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29.

"곽노현 버리기" 나는 왜 이책에 참여했는가?


나는 글을 굉장히 빨리 쓴다. 그런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할수 없는 비밀의 피아노 배틀처럼 마주 앉아서 글쓰기 배틀을 하면 나하고 대적할 사람은 대한민국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틀만에 단행본으로 출판된 책의 한 절을 a4 6매 정도 분량으로 써 달라고 하면 그건 상당히 무리한 부탁이다.

하지만 나는 그 무리한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 처럼 무리한 부탁을 기꺼이 받아들인 24명의 글이 모여서 책을 이루었다.

처음에 나는 이 책 제목을 보고 뜨악했었다. 이거 수꼴의 음모에 말린게 아닐까 의심마저 했었다. 제목이 곽노현 버리기 아닌가? 아마 이 제목에 낚여서 이 책을 구입할 수꼴 어르신들도 제법 있을 것이다. 김용민의 '조국 현상을 말한다'에 낚이듯이 말이다.

하지만 편집자의 글을 읽고 바로 무슨 뜻인지 알았고, 내가 애초에 이 책의 공동저자로 참여한 취지에 가장 걸맞는 제목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곽노현을 버리려고 이 책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곽노현을 버리려는 사람들에 대해 쓰려고 참여했기 때문이다.

2011년 8월 말부터 2012년 4월까지 기간은 이른바 진보라 스스로를 분류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시험의 시기 시련의 시기였다. 그리고 그 시험과 시련의 가운데에 곽노현, 아니 곽노현 현상이 있었다.

처음 박명기에게 2억을 주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의 멘붕이야, 나 역시 다른 진보진영 지식인들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진보진영 지식인들의 놀랄만큼 빠른 곽노현 버리기가 오히려 나에게는 더욱 실망스러웠다. 너무도 빨리 "그래, 저 사람도 별수 없었던 거야" 모드로 돌입해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자기들이 가슴에 품고 있던 시커먼 야망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진보를 가장한 출세주의자들이 자기들의 마음으로 타인을 해석하고,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더더욱 적극적으로 곽노현 버리기에 나섰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시쳇말로 "쉴드칠때 까지 치고, 정 안되면 과감히 그때 버리자"라고 결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마악 일궈내기 시작한 교육혁신의 위력을 비로소 실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곽노현을 버리는 것은 개인 곽노현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싹 트기 시작하는 진보교육의 꿈을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우리나라 진보진영은 교육을 무시한다. 시사in의 진보의 재구성에도 교육은 빠져있었다. 각종 진보진영의 지상논쟁, 토론에서도 교육계 인사는 철저히 배제되고, 엉뚱한 교수따위가 교사를 대신해서 초중고를 논하면서 전혀 견적에도 안맞는 객적은 소리나 하곤 한다. 그런데, 진중권 등의 진보지식인들이 서울시장 한 자리를 위해 교육을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 처럼 보였다. 그건 안될 일이었다. 그래서 논쟁에 참가했다. 그리고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진보진영 내에서의 여론이 반전되었다.

하지만 이름없는 네티즌, 블로거, 트위터러와 달리 이미 조직을 가지고 있고 기관을 가지고 있는 진보진영의 주류들은 여전히 곽노현을 버린듯 하다. 적어도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는듯 하다. 심지어 이름만 대면 알수 있는 진보진영 인사들이 교육감 재보선에 출마한다는 썰까지 솔솔 흘러다닌다(장담하는데, 만의 하나 그자가 교육감이 되면 나는 새누리당으로 가버릴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한 꼭지를 썼다. 본의 아니게 이주호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는 곽노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진보진영이 곽노현 버리기, 곽노현 쌩까기로 일관하고 있을때 정작 이주호는 곽노현 닮아가기, 곽노현표 교육혁신 따라하기에 나섰던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명색이 진보가 이주호만 못하단 말인가? 이건 곽노현 개인을 쉴드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정책의 문제다. 사람이 아니라 정책의 문제. 그런데 사람을 버리니 정책도 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진보진영의 교육담론에는 알맹이가 없다. 봐야 할 것을 보지 않고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쓰다 보면 아마 말이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다. 더 자세한 것은 그냥 책을 보면 되지 않을까?

곽노현 버리기 YES24 가기

아울러서 주인장의 책도 한번 봐주는게 예의일것 같기도 하다.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2012. 6. 28.

학교폭력에 대한 관점을 전환하자

이 글은 월간 '인물과 사상'에 수록되었던 글입니다. 이제 해당 잡지가 과월호가 되었기 때문에 블로그에도 함께 게재합니다.



1. 학교폭력, 조금 냉정하게 바라보자 

학교폭력 때문에 연일 신문들이 아우성이다. 특히 조선일보가 유별나게 적극적이다. 조선일보에 비추인 우리나라 학교는 일진들이 학생들을 괴롭히다 못해 교사들까지 제압하고 있는 폭력천지다. 이 지경이면 자퇴하지 않고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신기하게 보일 지경이다. 정말 우리 학교가 이리도 막장이란 말인가? 이제는 우리 학교가 학생은커녕 교사들마저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무법천지란 말인가? 


잠깐 엉뚱하지만 미국의 이미지는 범죄로부터 안전한 나라일까, 아니면 강력범죄가 날이 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는 나라일까 생각해 보자. 아마 후자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 자료를 보면 지난 10년 동안 미국의 살인사건은 20% 이상 감소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의 이미지는 이렇게 험악해졌을까? 같은 기간 미국 언론과 방송에서 살인사건에 대한 보도가 무려 600%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뭐가 올까? 폭력에 대한 공포와 불안의 조성, 그리고 인권에 대한 반대와 공권력 강화에 대한 요구다. 범죄를 집중적으로 보도하여 공포를 증폭시킨 다음 이런데도 인권 타령이나 할 것이냐, 당장 엄하고 강력한 공권력이 개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진 것이다. 


