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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통합진보당 부정경선에 실망하지 않았다

제목만 보고 오해하지 않기 바란다. 나는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생각한다. 혹자는 이걸 생트집이라고 하며, 실수라고 하며, 침소봉대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더 심각하다.


물론 문제가 되는 경선은 통합진보당 내의 내부 경선에 불과하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이 경선의 1위는 당선 안정권 순번을 받고 2위는 당선권 밖의 순번을 받았다는 점에서 이 경선은 사실상 국회의원 선거나 다름 없었다.


따라서 국회의원 선거에 준하는 선거관리가 이루어져야 했으며, 만약 인력과 장비가 부족했다면 적어도 그런 수준의 각오와 태도는 보여주어야 했고,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그런 수준에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어야 했다. 강남을구 투표함에 문제가 있는 것이 국기를 흔들 정도의 사건이라고 주장한다면 통합진보당 내부경선에 문제가 생긴 것 역시 같은 수준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내부경선에 부정의 소지가 있다는 의혹일 뿐이며, 실제로 그 부정의 소지가 당락을 결정지었는지 구체적 인과관계는 없다고 주장한다. 궤변이다. 그런 논리라면 강남을구 투표함 부정 사건에 대해서는 아주 입을 닫아야 한다. 부정한 투표함이라 주장되는 투표함이 원래 정동영 몰표였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그 역시 당락과 어떤 인과관계는 입증할 수 없다. 그러니 통합진보당의 소위 당권파는 자신을 김종훈, 새누리당과 동급에 놓지 않는 한 그런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 사태에 대해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심지어 관악을 내부경선 조작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애초에 통합진보당이 이런 세력일 것이라는 우려를 계속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미 민주노동당 시절에도 유령 당원들로 세를 불리고, 심지어 당비를 대납해가면서 까지 자기들 표를 불렸던 집단이다. 그리고 그 핑계는 항상 더 나쁜 놈들과 싸워야 하니 우선 단결이 필요하고, 그러니 이런 작은 허물가지고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였다.


이 논리는 이미 80년대부터 지루하게 반복되어 왔던 논리다. 학생회도 그따위로 운영했다. 그래서 비판이라도 할라치면 “전두환하고 싸워야지 우리끼리 싸워서야 되겠느냐? 대동단결 얼쑤” 이러면서 얼버무렸다. 그때 나는 “전두환보다 주사파를 먼저 제거해야 한다”라고 주장해서 골통 PD내부에서조차 분파주의자로 찍혔던 적이 있다. 하지만 나의 주장 역시 그들의 주장과 같은 맥락에 있다. 더 큰 적과 싸우기 위해 우리 안에 있는 몹쓸 것들을 먼저 제거하자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진보진영에서 가장 나쁘고 몹쓸 것들은 누구일까? 그건 진보의 미덕을 갖지 못하고 도리어 갉아먹는 무리들일 것이다. 진보의 미덕은 무엇인가? 그것은 가능성의 확장이다. 진보지력은 어떤 가능성에 불과한 것을 확장하여 그것이 단지 꿈이 아니라 현실적임을 보여주는 세력이다. 따라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 비전을 실행할 로드맵을 보여주지 못하는 집단은 스스로 뭐라고 부르건 간에 진보가 아니다. 하물며 이런 퇴행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무리들은 뭐라고 불러야 하겠는가?


이명박과 싸우면 진보인가? 박근혜도 이명박과 싸우고 정두언도 이명박과 싸운다. 그럼 그들이 진보인가? 나는 애초에 이런 무리들이 민주노동당을 말아먹었고, 민주노총을 말아먹었고, 전교조를 말아먹었고, 김상곤을 말아먹었음을 잘 알고 있다. 곽노현과 박원순이 돗보이는 것은 주사, 엔엘 세력들과 선긋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통합진보당에서 횡횡한 이 수치스럽고 퇴행적인 행위는 사실 실망할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일어난 것이며, 그나마 빨리 터진 것이다. 그리고 어떤면에서는 차라리 잘된 일이기도 하다. 이 기회에 이 무리들을 낱낱이 밝혀내어 퇴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게 기대하지 말자. 검찰은 절대 주사파들 솎아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사파는 이쪽 진영에서 사실상 저쪽을 도와주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국보법 들이대면서 일망타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쪽 X맨 하라고 남겨두고 가끔 언론플레이용으로 한 두명씩 잡아 족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쪽에서 솎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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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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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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