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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연극으로 풀어보는 학교폭력 일반공개

그동안 학교를 순회하면서 공연중이던 학교폭력 토론연극을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합니다. 이하 보도자료를 참조해 주세요.

서울특별시교육청과 서울문화재단(서울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은 5월 25일(금)과 26일(토) 양일에 걸쳐 ‘시민과 지역, 예술의 일상을 바꾸는 문화예술교육’ 포럼과 공연 행사를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개최합니다.

□ 이 행사는 5월 14일 곽노현 서울 교육감, 박원순 시장, 서울시 의회 및 자치구 협의회, 교육 시민 단체가 공동으로 발표한 "서울교육희망선언"의 취지를 반영한 첫 번째 공식행사로서, 사회문제를 지역사회, 교육기관, 문화예술단체가 함께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성공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로 펼쳐집니다.

26일(토) 15시 에는 서울시 교육청 주관으로 44개 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토론 연극들 중 한 작품인 ‘눈사람? 눈사람!’이 공연됩니다.
이 공연은 지난 5월 14일 서울특별시교육청과 서울특별시가 공동 선언한 ‘서울교육희망선언’에 따른 첫번째 실행 사례로서, 요즘 문제시 되고 있는 학교 내 폭력을 토론 연극이라는 예술적 방법으로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두 기관의 협력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 참가자들은 ‘어디에서 폭력은 시작되는 것일까?’, ‘우리는 폭력을 줄일 수 있을까?’ ‘작은 폭력 행동들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함께 풀어가면서, 학교폭력의 역학관계(가해자-피해자-방관자-동조자-방어자)를 다각적으로 분석합니다.
특히 이 날 행사에는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과 조선희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이 함께 참여합니다.
(참가 희망자는 교육연극연구소 ‘프락시스’에 전화로 신청 : 010-2259-8233)

◎ 일시 : 2012. 5. 26(토) 15:00~18:00
◎ 대상 : 중학생, 교사, 학부모를 포함한 지역시민
◎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 주최 : 서울특별시교육청, 서울문화재단
◎ 주관 : 서울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프락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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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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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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