이렇게 다른 나라 사례로부터 글을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게 마침내 우리나라의 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조선일보를 위시한 보수언론의 논조가 이와 판박이다. 먼저 충격적인 폭력 사례를 집중적으로 보도한다. 피해자가 자살하거나 교사가 구타당하거나 한 사건이 있다면 놓치지 않고 계속 집중 보도한다. 30만명이 넘는 교사들 가운데 0.1%만 학생에게 폭력피해를 입어도 300건이다. 집중적으로 보도해서 지면을 꽉 채우기엔 충분하다. 이렇게 폭력에 대한 반감과 공포를 잔뜩 유포한 다음에는 이 모든 것이 자유가 지나치고 인권이 지나쳐서 그리고 공권력과 권위가 약화되어서란 논지를 펼친다. 그리고 그 책임을 진보교육감과 학생인권조례에다 돌린다. 그 다음 귀결이 학교규율 강화, 학교장 권한 강화 등인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왜 이런 짓을 할까? 폭력의 위험으로 가득 찬 세상, 이웃과 급우들이 언제든지 가해자로 돌변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에 가득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가장 갈급해 하는 것은 안전이며, 이 안전에의 욕구야 말로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보수화시키기 때문이다. 토마스 홉스의 명저 ‘리바이어선’의 주제가 바로 타인의 폭력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어떻게 강력한 주권자를 정당화하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하고 흥분하기 전에 먼저 따져봐야 한다. 우리나라 학교는 정말 그렇게 폭력으로 난무한 위험한 곳인가? 그래서 약한 학생들이 견디다 못해 자살하고야 마는 그런 곳인가? 정말 그런가? 


2. 학교폭력은 더 심각한 문제의 결과일 뿐이다 


먼저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서 발표한 최근 5년간 학교폭력 변동 추이를 보면 우리나라의 학교폭력 피해율과 가해율은 특별하게 늘어나거나 줄어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2006년에 17.3%에 달했던 피해율이 2010년에는 11.8%로 크게 줄었다. 다음은 청소년 자살이다. 흔히 우리나라 청소년의 자살률이 세계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의 청소년 자살률(10만 명 당 자살자 수)은 8.3명으로 OECD국가들의 평균 정도다. 가장 심각한 나라는 뉴질랜드이며, 우리에게 교육선진국으로 알려진 핀란드나 스웨덴이 오히려 우리보다 훨씬 높다. 게다가 ‘2012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 자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인은 ‘가정문제’ ‘성적 비관’이며 학교폭력은 매우 미미하다. 


설사 자살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학교폭력이 우리 아이들이 늘 불안에 떨게 만드는 스트레스의 근원은 아닐까? 물론 그런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을 불안에 떨게 만드는 원인은 학교폭력 말고도 많고, 학교폭력은 그 중 유력한 원인에 들지도 못한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스트레스의 근원 중 압도적 1위는 공부, 다음은 직업이다. 학교폭력이라고 응답한 학생은 0.2%에 불과했다. 2002년과 비교하면 공부와 직업(진로)관련 스트레스는 크게 증가한 반면 학교폭력은 1/6로 줄어들었다. 직업관련 스트레스가 8년 사이에 두 배로 늘어났다는 것에 주목하자.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었던 선배들에 비해 지금 청소년들은 “공부 열심히 해도 불투명한” 미래와 맞닥뜨린 것이다. 우리나라 학교의 학교폭력 문제는 언론이 떠드는 만큼 심각하지는 않은 것이다. 


 사실은 어른들이 청소년 걱정할 상황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성인 자살률은 압도적으로 OECD 1위다. 지금 성인과 노령층이 청소년보다 더 절망적인 상태에 있다. 최근 청소년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성인들이 절망적 상태에 있기 때문이며, 제 코가 석자가 된 성인들이 청소년들을 제대로 돌보기 어려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3. 그래도 학교폭력은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기왕 이렇게 사회적 화두가 되었으니 학교폭력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합리적인 해결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물론 폭력에의 공포를 유포하고, 일진회 등의 증오대상을 찾아 헤매는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교폭력의 개념을 엄밀히 정의하고, 원인과 결과 그리고 그 과정을 정확히 파악하여 교육적 처방을 찾아야 한다.


 먼저 학교폭력의 정의부터 엄격하게 내려야 한다. 폭력적 상황이 발생했다 해서 무작정 학교폭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폭력은 학교 구성원 사이에서 피해자가 동의할 수 있는 정당성 없이 가해지는 일체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문화적 압력 혹은 강제력의 행사를 의미한다. 교사의 체벌이나 강압적인 꾸지람도 넓게는 학교폭력에 들어간다. 사실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같은 경우는 교사는 물론 학부모가 자기 자녀를 체벌하는 것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일단 학생들 간에 발생하는 폭력적·공격적 행위로 범위를 좁혀보자. 


이 중 폭력을 행사한 쌍방 간의 관계가 대등한 경우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건 그냥 아이들끼리 싸움이다. 싸움은 가능하면 하지 않는 것이 옳지만, 만약 하게 되더라도 서로 화해시키고, 부상 등의 피해가 있으면 배상하도록 하고, 이후 갈등을 비폭력적으로 해결하도록 지도하면 그만이다. 따라서 싸움은 학교폭력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학교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대등하지 않은 경우만 지칭한다. 대등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폭력에는 순간적으로 격분한 가해자가 열등한 관계에 있는 피해자에게 강력한 신체적, 언어적 공격을 가하는 폭행(assualt)과 우월한 위치의 가해자가 열등한 위치의 피해자에게 의도적이면서 그리 과격하지 않은 폭력을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가하는 괴롭힘(bullying)이 있다. 선정적인 언론은 폭행에 관심을 가지지만 실제 더 위험한 것은 괴롭힘이다. 실제 교육 선진국에서 개발된 무수한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도 거의 대부분 괴롭힘(bullying)의 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일진회를 박멸 보다 평범한 학생들이 가하는 눈에 띄지 않는 폭력을 더 심각하게 보아야 하는 것이다.


