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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진보진영의 문제는 진보적이 아니라는 것이다(1)

요즘 진보진영의 꼴이 말이 아니다. 이제 어디 가서 진보라는 말을 꺼내면 종북, 부정, 패권주의, 음모가, 경기동부, 주사파라는 말에 대해 해명하다 정작 해야 할 말을 못하기가 일쑤다. 그래서 그런지 아예 진보라는 말 자체를 꺼내기도 꺼려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나는 이전에 비해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나는 언제나 정치 성향을 물으면 진보라는 말 보다는 좌파라는 말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격 혹은 삶의 태도를 묻는 질문에는 진보적이라고 대답했다. 즉 나는 "진보적 성향의 사람이며 정치적 견해는 좌파에 가깝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이란 말이 나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진보적 성향이란 말 속에 이미 좌파란 말이 포함된 것 아닌가란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진보는 삶의 태도이며, 좌파는 정치적 당파로, 이 둘 간에는 엄격한 구별이 있어야 한다. 진보는 문자 그대로 앞으로 나가는 것이며, 퇴행을 거부하는 것이다. 여기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행진을 한다거나 그런 의미가 아니라 자유와 역량, 그리고 가능성이 커지는 쪽을 선호한다는 의미다.

반면 좌파라는 것은 정치적인 당파성으로 그 사회의 기득권층과 소외된 층 중 후자의 관점에서 정치적 선택을 한다는 의미이며, 다르게 비유하면 파이를 키우는 쪽 보다는 파이를 나누는 쪽에 선다는 의미다. 물론 대개의 경우는 그 사회의 자유가 확대되지 않고서는 기득권층의 파이를 소외계층에게 나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기존의 사회 질서를 크게 뒤흔들지 않고서는 소외계층에게 유리한 정책이 정치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기는 난망이니 진보=좌파의 공식이 대충 성립되기는 한다.

하지만 초점을 국가수준보다 미시적으로 옮겨가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우파 단체 안에서도 진보적인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좌파 단체 안에서도 보수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파 중에서 어버이연합 같은 노인들을 동원하는 방식을 구태의연하다고 거부하고, 심지어 이들을 법적으로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진보적이다. 반면 좌파단체 안에서 관행적으로 해오던 투쟁, 의례 등등을 답습하면서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보수적이다. 아무리 좌파적인 의제를 놓고 투쟁한다 하더라도, 아무리 진보를 내걸고 활동한다 하더라도 그 활동의 가능성과 범위를 넓히고, 새로운 영역을 소화해내려는 자세가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보수, 아니 수꼴이다.

자유와 가능성이 커지는 것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있겠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자유와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은 그 동안 익숙했던것 편안했던것과의 결별이라는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의 말했듯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노예는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으며 행동을 결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유가 확장된다는 것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야 할 상황이 늘어난다는 의미이며 걸머 쥐어야 할 책임도 늘어난다는 의미다. 따라서 자유란 매우 두렵고 부담스러운 상태이기도 하다.

이때 이 두려움과 부담보다 정체되어 있는 상황을 더 견디기 힘든 사람이 있다. 안정과 평온함보다는 성장과 가능성의 확장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진보적이라고 한다. 따라서 진보는 어떤 특정한 입장이나 정책에 국한되지 읺는다. 마르크스가 진보적인 이유는 시장경제를 문제 삼아서가 아니라 시장경제가 자연법칙으로까지 여겨지던 시대에 그것을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그의 유명한 경구대로 "굳어진 모든 것들은 사라진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진보인 것이다.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을 소비에트 집권층은 유물론에서 찾고, 서구의 비판이론가들은 변증법에서 찾은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우리나라 진보진영이 지금 처하고 있는 이 망신스러운 상황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금방 답이 나온다. 그것은 우리 진보진영 내부가 너무도 보수적, 아니 수꼴적이기 때문에 비롯된 일이다.

전교조 본부에 있을때의 일이다. 나는 당시 10년째 반복되어 오면서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는 아스팔뜨 팔뚝질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교사들 1000여명이 모여서 아스팔트에서 팔뚝질을 하며 구호를 외쳐본들 그 동안 바뀐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교사들이 교사답게 다양한 학술적인 활동, 그리고 언론 매체나 블로그들을 활용하는 담론 활동으로 소위 투쟁방법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주장했다. 심지어 관행적으로 사용되는 "투쟁"이라는 말에도 거부감을 표현했다. 예를 들면 "교원업무 정상화 입법 청원 운동"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교원업무 정상화 입법 청원 투쟁"이라고 표현하는 언어 과잉같은 것들.  또, 행사때마다 진보단체에서 관행적으로 하는 민중의례도 거부했다. 그 이유로는 1)나는 어떤 집단적인 의례도 거부한다. 2) 나는 임을위한 행진곡의 가사도 음조도 미학적 의미에서 좋아하지 않는다 였다.

이랬더니 당시 전교조 지도부를 이루고 있던 자들(소위 당권파와 꽤 밀접한 자들임)이 사상검증을 나섰다. 그러면서 던진 질문이 "한미 FTA에 찬성하시오 반대하시오?" 였다. 그래서 내 대답은 "아직 FTA의 구체적인 협정문을 보지 못해서 말할수 없다" 였다. 그리고 나는 도리어 반문했다. "댁들은 왜 한미 FTA에 반대하는지 이유를 대시오."... 그러자 그들은 "아니 FTA반대하는데 이유를 대라니 그러고도 당신이 진보야?" 라며 길길이 날뛰었다. 그래서 판단 내렸다. 그들은 진보가 아니라 수꼴이다.

반대한다, 투쟁한다는 말을 외친다고 진보는 아니다. 왜 반대하는지, 왜 투쟁하는지 그것을 자신의 삶과 생각으로 풀어내고 성찰할 수 있어야 진보다. 그래서 10년간 반대하던 사안을 만약 잘못알고 그랬다고 판단한다면 깊이 반성하고 찬성할 수 도 있어야 하며, 반대로 10년간 옳다고 믿었던 사안이 알고보니 아니었다면 반대하고 나설수도 있어야 진보다. 모든 굳어진 것에 대한 본능적인 반발, 이게 바로 '진보적'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런점에서 우리나라의 진보 진영은 너무도 보수적이다. 집회나 행사에 가 보면 해가 갈수록 참석자들의 연령이 높아진다. 이제는 다들 반백이다. 그런데 벌써 반올림하면 50이 되는 나한테 "아직 젊어서 그래"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꼰대들인 것이다. 할 일 보다는 해온 일에 집착한다. 그 동안 옳다고 믿었던 것들의 신앙간증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 신앙자체를 검증해 볼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러면서 젊은이들의 불참을 탄식하며 20대가 보수화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008년 촛불이 보여주었듯이 20대들은 보수화되지 않았다. 보수화된 것은 그들을 받아내지 못하고, 또 기꺼이 그들을 위해 내어주고 물러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진보진영의 단체와 인사들이다.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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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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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