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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동부에 대한 "자전거타는 유리멘탈 (@OnTheRoad_82)"님 글(퍼온 글)

긴 트윗 안 보시는 분들을 위해 블로그에 옮겨 둡니다.

진보당 사태에 대한 단상 - 종파와 진성당원제

사태에 대한 단순한 규탄은 쉽지만 당권파가 대체 왜 이지경까지 사태를 끌고왔는지에 대한 이해는 어렵다. 왜냐면 소위 경기동부라 불리는 운동집단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아서이다.

사실 경기동부라 불리는 집단과 한솥밥을 먹고 몇년간 활동하기도 했던 나조차도 이들이 사태를 이지경까지 끌고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1. 경기동부에 대한 이해
사실 운동권 술자리에서나 나오는 단어(공식 회의석상에서는 이 단어를 차마 쓰지 못한다)인 경기동부가 이렇게 전국민적(?)인 단어로 떠오르는건 나같은 꿘에게 참 감회가 새로운 일이다.

축약적으로 경기동부라 불리는 집단의 역사와 특성을 말하자면, 이들의 최초역사는 민혁당과 김영환을 말할 수 밖에 없다.현실사회주의와 몰락과 김영환의 변절 이후, 김영환의 하부는 대부분 집단 전향을 선택했지만 거기에 격렬히 반발한 집단이 몇곳 있었다. 그중 한곳이 민혁당 경기남부위원회이다. (이석기씨는 여기 총책출신이였다) 이들은 경기도권에서 핵심 동지를 모아 지역운동을 통해 다시 조직을 재건해 나갔으며, 주로 경기도권 곳곳에 청년회, 노동조합, 학생회 등에 선을 대며 운동집단을 키워나갔다. 

92년 전국연합이 창립되자 경기동부연합 이란 이름아래 이 집단을 구체적으로 드러냈으며, 인천연합, 울산연합과 함께 NL의 빅3라 불리는 정파가 됬다. 

경기동부는 시작은 미약했지만 특유의 결속력과 집단력, 무모할 정도의 패기(?)로 굉장히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3~4년 전부터는 광전연합과 사실상 통합상태로 운영되왔으며, 학생운동, 노동운동, 진보정당운동, 지역운동, 청년운동, 각지에 단일세력으로는 사실상 NO.1 의 자리를 차지했다. 원래는 인천연합이 NL의 핵심이였지만 지금은 경기동부의 세가 훨씬 커진 것 같다. 나머지 NL들은 굉장히 나이브해지고, 유연해진 편이다. 

경기동부의 조직문화는 비공식 비선조직의 특성상 점조직적이며, 상명하복과 강한 규율성을 강조한다. 내가 활동하면서 혀를 찼던게 내가 활동하던 지역에 파견(?)된 경기동부 활동가들이 4~5명 정도 있었는데, 365일 아침 6시에 모여서 조회를 하고 활동을 시작하더라. 충격적인건 월급도 쉐어한다. 지역에서 활동하다보면 급여의 차이가 있고 심지어 무급활동가도 있는데, 이걸 n/1로 나눠서 생활하더라. 난 이들이 혹시 연인까지 점지해주진 않을까 하는 강한 의심을 가지고 있다. 어쨌든 이런 강한 집단성을 지니고 있고 서로서로 정말 돈독하게 아껴준다. 거의 종교적 생활공동체 수준으로.. 하여튼 이렇게 왕성하게 들이밀더니 각종 분란을 터트리며 결국 지역을 거의 먹어버렸다 --; 

사실 운동권 모두 어느정도 반성적으로 돌아볼 문제이지만. 경기동부 집단의 핵심적 문제는 지나친 자파중심주의이다. 이들에게 '동지'란 자파인물뿐이며, 운동 전체의 이익보다 자파의 이익에 골몰한다. 그러다보니 서로 다른 색깔의 동지들과 섞여있어도 물과 기름처럼 구분되며, 항상 딴주머니를 차고 활동한다. 즉 당에서 활동하면서도 뒤로는 경기동부 활동을 당을 통해 관철하려 한다던지, 각종 재정사업은 CNP에 몰아준다든지 등등.. 경기동부에게 뒷통수 맞아본 경험 없는 활동가는 운이 좋은 것이거나 제대로 꿘 사회에 들어와보지 않은거다. 


3. 경기동부의 이번 사태에 대한 인식

경기동부의 현실인식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즉 지금 전국민에게 이렇게 욕을 바가지로 처먹고 있는 것을 모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사실 그래도 NL이 되려 PD보다 대중들의 정서와 여론에 민감한 편이기에, 나도 처음에는 경기동부도 결국 사퇴로 마무리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자폭택을 택한 것은 경기동부의 자파중심주의와 결부해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소위 2002년 군자산의 약속 이후 경기동부의 핵심 숙원은 '자파 국회의원 배출' 이였다. 이를 위해 NL친화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이정희를 포섭(지금까진 영향을 끼치는 수준으로 생각했는데 이번 사태를 보니 사실상 포섭된 것 같다)하고, 총선에서 7석 가량의 자파의원을 당선시켰다. 드디어 경기동부의 10년 목표가 달성된 것이다. 