학교폭력 문제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올베우스(Oweus)는 괴롭힘(Bullying)을 1) 가해자와 피해자의 힘의 불균형에 기반하고, 2) 한명 혹은 다수의 학생들이 3)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목표로 삼아 4) 신체적, 언어적, 사회적, 간접적 폭력 등을 5) 장기간 지속적으로 가해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괴롭힘은 가해자, 피해자 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게까지 큰 피해를 준다. 실제로 괴롭힘 가해자의 65%가 범죄를 저지르며 그 중 40%가 재범 이상의 전과자가 된다. 피해자는 공포·불안·고립감 등에 시달리면서 자존감, 자아효능감 등에 심각한 상처를 받고, 심한 경우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기도 한다. 심지어 가해자나 피해자가 아닌 학생들 역시 폭력 상황에 대해 스트레스를 느끼며, 자기들도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고통 받는다. 게다가 괴롭힘은 그 강도가 약하거나 어른들 눈에 그저 친구 간에 장난치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또 괴롭힘 가해자는 일진회처럼 눈에 두드러지는 비행청소년인 경우가 드물다. 오히려 교사들에게는 모범생으로 알려진 학생이 가해자인 경우도 많다. 따라서 언론이 선정적으로 취급하는 두드러지는 폭력이 아니라 우리 청소년들을 좀먹는 이런 숨은 폭력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폭력의 강도가 강해져서 이미 범죄의 영역에 들어선 고등학교보다 폭력이 시작되는 중학교에 주목해야 한다.


4. 학교 폭력의 원인은 매우 복잡하다: 가해자 일벌백계는 별무소용 


그럼 이런 학교 폭력은 왜 일어날까? 여기에 대해서는 크게 1) 가해자에게 가해의 원인이 있다(가해자 귀인), 2)피해자에게 폭력을 유발한 원인이 있다(피해자 귀인), 3)학교 폭력이 일어나게끔 만드는 사회적 원인이 있다(사회적 귀인) 등 세 가지 설명이 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설명 중 어느 것도 학교폭력을 완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학교폭력은 이 세 가지 요인이 한 테 엉켜서 발생하는 복잡한 현상이다. 그런데 학교폭력을 다루는 보수 언론들은 이구동성 가해자들을 질타한다. 그리고 상담, 치료, 엄벌, 사법처리 등을 통해 이들을 교정하거나 배제해야 하는데, 그걸 ‘인권조례’가 가로막고 있다며 개탄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한 마디로 가해자들보다 더 강한 힘으로 이들을 제압하고 본때를 보이자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폭력의 원인을 살펴보면 그게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는 일임을 알게 된다. 


학교 폭력의 원인이 되는 가해자 특성은 단지 “나쁜 녀석”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다. 가해자들은 타고나기를 냉담한 기질로 태어났을 수 있다. 또 문화·예술적 경험이 부족하거나 어릴 때부터 잘못 형성된 성격으로 인해 감정적 공감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다. 열악한 가정환경, 어린 시절 폭력 피해 경험, 학업 스트레스 등도 학교 폭력의 가해자가 되게 만드는 다양한 원인들이다. 또 일탈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높은 긴장상태가 각종 폭력적 일탈행동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 이때 청소년들의 긴장상태를 높이는 중요한 원인들은 경쟁의 격화, 커뮤니티 등 각종 사회적 자본의 파괴, 그리고 가정에서 특히 부모에 의한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상호작용 등이다. 이런 것들이 가해자가 책임질 수 있는 것들인가? 오히려 2008년 이후 갈수록 격심해지는 사회 전반적인 경쟁풍토와 거기서 비롯되는 긴장감의 고조에 책임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무리 가해자의 특징을 두루 갖춘 학생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쉽사리 용인되고 정당화 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갖춰지지 않으면 쉽게 폭력을 행사할 수 없다. 사소한 폭력도 용납되지 않는 사회분위기와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분위기가 학교 폭력에 주는 영향은 매우 다르다. 다름과 차이에 대해 관용하지 않는 학교나 사회의 풍토, 위계서열·폭력의 규범이 지배하는 경직되고 권위적인 사회 분위기 등은 없는 가해자도 만들어낼 정도로 중대한 학교폭력의 원인이다. 보수언론의 기대와는 달리 진보교육감 지역 보다는 대구, 경북 지역에서 끔찍한 학교폭력이나 교사폭행 등의 사건이 더 빈번하게 일어나는 까닭도 어쩌면 이 지역이 관용이 부족하고, 위계서열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팽배해서가 아닐까 조심스레 진단해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진회만 적발해내면 학교폭력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하다. 다른 변인들이 멀쩡히 살아있다면 일진의 제거는 새로운 일진의 탄생 외에는 아무것도 바꾸어 놓지 못할 것이다. 


학교의 모든 구성원이 학교폭력의 가해자다 


가해자 적발 위주의 학교폭력 대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부분의 학생들과 어른들에게 자신들은 학교폭력과 관계없다는 면죄부를 준다는 것이다. 실제 학교폭력 가해자는 5% 내외, 피해자는 8% 내외다. 그렇다면 85%의 학생들이 국외자인 셈인데, 과연 이들은 아무 책임도 없는 것일까? 살미발리는 학교 폭력은 가해자-피해자 간 문제가 아니라 학급, 학교, 경우에 따라 지역사회까지 함께 움직이는 복잡한 집단 현상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런 단순한 견해를 반박했다. 


