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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관련 조중동의 헛소리에 한꺼번에 답한다

요즘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조중동의 트집잡기가 끝이 없다. 1%도 안되는 영향력을 가진 군소 언론사에게 파워블로거이자 파워트위터러로서 몇 마디 얹어 준다. 귀찮아서 기사 원문은 링크 안한다. 블로그 썩을까봐.

1. 이른바 이메일 차단에 대하여

일반직 공무원 노조 위원장 이점희씨(신암중학교: 실명과 소속교를 밝힌 이유는 중앙일보가 그랬기 때문이다)의 이메일 차단이 언론 탄압이라고 우기는 개드립에 대한 대답이다. 이건 개드립이 아니라 사실은 일반인이 잘 모르는 점을 악용한 언론의 횡포다.

우선 공무원은 청에서 두 종류의 이메일을 사용한다. 하나는 업무용 메일며, 다른 하나는 개인용 메일이다. 그 외에 한메일 등의 일반 메일은 일과시간중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업무용 메일은 서울시교육청 관내 각급 기관, 학교의 모든 직원들을 실명으로 연결할 수 있어서, 업무상 긴급한 연락을 주고 받을때 사용한다. 따라서 업무와 무관한 직원들에게 자신의 사적인 견해를 퍼뜨린다거나 혹은 경조사 알림 등을 하는 것은 규정 위반이다. 실제로 몇몇 교장들이 업무메일로 경조사를 알리다가 경고를 받기도 했다. 업무용 메일의 내용은 업무의 일환이기 때문에 당연히 관리감독의 대상이며 이는 검열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개인메일은 교육감이 아니라 교육감 할아버지라도 절대 검열해서는 안된다. 이씨가 문제가 된것은 바로 이 업무메일이다.

물론 노조활동은 공무이기 때문에 업무용메일을 사용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조합원에게만 보낼때 공무이다. 예컨대 전교조 서울지역 간부라면 전교조에 소속된 2만여명의 서울지역 교사들에게 업무용 메일을 어디까지나 조합활동과 관련하여 보내게 된다. 하지만 6만명의 교사 모두에게 이걸 날린다면 이는 부당한 사용이 되어 징계사유가 된다.

그런데 상기 이점희씨가 위원장으로 있는 교육청일반직 공무원 노조는 이름은 거창하지만 실제로는 조합원이 300명도 채 될까말까한 사실상 페이퍼 유니온이다. 서울시교육청에는 전공노, 공노총, 비정규직노조의 세 노조가 있으며 이 세 노조의 조합원은 7000여명에 달한다. 따라서 이점희씨의 노조는 사실상 공무원을 전혀 대표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씨는 업무용메일을 통해 모든 공무원에게 메일을 날릴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여 자신의 사사로운 견해를, 그것도 교육감을 비방하는 내용을 300명이 아니라 전 직원들에게 날렸다. 이것은 당연히 징계사유이며 교육청에서는 이미 작년부터 이런 행동에 대해 주의를 주었던 적이 있다. 몇차례 주의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동이 시정되지 않으면 당연히 메일을 차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교육청 자료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m.cafe.daum.net/pres.kwak/ZRb9/753?listURI=%2Fpres.kwak%2F_rec%3Fpage%3D2&boardType=M&regdt=20120305204542

따라서 표현의 자유 운운하는 조중동과 이씨는 징계 대상자가 적반하장 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조중동은 사내 게시판에 기관장 비판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해임되는 공무원이나 공사 직원들이 지난 몇년간 얼마나 많았는지 아는가? 그때는 침묵하고 있다가 왜 지금 헛소리인가? 안 짜른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씨가 절대 교육청 노조를 대표할 수 없음은 다음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http://m.cafe.daum.net/pres.kwak/nkHy/2573?listURI=%2Fpres.kwak%2FmhXd%3FboardType%3D

2. 이른바 특혜 인사에 대하여

특혜인사라고 하니까 뭔가 엄청난 것 같다. 먼저 교육청 파견교사부터 예를 들자. 참고로 나도 이번에 파견된 교사 중 하나다. 교사가 교육청에 파견되면 상당히 많은 것을 잃는다.

