가서 박혀 있다. 이것은 연구나 특수사업이 아닌 단순 행정지원 업무일 가능성이 크다. 행정 지원을 목적으로 교사를 파견하지 말라는 공문을 보낸 것은 바로 교과부다.

그런데 교원정책과에 파견된 교사들이 국가규모의 사업을 수행하는 1호파견인지 아니면 단지 관료들 일을 덜어주는 2호파견인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또 전국 교사들의 인사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에 파견된 것이 공정한 절차에 의한 것인지, 알음알음 혹은 사적인 보은, 혜택 관계에 의한 것인지도 매우 의심스럽다. 모든 국민은 이런 합리적인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 국민감사를 감사원에 청구할 권리가 있다.

교총은 서울교육청 학교혁신과에 파견된 전교조 교사들이(사실은 교총 회원도 있다) 특혜라면서 감사를 청구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전교조도 교과부에 파견된 교총 교사들이 특혜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으며, 당연히 감사를 청구할 권리가 있다.

이에 나는 전교조 지도부에게 강력히 촉구한다.
60명이나 되는 교과부 파견 교사들에 대해 어떤 특혜성 인사가 있었는지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하라. 이거 못하면 전교조 지도부는 겁쟁이 꼰대들이 모여서 옛날 무용담이나 나누다가 진보정당 비례대표나 탐하는 찌질한 조직으로 간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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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14.

학교폭력 논문 (3): 학교폭력의 원인과 동학

3. . 학교 폭력의 원인과 동학: 괴롭힘을 중심으로

이제 학교 폭력의 원인과 그것이 진행되는 과정을 괴롭힘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학교 폭력의 원인으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개인적 특성(Agnew, 2001; 문병욱 et al., 2012; Houbre et al., 2006; Muñoz et al., 2011), 가해자와 피해자가 속한 집단의 상호작용(Salmivalli, 2010;Whitted & Dupper, 2005; Gini, 2006), 그 집단을 넘어선 물리적·사회적 환경(Atlas & Pepler, 1998; Bosworth et al., 2010; Thornberg, 2010) 등을 들 수 있다.

3.1. . 학교 폭력의 원인으로서 가해자(Bullies)의 특성

먼저 학교 폭력의 원인을 가해자와 피해자의 개인적인 특징에서 찾는 견해들을 살펴보자. 실제로 학교 폭력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피해자와 가해자는 상대적으로 소수이기 때문에 이들이 다른 다수의 학생들과 구별되는 성격상의 특징이나 사회적 기술의 결핍, 그리고 여타의 심리적·문화적 특성 등을 통해 학교 폭력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다.

3.1.1. 학교폭력 가해자(Bullies)의 성격(personality)
먼저 가해자들의 성격상의 특징을 통해 학교 폭력을 설명하는 경우다. 학교 폭력 가해자들은 주로 집단 내에서 우위에 서려는 욕구가 강한 성격의 소유자들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동료들에게 주목받기 위해, 또 동료들에게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확인시키거나 심지어는 일종의 오락거리를 제공하여 인기를 높이기 위해 희생자들에게 폭력적이거나 공격적인 행위를 한다(Varjas et al., 2008).
하지만 이는 이미 동료들과의 관계, 집단 속에서의 위치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격상의 특성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편 과거에는 이들은 충동성이 높고, 위험을 선호하고, 쉬운 과제나 해결책을 선호하는 등의 성격적 특징이 있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반대로 이들이 전략적이고 이지적인 차가운 성격의 소유자라는 연구결과들도 발표되고 있다(Sutton et al., 1999; Muñoz et al., 2011). 따라서 가해자의 어떤 성격적 특성에서 학교 폭력의 원인을 찾으려는 설명은 오늘날 그리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Samivalli, 2010).

3.1.2. 학교폭력 가해자의 심리상태
가해자들의 심리상태를 통해 학교폭력을 설명하는 경우다. 먼저 학생들이 일반적인 경우보다 높은 긴장상태에 있게 되면 학교 폭력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있다(문병욱 et al., 2009, 2012). 높은 긴장상태의 원인으로는 가치있게 여겨지는 목표 성취의 실패, 부모나 형제를 상실하는 등 삶에서 가치 있다고 여기는 자극의 상실 혹은 그럴 가능성,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만드는 자극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이런 부정적 정서를 교정하거나 경감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다(Agnew, 1999, 2001; 문병욱 et al., 2012).
실제로 학교폭력 가해자들 중 상당수가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경직된 가정환경, 일상화된 체벌, 그리고 아동학대의 경험, 그리고 학교에서 교사의 언어적·신체적 처벌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Brownel & Falshaw, 1990; Olweus, 1993; 문병욱 et al., 2010). 특히 한국의 경우 학생들은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와 방과후 과외 활동으로 시달리고 있어서 다른 나라의 경우와 구별된다. 이들은 시험에 대한 압박, 권위적인 부모 및 교사와의 갈등 등 이 다른 나라에 비해 부정적 긴장요인으로 두드러지고 있다(Lee, 2010; Lee & Larson, 2000).
그런데 이러한 긴장이 직접적인 학교 폭력 가해의 원인인지, 아니면 긴장이 분노, 우울, 불안과 같은 다른 심리적 매개변인을 거쳐서 학교 폭력 가해의 원인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문병욱 et al., 2010). 긴장이 다른 매개변인 없이 직접 가해의 원인으로 나타난다는 연구결과(Piquero & Sealock, 2000)와, 분노 등의 매개변인을 통해 원인이 된다는 연구결과(Mazorella et al., 2003)가 모두 통계적으로 검정된 상황이다. 그러나 한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는 긴장과 분노가 각각 상호 독립적으로 직접 가해 행위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문병욱 et al., 2009).

3.1.3. 학교폭력 가해자의 사회적 능력
한편 가해자들의 사회적 능력의 결핍이나 왜곡에서 학교 폭력의 원인을 찾으려는 설명이 있다. . 이 견해에 따르면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공감(empathy) 능력이 부족하거나, 갈등이나 분노를 다스리는 사회적 기술이 부족하여 폭력적이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한다(Jolliffe & Farrington, 2011; Gottfredson & Hirschi, 1990; Muñoz et al., 2011). 여기서 말하는 공감은 다른 사람의 입장을 느끼고 이해하여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능력으로 자기 입장에서 측은감을 느끼는 동정심(compassion)과는 다른 개념이다. 즉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은 여러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강한 충동을 가지며,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조사 결과 학교 폭력 가해자들 중 상당수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읽어 내는 능력을 갖춘, 즉 ‘마음의 이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Sutton et al., 1999; Dadds et al., 2009; Olthof et al., 2011). 이들에 따르면 학교 폭력 가해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읽어서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충분히 예측한 가운데, 전략적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심지어 폭력 가해자들은 강압적 전략과 이타적 전략을 적절하게 구사할 줄 아는 노련한 사회적 기술을 가지고 있기까지도 하다. 이들은 운동장이나 식당의 좋은 자리, 좋은 장난감 등과 같은 학교에서 자원을 통제하는 우월한 지위에 있고 표면적으로는 인기가 있으나, 심정적인 지지까지 받아내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표면적 인기와 심정적 인기가 일치할 경우 이들은 이타적인 행동을 하지만, 일치하지 않을 경우는 폭력을 사용하여 그 지위를 유지하고 향상시키려고 한다(Hawley, 1999; Hawley, et al., 2002).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공감을 인지적(cognitive) 공감과 감정적(affective) 공감으로 구별해서 보자는 연구가 있다(Muñoz et al., 2011). 여기에 따르면 학교 폭력의 가해자들은 타인의 마음을 인지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은 뛰어난 반면, 감정적으로 느끼는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런데 Muñoz와 동료들(2011)은 이를 기질적인 변인으로 간주하여 냉담-비공감적 기질의 소유자는 감정적 공감능력이 결핍되어 있으며 학교 폭력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냉담-비공감적 기질(ITU)은 감정적 결핍으로 인해 냉담하고, 무관심하고, 냉정한 기질을 말한다. 만약 이런 기질의 소유자라면 아무리 인지적 공감 능력이 높아 피해자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더라도 아무런 가책과 거리낌 없이 폭력을 행사하며, 도리어 잘 아는 만큼 더 교묘하고 잔인하게 피해자를 괴롭힐 수도 있다(Fanti et al., 2009; Frick, 2004; Muñoz et al., 2011). 그런데 이들은 이러한 감정적 결핍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감정적 결핍에서 비롯된 공감능력 부족은 교육적 처치로는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리는 것으로 보아 일종의 선천적·기질적 요인으로 보는 것으로 추정된다.

