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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장관은 왜 교수들의 불신임을 받았나?

이틀 건너 한번씩 곽노현 교육감 타격에 여념이 없던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엉뚱한데서 뒤통수를 맞았다. 37개 국립대 교수들이 교과부 장관 불신임을 선언한 것이다. 전체 교수들의 80%가 참가해서 90% 이상이 불신임에 찬성했으니 적어도 국립대 교수 72% 이상이 이주호 장관의 퇴진을 요구한 셈이다. 이런 일은 전두환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부산일보 기사 원문 링크)

이게 이미 조짐이 보였던 것이, 작년 10월에 은사님과 식사를 하는데, 이주호 장관에 대해 거의 직설적인 비판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 분은 결코 진보진영도 좌파도 아닌, 차라리 새누리당 쪽에 가까운 분이었는데도 말이다. 대체 무엇이 이토록 교수들을 분노하게 했을까?

국교연을 대표하는 이병운(부산대 교수회 회장)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이번 투표 결과는 국립대 법인화, 총장 직선제 폐지, 성과급적 연봉제 추진 등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모든 교육 정책에 대한 불신을 의미한다. ,,이런 식의 잘못된 국립대학 정책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에 상응하는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국교련은 28일 기자회견에 이어 4·11 총선을 통해 19대 국회가 구성되면 이주호 장관 해임건의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마 국교련이 해임건의안을 제출하면 전교조도 가만 있지는 않을 것이니, 총선과 함께 이주호 장관의 운명은 풍전등화가 될 것 같다.

결국 대학에 신자유주의 혹은 경제논리를 끌고 들어 온것에 대한 반발이다. 국립대학을 법인화 한다는 것은 결국 이사진들이 운영하는 일종의 기업처럼 만든다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교수들은 대학 운영의 주체가 아니라 단지 피고용인에 불과하기 때문에 경영에 참여할 수 없고, 모든 대학 운영은 기업처럼 이사회에서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이게 총장 직선제 폐지(결국 이사회에서 결정)로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교수들의 발언권은 크게 약해지는데, 여기에 연봉을 차등 성과급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까지 더해지면 교수들끼리 경쟁하느라 정신을 못차리게 된다.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연봉을 차등성과급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인데, 얼핏 보기로는 이 차등 등급에 따라 명색이 교수의 연봉이 2000만원까지 내려갈수도 있었다. 연봉 2000만원짜리 교수와 연봉 몇억짜리 교수가 한 캠퍼스에 있게 되면 그 대학의 분위기가 어떻게 될지 가히 짐작할만하다. 경쟁, 경쟁 뿐이다.

그런데 그 경쟁도 순전 기업마인드에 입각한 경쟁이라, 논문 편수, 그리고 외국 논문 가산점 등이 들어가는 점수 경쟁이다. 논문의 질, 그리고 학문 분야의 특수성 따위는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아마 이런 방식의 경쟁체제라면 비트겐슈타인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은 결코 대학에 붙어있지 못했을 것이다. 소쉬르도 논문 편수가 적어서 최하등급 연봉 받다 쫓겨났을 것이며, 허버트 미드도 마찬가지 운명이 되었을 것이다. 또 바하나 슈베르트같이 작품이 많은 작곡가는 인정받았겠지만 브람스나 차이코프스키처럼 작품수가 적은 작곡가는 퇴출되었을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게다가 외국 논문 가산점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생겼다. 교육학의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교육학, 청소년학 논문들 중 퀄리티가 높은 것들은 우리나라 학술지에서 볼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엉뚱하게 우리나라가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 학술지에서 영어로 된 논문으로 읽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완전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그런데 더 한심한 것은 이주호 장관은 자신의 경제중심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초중등 교육에는 손도 대지 못한채 대학에만 쏟아 부었다는 것이다. 현재 초중등 교육은 신자유주의 관점에서 보아도 엉망진창이다. 특히 교장, 교감 승진이 학력신장 능력이 아니라 온갖 해괴한 점수와 인맥으로 결정된다는 것, 교사들이 학력신장이 아니라 온갖 해괴한 행정업무에 매달려 있다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가장 혐오하는 비전문화, 비효율의 극치다.

그래서 이주호 장관은 2006년부터 현행 교장승진제도는 완전히 폐지하고, 내부형 공모제, 개방형 공모제로 가서 권위주의, 위계서열이 아니라 실력으로 경쟁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교사들이 본연의 업무인 공부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엉뚱한 업무, 행정 따위로 경쟁하는 체제를 완전히 개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원래 이주호는 초중고 교사들을 엄청 경쟁시킬 생각이었다. 곽노현 경쟁 후보였던 이원희의 슬로건이 무었이었던가? "이제부턴 선생님들의 경쟁이 시작됩니다"였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을 가지고 경쟁하느냐였다. 이주호는 내심 "성적 올리기"로 경쟁붙일 생각이었다. 그럼 전교조 교사들은 이념이나 신경쓰고 실력이 없어서 퇴출될거라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뿔싸, 뚜껑을 열어보니 전교조는 이념세력, 교총은 입시교육 전문가가 아니었다. 의외로 전교조 교사들은 입시교육에도 능한 사람들이 많은 반면, 교총은 입시교육은 커녕 아예 교육보다 행정직 승진에 관심이 더 많은 집단이었다. 성적 올리기 경쟁으로 교사들의 보수와 승진 등을 결정한다고 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집단은 전교조가 아니라 교총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부형, 개방형 교장 공모제는 도리어 전교조가 지지하고 교총이 반대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교총은 기존의 족보도 없고, 심지어 성적 올리기 실적과도 무관한 괴상한 각종 가산점으로 이루어진 승진제도를 양보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었다. 더군다나 교사들에게서 행정업무를 배제하는 정책도 전교조가 지지하고 교총이 반대하고 있었다. 심지어 교원업무 정상화는 눈엣 가시 곽노현이 앞장서서 실시하고 있다. 여기서 이주호는 스텝이 꼬였다. 전교조, 곽노현이 미운 나머지 비효율, 권위주의, 낡은 위계서열 중심의 이익집단인 교총과 손을 잡고, 자기가 그토록 소신껏 주장했던 교장공모제를 스스로 무력화 시켜버리고, 교원업무 정상화에 교묘하게 물타기를 한 것이다.

적어도 초중등 교육 정책에 관한한 이주호 장관은 신자유주의자 조차도 되지 못했다. 그냥 낡은 봉건주의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자가 되지 못한 한 풀이를 전교조도 교총도 없고, 기본적으로 조직적 저항 자체가 별로 없는 대학에다 쏟아 부은 것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교사한테 빰맞고 교수한테 눈 홀긴 셈이다.

그런데 이럴수가.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이제 교수들도 조직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면 이제 교수들이 이주호가 이명박 대통령 순장조라는 것을 간파했는지도 모른다. 의원 출신 장관인데 다음 선거 공천도 받지 못한 임기말 장관이다. 그러니 조직적 행동 안하기로 유명한 우리나라 교수님들이지만 더 이상 참고 보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주호가 이 난관을 돌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낡은 봉건집단, 낡은 우파 이념집단인 교총과의 밀월을 끝내고, 신자유주의, 자유시장주의로 돌아가라. 차라리 그게 더 이주호 답고, 그래야 비판 당하고 깨지더라도 체면은 남는다. 적어도 시장주의는 냉정하기는 해도 최소한 합리적이긴 하지 않은가? 이제 이 기회에 이주호를 비롯한 자유시장주의자들은 뉴라이트 이념집단과 선을 긋고 스스로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 그리고 물러나기 전에 최소한 한 두개의 봉건잔재는 처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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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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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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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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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