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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이 전교조에게 10억짜리 건물 주었다는 헛소리

요즘 우리나라 기자들은 직업을 무협 소설가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어찌 그리 버젓이 거짓말을 잘 하는지. 그런데 왜 하필 무협이냐 하면 소설은 바뀌어도 주인공 이름은 계속 반복되기 때문이다. 옛날 이재학 선생의 수많은 작품 주인공 이름이 전부 추공 아니면 무룡이었던 것 처럼 요즘 기자들의 소설은 주인공이 곽노현, 박원순, 나꼼수다.


그 중 가장 흥미로운 소설은 곽노현 교육감이 전교조에게 10억원을 들여 사무실을 무상 제공한다는 기사다. 이게 원래 조선일보 4월 4일자 기사지만 그걸 인용한 매경 기사를 링크 건다. 관심받고 싶어하는 것 같으니.  기사 원문보기


기사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이 예산 10억원 가량을 들여 교육청 소유 건물을 리모델링한 후 이를 전교조 서울지부에 무상(無償)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한다. 글쎄, 논란이 일고 있나? 논란을 만들고 싶은 거겠지. 


문제가 되는 교육청 소유 건물은 용산구 후암동에 있는 옛 수도여고 건물이다. 수도여고는 한강 남쪽으로 이사갔고, 그 터와 건물이 남아 있는 것이며, 전교조 서울지부가 그 건물 중 일부를 노조 사무실로 달라고 요구했고, 곽교육감이 이를 받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무실로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리모델링비 10억까지 지원해 준다면서 흥분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사는 은근히 동작구 사당동에 있는 서울지부 사무실의 전세 보증금 11억원도 서울교육청이 지원하고 있다고 하면서 엄청난 특혜를 받는 것 처럼 말하고 있다. 하지만 교원노조법과 그것에 따른 단체 협약에 의해 국가와 교육청은 교원노조의 사무실을 제공하도록 되어있다. 무상으로 자기 소유 건물을 빌려주거나 임대료를 대신 내어주거나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지금 전교조 본부 사무실의 전세 보증금은 무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내 주고 있단 뜻이다. 그럼 이주호가 전교조를 후원하고 있는게 되나? 그리고 사무실 제공은 전세금을 대 주건, 월세를 꼬박꼬박 내주건, 아니면 정부 소유의 방을 한칸 내 주건 아무 상관이 없다. 사실은 정부 소유의 불용시설을 한칸 내 주는 쪽이 더 경제적이다.

문제가 되는 옛 수도여고에는 건물이 모두 4개 동이 있으며, 그 중 한 개동이 안전진단 C를 받아 철거대상이 아니다. 물론 D를 받은 나머지 동들을 철거한 다음 서울시 교육청이 이전할 계획이긴 하지만 그건 8~9년 뒤의 일이라 기약이 없다. 10년 가까이 아직 쓸 수 있는 건물을 그냥 놀리는 것은 낭비이니 그걸 교원노조 사무실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전교조만 사용하라고 한 적도 없다. 교원노조법에 의해 단협 대상에 들어온 한교조, 자유교조에게도 사용하라고 요청했지만, 사실 그들은 조합원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 사무실 씩이나 필요하지도 않고, 또 전교조 같은 대규모 조직 옆에서 곁방살기도 싫기 때문에 스스로 거부했다. 다시 말하면 서울시교육청은 전교조가 아니라 교원노조들에게 수도여고 옛 건물의 사용을 제안했고, 그 중 전교조만 그것을 수락했다. 이것이 팩트다.

그리고 그 리모델링비 10억. 엄청난 선심을 쓰는 것 처럼 말하고 있지만, 그건 전교조가 동작구 사무실 전세 보증금을 반납한 돈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사실 11억을 반납하는데 10억을 들여 리모델링을 하니 전교조는 1억을 손해보는 셈이다. 

게다가 교육청과 특정 교원노조가 같은 시설을 사용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사실은 교육청과 모든 교원노조가 같은 시설을 사용하자고 제안했던 것임을 감안하면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게다가 기관과 기관 종사자의 노조가 같은 시설을 사용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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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서는 반대하는 의견이 우세하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청사를 이전하게 되면 어차피 건물을 다 철거하고 다시 지어야 하는데, 지금 전교조를 위해 십 몇억원을 들여 리모델링을 하는 것은 예산 낭비가 될 것"이라고 반대 의견이 있다고 하는데, 그 십억은 어차피 돌려받는 10억이니 따로 예산 잡을 일도 없고, 어차피 청사 이전이라 말 하지만 거의 10년 뒤의 일이니 특별히 낭비라 할 것도 없는 것이다.  

신문은  서울교육청의 한 사무관의 "(교육감) 지시는 떨어졌지만 예산문제, 법적 문제, 관공서에 노조 사무실을 들이는 것이 적합한지 여부, 청사 이전 배치 문제 등 검토할 것이 많다"고 말했다는 멘트를 따고 있는데, 오히려 이 사무관이 이런 핑계로 이 사업을 방해할 뜻을 가지고 언론플레이 하는게 아닐까 도리어 의심스럽다.  

정히 전교조가 문제라면 간단하다. 한교조건 뉴라이트 노조건 다 같이 들어오게 하는 거다. 전교조는 충분히 그들을 위해 방 한칸을 내어줄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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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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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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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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