근데 이런 쾌거 앞에서 감히(?) 유시민 딱가리라고 생각해온 참여계 인물들이 선거결과를 물고늘어지기 시작 한 것이다. 사실 경기동부 사람들에게 참여계 사람들이란 자신의 과격한 이미지를 살짝 덧칠해줄 수 있는 외피의 의미밖에 없다. 근데 경기동부가 바보인게 ㅋㅋ 참여당 사람들이 운동권에서는 한발 물러났을지는 몰라도 키보드 워리어질에서는 내가 보기엔 국내 넘버1이다. 어쨌든 참여계 동지들의 키워질로 진보당 자게가 초토화되며 이번 문제를 그냥 덮고 넘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의 전개상황은 다 아는 바와 같다. 한마디로 조중동은 신바람을 내며 연일 진보당 이슈 흥행에 성공하고 있고, 새누리당, BH는 대선준비를 차곡차곡 하고 있다. 당 지지율은 반토막을 넘어 세토막이 나고....

이들은 지금 자신들은 이미 대중적으로 아웃팅됬으며, 이 사태에서 밀리면 경기동부는 영원히 진보정당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없다고 본다. 지금 여론에 따라 사퇴하고 당의 일선에서 물러난다면 이미 대중적으로 아웃팅된 자신들은 다시 현실정치에 발붙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강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일단 욕을 먹고 당 지지율이 반토막이 되더라도 자파 의원직을 사수하고, 그렇게 욕먹은 것은 나중에 이석기 김재연 등 자파 국회의원들의 헌신적(?) 활동으로 복구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겉으로는 당원의 명예회복이니, 마녀사냥이니 하며 '명예'를 주장 하지만. 사실 이들은 '권력'을 추구한다. 


4. 이번 사태에 대한 단상 

어제 새벽 중앙위를 보다가 정말 오랜만에 운동판에 다시 가고 싶어졌다. 오래전에 변절하고 학원강사로 소일거리하는 나이지만, 참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하루였다.

첫번째 생각은 오랜만에 꺼내는 '종파(Sect)'란 단어이다. 
국민의 이익과 당의 이익이 충돌할땐 국민의 이익을, 당의 이익과 개인, 혹은 자파의 이익이 상충할땐 선당후사하는 것은 이념을 떠난 정당의 기본규범이다. 여기서 벗어나면 이인제류의 정치인이 되거나, 경기동부와 같은 깡패집단이 된다. 

심상정씨가 지난 지방선거 당시 경기도지사 후보를 사퇴하고 유시민 단일화를 선언하며 '당심과 민심이 다를때 지도자는 당심을 민심에 맞춰나갈 수 있는 결단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백번 동의한다. 지금 경기동부는 당심은 커녕 민심조차 외면하며 자파의 이익에만 몰두하며 전체 진보운동을 해치고 있다. 정말 종파의 끝을 보는 것같다. 

다음은 의장단에게 몰려가 댓거리를 하는 행동대원들을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이다.
몇몇 아는 얼굴도 보였고, 그중 한명은 꽤 친하게 지내기도 했던 사람이였다. 이들이 왜 저렇게까지 됬을까 하는 슬픔이였다. 어제 몰려든 경기동부 행동대원들. 한명 한명을 보면 결코 나쁜사람들이 아니다. 똑똑하고 성실하며 예의바른 사람이다. 정말이다. 난 나름 저들을 잘 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저렇게 모아놓고 자파만의 구호와 행동방침으로 무장하니, 이건 뭐 호남 민주당 난닝구 이상이다. 집단이 개인을 키우는 것이 아닌, 조직의 하수인으로 전락시켜버렸다. 


이번 사태는 어떻게 될까? 정당운동 좀 해본 사람이라면 이렇게까지 서로의 감정선이 벌어지면 이건 사실상 수습 불가능 한 상태라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진성당원제의 약점은 경기동부와 같은 깡패집단 앞에서 무력해진다는 것이다. 26%만 장악하면 당의 모든 일을 '당원의 이름'으로 해낼 수 있다. 나머지 74%의 당원은? 흐물흐물 개별화되서 각계격파만 당하고 있다. 

진보당 지역위별로 많으면 1000명, 적으면 200명 수준의 당원들이 있다. 까놓고 좀 작은 지역구의 경우 자파사람 200명만 끌고 들어가면 '듣보잡'도 국회의원 후보될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 당원들은 사실상 무관심하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이거 외엔 방법이 없다. 74%의 당원들이 깨어있고, 저들의 난횡을 조직적으로 감시하는 것.. 아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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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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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