모든 학생들은 학교 폭력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한다. 가해자를 도와서 함께 가담하는 조력자, 선동적인 청중 노릇을 하는 강화자, 그리고 모른척 하는 방관자, 피해자를 돕는 방어자가 그들이다. 방어자를 제외하면 누구나 크건 작건 학교폭력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학교폭력 가해자들은 대체로 동조자와 방관자들이 많아서 자신이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여겨지면 폭력의 강도와 지속기간을 늘리는 경향이 있다. 애초에 학교폭력 가해 자체가 권력 과시를 위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똘마니와 응원부대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방관자는 비록 직접 가담하지는 않으나 폭력이 일어나고 있음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조함으로써 가해자가 지지받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즉 침묵을 지키는 것 자체가 이미 인정하는 것이다. 게다가 대체로 학교 폭력이 장기간 지속되면 방관자들은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고 보고 가해자쪽으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반면 피해자를 도와서 가해를 막거나 피해자를 사후에라도 도와주는 방어자의 수가 동조자보다 많아지면 가해자가 집단의 압력을 받아 가해행위를 쉽게 하지 못한다. 이른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총인 눈총”의 위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폭력 예방의 열쇠는 가해자를 적발해 내거나 제압하는 것에 있지 않고, 가해자의 편을 줄이고 피해자의 편을 늘리는데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대상이 방관자다. 어떻게 방관자를 방어자로 돌려세우는가가 학교폭력 예방의 열쇠인 것이다. 이때 방관자들을 피해자에게 돌려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타인의 상태·정서를 마치 자신의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공감 능력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것은 학교폭력보다 몇배, 아니 몇십배 우리 청소년들을 더 괴롭히는 학업성적, 진로, 그리고 경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일이다. 물론 학교 폭력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중요한 일이며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심각한 고통의 원인은 외면하고 기껏 몇몇 일진들에게 학교가 불행한 이유를 전가하는 행위야 말로 또 다른 폭력이며 기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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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25.

일제고사 폐지 투쟁 의지를 꺾어버리는 전교조 위원장의 지침

일제고사는 해마다 교사들의 자긍심을 무참하게 짓밟는 일제고사가 다가왔다. 그나마 서울은 진보교육감 지역이라 학기초의 진단평가와 학년 말의 1,2학년 일제고사는 째고 있었지만 1학기말의 일제고사는 명색이 법이라니 어쩔 도리가 없다. 교육감과 교육청은 공공기관이니 그렇다 치고, 그럼 아이들과 직접 마주대하는 교사로서 나는 또 그 하루 얼마나 자괴감에 빠져야 하나?

2008년, 일제고사 첫 해에는 시험 감독을 해태하고, 서술형 문항 채점을 거부하고, 억지로 채점을 맡기자 아무렇게나 엉터리 채점을 함으로써 내 의사를 표현했다가 하마트면 크게 징계를 먹을 뻔 했다. 학부모의 응시 여부 결정권을 안내했다고 일곱명이나 해직시킨 정권이니 나 같은 행위는 소름끼치는 보복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일곱명이 해직되고나서 일제고사에 대해서는 꼼짝마 침묵모드가 되었다. 이런 상황보다 비참한 상황은 없다. 그렇게 2009년도, 2010년도 치욕스럽게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공정택이 물러나고 곽노현 교육감이 들어섰다. 하지만 교육감이 할 수  있는 것은 해임, 파면의 위험을 막아주는 것 까지다. 공정택 같으면 해임, 파면 시킬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곽노현이라 한들 딱히 더 해줄 것도 없는 것이다. 곽노현은 교육감이지 전교조 위원장이 아니다. 일단 저지르는 것은 전교조가 해야 하며, 교육감은 그 이후 디펜스를 해주는게 맞는 그림이다.

그런데 전교조에서는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검은 리본달기 이런거 말고는. 내 절친들은 이때만큼 전교조라는 것이 쪽팔린적이 없다고 한탄했다. 이때 조합원 게시판에서 이런 글을 봤다.

"일제고사 폐지를 향한 우리들의 간절함을 희망의 ‘연가’로 모아봅시다! 일제고사 폐지의 수레를 돌게 할 새로운 힘을 함께 만들어봅시다! 함께하실 동지들은 아래로 댓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7월 12일 교과부 앞 10시에 만납시다! 서울, 인천, 경기 동지들! 교과부 앞에서 만나요!"


또 연가투쟁? 아니다. 이건 전교조의 연가투쟁이 아니라 아무 지위도 없는 평조합원이 답답한 나머지 개인적으로 게시판에 연가투쟁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한 글이었다. 더구나 그 글을 쓴 사람은 일제고사 관련하여 해직되었다가 얼마 전에 복직된 교사였다. 아마, 그 글을 보고 참담함을 느낀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2008년에야 어찌 하다보니 일곱명이 고립되고 말았지만, 그들을 또 고립시킬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연가 낼 겨를이 없어 교감에게 전화 걸어서 "나는 도저히 일제고사 시험감독을 할 수 없다. 그건 정말 견딜 수 없다. 오늘 학교 가지 않겠다"라고 통보 한뒤, 사실상 무단 결근을 하고 덮어놓고 교과부 앞으로 갔다.
비가 폭포같이 쏟아지는 날에 교과부 앞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전교조의 이름이 아니라 그냥 게시판 보고 모인 사람들. 그들 중 상당수는 나하고 사이가 좀 험악했던 정파 사람들이었지만, 그 날은 그런 것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나마 전교조 서울지부장과 사무국장이 참석했다. 전교조 본부는 아무런 연락도 기별도 없었다. 그렇게 폭우 속에서 2011년 일제고사에 대한 항의가 3시간 가까이 계속되었다. 그 날 저녁, 감기로 앓아 누웠다.

