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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 논문 (2)- 이론적 배경 부분-1

 
1. . 학교 폭력의 의미와 분류
 
학교폭력이란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이다. 그런데 폭력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따라서 학교 폭력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먼저 폭력의 의미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1.1. . 정당하지 않은 강제력으로서 폭력
 
먼저 폭력의 의미를 고찰해 보자. 폭력이라는 용어가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일단 폭력은 나쁜 것이라는 가치판단이 개입되기 쉽지만, 폭력이라는 개념의 의미는 실제로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폭력의 사전적인 의미는 “신체적·정신적인 손상을 가져오고, 정신적·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는 물리적인 강제력”이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1) 실제적인 손상, 2) 손상의 가능성에 기반한 압박이다. 이 폭력은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와 그 방법에 따라 인간이 주체적으로 의도한 것이 아닌 자연적 폭력, 특정 사람이나 세력이 행위자로 개입하는 직접적 폭력, 사회 및 세계의 구조에 의해 비의도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폭력, 직접적 또는 간접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문화적 폭력, 지속 가능성을 약화시켜 다음 세대에게 해를 입히는 시간의 폭력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흔히 폭력이라고 말할 때 주로 거론되는 것은 직접적 폭력, 간접적 폭력, 그리고 문화적 폭력이다(Galtung, 1996).

그런데 신체적 손상이나 손상 가능성에 기반한 압박을 반드시 폭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의 명백한 살상행위를 우리는 의거라고 부르지 폭력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반면 로드니 킹 사건의 경우 사법권을 가진 경찰관들의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폭력이라 부른다. 따라서 어떤 강제력이나 압박이 폭력이라고 불리고 도덕적으로 ‘악’으로 규정되기 위해서는 그런 강제력을 사용한 동기가 정당화 될 수 있느냐에 달려있으며, 정당화 되면 그 힘은 ‘권력’이 되며 정당화되지 못하면 ‘폭력’이 된다(Arendt, 1969).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정당하지 않은 물리력을 구사하여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가해자의 기질 혹은 사회적 구조나 분위기,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인간의 조건이라는 설명까지 가능하다.

가해자 귀인은 가해자가 선천적으로 쉽게 흥분한다거나 공격적인 기질을 갖고 태어났다는 설명이며, 사회적 귀인은 가해자가 폭력적이거나 공격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랐거나, 사회적 배경이 폭력을 용인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라는 설명이다. 인간조건 귀인은 폭력은 인간이 한정된 자원을 놓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 경쟁의 “작패”에게 우위에 서기 위해 서로 행사되거나, 이 갈등으로 인한 사회공동체의 분열을 막기 위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희생양 삼아 행사된다는 주장이다(Girrard, 1977).

결국 그 어느 경우에나 인간 세상에서 폭력은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기질상 쉽게 흥분하고 폭력적인 인물의 분포가 0%인 집단은 상상하기 어려우며, 자원의 희소성이 없는 인간사회도 상상하기 어렵다. 따라서 난폭한 구성원에 의한 혹은 이들을 제압하기 위한 폭력, 또 희소한 자원을 두고 다투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폭력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다. 이런 폭력의 일상성 속에서 어떻게 폭력을 정당성에 바탕한 권력으로 전환하는가 하는 것이 바로 홉스 이래 근대 정치학의 지속된 주제였다. 홉스, 로크, 루소 모두에게 정치권력이란 폭력의 특정 인물 혹은 기구로의 정당한 집중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 정당성은 다수의 동의 혹은 압박에 의해 비롯된다(Arendt, 1969).

하지만 이런 다수의 압박조차 사회적 폭력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메를로-퐁티(Merleau-Ponty, 1969)는 폭력은 인간이 살아가는 이상 불가피하며, 다만 그 발현 양상만이 다양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물리적으로 강제되는 직접적인 폭력 뿐 아니라 대화와 설득을 통해 다른 사람을 자신의 의지에 따르게 하는 간접적인 폭력, 혹은 문화적이고 구조적인 폭력 등을 매 순간 부지 불식간에 행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폭력 없는 순수"와 "폭력적 행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폭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뿐이다. 심지어 무엇을 이름짓고, 분류하고, 기록하고, 알아 둘만한 지식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이미 권력적 현상이며 상대편에게는 폭력이라는 주장까지 있다(Foucault, ).

폭력에 대한 이런 다양한 주장들을 종합해 보면 폭력은 의외로 우리 일상에 매우 가까이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넓게 잡으면 일체의 강제력이나 압력, 혹은 어떤 개념이나 용어를 규정짓는 행위까지도 모두 폭력이다. 정당하지 않은 강제력의 행사를 폭력으로 규정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정당성은 일방적으로 승인된 규정이나 규범이 아니라 강제력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를 포함한 공동체의 합의를 전제하기 때문에, 가정에서부터 학교, 사회, 국가, 국제사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무수한 폭력적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1.2. . 학교 폭력의 의미와 범위
 
이제 폭력의 개념을 이제 학교 폭력에 적용해 보자. 학교 폭력을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으로 규정하는 데는 별다른 의의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앞에서 규정한 폭력의 의미에 따라 학교 폭력은 교사와 교사간, 교사와 학생간, 그리고 학생과 학생간에 피해자가 동의할 수 있는 정당성 없이 가해지는 일체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문화적 압력 혹은 강제력의 행사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학생들 간의 주먹다짐은 경우에 따라 신체적인 피해가 막심할 수 있지만, 싸움의 당사자가 동등하다면 학교폭력이 아니라 단지 싸움이다. 하지만 어느 일방이 더 우월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주먹다짐은 다른 일방은 원하지 않은 싸움을 강요받은 것이기 때문에 학교폭력이다.