3.1.4. 학교 폭력 가해자 분류의 필요성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보면 학교폭력의 원인으로서 가해자의 개인적 특성은 매우 다양한데다가 심지어 공감의 부족과 공감능력의 발달, 부모의 방치, 부모의 과밀착 등 상호 모순적인 경우까지 나타나서 분석적 가치가 의심받을 수도 있다. 이는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단일한 집단이 아닐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학교 폭력의 가해자들을 남/녀, 또 가담 정도의 차이에 따라 분류할 경우 공감능력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모순적인 결과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Jolliffe & Farrington, 2011).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남학생의 경우 주도자들은 인지적, 감정적 공감능력이 모두 낮은 반면, 여학생 주도자들은 인지적 공감능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부화뇌동하는 동조자들은 인지적, 감정적 공감능력이 낮으며, 충동성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학교폭력의 주동자들은 상당한 수준의 인지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전략적 행위로서 가해를 하는 반면, 동조자들은 쉽게 휩쓸리는 성격과 낮은 수준의 인지 능력으로 인해 주도자들이 조장하는 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두목은 가해 행위를 주도하며, 똘마니는 두목에 이끌려 폭력을 행사한다. 두목은 대체로 인지적 능력이 뛰어나고 사회적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똘마니들은 기질적으로 폭력적이고 쉽게 흥분하는 경우가 많다. 두목은 대체로 냉정한 상태에서 피해자의 고통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계획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며,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간접적인 폭력을 주로 구사한다.는 두목(ringleader)와 두목에 이끌려 폭력을 행사하는 똘마니(assistant)로 분류할 수 있다.

지금까지 논의들을 종합하면 학교 폭력 가해자의 개인적 특성은 부모나 교사로부터 학대, 폭언, 체벌 등의 경험, 폭력과 비행이 쉽게 용인되는 가정환경이나 또래집단에서 생활, 부정적 경험이나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비롯되는 긴장이나 분노, 그리고 똘마니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쉽게 흥분하는 기질과 낮은 인지적 공감능력, 두목들에게서 나타나는 집단 내 높은 지위에 대한 욕구, 그리고 낮은 감정적 공감능력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학교 폭력의 원인으로 가해자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이 부당함을 보여준다. 이들은 가해 행위의 정도와 주도성 등에 따라 달리 취급되어야 한다. 또 가해행위의 원인이 되는 여러 성격적, 심리적 특성도 타고난 기질, 성장환경, 가정환경, 생활환경 등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가해자들을 처벌이 아니라 이런 여러 변인들을 고려한 종합적인 개입방법이 필요하다.


3.2. . 학교 폭력의 사회적·문화적 원인

1990년대 초반까지 학교폭력 문제에 대한 대처는 주로 가해자의 가해 원인을 제거하고 피해자의 사회적 지지와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제기된 문제는 폭력의 발생보다는 5% 내외에 불과한 소수의 폭력 가해자들의 행위가 어떻게 또래 집단을 지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즉 학교폭력은 피해자-가해자의 개인적인 행동 뿐 아니라 보다 넓은 사회적 ,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일어나는 집단적 현상인 것이다(Samivalli, 2001).

3.2.1. 학교 풍토와 학교 폭력

학교폭력은 가해자, 피해자 뿐 아니라 교실, 학교의 풍토, 지역사회의 문화 등의 영향을 받는 총체적인 현상이다(ZIigler & Pelper, 1993; Atlas & Pelper, 1998). 특히 학교 풍토(climate) 혹은 학급 풍토가 중요하다. 학교·학급 풍토는 학교나 학급과 같은 비교적 미시적인 사회집단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관, 규범, 문화 등의 영향을 받는다.
학교 풍토에서 중요한 것은 교사들의 태도다. 교사들이 체벌을 일상적으로 사용할 경우 학교 폭력의 발생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제출되고 있다. 이렇게 학교가 폭력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지 않고, 경우에 따라 용인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할 경우 학생들은 폭력의 규범을 내면화하며, 그들 나름의 규범에 따라 위반자를 폭력을 사용하여 처벌하려 한다.
학생들의 또래집단은 무질서한 패거리가 아니다. 이것도 엄연히 사회집단의 하나이며, 나름의 사회적 규범이 형성되어 있고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고립된다(Salmivalli et al. , 1997). 그리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학생이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윤성우, 이영호, 2007). 그런데 아동이나 청소년 또래집단의 규범이 아무런 지도가 없는 상황에서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래집단의 규범은 일종의 입법과정을 거치기보다 부나 완력에서 우월한 학생이나 집단의 영향력 하에 형성되는 일중의 불문율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규범들이라는 것도 대체로 “고자질 하면 안 된다. 튀지 말아라. 이상한 행동하는 놈은 따가 된다. 짱 혹은 인기학생에게 거스르면 당해도 싸다.” 등 힘의 불균형을 전제로 하는 비민주적인 규범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학교에서 교사 등 우월한 지위에 있는 행위자가 사용하는 폭력이 용인되는 풍토라면, 또래집단의 불문율 역시 집단 괴롭힘을 정당한 것으로 승인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은 강한 집단적 압력으로 형성되어 가해자가 아닌 학생들에게도 묵인 내지는 선동적인 청중의 역할을 강요할 수 있다(Oliver, 1994).