그리고 2012년, 다시 일제고사가 다가오자 교사들이 후끈 달아 올랐다. 인증샷이 올라오고, 곳곳에서 현수막과 1인시위가 벌어졌다. 나도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인 키보드를 이용해서 강하게 일제고사를 두드렸다. 정책연구팀의 일원으로서 "일제고사=낡은평가방식" 프레임을 세우고 PISA 2015를 끌어들여서 일제고사에게 사정없이 얼레리 꼴레리를 날렸다. 이건 꽤 효과적인 펀치였던 모양이다. 일제고사는 완전히 구석으로 몰려버렸다.

아, 그런데 본부가 나선다. 2009년에는 허락없이 모험적인 투쟁을 했다면서 해직교사들을 꾸짖었던 전교조 본부, 2011년에는 아무 말 없이 고요히 즉흥적으로 모여든 동지들을 폭우속에서 생쇼하게 냅두었던 전교조 본부가 마침내 각하가 물러날때 쯤 되어서야 투쟁의 전면에 나선다. 그런데, 나서는 건 나서는데 그 태도가 몹시 고약하다. 이미 조합원들이 먼저 나서서 싸우고 있는데 느닷없이 나타나서 "싸움을 명한다."라며 고압적으로 지시한다. 꼭 공부하고 있는데 와서는 공부하라고 지시하는 꼰대 모양새다. 기가 막히다. 갑자기 하던 싸움도 멈추고 싶어진다. 느닷없이 뒷북치며 다가온 전교조 위원장님께서 하달하신 "명령"을 여기 게시한다. 너무 기가 막힌 명문이라 이건 다 같이 공유해야 한다.

정말 이놈의 지침이 "모든 조합원"이란 말 대신 "우리 전교조는" 이런 식으로 위원장을 포함한 우리로 표현되기만 했어도 이렇게 화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도 빠짐없이 너희는 위원장의 지침을 받아라"식의 명령문을 받고 나니 낙담이 천만이다. 이런 고압적인 지시문은 교육감한테서도 들어본적 없는 문장들이다.



          6월 26일 조합원 행동 지침 (위원장 지침 3호)
 2012. 6. 25. 전교조 위원장 장석웅
 
▣ 모든 조합원은 2013년을 일제고사 폐지 ․ 농산어촌교육지원특별법제정의 해로 만들기 위해 각자의 처지와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 투쟁한다. 


1. 모든 조합원은 6월 26일 검은 옷 입기, 일제고사 반대 표지판 책상 부착 등 학교별로 자발적으로 결의한 방식대로 일제고사 폐지와 학교통폐합 반대 의사를 표명한다. 


2. 모든 조합원은 6월 26일 퇴근 후 교육과학기술부, 시․도교육청에 집결하여 일제고사 폐지 ․ 농산어촌학교통폐합 저지 투쟁 결의대회에 참여한다. 


3. 일제고사 실시 당일 민원제출투쟁에 참여하는 조합원은 교육과학기술부, 시․도교육청에 조합원들의 연서명을 받은 민원서류를 제출한다.


4. 모든 조합원은 출근 시간 전 학교 앞, 교육청 앞 등에서 일제고사 폐지 ․ 농산어촌 학교 통폐합 반대 일인시위 참여 및 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 


 5. 모든 조합원은 일제고사로 인한 교육과정 파행 사례와 농산어촌 교육 소외 실태를 고발하고 일제고사 폐지 ․ 농산어촌 학교통폐합 반대 의사를 담은 민원서류에 연서명 방식으로 참여한다. 


6. 모든 조합원은 민원제출투쟁과 관련하여 교육과학기술부의 징계 움직임이 있을 경우 이를 총력 저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고사는 폐지되어야 하니, 어쨌든 교과부 앞으로 갈 것이다. 전교조 위원장의 명을 받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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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경제위기 해설(2): 통화는 합쳤는데, 정부는 그대로.


지난 포스팅에서 유럽의 경제위기가 우파에서 말하는 것 처럼 복지 지출로 흥청망청 한 탓도 아니며, 좌파가 말하는 것처럼 시장개방, 세계화 등 때문도 아니며, 오히려 블랙홀처럼 독일로 돈이 빨려드는 국제수지 불균형 때문임을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어째서 이런 불균형이 십년째 계속되는가 알아볼 차례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독일 상품의 경쟁력이다. 실제로 독일 제조업의 경쟁력은 막강하다. 벤츠, BMV같은 고급품 뿐 아니라 의외로 소소한 생활용품들까지도 독일제품이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노트북 배낭 하나를 봐도 독일 제품은 세심하고 실용적인 배려와 과학적이면서도 미적인 디자인을 발휘하며, 무엇보다도 놀랄만큼 저렴하다. 그러니 주방용품, 거실용품, 학용품, 가방 등 경공업에서부터 각종 고급, 첨단, 정밀기기, 자동차, 기계 등등 할 것 없이 밀려드는 독일제품을 막아내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머나 먼 우리나라에서도 Made in Germany라는 마크는 즉시 품질보증으로 통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유럽의 경우는 이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최근 10년 사이에 갑자기 독일은 흑자 누적, 다른 나라는 적자 누적의 불균형이 일어났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유로화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유로화 이전에도 독일 제품들이 유럽의 다른 나라, 특히 남유럽 나라들로 물밀듯이 밀려드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들 나라에서 독일 제품을 구입하려면 화폐통합 이전이기 때문에 반드시 독일 화폐인 "마르크"로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는 독일제품을 사기 위해 각각 드라크마,  페소, 리라를 팔아서 마르크화(DM)를 구입해야 한다. 


