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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그런게 아직도 남아 있다면, 남은 선수끼리 가자

오늘 통합진보당의 중앙위원회는 영화 어벤저스를 연상케하는 공중부양으로 막을 내렸다. 공중부양의 원조 강달프까지 멱살을 잡히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으니, 이제부터 통합진보당은 '용팔이 당'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 그나마 심상정 대표는 유시민 대표가 안경이 부서질 정도로 대신 맞아준 덕분에 큰 부상이 없다고 하며, 조준호 대표는 옷이 다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 한다. 하긴 주사파들이 자기들이 쪽수가 많으면 민주주의를 강변하며 다수결로 밀어붙이고 반대의견은 아예 발언권도 묵살하다가 쪽수가 발리면 깡패로 돌변하는 역사야 수십년 된 일이니까.
그들의 종주국인 북한이 딱 그렇다. 이미 국가대표팀이 심판을 폭행하기로는 아시아 최강을 자랑하는 북한이 아니던가? 1982년 뉴델리 아시안 게임에서 북한 국가대표팀이 심판을 집단폭행해서 결국 AFC중징계를 받아 대회 참가를 몇년간 못하고, 그날로 북한 축구의 기세가 꺾인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더니 그 버릇 남 못준다고 지난해인가는 여자축구국대가 심판을 폭행해서 경기를 몰수당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결국은 몰락이다. 
편파적이든 아니든 심판은 심판이다. 심판을 폭행하는 순간 그것은 이 게임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 되며, 그 댓가는 추방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공놀이에서조차 그런데,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정치는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계파 갈등이 심각한 운동권 단체들에서 그 과격한 활동가들도  "의장 편파적이다!"라면 항의는 할지언정 위원장이나 대표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없었다. 이것은 하나의 금도였던 것이다. 일단 이 룰을 깨고 나면 그 다음에 "심판이 편파 판정이었느니 어쩌니"하는 말들은 다 소용 없는 일이다. 
예컨대 위의 북한 여자 축구팀의 경우 실제 심판이 중국편을 노골적으로 들었고, 그게 위원회에서도 인정이 되었다. 하지만 내려진 징계는 해제되지 않았다. 심판이 편파적으로 행동한 것은 심판이 징계받을 일이지만, 심판을 구타한 행위는 아예 이 경기의 존립을 뒤흔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사진을 보라. 누가 보면 유신시절에 심상정을 체포하려는 경찰에 맞서 유시민과 몇몇 사수대가 결사적으로 가로 막는 것으로 보인다. 누가 이걸 소위 진보진영의 "진성 당원"이 자기들 당 대표를 구타하려는 것으로 보겠는가? 게다가 저 주사파 놈들은 걸핏하면 여성을 폭행하던 무리들이 아니던가? 오늘 아주 큰 일 날 뻔 했다. 간교한 이정희는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대표를 사퇴한다고 하고는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일단 이런 행위를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말이 필요없다. 그냥 부도덕한 집단이 되는 것이다. 이제 진보진영은 구구절절 사연이야 뭐가 되었건 간에 이들을 떼어 놓지 않고서는 그냥 공멸하게 생겼다.  저들은 이미 실격했으며, 경기장에서 퇴장시키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박근혜한테 배워야 한다. 다음의 그림을 보자.


이건 지난해부터 나꼼수 등의 꾸준한 노력으로 조성된 원래의 전선이다. 가카의 맹활약 덕분에 보수는 더럽고, 낡고, 부패하고, 폭력적인 세력으로 국민의 공분을 사는 집단이 되었다. 그리고 국민은 그 반대급부로 진보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실상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무기력한 전교조가 호의적인 대접을 받게되는 등 변화가 일어났다. 이게 두려웠던 보수는 대표적인 진보인사 하나를 골라서 파렴치범임을 밝혀서 "네들도 똑같아!" 작전을 쓰려고 했는데, 하필 고른 타겟이 곽노현이었다. 

사실 곽노현 교육감이 실제로 단일화 과정에서 어떤 합의나 지시를 했을 경우, 또 박명기 교육감에게 준 2억 중 수상한 돈이 한푼이라도 섞여있을 경우 보수의 이 작전은 멋지게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이게 두려워서 진중권 등은 미리 꼬리 자르고 가자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털어 먼지내기에 실패했고, 설사 곽교육감이 직을 상실하게 되더라도 이는 이상한 법조항과 해석 때문이지 어떤 부정이 있어서는 아니라는 인식이 심지어는 법관들에게까지 확인되었다. 이건 실패다. 이때 많은 진보진영 활동가들이 곽감을 믿고 간것은 단지 우리편이라는 진영의식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그 동안 살아왔던 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곽교육감이 횡령이나 뇌물수수로 걸려들었다면 아마 구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곽감 낚아 진보 몰살시키기 작전이 실패하자 박근혜는 대담한 작전을 내세운다. 그것은 바로 보수 분할 및 도마뱀 꼬리 자르기다.

보수진영에서 앞의 그림의 부정적인 평가의 주된 원인이 되는 집단을 과감하게 잘라서 "쟤들 우리편 아니야" 해 버린 것이다. 즉 가카를 공주와 완전히 분리시킨뒤 가카를 보수진영에서 배제시켜 버린 것이다. 가카 매립작언이다. 이렇게 하고서는 진보진영의 일부 부정적인 집단의 행동을 부각시키면서 진보진영은 이명박진영처럼 무원칙하다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 MB심판"을 몰아 붙였으니 야권의 전략도 참으로 순진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진보진영은 다음과 같이 대처해야 한다. 보수쪽이 가카라인을 배제하고, 즉 불순물을 제거하고 포장을 한다면, 진보진영 역시 그런 문제의 근원이 되는 세력은 배제하고 나머지만으로 상대해야 하다. 그래서 저쪽에서 어쩌구저쩌구 그러면 "아, 걔들이 진보였어? 우리랑은 상관 없어"라고 말할 수 있는 포지션을 잡아야 한다. 주사파든 경기동부든 이제 그들은 그런 도마뱀 꼬리의 위치, 그것도 썩어서 파상풍을 옮길수 있는 꼬리의 위치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잘라야 한다. 

주사파들 자신이 만약 운동가로서 일말의 양심과 전술감각이 있다면 자기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국면인지 바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나가야 한다. 오늘은 4.11 총선 패배보다도 더 절망적인 날이기 때문이다. 저들이 간첩, 종북으로 몰고갈때는 "냉전적 사고방식!" 이러면서 맞삿대질이 가능하다. 하지만 "무능, 부실, 부정"으로 몰고가면서 여기어 플러스 알파로 간첩, 종북을 버무린다면 온국민의 외면과 증오를 받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 외면과 증오를 진보진영 전체가 다 받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들이 다 받고, 진보진영은 그것과 무관하게 조치할 것인가, 여기에 주사파들의 운동가로서의 양심이 걸려 있다.  부디 전향적인 선택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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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