3.2.2. 사회적 표상과 학교 폭력

문제는 어째서 이런 폭력 가해자들이 ‘쿨’해 보이며 인기 있는 학생으로 또래집단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가 하는 것이다(Samivalli, 2010). 즉 이들의 행위가 높은 평가를 받고, 이런 특성을 가진 학생들이 높은 지위를 차지하도록 하는 학교의 풍토나 문화가 문제다.
학교 폭력을 정당화하는 학교나 교실의 풍토·문화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다름(deviant)에 대한 태도와 관련되어 있다(Thornberg, 2010). 학생들은 특별한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않는 한 대체로 사람들을 자기가 속한 또래집단이나 사회적 표상(social representation)에 따라 범주화 한다. 그런데 이 범주의 상당수는 정상(normal)과 이상(deviant), 강함과 약함, 높음과 낮음 등과 같이 양극화 되어 있어서 다수의 규범, 문화, 언어, 습관 등과 차이가 나는 행동을 하는 학생을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양성을 용납하지 못하고 이상함으로 치부하는 반응은 학교 밖의 사회적 풍토의 영향을 받는다. 학생들은 주로 사회적으로 잘못 적용된 가설들에 의해 편견을 발전시키며 여기에 근거해 어떤 특정한 속성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왜곡된 상을 보유하게 된다(Wright et al., 1986).
이럴 때 다수 집단이 소수 집단을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며, 이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학생들이 ‘쿨’해 보이면서 인기를 얻을 수 있다. 특히 규모가 큰 학교일수록 이런 폭력의 위험은 더 커진다(Kaukiainen et al.,1999). 게다가 학교나 학급에서 우월한 지위에 있는 학생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임의로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게 이상하다는 낙인을 찍기도 한다. 일단 이렇게 낙인이 찍히면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 거기에 따라 행동하면서 이 낙인을 내면화 한다(Becker, 1963).
결국 학교 폭력은 폭력 가해자가 오히려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고 인기를 얻을 수 있는 풍토, 민주적이지 못하고 우월한 지위에 있는 소수가 또래집단의 규범을 만들어 내고, 다수가 이를 묵인하는 풍토, 그리고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여기에 폭력적·적대적으로 반응하는 풍토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풍토 속에서 독특한 문화, 습관, 행동 등을 보이는 학생이 소수화되고 고립된다면 학교 폭력이 발생하며,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이런 폭력이 용인되기 시작되면 학생들은 폭력의 규범 자체를 내면화하게 되며, 가해자의 행위를 묵인하거나 조장하게 된다.

3.2.3. 사회 불평등과 학교 폭력

사회 불평등이 학교 폭력의 원인이 된다는 주장은 주로 좌파진영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특히 가해자의 심리적 특성으로 강한 설명력을 보여주었던 긴장, 분노 등과 같은 부정적인 사회심리적 변인들(문병욱 et al., 2012)이 주로 사회경제적 지위(SES)가 낮은 집단에서 발생한다(Craig & Pepler, 2003)는 점에서 학교 폭력은 SES가 사회심리적 변인들을 매개변인으로 하여 유발한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실제로 일반적 긴장이론(GTS)에 따르면 폭력행위의 원인이 되는 긴장은 중요한 목표달성에 실패하거나, 집이나 직장을 상실하거나, 차별대우를 받거나 하는 등 사회적 불평등에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다(Agnew, 1992, 2001).
사회적 불평등은 사회경제적 지위(SES)와 소득 두 측면에서 측정할 수 있다. SES와 학교폭력의 관계에 대한 연구들은 사회경제적 지위(SES)가 낮을수록 학교 폭력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Chen, 2004; Craig & Pepler, 2003). 특히 공감 능력을 포함한 상당한 분량의 사회심리적 변인들을 쏟아 부었음에도 결국 부모의 감독정도, 충동성, 그리고 SES만이 학교 폭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난 경우도 있다(Jolliffe & Farrington, 2011). 그런데 이 세 변인 모두 학교 교육이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와 같은 결과는 교육자들에게는 곤혹스럽다.
소득 불평등의 경우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면 살인 등의 범죄 발생 빈도도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Wilson & Daly, 1999; Daly et al., 2001). 또한 세계 37개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각 나라의 지니계수들 독립변인으로 하고 학교폭력 가해 비율을 종속변인으로 한 연구(Elgar et al., 2009)에서 지니계수가 높을수록 학교 폭력 발생비율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연구는 SES를 통제변인으로 투입한 상태에서도 소득 불평등의 통계적 유의성을 검정하였다는 점에서 소득 불평등이 SES와 별개의 원인임을 밝혀 내었다. 또 소득 불평등이 심할수록 학교에서 경쟁 밀도가 높아지고(Wilkinson, 2004), 사회적 자본이 줄어들어 Putnam, 2000) 상호간의 불신이 심화되며, 이것이 학교 폭력의 발생에 영향을 준다는 가정 하에 소득불평을 독립변인으로 사회적 자본을 매개변인으로 하는 경로모형을 수립했다는 데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3.3. .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서 학교 구성원

지금까지 주로 학교 폭력의 원인을 가해자, 그리고 사회·문화적 풍토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나 가해자들을 중심으로 학교폭력의 원인을 설명할 경우 가해자는 10%, 피해자는 20%를 넘지 않는다는(Olweus, 1978; Simon-Morton & Scheidt, 2001; 청소년위원회, 2003; Houbre et al., 2006) 점에서 이 문제를 소수의 비행 학생들과 불쌍한 피해자들만의 일로 축소시킬 우려가 있다. 또 사회·문화적 원인만을 강조하면 가해자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에게 어떤 책임도 묻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학교 폭력에서 가해-피해 당사자가 아닌 70%의 방관자(bystander)들이 어떤 형태로든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음을 밝힐 필요가 있다(Olweus, 1978).

3.3.1. 학교 폭력에서 구성원들의 역할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 폭력 발생시에 이미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외자가 아니며, 따라서 이는 개인적 갈등이 아니라 복잡한 집단 현상이다(Salmivalli, 2001). 학교 폭력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제외한 학생들은 대체로 동조자(assitant), 강화자(reinforcer), 방관자(outsider), 방어자로 분류된다(Olweus, 1978; Salmivalli, 1996, 2001; Salmivalli et al., 2002).

3.3.2 피해자-가해자를 제외한 구성원의 학교 폭력에서의 역할
동조자는 가해자와 함께 실제 폭력 행사에 가담하는 학생이다. 이들은 이른바 똘마니들이며,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들에게는 가해자가 되는 피해/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가해자들의 권력을 공유하기 위해 학교폭력에 가담한다(Olweus, 1993; 이준구, 2001). 강화자는 직접 폭력에 가담하지는 않지만 박수, 환성, 기타 긍정적인 반응을 가해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가해 행위를 강화하는 선동적인 청중이 된다(Olweus, 1993; Salmivalli, 2001). 방관자는 피해 상황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 학생들로 표면적으로는 중립적이지만, 이미 폭력 피해를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침묵함으로써 폭력의 규범을 묵인하여 사실상 가해자와 같은 편이 된다(Salmivalli, 1996; Craig & Pepler, 1997). 하지만 이들 중에서도 심정적으로 피해자를 돕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방관자들과 그렇지 않은 방관자가 구별된다(권준모, 1999; 선광석, 2003). 마지막으로 방어자는 유일하게 피해자의 편에 서는 학생들로 직접 가해를 저지하거나, 사후에 피해자들에게 정서적·사회적 지지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3.3.3. 구성원들의 역할에 의한 학교폭력의 동학