그 다음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온 유럽 나라들이 마르크화를 사겠다고 나서면 결국 수요 공급의 법칙에 따라 마르크화의 가치는 높아지며,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 화폐 가치는 떨어진다. 에컨대 이탈리아에서 1마르크를 600리라에 바꾸었는데, 이제는 800리라에 바꾸어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독일이 이탈리아에 600리라에 팔던 물건을 800리라에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독일이 이탈리아와의 무역에서 흑자를 많이 보면 볼수록 독일 제품의 이탈리아에서의 가격경쟁력은 점점 떨어지게 된다. 이게 왼쪽 그래프와 같은 상황이다. 검은 선은 마르크화의 가치, 붉은 선은 독일 상품의 경쟁력이다. 이렇게 되면 서서히 이탈리아인들은 독일 제품이 너무 비싸다고 여겨서 덜 구입하게 되며, 독일의 흑자도 줄어들면서 균형을 찾아간다.


그런데 유로화로 유럽의 모든 화폐가 통합되면서 상황이 이상해졌다. 독일과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모두 같은 화폐를 쓰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탈리아는 독일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독일 화폐를 살 필요 없이 그냥 가지고 있는 돈을 지불하면 된다. 따라서 독일이 아무리 이탈리아에 물건을 많이 팔고 흑자를 보더라도 독일과 이탈리아가 같은 화폐를 사용하기 때문에 유로의 환율은 변하지 않는다.  독일에서 2유로에 팔던 물건은 이탈리아에서도 2유로다. 더 비싸지지 않는다. 만약 3유로로 값이 올라야 되는 상황이라면 유럽 어디에서나 다 같이 3유로일테니 가격 경쟁력과는 관계 없다. 독일은 이제 수출을 아무리 해도, 흑자를 아무리 보아도 제품의 가격경쟁력도 바뀌지 않는 꿈같은 상황을 맞이했다. 그 결과 독일은 그리스, 이탈리아 등등의 산업 능력이 독일을 추월하지 않는 한 사실상 영원히 흑자를 볼수 있게 된 것이다(그리고 이들이 독일을 추월할 가능성은 내 살아 생전에는 없을 것 같다). 이는 이탈리아 등등의 화폐가 끝없이 독일로 빨려들어간다는 뜻이다. 이는 아일랜드, 포루투갈, 스페인, 그리스도 마찬가지다.

다시 정리해 보자. 유로화가 탄생하기 전에는 상황이 이랬다. 그리스를 예로 들어보자. 그리스는 계속 적자, 독일은 계속 흑자를 보면 마르크화의 값이 오른다. 즉 독일 제품의 드라크마 표시 가격이 올라갈수 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그리스 제품의 마르크 표시가격은 싸진다. 따라서 그리스인들은 독일 제품을 더이상 구입하지 않으려 하고, 독일인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드라크마를 이용하여 그리스 상품을 구입하거나 관광을 가서 돈을 쓸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독일의 흑자는 줄어들고 그리스의 적자는 메워진다.

그래도 그리스의 빈 구멍이 메워지지 않고, 적자로 경기가 침체될 경우 그리스는 드라크마의 통화량을 늘려서 경기를 부양할 수 있다. 드라크마의 기준 금리나 지급준비율을 낮추는 것이다. 드라크마의 금리가 낮아지면 개인이든 기관이든 간에 보유하고 있는 드라크마화 예금을 해지하고 이를 금리가 더 높은 다른 나라 화폐로 바꾸어 갈 것이다. 따라서 시중의 드라크마화가 늘어나면서 경기가 긍정적인 자극을 받는다. 각국이 저마다 자국 화폐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통화정책의 결정권은 각국 정부에게 있다. 

그런데 유로화가 탄생한 다음에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같은 화폐를 사용하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독일의 흑자는 커져만 가고, 독일 제품의 가격 경쟁력도 그대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독일은 유로존 안에서만 흑자를 보지 않는다. 미국 등에도 수출을 한다. 따라서 달러대비 유로화의 가치는 높게 유지가 되며, 이는 이탈리아, 그리스 등 다른 나라가 비 유럽권에 자국 상품을 수출하거나 유럽권 외의 관광객을 유치하는데도 악영향을 미친다. 독일 관광객들 역시 과거처럼 상대적으로 저렴한 리라, 드라크마화를 쓰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국에서 쓰던 유로화를 쓰기 때문에 이탈리아나 그리스에 관광을 가서도 짠돌이 관광객이 된다.


이리하여 그리스, 이탈리아 등은 경기 침체에 시달리게 되는데, 독일과 같은 화폐를 사용하기 때문에 통화량을 늘리는 통화정책을 사용할 수도 없다. 드라크마를 찍어낼 권리는 그리스에 있었지만, 유로화를 찍어낼 권리는 유로방크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형식적으로는 유로존 회원국들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의사결정을 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큰 물주인 독일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러니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



실업률이 5% 정도로 견조한 상황인데다,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홀로 독야청청 견조하게 경제성장을 유지하고 있는 독일이 유로화를 늘려서 경기를 부양하자고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니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할 수 없게 된 그리스, 이탈리아 등등은 재정정책을 통해, 즉 국채를 발행하여 경기를 부양 혹은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적자의 근원이다. 무슨 복지 퍼주기 하느라 재정적자를 본 것이 아니란 뜻이다. 
빚을 내어 분수에 안 맞는 삶을 산 것이 아니라 빚이 아니면 유지되기 어려운 처지에 내몰렸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들이 빚을 내야 하는 상대방은 독일일수 밖에 없다. 결국 독일 때문에 적자가 누적되고, 독일 때문에 통화량을 늘리지 못한 이들 나라는 모자라는 통화량을 독일에게 빌려서 메워야 한다. 이때 큰 역할을 한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독일에게는 절대 꿀릴수 없다" 주의를  견지해왔다. 그러다 보니 세계에서 깐깐하고 짜기로 유명한 독일에게 힘들게 돈을 빌리느라 지친 이들 나라들에게 훨씬 너그럽고 후한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었다. 문제는 프랑스가 독일에게 꿀리기 싫어서 폼은 잡았지만, 실상은 그렇게 넉넉한 상황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프랑스조차 서서히 국고가 바닥나고 있다. 그런데 만약 그리스나 스페인 등이 파산하기라도 하면 무리해서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프랑스도 같이 훅 가는 상황이다.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프랑스 우파정부는 국가의 자존심을 크게 내세웠지만, 좌파정부가 들어서자 이내 "체면이 밥먹여주냐?"모드로 변경하였다. 


