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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운동가 수잔 오하니언과의 대화


래리 퀸에 이어 나의 교육운동 이력에 큰 영향을 준 또 다른 한 분 수잔 오하니언. 이 분 역시 2007년에 전교조가 개최한 국제 컨퍼런스에 초청되어 오셨던 분. 정작 전교조 간부들은 국제행사라는 폼새 내는것에 만족하고 이 분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경청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 분에 대한 안내와 수행을 맡아서 했던 관계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고, 덕분에 교육운동에 대한 신선한 새로운 관점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이분과의 대화를 정리해서 전교조 신문에 냈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이 기사를 다시 한번 읽어 본다.



수잔 오하니언은 

리씽킹 스쿨의 설립자 중 한 분이시며, 미국 버몬트주에서 신자유주의 교육과 싸우고 계시는 전형적인 68세대입니다. 이 분 남편은 왕년에 체게바라 부대였다고 하더군요. 어제 하루 종일 씨티버스 타고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그분의 책도 한 권 받았습니다. 다.다음은 그 분과의 대화, 그분의 책 등을 대화체로 정리한 것입니다. 대담은 2007년 10월에 있었습니다.

문: 미국은 NCLB로 대표되는 각종 신자유주의 정책이 극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주로 교육에 대해 무엇이라 말합니까?

답: 극심해지는 경쟁 세계에서 국가 경제를 좀먹는 획일화된 교육적 태만 행위 척결, 학교에 대한 선택권, 경쟁, 기술의 필요성, 학생을 인적 자본으로 정의하기, 교수 학습 계약을“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호된 독점으로 정의하기 등등. 결국 국가의 경제 부흥이 매년 치르는 8살 어린이의 다지선다형 시험 점수에 달렸다는 것이죠. 우습죠? 일본이 미국 자동차 산업보다 더 좋은 차를 만드는 것이 미국 교사들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문: 한국에서도 최근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밀려들어오는데 그것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답: 사실 놀랐습니다. 한국 정부의 보고서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는 교육은 일꾼을 준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사업(비즈니스)이 교육의 내용을 결정해야 한다, 교육은 공급초과지만 훈련은 부족하다, 훈련을 통해 실업이 줄어들 수 있다 등등의 말이 나오더라고요. 미국것을 거의 베낀게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문: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가장 큰 폐단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답: 흔히 경쟁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그 보다 획일성이 더 문제라고 봅니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학생들의 차이를 무시하고, 학생과 교사간의 수 많은 관계를 파괴합니다. 어떤 교사에게 물어 본다고 해도 그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한명 한명이 얼마나 다른지 말해줄 것입니다. 그러나 기업-정치-언론의 동맹은 도통 교사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학생과 180일이나 같이 지내는 교사의 판단을 그저 일화 정도로 치부해버리고, 차가운 연구실의 이른바 전문가들의 판단을 전국에 강요하려 합니다. 그러나 단언하지만 차이를 인정하고 교사들의 다양한 교육권을 확보할 때 오히려 ‘인적자원개발’(?)조차 더 잘 될 것입니다.

: 예를 들자면요?

답: 제 학생이었던 마이클은 1학년 때부터 심각한 독서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가 작성한 노트는 엉망이고 철자도 다  틀리고. 그래도 읽어 보면 사랑스러운 유머가 있고 위트가 있으며 연민이 있었죠. 언젠가 나는 무심결에 신문의 아스파라거스 광고가 봄이 오고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아이들이 선생님을 위해서 가장 좋은  아스파라거스를 찾을 수 있는지 경쟁을 했습니다. 재밌죠? 마이클은 이 경쟁에서 1등을 했다. 그리고 15년 뒤 마이클은 1류 레스토랑의 주축 요리사가 되었습니다. 그 아스파라거스 게임이 아이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만약 마이클이 지금과 같은 학교에 다녔다면 고등학교 졸업장을 못 받았을 거고 요리사가 되지도 못했겠죠. 모두가 다 대학에 갈 필요는 없습니다. 대수학을 익히는 것이 사람의 가치를 정하는 것도 아니고 유용하고 생산적인 삶으로 이끌고 지역사회에 공헌할 능력을 결정짓지도 못합니다.

문: 네, 정말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마이클이란 아이의 사소한 가능성 하나하나를 찾아낼 수 있는 존재는 결국 교사일 수 밖에 없는 것이군요.

답: 그렇습니다. 학생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 교사만이 진정한 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협박을 하거나 달래서 배우게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가능성을 위해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뿐이다. 신자유주의의 획일적 결과주의는 괴짜 학생들을 무능한 탈락자로 만들고 말 것입니다. 사실 그들이야 말로 진짜 창조력의 원천인데 말이죠. 물론 국가 차원이란 큰 기준을 들이대면 괴짜는 이상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함에 대해서 포용하는 것과 더 나아가 이 이상함을 발전시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것은 교사들이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규칙을 세세히 결정해야 마음이 놓이는 표준주의자들이 절대로 인정할 수도 이해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문: 한국의 교육 당국자에게 한 마디 해 주고 싶다면?

: 양심 없는 지식은 우리의 영혼을 황폐화시킵니다. 우리의 가슴이 차갑다면 아이들에 대한 통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문: 그런데 제가 듣기에는 원래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인 차터스쿨(헌장학교)이나 바우쳐 제도를 진보적인 교사들이 역이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실제 그런 것이 가능합니까?
답: 분명 신자유주의는 학교의 설립과 운영을 유연하게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노골적 관료주의보다 유연한 면은 있습니다. 이 점을 우리는 신중히 고려해야 합니다. 분명 신자유주의는 우리가 오히려 공교육의 일정 부분을 장악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합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그리고 그 속에 잠재된 신자유주의적인 교묘한 통제 장치를 어떻게 돌파하느냐 하는 것이죠. 이 두 가지를 잘 고려한다면 차터스쿨은 오히려 이용가치가 있고, 실제 미국에서 진보적인 교사들이 팀을 구성하여 차터스쿨을 운영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다만 그 성패는 아직 판단할 단계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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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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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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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