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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애국가, 국민의례 문제에 대하여

최근 일주일 동안 당권파(이것 참 애매한 이름이다. 주사파를 주사파라 대놓고 부르지 못하니 이런 이상한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의 폭력적 조직운영에 맞선 유시민의 모습은 마치 민주주의의 수호자 같아 보였다. 그런데 그런 유시민의 모습에 균열을 일으킨 엉뚱한 발언이 바로 "애국가" 발언이다. 물론 나는 주사파들이 애국가를 거부하는 이유를 잘 알며(아침은 빛나라 노래가 아니라서 거부하는 것이리라), 유시민이 그것에 대해 괘씸히 여기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애국가를 부르라고 강요할수는 없다.

나는 전교조내 PD(교찾사)와는 각을 서고 있는 입장이지만 굳이 나누자면 PD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 역시 국민의례, 애국가 제창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국민의례 대신 소위 민중의례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나는 국민의례때 애국가 제창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교조나 민주노총등의 민중의례때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으며 집회때 구호를 제창하지 않으며 팔뚝질도 하지 않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초등학교 이래 나는 단 한번도 노래를 제창하거나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유는 별거 없다. 그냥 싫었다. 모두가 똑같이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싫었다.

즉 나는 국민의례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의례 그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다. 조직이나 공동체의 어떤 상징을 숭상하는 행위는 그 조직이나 공동체를 그 자체 하나의 숭배의 대상으로 바꾸어버리는 그리하여 구성원 개인의 가치를 조직과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언제든 희생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의 씨앗이 되는 위험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시민들의 연결망을 뜻하는 것이지 시민들의 숭배를 받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은 국기나 국가를 사랑할수는 있지만 거기에 경례를 하거나 그것을 마치 성가곡처럼 숭상할 의무는 없다. 마찬가지로 전교조는 참교육을 꿈꾸었던 교사들의 연결망이지 그 자체가 하나의 존재, 실체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참교육의 함성으로'따위의 노래를 부르면서 결의를 다질것을 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사실 국가를 제창하는 행위 자체가 군국주의 파시즘의 잔재이다. 일본만 하더라도 뉴라이트 계열의 시장이 장악한 지역에서만 국가제창을 하고 있으며, 양심적인 교사들은 징계를 불사하고 입학식 졸업식에서 국가제창을 거부하고 있다.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는 정도로 충분하며, 국가를 연주하거나 재생할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냥 생략할 수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정당의 운영위원회 등 대외적인 공식의전이 아닌 다음에야 무슨 의례를 할 필요가 없다. 단, 국민의례를 안하면서 민중의례를 하거나 해서는 안된다. 그냥 심플하게 의례 생략하고 회의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유시민의 발언은 다소 실망스럽다. 다만 대외적인 행사에서 애국가를 연주하거나 제창하지 않는 모습을 가지고 굳이 정치적 손실을 볼 이유가 있느냐는 전략적 관점에서의 발언이라면 참작할 점이 있다. 하지만 유시민이 구태여 진보당이라는 이름이 붙은 정당을 키워나가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그리고 참여민주주의의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자부한다면, 국기, 국가에 대한 신성화, 그리고 여기에 기반한 각종 집단적 행위와 전례에 대해서는 털어버려야 할 것이다. 거짓말도 100번하면 믿게 되듯이 집체행동도 계속 반복하면 전체주의 사고방식이 슬금슬금 자리잡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정당이 나라의 상징을 완전히 나 몰라라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니 진보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정치집단이라면 민중의례같은  감동도 아름다움도 없는 의식 말고, 국민의례를 대신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의례, 그러면서도 전체주의적 분위가와 무관한 의례를 하나 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굳이 국기, 국가가 들어가야 의례인 것은 아님도 고려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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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