이제 프랑스마저 돈 빌려주긴 커녕 파산할까봐 걱정인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들 나라들의 빈 구멍은 뭘로 메워야 한단 말인가? 이제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은 이구동성 "유로본드"를 말한다. 즉 유럽의 이름으로 채권을 발행하여 이 구멍을 메우자는 것이다. 유럽의 이름으로 돈을 빌려서 그리스 등등의 빚을 갚아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독일을 제외한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거덜난 상황에서 "유로 본드"는 이름만 그렇지 사실상 "독일 본드"다. 그러니 독일이 거덜난 나라들에게 돈을 빌려주되, 독일 이름이 아니라 유럽 이름으로 빌려주라는 것이다. 
아마 여러분이 독일 입장이라도 이걸 받아들이긴 어려울 것이다. 순 어거지 아닌가? 하지만 문제는 그리스, 이탈리아, 그리고 더 나아가 프랑스 등이 무너지면 유로화가 붕괴된다는 것이다. 유로화가 붕괴된다는 것은 모든 자산을 유로화로 표시하고 있는 독일의 부 역시 순식간에 반토막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도 당연히 이런 상황을 잘 안다. 이 모든 상황은 결국 화폐는 유로화로 통합했으나 경제 단위는 여전히 기존의 국가단위로 운영된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독일의 이름으로, 혹은 프랑스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유럽의 이름으로 이 사태를 봉인하는 것이 맞기는 맞다. 
예를 들어 크게 가뭄이 들어 농촌이 많은 호남지역의 경제가 파탄났다고 하자.그래서 정부가 대규모 국채를 발행하여 호남지역에 엄청난 자금지원을 한다고 하자. 이때 서울시민들이 "어째서 정부는 우리가 힘들여 일해 번 돈으로 게으른 전라도 사람들에게 퍼 붓는가?"라고 시위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서울이든, 전라도든 모두 하나의 경제로 이미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어떤 지역에 대규모 지원을 할 경우 사실상 서울의 돈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집행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불평하는 서울시민은 거의 없다.  지금 유럽나라들이 독일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독일이 잔뜩 벌어들인 돈을 독일의 돈이 아니라 유럽의 돈이라고 생각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독일 국민들은 이걸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 그들은 아직 독일인이라고 생각하지 이탈리아, 스페인인들과 더불어 유럽인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태는 유럽은 화폐만 하나로 통합된 상태이지, 각 지역에 해당되는 국가들은 정치든 경제든 통합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결국 통합의 이득은 하나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각국은 독자적인 통화정책의 사용 가능성만 막히고, 환율을 통한 국제수지의 균형기능마저 봉쇄된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도로 각국 화폐로 되돌아가던가, 아니면 화폐 수준의 통합을 더 진전시켜 유럽 전체의 공동의 경제권을 만드는 것 뿐이다.  하지만 이게 과연 쉬울까? 지금 유럽은 바로 이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도대체 유럽은 왜 유로화로 화폐를 통합했을까? 그리고 이미 많은 경제학자들이 유로화 생기면 유럽 경제가 독일 블랙홀에 다 빨려먹힌다고 경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덴마크와 영국을 제외한 나라 국민들은 무슨 생각에서 유로화에 대해 찬성 국민투표 했을까?(To be continued)




2012. 6. 21.

유럽 경제위기: 복지 때문도, 경제 개방 때문도 아님

요즘 유럽에서 온 세계에 암울한 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그리스, 아일랜드, 포루투갈, 스페인에 이어 이제는 이탈리아, 즉 G7급 까지 흔들거리고 있다. 듣자 하니 프랑스도 상태가 간당간당하다고 한다. 이를 보고 보수진영은 신났다. "거 봐라, 복지 대망, 거봐라 포풀리즘 쪽박"이라며 박수를 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현재 흔들거리고 있는 나라들이 유럽에서 복지 투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나라이며, 이 상황에서도 오히려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독일과 북유럽 나라들은 복지 투자 비율이 매우 높은 나라라는 것은 슬그머니 감추고 있다.


그러니 여기서 또 사회수업을 좀 해야겠다. 


실업율만으로 그 나라 경기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지만, 아직까지 실업율을 능가하는 경기선행지표는 딱히 나와 있지 않다. 그러니 실업율을 가지고 일단 그 나라의 경제 상황을 판단해 보도록 하자. 지금 난리가 난 스페인과 그리스, 포루투갈, 아일랜드순으로 높다. 반면핀란드,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는 낮다. 특히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는 거의 완전고용 수준이다. 이들에게 유로존의 경제위기는 남의 일이거나 불똥이 튀는 것 정도로 보일 정도다. 그런데 이들 나라들은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보다 흔히 말하는 유럽형 모델에 더 충실한 나라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음 자료는 GDP 대비 복지비율이다. 거의 실업률 순위의 역순으로 나타난다. 실업율이 낮았던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핀란드 등이 복지비율이 높은 나라들이다. 반면 지금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아일랜드, 포루투갈, 스페인은 이들보다 복지비율이 한참 떨어지는 것으로 나온다. 그리스만이 복지투자 비율이 비교적 높은편이다. 지금 자꾸 그리스가 뉴스의 초점이 되는데, 그리스에 자꾸 국한되서 재정적자의 문제에 매몰되면 이것이 유로존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자꾸 놓치게 된다. 오히려 그리스보다 훨씬 덩어리가 큰 아일랜드,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를 봐야 한다. 그리스와 스페인은 상대적으로 복지비율이 높고, 스페인과 아일랜드는 복지비율이 낮다. 따라서 둘을 합치면 0이란 말이다. 복지 포퓰리즘으로는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아주 바닥이다. 복지 포퓰리즘을 경계한다 운운의 말이 나오는게 신기하고 민망할 수준이다.

