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선택제의 딜레마

최근 서울시 교육청이 고교 선택제 폐지를 놓고 갑론을박하다가 결국 올해는 현행대로 진행하기로 한 것에 대해 말들이 있다. 특히 진보진영에서 실망성 발언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곽노현 교육감이 고교선택제 폐지를 포기했고, 이것은 결국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투항한 것이다 류의 실망감을 토로하는 분들이 많았다.

보수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거봐라" 류의 기사를 쏟아내었다. 예를 들면 한국경제는 "곽노현, 고교선택제 폐지 포기"(3월 29일)라는 제하에 곽노현 교육감이 자기 정책의 오류를 시인했다는 식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그러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 운운하는 어느 교장의 멘트를 인용했다. 서울신문에서는 "혼란만 키우다 원점"이라고 제목을 붙이면서 보수진영의 전가의 보도인 "혼란론"을 내어 걸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 혼란은 애시당초 이명박 정권과 공정택 교육감이 자율형 사립고와 고교 선택제를 끌고 들어오면서 부터 생긴 혼란이며, 이걸 원상복귀하는 과정이 지난한 것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 자율고+고교선택제는 특히 공립고등학교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쳤으며, 그 동안 어려운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입시실적이 좋지 않은 학교를 더더욱 어려운 학생들만 모이는 학교로, 그래서 문자 그대로 똥통으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재 지역내 빈부차가 심한 구의 예를 들면, 어려운 가정이 많은 A고는 그 지역의 그나마 공부할만한 학생들이 그 학교를 외면하고, 다른 지역의 어려운 학생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거의 수업이 불가능할 정도의 학교가 되고 말았다.

고등학교 교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학급은 중상급 학생들이 많은 학급니다. 중학교때 내신이 15%~25%정도의 학생들이 수업분위기를 좌우한다. 그런데 이들을 자율고가 대폭 흡수해 버렸다. 그리고 25%~60% 정도의 학생들 중 능동적인 학생들 상당수가 특성화고로 진학했다. 그 나마 나머지는 자기 지역 학교가 아니라 다소 거리가 있더라도 인기 많은 학교(사실 이 인기의 이유도 매우 모호하고 단지 편견에 불과하다)를 지망한다.

결국 A고와 같은 학교는 특목고에서 떨어진 최상위권 학생 몇몇과 이리저리 밀리다 온 하위권 학생들로만 구성된다. 하위권이라 그러면 감이 잘 안올수도 있는데, 현재 내신 98% 정도인 학생도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98%면 어느 정도 수준이냐 하면 중학교 3학년이 1/2+1/3=1/5 이라고 대답하는 수준이다. 이들을 데리고 과연 정상적인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운영되겠는가? 5% 이내의 상위권과 70% 이후의 하위권으로 이루어진 학교. 그러니 A고는 정규 수업시간은 편안하게 보내고, 방과후에 소수의 상위권을 데리고 수업을 하는 이중학교가 되는 것이다. 이런 파행을 과연 방치해야 옳겠는가?

그렇다면 곽노현 교육감은 왜 고교선택제 폐지를 유보했는가? 그리고 왜 5월부터 공개 대토론회를 제안한 것을까? 그것은 몇 차례의 가배정과 시물레이션 결과 자율형 사립고와 특목고가 존재하고, 학부모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한 백만번을 돌려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이 확인 되었기 때문이지, 결코 고교선택제 폐지를 포기해서 아니다. 공개토론이 필요한 이유는 자율형 사립고, 특목고를 선호하는 학부모들의 성향때문에 이를 축소하려면 충분한 논의와 설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문제의 핵심은 고교선택제가 아니라 특목고, 자율고에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즉 이미 특목고, 자사고, 자율고, 일반고의 등급이 나누어져 있는 상황이 고교선택제인데, 여기서 앞의 세 위계는 내버려 둔 채 최하등급인 일반고 안에서의 선택제만 이리저리 개선해 본들,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곽노현 교육감이 고교선택제 폐지를 포기했다고 보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다. 오히려 우리는 지금부터 특목고, 자율고를 포괄하는 전반적인 고교 체제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가며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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