학교 폭력은 가해자만의 힘으로 혹은 피해자만의 약점 만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학교폭력은 또래집단의 동조가 있기 때문에 지속된다. 즉 이것은 근본적으로 힘의 불균형에서 비롯되고, 이것을 유지 확대시키려는 의도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또래집단 내에서의 지위 상승이나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이를 지속시킬 유인이 없다. 따라서 학교 폭력은 또래집단내에서 가해자의 공격을 중지시키거나 반대하는 입장을 표시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학생집단의 최소한 암묵적 동의라도 있어야 이루어지며, 가해자측이 집단규모, 인기도, 집단내 역할의 차이 등 권력 자원을 가지고 있고, 대다수가 이런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거나 동조함으로써 유지된다(Olweus, 1994; Salmivalli et al., 2002).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집단이 강화자와 방관자다. 강화자가 더 이상 학교 폭력에 대해 긍정적 강화물을 제공하지 않을 때, 또 방관자가 방어자 혹은 가책성 방관자로 바뀌어 나갈 때 학교의 동학은 가해자의 힘이 급격히 줄어드는 쪽으로 바뀌게 된다. 반대로 방관자가 강화자와 합세하여 가해자를 지지하는 쪽에 서게 되면 학교 폭력은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되게 된다.


주인장이 쓴 책들: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2012. 3. 13.

작은 엠비 이주호 장관을 기념한다.

지금 교과부 정문 앞에서는 날마다 이런 1인 피케팅이 벌어지고 있다.  이 시위의 발단은 곽노현 교육감이 정당한 절차를 거쳐 복직시킨 사립교사들을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그것도 잘못된 공문을 보내가며 다시 해직시켰기 때문이다. 이러자 급기야 이주호 물러나라란 구호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시위는 만시지탄의 느낌이 든다. 이주호 장관은 진즉에 물러나건 뭔가 책임을 지건 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주호 장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교육 전문가가 아니면서 교육에 대해 다 아는 것 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만 공교육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말았다. 가히 가카가 땅을 파고 삽질을 해서 경제를 말아먹었다면, 이주호 장관은 교육과정과 교육정책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학교를 초토화시켰다. 그럼 그걸 한 번 나열해 볼까 한다.

1. 교육과정이 애들 장난인가?

아마 역대 교육부 장관중 이주호 장관처럼 교육과정을 자주 뜯어 고친 장관은 다시 없을 것이다. 특히 사회교사들은 이주호라고 하면 이를 박박 가는데 그 사연을 한번 들어보자.

7차교육과정이 마무리되면서 2007개정교육과정이 고시되었다. 이에 따라 2008년에 고등학교 교과서를 개발하여 2009년에 검정을 받고 2010년부터 적용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2007 개정 교육과정 해설서가 발표된 그 다음날 교과부에서는 사회과 교육과정 문제가 많으니 다 뜯어고치겠다고 나섰다. 그 결과 3년에 걸쳐 개발된 2007 개정 교육과정 사회과는 날아가고, 그 동안 교과서 작업한 것도 날아갔다. 그래서 누더기같은 교육과정이 전문 연구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아니라 장관이 지명한 몇몇 교수TF 손에 의해 몇개월만에 날림으로 발표되었다. 어쨌든 교과서는 만들어졌고, 2009년에 검정을 받았다.  

아니 그런데 2009 개정교육과정이 또 발표되었다. 즉 2년만에 교육과정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바뀐 교육과정에 따라 고등학교 사회과가 폐지되었다. 정치 교과도 폐지되고 법 교과에 통합되었다. 그나마 한국사가 여론의 반발에 밀려 살아남았다. 이로써 고등학교 사회과는 단 3년 사이에 교과서 내용이 두번 바뀐 다음에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내가 공들여 만든 교과서도 단 2년만에 폐품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기껏 사회과를 없에버린 교과부가 이번에는 고등학교에 융합사회를 만든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헛소리를 퍼뜨리고 다닌다. 아, 제발 교육과정 좀 그냥 둬라. 교육과정은 한 나라의 수백만명의 학생들의 삶을 들었다 놨다 하는 정신적 생명선이다. 이건 뉴라이트들의 이념 놀이기구가 아니다. 더군다나 비전문가들의.

2. 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않는 졸속 정책들

아무리 생각해도 장관님은 인기를 중요시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교육정책을 백년지 대계가 아니라 다음 두 원칙에 따라 수립하는 것 같다.

1) 그때 그때 이슈가 되는 것은 다 한 번씩 만져준다.
2) 곽노현 잘되는 꼴은 절대 보지 않는다. 

처음에는 1)에 의해 주로 움직이셨고, 2011년 이후에는 거의 극악할 정도로 2)질을 하신다. 심지어 곽노현을 물먹이기 위해서라면 그까짓 소신 따위 헌신짝처럼 버릴 각오로 2)질을 하신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교장 공모제다. 심지어 교육법이 바뀌어서 교장공모제를 확대하게 되면, 시행령을 바꿔서라도 공모제를 못하게 한다. 아니 시행령이 법률이 위임한 디테일을 조정해서 법률의 입법취지를 잘 살리라고 있는 거지, 장관 마음대로 들었다 놨다 하는 장난감인가? 게다가 교장공모제의 원조는 사실은 이주호 장관님 국회의원 시절이다. 그 당시 민노당(!) 최순영 의원과 함께 교장 공모제 소리높여 외친거 알 사람 다 안다. 정말 변신의 귀재다.

또 집중 이수제는 어떤가? 3년에 걸쳐 배우도록 구성된 과목을 느닷없이 내년부터는 1년에 몰아서 하란다. 그래서 어떤 학교는 역사를 1학년때 몰아서 배우고, 도덕을 2학년때 몰아서 배운다. 다른 학교는 도덕을 1학년때 몰아서 배우고, 역사를 2학년때 몰아서 배운다. 이거 전학이라도 간다치면 역사 하나도 안배우고 중학교 졸업하는거다. 이 골때리는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도 않고, 그저 과목수가 너무 많으니 줄여야 한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이런 무식한 조치를 해 놓았다. 아마 교과부에 있는 수많은 나름 교육전문가들에게는 발달과정이라는 말이 너무 어려운 전문용어인 모양이다.

3. 앞 뒤가 전혀 맞지 않는 유체이탈 정책

그나마 조전혁 같은 뉴라이트면 일관되기라도 하다. 우리 장관님의 정책은 좌, 우를 떠나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자면,

1) 2012년 들어 느닷없이 교사 수를 줄였다. 자그마치 거의 10% 정도나 줄였다. 그 덕분에 교사들의 수업시수가 크게 늘어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곽노현 교육감의 획기적인 업무경감 정책이 전혀 체감되지 못하게 하려고 물타기 한 것 같다. 핑계는 항상 앞으로 학생수가 줄어들어서라고 한다. 아니, 학생수가 줄어들면 학급당 학생수를 줄일 일이지 교사 수를 줄이다니 정말 끝내주는 정책이다. 더군다나 3년 뒤 줄어들 것을 예상해서 미리 앞댕겨서 교사 수를 줄인다. 그 돈 절약해서 대체 뭐하잔 말인가?

