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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희망이며 아름다움이다. 연극으로 풀어보는 학교폭력, 그 대장정의 시작

그 동안 진보와 관련해서 너무 부끄럽고 우울한 이야기들만 난무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런 것은 진보와 무관합니다. 진정 진보적인 사람은 울분해야 할 상황에서도 풍자를 하며, 빡세게 싸워 이기기 보다는 아름답고 고결하게 쓰러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진보에는 감동이 있고, 내러티브가 있고 유산이 있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학교폭력 문제를 예술을 활용하여 해결하고자 한 곽노현교육감의 시도는 진정 진보라 할 만합니다. 물론 이 방법은 핀란드나 노르웨이처럼 연극을 포함한 3일간에 걸친 10차시 이상의 프로그램이라야 효과가 있고, 이렇게 하루 방문하여 두세시간 프로그램 진행한다고 해서 마법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경찰관이나 영감님이 와서 애들 다 재우면서 "폭력은 나빠요" 하는 강연, 혹은 교과부가 광분했던 "1진 사냥"보다는 훨씬 큰 효과가 있고, 또 교육적임에는 분명합니다. 

5월 21일 오후 13시 10분, 건국대학교 부속중학교 강당에 극단 프락시스가 들어와 무대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공연을 시작으로 프락시스는 11개의 공연을 학교들을 돌아다니면서 이어 갈 것입니다. 그리고 프락시스 외에 극단 해, 극단 마실, 극단 올리브와 찐콩이 11개씩의 공연을 이어 갈 것입니다.


이제 학생들이 들어옵니다. 원래 TIE는 100명 정도의 관객들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적당하지만 한국 학교의 현실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네요. 무려 400명의 학생이 몰려왔습니다. 더군다나 인민군도 두려워 피한다는 중학교 2학년들입니다.


 우선 시험부터 칩니다. 아니, 시험이라고요? 아뇨, 시험이 아니라 학교폭력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시험지 형식으로 알아나가게 하는 학습지랍니다. 시험지 형식으로 되어 있으니 오히려 학생들이 더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고 봅니다. 시험범위는 저의 논문입니다. 하하.


학교폭력의 전형적인 사례 한 장면을 잡아서 조상만들기를 하면서 먼저 이 형식에 대해 익숙해지는 시간을 갖습니다. 너무 많은 학생들이 와 있기 때문에 TIE를 TIE답게 진행하기는 이미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조커 선생님이 쾌활하게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제 연극이 공연됩니다. 이후 후속작업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연극의 공연시간은 가능하면 40분 이내인 것이 좋습니다. 또 중간 중간에 학생들의 지나친 긴장을 풀어주는 장치들이 배치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콘이 되어버리면 안되겠죠.


연극이 끝났습니다. 하지만 TIE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연극속의 학교폭력의 원인이 된 사건을 되짚어보며 학생들이 토론합니다. 워낙 많은 학생들을 뭉쳐 넣어놓아서 사실 토론이 잘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발언하는 친구들이 몇몇 있고, 이렇게 분위기가 잡히면 결국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게 됩니다. 이렇게 참여하여서 폭력의 원인이 된 상황, 폭력의 상황등을 문제제기하고 그 장면을 고쳐나가면서 해법을 찾아봅니다.


물론 이런 작업을 한다고 해서 소위 일진들이 개과천선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학교폭력이라고 하는 것이 뭔가 엄청난 일이 아니라 자신들이 일상에서 너무 쉽게 저지를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학생들이 알아나가는 것, 그게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며, 그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1회의 공연으로는 뭔가 아쉽습니다. 이건 문제제기 하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공연 전 3시간 정도의 웜업과, 프로그램 이후 7시간 정도의 다양한 후속이 3일에 걸쳐 이루어질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노르웨이나 핀란드처럼 말입니다.

어쨌든 학교폭력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권위주의나 공권력으로 억눌러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공감을 일으켜 해결하려는 프로그램을 교육청 이름으로 내걸고서 시행한 것은 아마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프로그램, 곽노현교육감이 억울한 구속에서 석방되어 나오고 설 연휴기간 동안 쉬지도 못하고 고민하다가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사업 집행과정에서 원래 교육감의 아이디어가 완전히 구현되지는 못했습니다. 학생수, 예산의 제약, 그 외 관료제 조직의 여러 경직성 등등. 하지만 이런 첫걸음들이 모여서 우리나라 교육의 큰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인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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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