일반적으로 학교폭력을 학생들 간에 발생하는 폭력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가 학생에게 가하는 폭력은 학교폭력 보다는 ‘체벌’이라는 용어로 윤색되면서 폭력이라기 보다는 다소 정도가 지나친 벌 정도로 치부된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폭력의 정의에 따르면 교사가 비록 교육적 목적에서 행한다 하더라도 당하는 학생이 합의하에 그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은 일체의 강제력은 모두 폭력이다. 심지어 교사들 사이에서도 합의하에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은 강제력과 압박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데, 이것 역시 학교 폭력이다. 따라서 학교폭력의 대상을 학생으로 한정지을 수 없다.

또 학생과 학생간의 폭력의 경우에도 주로 피해 상황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강도 높은 폭력이나 “빵 셔틀”이나 일진회처럼 가해자가 분명한 폭력이 주로 학교폭력으로 불리고, 강도가 낮은 폭력, 가해자가 모호한 집단적 폭력은 단지 장난(teasing)이나 성장통의 일종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Whitted & Dupper, 2005; Stockdale et al., 2002). 하지만 평범한 청소년들도 언제든지 학교폭력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가해자를 정확히 짚어내기 어려운 학교폭력도 매우 많다. 실제로 죽음이나 자살시도로 이어지거나 이후에도 오랜 후유증을 남기는 학교 폭력은 이런 저강도 폭력인 경우가 많다(Samivalli, 2010).
이렇게 학교 폭력의 범위가 넓기 때문에 범주의 문제가 발생한다. 즉 이것을 학교에서 발생하고, 학생과 관련되는 폭력적 범죄(crime)의 한 종류로 볼 것이냐, 아니면 청소년 비행(delinquency)의 하위범주로서 추로 폭력을 그 수단과 매개로 하는 비행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문성호, 2002).

전자의 관점을 취하면 이 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청소년일 뿐 일반적인 폭력범죄에 해당된다. 따라서 가해자에 대한 제재와 교정이 이 문제 해결의 기본 방향이 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사법당국의 업무이며 학교 밖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후자의 관점을 취하면 가해자, 피해자 뿐 아니라 비행의 원인이 되는 학교, 학급의 풍토와 문화, 그리고 스트레스 등 학생들의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들의 제거가 기본 방향이 된다. 이것은 교육당국의 업무이며 학교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하지만 한국 학교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각종 학교 폭력 사례들에는 이 두 속성이 혼재되어 있다. 소위 일진회만 보더라도 조직 범죄집단(gangsters) 방불케 하여 사법당국의 개입이 불가피한 집단도 있지만, 학생들을 괴롭히는 폭력배(bullies)집단도 있다. 후자의 경우는 단순히 가해자, 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복잡한 학교, 교실 풍토와 문화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사법당국이 아니라 교육당국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 폭력은 그 폭이 매우 넓은 개념이다. 그 폭은 장난(teasing)의 수준을 겨우 넘은 행위에서부터 잔혹한 범죄수준의 행위까지 이른다. 따라서 이렇게 넓은 범위의 행위들의 공통의 원인과 대책을 찾는다는 것은 무모하다.
따라서 그 대상이나 강도와 무관하게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당하지 않은 압력과 강제력의 행사는 모두 학교 폭력으로 규정하는 것이 자칫 심각할 수 있는 상황을 학교 폭력이 간과하는 위험을 피할 수 없다. 다만 학교폭력 개념의 분석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그 아래에 여러 차원의 학교 폭력 유형을 분류하여 하나의 개념틀을 만들어야 한다.
 
1.3. . 학교 폭력의 분류와 대표적 사례로서 괴롭힘(Bullying)
 