2) 그런데 갑자기 2학년 복수담임제를 하라고 한다. 교사 수를 10% 줄여 놓고는  담임교사를 33% 늘려라? 아이큐가 60만 넘어도 이게 개콘 작가가 아니라 장관의 정책이라고는 믿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체육 수업을 두배 늘리라고 한다. 체육교사는 왕창 줄여 놓고, 체육 수업은 두배로 늘려라? 문득 이 분이 1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경제학자였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 간단히 말하면 노동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렸다! 아니 언제부터 교과부가 마른걸레 다시 짜서 이윤 창출하는 기구가 되었나? 아무리 뼛속 깊이 친미, 친일로 알려진 분이지만 교과부를 도요타로 바꿔 놓을 줄은 몰랐다.

3) 게다가 또 시행령을 잡아 뜯어고쳤다. 애초에 잡아 뜯어 고칠때는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 할 것 처럼 언론 플레이를 했지만, 정작 고친 내용은 교육감의 교칙 제정권을 삭제한 것이다. 즉 학교단위의 교칙 자율권을 준 것이다. 그런데 이게 학교 현장에서는 잘못 알려져서 학생인권조례가 상위법인 교육법 시행령에 의해 무효화 된걸로 알려졌다. 학교장들은 더 빡세게 머리 밀어대는 교칙을 밀어붙이면서 시행령을 핑계로 댄다. 시행령 어디에도 학교 규칙이 상위법인 학생인권조례를 무시해도 된다는 근거가 없는데도 말이다. 이로써 3월 개학하기가 무섭게 학교 현장에서는 두발문제 때문에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교육청에서 일이 제일 많다는 책임교육과 장학사들이 요즘 두발 규정을 문의하는 학생들 전화 때문에 일을 못할 지경이다. 정작 일을 이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장관님은 늘 웃고 계신다. 인자하게. 

4. 수능이 EBS 수익모델인가?

우리 장관님의 정책중 최고로 재미있는 정책이 EBS문제집에서 수능 70% 출제한다는 것이다.  세계 어느나라에 대입시험을 특정 회사 문제집에서 출제한다고 정부에서 대 놓고 광고하는가? 그 덕에 EBS는 지금 떼돈을 벌고 있다. 그리고 국내 최고의 평가 전문가들이 모였다는 교육과정 평가원의 교육학 박사들은 열심히 EBS문제집을 뒤지면서 수능문제감을 고르고 있다. 이거야 말로 박사들 데려다가 알바급 일 시키는 것이니 우리 장관님은 학벌폐지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내가 장관이라면 EBS를 통한 수익모델을 한번 창출해 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BS자체가 주식회사는 아니니까 EBS문제집을 출판하는 외주회사를 하나 세운다음 ㅋㅋㅋ. 설마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시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뭐가 더 많은 것 같았는데, 갑자기 쓰려니까 생각이 안난다. 게다가 자꾸 그 얼굴 떠올라서 짜증난다. 사실 전교조 간부 시절 중학교 운영지원비인가 뭔가 폐지하기 위해서 당시 의원이었던 장관님 몇번 본적이 있다. 아마 기억 못하겠지만. 그땐 참 공손하고 단정하고 참신하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학교 폭력 관련 문헌 목록(보강판)

그 동안 몇 편의 논문을 더 참고하였습니다. 참고한 문헌 목록을 공유하니 이후 포스팅때 노트가 붙으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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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8.

학교 폭력 논문 (2)- 이론적 배경 부분-1

 
1. . 학교 폭력의 의미와 분류
 
학교폭력이란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이다. 그런데 폭력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따라서 학교 폭력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먼저 폭력의 의미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1.1. . 정당하지 않은 강제력으로서 폭력
 
먼저 폭력의 의미를 고찰해 보자. 폭력이라는 용어가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일단 폭력은 나쁜 것이라는 가치판단이 개입되기 쉽지만, 폭력이라는 개념의 의미는 실제로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폭력의 사전적인 의미는 “신체적·정신적인 손상을 가져오고, 정신적·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는 물리적인 강제력”이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1) 실제적인 손상, 2) 손상의 가능성에 기반한 압박이다. 이 폭력은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와 그 방법에 따라 인간이 주체적으로 의도한 것이 아닌 자연적 폭력, 특정 사람이나 세력이 행위자로 개입하는 직접적 폭력, 사회 및 세계의 구조에 의해 비의도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폭력, 직접적 또는 간접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문화적 폭력, 지속 가능성을 약화시켜 다음 세대에게 해를 입히는 시간의 폭력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흔히 폭력이라고 말할 때 주로 거론되는 것은 직접적 폭력, 간접적 폭력, 그리고 문화적 폭력이다(Galtung, 1996).

그런데 신체적 손상이나 손상 가능성에 기반한 압박을 반드시 폭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의 명백한 살상행위를 우리는 의거라고 부르지 폭력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반면 로드니 킹 사건의 경우 사법권을 가진 경찰관들의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폭력이라 부른다. 따라서 어떤 강제력이나 압박이 폭력이라고 불리고 도덕적으로 ‘악’으로 규정되기 위해서는 그런 강제력을 사용한 동기가 정당화 될 수 있느냐에 달려있으며, 정당화 되면 그 힘은 ‘권력’이 되며 정당화되지 못하면 ‘폭력’이 된다(Arendt, 1969).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정당하지 않은 물리력을 구사하여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가해자의 기질 혹은 사회적 구조나 분위기,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인간의 조건이라는 설명까지 가능하다.

가해자 귀인은 가해자가 선천적으로 쉽게 흥분한다거나 공격적인 기질을 갖고 태어났다는 설명이며, 사회적 귀인은 가해자가 폭력적이거나 공격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랐거나, 사회적 배경이 폭력을 용인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라는 설명이다. 인간조건 귀인은 폭력은 인간이 한정된 자원을 놓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 경쟁의 “작패”에게 우위에 서기 위해 서로 행사되거나, 이 갈등으로 인한 사회공동체의 분열을 막기 위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희생양 삼아 행사된다는 주장이다(Girrard, 1977).

결국 그 어느 경우에나 인간 세상에서 폭력은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기질상 쉽게 흥분하고 폭력적인 인물의 분포가 0%인 집단은 상상하기 어려우며, 자원의 희소성이 없는 인간사회도 상상하기 어렵다. 따라서 난폭한 구성원에 의한 혹은 이들을 제압하기 위한 폭력, 또 희소한 자원을 두고 다투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폭력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다. 이런 폭력의 일상성 속에서 어떻게 폭력을 정당성에 바탕한 권력으로 전환하는가 하는 것이 바로 홉스 이래 근대 정치학의 지속된 주제였다. 홉스, 로크, 루소 모두에게 정치권력이란 폭력의 특정 인물 혹은 기구로의 정당한 집중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 정당성은 다수의 동의 혹은 압박에 의해 비롯된다(Arendt, 1969).

하지만 이런 다수의 압박조차 사회적 폭력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메를로-퐁티(Merleau-Ponty, 1969)는 폭력은 인간이 살아가는 이상 불가피하며, 다만 그 발현 양상만이 다양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물리적으로 강제되는 직접적인 폭력 뿐 아니라 대화와 설득을 통해 다른 사람을 자신의 의지에 따르게 하는 간접적인 폭력, 혹은 문화적이고 구조적인 폭력 등을 매 순간 부지 불식간에 행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폭력 없는 순수"와 "폭력적 행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폭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뿐이다. 심지어 무엇을 이름짓고, 분류하고, 기록하고, 알아 둘만한 지식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이미 권력적 현상이며 상대편에게는 폭력이라는 주장까지 있다(Foucault, ).

