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곽노현 사건을 해석한 논문이 발표되다






곽노현 교육감 항소심 선고공판이 이틀 뒤로 다가왔다. 많은 법학자들의 흥미를 끈 복잡한 사건이다. 그래서 곽노현 사건을 해석한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이 논문은 독일 쾰른대학의 남경국박사가 발표한 것으로 연세대 법학연구원이 발간하는 법학연구 22권 1호에 게재되었다.(논문 PDF). 이 논문은 기본적으로 형법은 행위 책임에 대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 등장인물들의 행위책임에 대해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다. 이를 다음 표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정리 해 보면 이 사건은 크게 박명기 후보가 사퇴하기까지의 매수과정이 있었는지 여부, 그리고 박명기 후보에게 2억이 전달된 동기가 무엇인지 여부의 괴리가 있다. 공직선거법은 후보 매수행위를 처벌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수의 의사가 없이 지원한 금전은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이 논문의 요지다.

먼저 박명기 후보의 사퇴과정을 보면 당시 박명기의 대리인인 양**이 어떻게 해서든지 박후보를 사퇴시키려고 애쓴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곽노현 본인과 책임있는 위치의 김** 대리인은 양**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래서 양**는 대리권한이 없는 이** 최**을 불러내어 박명기 후보가 사퇴하면 5억의 금전을 보전해 주자고 설득했다. 심지어 1억5천만원은 자기 돈으로 메워주겠다고까지 했다. 이에 소위 3자 합의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합의 역시 매수행위라 볼 수 없다. 박측 대리인이 자기 돈까지 쓰겠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이 합의는 박명기 후보의 손실을 보전할 방법을 합의한 것에 불과하며, 실제로 이들간의 대화내용에서 곽노현은 "곽노현에게는 절대 알리지 않아야 해"라는 대사로만 등장한다. 그러니 이 합의는 사실상 "박명기가 사퇴하면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 5억을 메워주자. 곽노현 몰래" 이렇게 압축된다.

하지만 양**는 박명기의 사퇴 의지를 굳게하려 그랬는지 곽노현측 대리인인 김**이 5억을 보전해 주기로 했다고 거짓보고를 한다.

따라서 박명기 후보가 사퇴하기까지 곽노현에 의한 후보 매수행위는 존재하지 않았고, 다만 박명기 후보가 그동안 지출한 선거운동 비용 7억의 손실을 고스란히 안고가지 않도록 하자. 그것도 곽노현은 모르게 진행하자는 권한없는 자들간의 약속이 있었을 뿐이다.

선거가 끝난 뒤 박명기는 곽노현에게 약속 이행을 요구하지만 당연히 곽노현은 전혀 모르는 말이니 둘 간의 갈등이 격화된다. 그런데 이**, 최**이 약속 비슷한 것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 곽노현은 자기 선거캠프에 참가했던 사람도 믿을 수 없다고 판단, 선거와 전혀 무관한 친구 강경선에게 박명기와의 화해 주선을 요청한다. 강경선과 K는 소위 약속을 포함한 사태의 전말을 조사한 뒤 이를 박명기와 공유한다. 박명기도 그 약속이란 것이 곽노현과 무관하며 자기 꼴만 우스워진거란 것을 깨닫고 이후 약속이니 뭐니 하는 말을 일체 꺼내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주 행위자가 강경선으로 바뀐다. 사태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박명기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된 강경선은 박명기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곽노현에게 제안한다. 곽노현은 처음에는 펄쩍 뛰었으나, 평소 강경선을 존경하던 사이였기 때문에 결국 설득된다. 이에 강경선은 박명기를 돕기 위한 모금을 시작하지만 크게 벌릴수 없는 일이기에 모금 대상은 매우 제한적이고, 결국 곽노현과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총 2억을 모금하여 박명기에게 전달한다. 따라서 후보였던 자에게 금전등을 지불한 자에 해당되는 사람은 곽노현이 아니라 강경선이다. 그런데 강경선은 박명기를 알게된 시점은 박명기가 후보도 뭐도 아닌 시점이기 때문에 사후매수가 성립되지 않는다.

결국 이 사건에서 후보매수죄에 해당되는 책임을 질 사람은 오직 그 합의에 참석했던 당사자들 뿐이다. 만약 양**, 이**, 최**이 나중에 돈을 마련해서 박명기에게 주었다면 공선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약속만 하고 아무도 뒷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 약속 자체만 처벌의 대상이며,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


따라서 결론은 이렇다. 지금 재판에 피고로 나와 있는 사람들은 후보매수죄와 관련이 없다. 후보매수죄로 다투어 볼 여지가 있는 합의 3인방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 따라서 사건은 성립되지 아니한다.

내가 여기까지 이 논문의 요지를 제대로 정리했는지 모르겠다. 좀더 상세히 알고 싶은 분은 논문 원문을 읽어보기 바란다..(논문 PDF)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