 
싸움
병리 행동
폭행
들볶음
괴롭힘
가해자 상태
흥분/격분
정신병리
흥분/격분
정상
정상
피해자 상태
흥분/격분
무차별
두려움/위축됨
불쾌함
두려움/위축됨
의도성
우발적
의도적
우발적
의도적
의도적
지속성
순간적
지속적
순간적
지속적
지속적
폭력강도
강함
예측불가
강함
약함
약함
주요 폭력 수단
신체
무차별
신체, 언어
언어, 간접
모든 종류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학교폭력은 비교적 단순한 현상으로 여겨졌다. 이 현상은 기본적으로 가해자(violent)와 피해자(victim)간의 일이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학교폭력은 사법적인 처벌과 아울러 가해자의 폭력성, 공격성의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는 처치가 요구되는 일이었다. 또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비교적 소수에 속하기 때문에 해결해야 할 문제이긴 하나 심각한 문제로까지는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일본의 ‘이지메’로 대표되는 ‘집단 괴롭힘’ 현상이 알려지면서 학교에서 발생하는 공격적, 폭력적 행동들의 다양한 양상들이 밝혀졌다. 이전까지는 단지 장난이나 들볶음 정도로 여겨졌던 행동들도 특정 학생들에게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 심하면 죽음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준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이후 일본, 스칸디나비아, 영국을 중심으로 학교 폭력에 대한 관심을 단순한 폭행(assault)에서 보다 지속적인 괴롭힘(bullying)으로 전환하는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었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발생하는 각종 폭력, 공격적 행동들에 대한 연구결과들을 종합하면, 이런 행동들을 <표1>과 같이 분류해 볼 수 있다.
이 표에서 좌측은 폭력적·공격적 행위는 발생했으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류가 어렵거나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현상이다. 싸움(fight)은 쌍방 간에 폭력적·공격적 행위가 오고간 현상으로 행위자들은 흥분하고 격분한 상태이며, 욕설과 신체적 폭력이 수반된다. 이 행위는 주로 우발적으로 발생하며 1~2회에 그치고, 장기적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대체로 폭력의 강도는 높은 편으로 학교에서 발생하는 폭력적·공격적 행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며, 심한 부상이 발생하기 전에는 크게 문제삼지 않고 쌍방간의 화해 정도로 마무리된다. 병리 행동(Pathological behavior)은 가해자의 정신적 병리가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폭력적·공격적 행위다. 대체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히 구별되지만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가해자의 정신병리가 지속적인 폭력 피해에 의한 경우가 많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 표의 우측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구별되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폭력적·공격적 행위들이다. 가해자들은 대체로 신체적·사회적·정서적으로 피해자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 폭행(assault)은 가해자가 우월한 힘을 바탕으로 피해자에게 강력한 신체적, 언어적 공격을 가하는 행위이다. 대체로 가해자가 흥분하고 격분한 상태가 많다. 가해자의 동기는 우발적인 경우가 많으며, 특정한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폭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들볶음(teasing)은 가해자가 특별히 공격적인 의도를 가지고 행하지는 않지만 피해자가 불쾌감을 느끼는 농담이나 장난이다. 가해자는 자신이 적대적 행위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가 분명한 거부의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이 행위를 지속하는 경향이 있다.

괴롭힘(bullying)은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집단 괴롭힘’, ‘집단 따돌림’, 혹은 ‘왕따’ 등의 용어로 번역되어 온 폭력적·공격적 행위의 한 유형이다. 이 행위의 정확한 정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힘의 불균형에 기반하고, 한명 혹은 다수의 학생들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목표로 삼아 신체적, 언어적, 사회적, 간접적 폭력 등을 장기간 지속적으로 행하는 폭력적·공격적 행위의 한 유형이다(Olweus, 1978, 1993; Samivalli, 2010). 따라서 가해자를 집단으로 한정하고 있는 ‘집단 따돌림’, ‘집단 괴롭힘’, 사회적 배제를 가해로 상정하고 있는 ‘왕따’ 등은 적절한 번역이 아니다. 물론 이 연구에서 사용하는 ‘괴롭힘’ 역시 이 행위의 지속성은 포괄하지 못한다. 그러나 더 좋은 개념어가 개발되기 까지는 이 용어를 사용하기로 하자.

괴롭힘은 실제 교육 현장에서 피해자에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현상으로, 피해자들의 심신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다른 학생들에게까지 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학교 폭력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Olweus, 1993; Samivalli, 2010; Thornberg, 2010). 따라서 앞으로 이 연구에서 학교 폭력이라고 하면 특별한 설명이 없는 한 괴롭힘을 지칭하기로 한다.

괴롭힘은 그 행위가 가해자로부터 피해자에게로 직접 가해지는 직접 폭력과 간접적으로 가해지는 간접 폭력으로 분류된다. 직접 폭력에는 구타, 피해자의 신체나 소유물에 대해 가해지는 짗궂은 장난 등과 같은 물리적 폭력, 조롱, 듣기 싫은 별명 부르기, 욕설과 같은 언어폭력이 해당된다. 간접 폭력에는 사회적 배제, 헛소문이나 뒷말 퍼뜨리기와 같은 것들이 해당된다(Olweus, 1978). 한편 우리나라의 독특한 현상으로 금전갈취, 심부름시키기, 학교에서 완전히 배제시키기(왕따) 같은 것들이 있는데(문병욱 et al., 2010), 이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사용되는 기준에 집어넣기가 다소 애매하다. 금품 갈취의 경우 가해자가 다단계 방식으로 거의 전교생에게 금품을 상납 받는 등의 행위는 학교 폭력이라기 보다는 ‘범죄’로 분류하고, 특정한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금품을 갈취당한다거나 빵셔틀 등의 심부름을 강요당할때는 학교폭력으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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