폭력에 대한 이런 다양한 주장들을 종합해 보면 폭력은 의외로 우리 일상에 매우 가까이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넓게 잡으면 일체의 강제력이나 압력, 혹은 어떤 개념이나 용어를 규정짓는 행위까지도 모두 폭력이다. 정당하지 않은 강제력의 행사를 폭력으로 규정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정당성은 일방적으로 승인된 규정이나 규범이 아니라 강제력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를 포함한 공동체의 합의를 전제하기 때문에, 가정에서부터 학교, 사회, 국가, 국제사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무수한 폭력적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1.2. . 학교 폭력의 의미와 범위
 
이제 폭력의 개념을 이제 학교 폭력에 적용해 보자. 학교 폭력을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으로 규정하는 데는 별다른 의의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앞에서 규정한 폭력의 의미에 따라 학교 폭력은 교사와 교사간, 교사와 학생간, 그리고 학생과 학생간에 피해자가 동의할 수 있는 정당성 없이 가해지는 일체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문화적 압력 혹은 강제력의 행사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학생들 간의 주먹다짐은 경우에 따라 신체적인 피해가 막심할 수 있지만, 싸움의 당사자가 동등하다면 학교폭력이 아니라 단지 싸움이다. 하지만 어느 일방이 더 우월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주먹다짐은 다른 일방은 원하지 않은 싸움을 강요받은 것이기 때문에 학교폭력이다.

일반적으로 학교폭력을 학생들 간에 발생하는 폭력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가 학생에게 가하는 폭력은 학교폭력 보다는 ‘체벌’이라는 용어로 윤색되면서 폭력이라기 보다는 다소 정도가 지나친 벌 정도로 치부된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폭력의 정의에 따르면 교사가 비록 교육적 목적에서 행한다 하더라도 당하는 학생이 합의하에 그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은 일체의 강제력은 모두 폭력이다. 심지어 교사들 사이에서도 합의하에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은 강제력과 압박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데, 이것 역시 학교 폭력이다. 따라서 학교폭력의 대상을 학생으로 한정지을 수 없다.

또 학생과 학생간의 폭력의 경우에도 주로 피해 상황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강도 높은 폭력이나 “빵 셔틀”이나 일진회처럼 가해자가 분명한 폭력이 주로 학교폭력으로 불리고, 강도가 낮은 폭력, 가해자가 모호한 집단적 폭력은 단지 장난(teasing)이나 성장통의 일종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Whitted & Dupper, 2005; Stockdale et al., 2002). 하지만 평범한 청소년들도 언제든지 학교폭력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가해자를 정확히 짚어내기 어려운 학교폭력도 매우 많다. 실제로 죽음이나 자살시도로 이어지거나 이후에도 오랜 후유증을 남기는 학교 폭력은 이런 저강도 폭력인 경우가 많다(Samivalli, 2010).
이렇게 학교 폭력의 범위가 넓기 때문에 범주의 문제가 발생한다. 즉 이것을 학교에서 발생하고, 학생과 관련되는 폭력적 범죄(crime)의 한 종류로 볼 것이냐, 아니면 청소년 비행(delinquency)의 하위범주로서 추로 폭력을 그 수단과 매개로 하는 비행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문성호, 2002).

전자의 관점을 취하면 이 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청소년일 뿐 일반적인 폭력범죄에 해당된다. 따라서 가해자에 대한 제재와 교정이 이 문제 해결의 기본 방향이 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사법당국의 업무이며 학교 밖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후자의 관점을 취하면 가해자, 피해자 뿐 아니라 비행의 원인이 되는 학교, 학급의 풍토와 문화, 그리고 스트레스 등 학생들의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들의 제거가 기본 방향이 된다. 이것은 교육당국의 업무이며 학교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하지만 한국 학교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각종 학교 폭력 사례들에는 이 두 속성이 혼재되어 있다. 소위 일진회만 보더라도 조직 범죄집단(gangsters) 방불케 하여 사법당국의 개입이 불가피한 집단도 있지만, 학생들을 괴롭히는 폭력배(bullies)집단도 있다. 후자의 경우는 단순히 가해자, 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복잡한 학교, 교실 풍토와 문화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사법당국이 아니라 교육당국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 폭력은 그 폭이 매우 넓은 개념이다. 그 폭은 장난(teasing)의 수준을 겨우 넘은 행위에서부터 잔혹한 범죄수준의 행위까지 이른다. 따라서 이렇게 넓은 범위의 행위들의 공통의 원인과 대책을 찾는다는 것은 무모하다.
따라서 그 대상이나 강도와 무관하게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당하지 않은 압력과 강제력의 행사는 모두 학교 폭력으로 규정하는 것이 자칫 심각할 수 있는 상황을 학교 폭력이 간과하는 위험을 피할 수 없다. 다만 학교폭력 개념의 분석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그 아래에 여러 차원의 학교 폭력 유형을 분류하여 하나의 개념틀을 만들어야 한다.
 
1.3. . 학교 폭력의 분류와 대표적 사례로서 괴롭힘(Bullying)
 
 
싸움
병리 행동
폭행
들볶음
괴롭힘
가해자 상태
흥분/격분
정신병리
흥분/격분
정상
정상
피해자 상태
흥분/격분
무차별
두려움/위축됨
불쾌함
두려움/위축됨
의도성
우발적
의도적
우발적
의도적
의도적
지속성
순간적
지속적
순간적
지속적
지속적
폭력강도
강함
예측불가
강함
약함
약함
주요 폭력 수단
신체
무차별
신체, 언어
언어, 간접
모든 종류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학교폭력은 비교적 단순한 현상으로 여겨졌다. 이 현상은 기본적으로 가해자(violent)와 피해자(victim)간의 일이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학교폭력은 사법적인 처벌과 아울러 가해자의 폭력성, 공격성의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는 처치가 요구되는 일이었다. 또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비교적 소수에 속하기 때문에 해결해야 할 문제이긴 하나 심각한 문제로까지는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일본의 ‘이지메’로 대표되는 ‘집단 괴롭힘’ 현상이 알려지면서 학교에서 발생하는 공격적, 폭력적 행동들의 다양한 양상들이 밝혀졌다. 이전까지는 단지 장난이나 들볶음 정도로 여겨졌던 행동들도 특정 학생들에게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 심하면 죽음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준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이후 일본, 스칸디나비아, 영국을 중심으로 학교 폭력에 대한 관심을 단순한 폭행(assault)에서 보다 지속적인 괴롭힘(bullying)으로 전환하는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었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발생하는 각종 폭력, 공격적 행동들에 대한 연구결과들을 종합하면, 이런 행동들을 <표1>과 같이 분류해 볼 수 있다.
이 표에서 좌측은 폭력적·공격적 행위는 발생했으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류가 어렵거나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현상이다. 싸움(fight)은 쌍방 간에 폭력적·공격적 행위가 오고간 현상으로 행위자들은 흥분하고 격분한 상태이며, 욕설과 신체적 폭력이 수반된다. 이 행위는 주로 우발적으로 발생하며 1~2회에 그치고, 장기적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대체로 폭력의 강도는 높은 편으로 학교에서 발생하는 폭력적·공격적 행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며, 심한 부상이 발생하기 전에는 크게 문제삼지 않고 쌍방간의 화해 정도로 마무리된다. 병리 행동(Pathological behavior)은 가해자의 정신적 병리가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폭력적·공격적 행위다. 대체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히 구별되지만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가해자의 정신병리가 지속적인 폭력 피해에 의한 경우가 많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 표의 우측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구별되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폭력적·공격적 행위들이다. 가해자들은 대체로 신체적·사회적·정서적으로 피해자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 폭행(assault)은 가해자가 우월한 힘을 바탕으로 피해자에게 강력한 신체적, 언어적 공격을 가하는 행위이다. 대체로 가해자가 흥분하고 격분한 상태가 많다. 가해자의 동기는 우발적인 경우가 많으며, 특정한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폭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들볶음(teasing)은 가해자가 특별히 공격적인 의도를 가지고 행하지는 않지만 피해자가 불쾌감을 느끼는 농담이나 장난이다. 가해자는 자신이 적대적 행위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가 분명한 거부의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이 행위를 지속하는 경향이 있다.