첫째, 담임수당 15만원이 날아가서 월급이 준다.
둘째 퇴근시간이 4시30분에서 6시로 1시간 반 늦어진다.
셋째, 방학이 날아가서 일년내내 출근해야 한다.
넷째, 수업을 안하기 때문에 성과급에서 최하급은 맡아놓은 당상이다.

한마디로 월급 줄고 훨씬 더 많이 일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승진 등에 유리하거나 할 일도 없다.정말 대단한 특혜가 아닐수 없다. 이걸 보은인사라고 부르나? 게다가 왜 전교조 성향의 15명에 대해서만 문제삼나? 전국 시도 교육청에 교총성향의 파견교사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한번 열어보면 다들 까무라칠거다. 정히 전교조 성향이 문제가 된다면, 장학사, 장학관은 왜 전원 교총 소속인가? 이런 편향된 단체 소속의 장학사, 장학관도 다 퇴출해야 한다.

게다가 곽감 구명운동, 탄원서 낸 교사들 6명의 실명까지 밝힌 중앙일보에게는 "에라 이 병신아" 한 마디 던지고 싶다. 지난 하반기 곽감 구명운동에 나선 교사들은 수천명이고 탄원서를 낸 교사들은 수백명이다. 이들이 모두 교육청에 파견되었단 말인가? 그리고 그 6명중 이** 교사는 탄원서를 쓴 적 없는 교사이며, 조** 교사는 구명운동에 매우 소극적이었던 교사다.  헛소리 좀 작작하기 바란다.

그리고 비서들 승진. 정확히 말하면 승진이 아니라 회복이다. 어느 교육청이나 교육감 비서는 6급이다. 심지어 서울시 부교육감 비서도 6급이다. 그런데 곽노현 교육감은 6급 to가 모자랐던 당시 교육청의 사정을 고려해서 1년만 7급을 견뎌 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나서 6급 to가 충분히 확보되자 다른 교육청과 같은, 그리고 부교육감 비서와 같은 6급으로 회복시킨것에 불과하다. 이게 무슨 특혜이며 보은인가? 그 동안 비정상적으로 덜 주다가 나중에 남들만큼 주는 것이 특혜인가?

특별채용한 교사들의 경우는 이미 조중동의 주장이 거짓 선동임이 드러났으니 긴 말 않겠다.

P교사는 그가 해직된 사유인 형의 선고 사실이 2005년 사면복권으로 인해 소멸되었기 때문에 복직되는 것이 당연하다. C교사는 내부자고발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당연히 복직되어야 한다. Y교사의 경우는 좀 애매한데, 잘못된 자율고 정책의 희생자라는 점에서 복직되는 경우다. 즉 이들은 "채용"이 아니라 "복직" 되는 것이며, 당연히 해당 사립학교가 복직시켜야 하나 그들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기 때문에 교육청이 대신 채용하는 것이다.  만약 이들이 사립학교 그냥 다니고 있다가 느닷없이 공립으로 발령났다거나 하면 이건 특혜다. 하지만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교단에서 물러났던 것을 바로잡는 의미라면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이행할 뿐이다. 실제 법원에서도 이들이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

5급 비서관 두명. 이건 정말 개소중 상 개소리다. 이 5급 비서관들은 임기가 2년인 별정직에 불과하다. 따라서 교육청 공무원들의 승진라인과 아무 관계 없다. 사기가 떨어지고 어쩌고 다 헛소리다. 기다리면 갈 사람들이다. 게다가 서울시장은 차관급의 부시장과 2급 비서실장을 둘수 있다. 현행 지방자치법상 교육감과 서울시장은 동급이다. 그런데 교육감 비서실장이 5급이라면 이게 오히려 말이 안되는 거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예를 보면 알듯이 비서실장, 비서들은 원래 친한 사람 중에서 뽑는다. 그걸 특혜 보은 편향이라고 그러면 아주 곤란하다. 세상에 비서와 비서실장, 보좌관을 공정하고 중립적인 공채로 뽑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 자리는 철저히 자기 사람 심어야 하는 자리다.

자, 이 모든 사안을 정리한 결론은, 조중동, 그리고 교총 닥쳐! 교총이 이런 말도 안되는 걸 인사전횡이라는 빌미로 교육감을 고발한다면, 당장 무고죄로 역고발 당할 수 있다. 그걸 교총도 알고 있으니 맨날 고발을 "검토"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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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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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