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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침해의 원인은 인권조례가 아니라 비정규직화

보수언론과 한국교총(사실상 한국 교장단체 총연합?)과 보수언론이 짝짜꿍이 되어 또 다시 학생인권조례에 시비를 걸고 있다. 그들의 논리는 항소심에서도 똑 같은 말만 반복하는 곽노현 기소 검사처럼 한결같이 그대로다. 학생인권 조례 때문에 학생지도가 힘들어져 교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오래된 메뉴를 지루하게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증거랍시고 학생이 교사에게 거칠게 반항한 선정적인 사례들을 내어 놓는다. 그러면 보수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걸 기사로 옮긴다. 예를 들면 “XX년아 왜 시비 걸어 계급장 떼고 맞짱 뜰까”(문화일보, 2012. 04. 05), “XX, 왜 시비야...맞짱 한번 뜰까”(국민일보, 2012. 04.06), “중학생이 여교사에 왜 시비야 맞짱 뜨자”(중앙일보, 2012. 04. 06)같은 기사가 그것이다. 이 기사들은 모두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에게 심한 폭언과 폭행을 한 사례들을 자극적으로 제시한 뒤, 학생인권조례 공포 후 이런 사례에 대한 상담 전화가 부쩍 늘었다는 교총의 멘트를 가감없이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언론은 팩트를 다루어야 하며, 팩트는 충분하게 검증되어야 한다. 소방차의 오류 혹은 오비이락의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어떤 변화가 관측되었다 하더라도 그 변화의 원인이 정말 그것인지를 논리적으로 그리고 경험적으로 충분히 검증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다만 오비이락에 불과하다.

이들이 교권침해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학생인권 조례는 다음의 조항일 것이다.

제7조(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학생은 체벌, 따돌림, 집단괴롭힘, 성폭력 등 모든 물리적 및 언어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다. 이 조항은 체벌을 집단 괴롭힘, 성폭력 등과 함께 학교폭력의 한 범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전향적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정말로 갑자기 부쩍 늘어난 학생·학부모의 교권침해의 원인일까?

굳이 따지면 학생인권조례보다 먼저 이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서 체벌을 금지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제31조(학생의 징계 등) ⑧ 학교의 장은 법 제18조제1항 본문에 따라 지도를 할 때에는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훈육ㆍ훈계 등의 방법으로 하되, 도구, 신체 등을 이용하여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초중등교육법 시행령. 2011. 03.18)

이건 대통령령이다. 즉 이명박 가카와 리틀가카 이주호 장관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권조례가 아니라 가카와 리틀가카의 시행령이 교권침해의 진짜 원인이 아닐까?

또 이런 식의 사건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또 진보교육감 지역의 일만도 아니라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2011년 6월에도 울산에서(진보교육감과 100% 반대) 고교생이 교무실에서 교사를 주먹으로 때려 입원시킨 사건이 있었고, 신문들은 '교원추락...' 이런 기사를 썼다. 그 밖에도 진보교육감 아닌 지역, 인권조례 발표 이전 시기의 이와 같은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교육법 시행령은 전국에 적용되니 오히려 이 시행령이 교권침해의 원인이라고 설명해야 보수교육감 지역에서도 폭증하고 있는 교권 추락 사례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성급하다. 오히려 원인은 다른 쪽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교권침해의 피해자가 된 교사의 신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나는 일단 잠정적으로 비정규직 교사들이 그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을 세워 볼 것이다.

교권침해 사례가 2008년 이후 급증하기 시작했다는 점, 또 교사의 비정규직화도 그 무렵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학생들이 교사의 신분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 이 가설에 대한 정당화로 제시될 수 있다.
현재 학교에는 상당히 많은 비정규직 교원들이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기간제 교사는 물론이며, 영어 수학 과목의 수준별 강사, 그리고 영어 회화 전담 강사, 여타의 인턴교사 들이 있다.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아예 신규채용 자체를 비정규 교사로 채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2008년에 신규 채용 교사의 70% 이상이 비정규직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기사원문).

그러니 교권이 추락한 것이 아니라, 교실에 들어오는 교사의 지위 자체가 이미 추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들은 의외로 이런 부분에 대단히 민감하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서열경쟁 교육에 익숙하기 때문에 교사들에 대해서도 지위, 신분, 학벌에 따라 나름 서열을 매긴다. 교사들 중 이 카스트 최 하단에 속하는 집단은 학생들도 무시한다.
게다가 교사의 고충처리, 재교육, 연수 시스템은 신분이 “공무원”인 교사들, 즉 정교사들에게만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수업의 상당부분을 담당하는 비정규 교사들은 학생과의 갈등 처리 방법도, 감정 처리 방법도, 효과적인 지도방법도 배우지 못한채 정글같은 교실에 방치되어 있다.

학업 스트레스로 폭발 직전인 학생들과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고 정교사의 1/3에 불과한 임금, 정교사들의 무시와 은근한 따돌림에 서러움을 느끼는 비정규직 교사들이 모인 교실. 여기에서 어떤 비극이 일어나더라도 신기하지 않을 지경이다.

그러니 교권침해, 교권추락을 방지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교실에 들어가는 교사 지위 자체를 높이는 것이다. 비정규직 교사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그것이 어려우면 적어도 보수와 처우, 연수기회 등에서 차별을 제거해야 한다. 또한 교장, 교감, 여타 학교 관리직들은 교사들에게 공손하고 정중하게 대하며, 교육 이외의 업무로 이들을 성가시게 하지 말아야 한다. 즐겁고 보람을 느끼는 교사가 학생들과 갈등상황을 더 슬기롭게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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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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