괴롭힘(bullying)은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집단 괴롭힘’, ‘집단 따돌림’, 혹은 ‘왕따’ 등의 용어로 번역되어 온 폭력적·공격적 행위의 한 유형이다. 이 행위의 정확한 정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힘의 불균형에 기반하고, 한명 혹은 다수의 학생들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목표로 삼아 신체적, 언어적, 사회적, 간접적 폭력 등을 장기간 지속적으로 행하는 폭력적·공격적 행위의 한 유형이다(Olweus, 1978, 1993; Samivalli, 2010). 따라서 가해자를 집단으로 한정하고 있는 ‘집단 따돌림’, ‘집단 괴롭힘’, 사회적 배제를 가해로 상정하고 있는 ‘왕따’ 등은 적절한 번역이 아니다. 물론 이 연구에서 사용하는 ‘괴롭힘’ 역시 이 행위의 지속성은 포괄하지 못한다. 그러나 더 좋은 개념어가 개발되기 까지는 이 용어를 사용하기로 하자.

괴롭힘은 실제 교육 현장에서 피해자에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현상으로, 피해자들의 심신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다른 학생들에게까지 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학교 폭력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Olweus, 1993; Samivalli, 2010; Thornberg, 2010). 따라서 앞으로 이 연구에서 학교 폭력이라고 하면 특별한 설명이 없는 한 괴롭힘을 지칭하기로 한다.

괴롭힘은 그 행위가 가해자로부터 피해자에게로 직접 가해지는 직접 폭력과 간접적으로 가해지는 간접 폭력으로 분류된다. 직접 폭력에는 구타, 피해자의 신체나 소유물에 대해 가해지는 짗궂은 장난 등과 같은 물리적 폭력, 조롱, 듣기 싫은 별명 부르기, 욕설과 같은 언어폭력이 해당된다. 간접 폭력에는 사회적 배제, 헛소문이나 뒷말 퍼뜨리기와 같은 것들이 해당된다(Olweus, 1978). 한편 우리나라의 독특한 현상으로 금전갈취, 심부름시키기, 학교에서 완전히 배제시키기(왕따) 같은 것들이 있는데(문병욱 et al., 2010), 이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사용되는 기준에 집어넣기가 다소 애매하다. 금품 갈취의 경우 가해자가 다단계 방식으로 거의 전교생에게 금품을 상납 받는 등의 행위는 학교 폭력이라기 보다는 ‘범죄’로 분류하고, 특정한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금품을 갈취당한다거나 빵셔틀 등의 심부름을 강요당할때는 학교폭력으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2012. 3. 7.

학교폭력 논문 (서론 부분)

180편의 논문을 읽고 정리하는 중입니다. 앞으로 작성할 글은 논문이라기 보다는 공부한 내용을 논문형태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논문이 될 글이기 때문에 꺼려지는 면이 있지만, 독자분들의 양식을 믿고 조금씩 올려 봅니다.

학교 폭력에 대한 이론적 개관: 인권친화적 학교 폭력 예방 방안 개발의 기반 조성을 위하여
 
권재원(풍성중학교)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와 관련한 개념들이 엄밀히 정의되어야 한다. 폭력은 단지 물리력으로 상대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당한 합의에 의해 주어진 힘이 아닐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폭력은 정당한 권력이 없는 상황이며, 이는 사회 구성원의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다. 학교폭력은 이런 상황이 학교에서 발생하는 경우이며, 비행, 병리, 그리고 집단괴롭힘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중 교육적 처치가 필요한 것은 집단괴롭힘이다. 집단괴롭히의 원인은 개인이 아니라 학교내 집단 역학에 의해 이루어지며, 특히 가해집단과 동조집단이 피해집단과 지지집단을 압도할 경우 일어난다. 지지집단이 적고 동조집단과 방관자집단이 많은 이유는 인권이 경시되는 학교문화, 학생들의 낮은 인권감수성 때문이다. 따라서 인문·예술교육은 학생들의 문화를 인권 친화적으로 바꾸고, 학생들의 인권감수성, 불의감을 높임으로써 학교폭력을 그 근본에서부터 해결할 수 있다.
주요개념: 학교폭력, 학생인권, 집단괴롭힘, 인문·예술교육, 인권감수성, 불의감
 
1. . 서론
 
1.1. . 문제제기: 학교폭력과 학생인권 논란이 놓치고 있는 것들
 
최근 들어 학교폭력과 관련하여 교육계가 매우 뜨거운 논란에 휩싸여 있다. 학교 폭력으로 괴롭힘을 당하다 자살한 학생의 이야기가 언론을 며칠간 장식하는가 하면, 경찰은 학교가 홍콩 누아르 영화의 배경이라도 되는 양 학생 폭력조직인 일진회의 한 달 이내 일망타진을 선언했다. 심지어 경찰이 학교에 찾아가서 폭력학생 명단 제출을 요구하거나 학교 폭력 사건이 발생시 교사의 직무유기 여부도 수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단체들은 저마다 상반된 주장들을 하고 있다. 보수교육 단체들은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학교폭력이 더 심각해졌다고 주장한다. 학교인권조례 때문에 교사가 학생에게 통제력을 행사하기 어려워져서 비행 청소년이나 폭력 학생들의 행동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동아일보, 2012). 경찰이 최근 학교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태도의 배경에도 이런 인식이 깔려있다. 교사가 인권조례에 막혀 지도할 수 없다면 사법권이 있는 경찰력이 그 역할을 대신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진보단체들은 학교 폭력은 지나친 경쟁 풍토 등 사회·환경적 원인 때문에 유발되는 측면이 크다고 본다. 따라서 학생인권조례가 학교폭력을 유발하거나 강화한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며, 오히려 학교에 인권 존중의 풍토가 정착되는 것이 학교폭력의 근본적인 예방책이라고 주장한다(김유성, 2012; 배경내, 2012). 한편 학생인권조례와 학교폭력 예방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기 때문에 상호간의 연관을 찾을 것이 아니라 인권교육, 평화교육이라는 별개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다(박종철, 2012).
이 주장들을 정리해 보면 교육단체들의 주장은 크게 학생인권조례가 학교폭력을 유발한다는 주장, 오히려 방지한다는 주장, 그리고 둘은 서로 독립적이라는 주장으로 대별된다. 이 세 주장들을 유발론, 방지론, 상호독립론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상이한 관점에 따라 해결책에도 차이가 난다. 유발론은 학생 인권의 일부 유보와 교사 혹은 경찰 등 공권력의 통제력의 강화를 강조한다. 폭력, 비행 학생을 처벌, 교화하며, 폭력·비행에 대한 각종 불이익을 부여하여 이를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방지론은 인권 존중의 학교 문화와 풍토 조성을 통해 학교폭력의 심리적, 문화적 기반을 제거하는 것을 대책으로 주장한다. 상호독립론은 학교폭력 문제를 인권이 아니라 사회적 배경에서 오는 문제로 보기 때문에 입시교육의 완화, 교사에게 가해자 재교육과 피해자 치유 등의 권한 부여,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독자적인 기구와 법, 조례의 제정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세 주장들이 시시비비를 가리기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선결과제들이 있다.
첫째 용어의 의미와 문제 상황에 대한 인식의 공유가 있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학교 폭력과 관련하여 서로가 합의할만한 의미의 공유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지만(문병욱 et al., 2012), 우리 나라의 경우는 의미 공유의 기회조차 갖지 않고 대결 구도로 이루어져서 문제가 된다. 보수단체들은 주로 통제받지 않는 “나쁜 학생”들의 횡포나 범죄행위라는 의미로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반면, 진보단체들은 주로 경쟁적이고 억압적인 교육환경에서 마음이 병든 학생들의 병리적 행위로 학교 폭력을 바라본다.
서로가 다른 주장을 할 때 용어들의 기본적인 의미들을 공유하거나 적어도 사용하는 의미를 확정짓는 것은 논의가 교착상태에 빠질 때 물러나서 머무를 수 있는 ‘공통의 안전장소’를 확보하는 것으로 합리적 토의를 위한 기본 전제다(Habermas, 1981). 이런 공통의 안전 장소를 확보해 두지 않은 상태에서 한번 토론이 교착상태에 빠지면 합리적 토론보다는 상대의 의미한 바와 무관한 독단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한 논란이 일어나기가 더 쉽다.
둘째, 학교폭력의 의미와 실태에 대한 보다 엄밀한 분석 도구가 필요하다. 학교폭력은 매우 폭이 넓은 개념이기 때문에 그 원인과 메카니즘이 전혀 다른 현상들이 포괄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현재 문제가 되는 학교폭력이 어떤 원인에서 비롯된 것인지, 또 어떤 과정을 통해 작동되는 것인지 엄밀히 분석하지 않는다면 전혀 다른 문제들에 같은 해결책을 적용하여 오히려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
셋째,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보다 과학적이고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학교폭력은 주로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언론은 폭력의 강도와 피해 수준이 큰 사례를 중심으로 보도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피해자들을 더욱 괴롭히는 학교폭력은 강력한 공격(assault) 보다는 저강도의 지속적인 폭력이나 괴롭힘인 경우가 많아서 어른들의 눈을 피해가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견디다 못한 피해자의 반격이 강력한 공격의 형태로 나타나 피해자와 가해자가 반대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Juvonen et al., 2003; Garandeau & Gillessen, 2006; Huisting et al., 2007). 따라서 언론이 주목하는 현상보다는 학교폭력의 유형과 메카니즘을 충분히 이해한 가운데 실제 피해가 심각하고 위험한 현상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교폭력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차이와 상관없이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또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10-20% 내외의 학생들이 희생당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세계적인 현상이다(한국청소년위원회, 2003; Olweus, 1978; Nancel et al., 2001). 학교폭력의 피해자는 신체, 정신건강, 자아효능감, 그리고 사회성을 손상시켜 이들이 장차 민주시민으로서 성장하는데 장애가 된다 (Olweus, 1993; Thornberg, 2010). 또 학교폭력 가해자도 성인이 되어 범죄자가 되어 수감될 확률이 일반인보다 60%나 높으며, 이 중 40%는 전과자가 된다(Craig & Pepler, 1999). 따라서 학교폭력은 단지 피해자, 가해자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널리 유포되면서도 심각한 사회문제를 몇몇 관련자들의 제한된 경험이나 신념에서 비롯된 직관적인 대책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대신 철저하게 과학적인 이론적 바탕 위에서 신중하게 검증된 대책들이 조심스럽게 시도되어야 한다. 따라서 학교폭력에 대해 누군가를 질타하거나 설익은 대책을 내어 놓기 전에 먼저 다음과 같은 물음에 대해 충분히 합의할만한 답을 구해 보고 이를 두고 충분한 토의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첫째, 폭력, 인권, 학교폭력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떤 종류들이 있는가?
둘째, 우리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어야 할 학교폭력은 어떤 종류의 것이며 그 특징은 무엇인가?
셋째, 이러한 종류의 학교폭력의 원인은 무엇인가?
넷째, 학교폭력과 학생인권의 관계는 상보적인가 상충적인가 아니면 상호 독립적인가?
다섯째, 이 물음들에 대한 답에 따라 학교폭력을 경감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은 어떤 종류의 것이라야 하는가?
 
이 문제들에 대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을 제기하고 그 답을 찾아보려고 노력함으로써 우리는 현재 인권이냐 폭력예방이냐 식으로 소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의 학교폭력 논란을 잠시 중단하고 스스로의 생각들을 재점검하는 계기를 마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는 이 중 앞의 세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부수적으로 나머지 두 문제에 대한 제안을 하고자 한다.
 
 
1.2. . 연구의 의의와 한계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의의를 가진다.
첫째, 학생인권과 학교폭력을 둘러싼 논쟁에서 사용되는 용어의 의미를 분명히 함으로써 쟁점과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기초를 닦는다.
둘째, 학생인권과 학교폭력이 서로 상충되지 않고 상보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교육적 처치를 개발할 이론적 기초를 닦는다.
셋째, 폭력에 대한 일면적인 이해를 넘어, 학교폭력문제를 단지 피해자와 가해자간의 문제를 넘어 학교 정치의 영역으로 확장하여 조망할 수 있게 지평을 넓힌다.
넷째, 이러한 기본적인 이론적 고찰을 바탕으로 직관적 수준을 넘어선 학교폭력문제 해결책을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한계를 가진다.
첫째, 이 연구는 개념의 의미를 분명히 하고 이를 통해 실행 가능한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의 범위를 추론한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 제안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아직 그 모델의 타당도나 효과가 검정되지 않은 것으로 즉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둘째, 이 연구는 학교폭력 중 비행이나 범죄의 영역을 다루지 않는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 제시하는 예방 프로그램의 효과 역시 이 영역들에서도 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답을 내릴 수 없다.

새로운 시대의 교육과 교육운동의 길을 찾아 출항합니다

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연히 학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