물론 복지비율이 높을수록 경기가 활성화된다라고 말할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복지 때문에 나라 망했다 등의 주장은 성립되기 어렵다. 복지와 경제위기의 어떠한 직접 관계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 결과를 스캐터 플롯으로 그려본다면 아마 타원형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 다음으로 주로 좌파쪽의 주장을 보자. 이들은 흔히 시장화, 개방화, 세계화에 대한 비판의 일환으로 유로존의 위기를 논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발달 수준이 미진한 나라들이 겁없이 강대국과 자유무역을 하면 결국 독일에게 뼈만 남기고 다 빨려먹고 펀더멘탈도 취약해져서 금융 투기세력에게 휘둘린다는 것이다. 물론 금융투기세력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주로 아일랜드와 스페인의 문제이고, 그 마저도 외국 금융투기세력 보다는 자기들 스스로 부동산 거품을 키우다가 터뜨린 면이 강하다.

게다가 폴 그루그먼이 지적한대로 유럽 국가들 간의 시장개방의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주장은 성립되기 어렵다. 유럽지역의 무역이 자유화되고 개방된 것은 1967년 브뤼셀 조약까지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독일이 다른 유럽국가들과의 무역을 통해 엄청난 흑자를 누적한 역사는 2000년 이후에야 시작된다. 그 전에는 흑자와 적자를 반복하며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 이후에는 독일은 계속 흑자가 누적되고 다른 국가, 특히 PIGS는 적자가 계속되는 국면이 전개되게 된 것이다. 
 심지어 무역의 결과 독일로 돈이 쏠리는 현상은 비교적 같은 G7 국가인 영국, 프랑스와 비교해도 예외가 아니다. 유럽 모든 나라들의 무역수지가 하향평준화 되면서 독일만 욱일 승천이다.


그렇다면 원인은 시장개방 그 자체가 아니라 2000년 이후에 도입된 어떤 다른 변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눈치가 빠른 사람은 알아 챘을 것이다. 그것은 유로화의 도입이다. 폴 그루그먼은 유로화가 생기기도 전인 1996년에 유럽이 단일 통화를 만들면 독일과의 무역 불균형 때문에 조만간 경을 치고 독일마저 난처해 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역시 노벨상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크루그먼은 왜 유로화의 도입이 독일과의 무역불균형을 심화시키고, 결국 독일 이외의 나라들을 파산상태로 몰고 갈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to be continued... 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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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19.

자축. 제 블로그가 70만 뷰를 돌파했습니다

와, 어느덧 저의 내용없는 블로그가 700,000 뷰를 돌파했습니다. 무심코 통계 열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2011년 2월부터 사실상 활동을 시작했으니까 15개월 만이네요. 그 동안 30만 뷰가 누적되어 있던 꽤 번화한 이글루스를 떠나서 광활하고 인적 드물던 블로거닷컴으로 이주한 실험이 성공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루 50명 방문도 어려웠고, 손님유치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는데, SNS연동 기능이 생기면서 확장성과 개방성이라는 구글 서비스의 장점이 빛을 발했습니다. 사실상 2011년 5월 이후부터 독자들이 유치되기 시작되었고, 이후 한달 평균 4만뷰, 하루 평균 1200뷰를 꾸준히 기록해 온 셈입니다. 결국 메이저인 이글루스에서 2년간 이룩한 실적을 한산한 무인도 블로거에서 1년만에 두배로 넘겼습니다.
이 보잘것 없는 블로그를 찾아주신 여러 독자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최근 여기 저기 기고하는데가 많아지고, 특히 '미디어 오늘' 칼럼과 소재가 겹치는 관계로 이 창고 포스팅이 예전보다 뜸해진 점 사과드립니다. 이제 교통정리 마쳤으니 다시 폭풍 포스팅 하겠습니다.

가자! 100만 고지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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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17.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의 기억: 반북주의의 원흉은 북한 자신이다

요즘 종북, 반북 논란이 요란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수도 진보도 서로 입조심하는 묘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보수쪽에서는 조금이라도 북한에게 온정적인 모습을 보이면, 심지어 온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에게 온정적인 모습을 보이면 종북으로 낙인찍힐까봐 두려워한다. 진보쪽에서는 조금이라도 북한에게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면, 아니 종북주의자들에게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면 수꼴로 몰릴까봐 조심한다. 사상적 계엄이 따로 없다.

하지만 정작 시민들의 반응은 매우 차갑고 냉정한것 같다. 애초에 많은 시민들이 통진당 사태에 분노했던 것은 1) 이렇게 허술하고 엉성한 경선으로 후보를 선출했다는 것, 2) 그렇게 선출된 후보들이 빠득 빠득 안 물러나겠다고 버티는 것, 3) 그 과정에서 때거리로 몰려나와 당대표를 폭행하는 등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집단행동을 하는 것, 4) 이 과정에서 국민보다 당원을, 당원보다 자파 당원을 우선시 하는 종파주의적 행태를 보인 것이지 친북이니 종북이니 하는 것 때문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시민들은 이제 북한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소위 진보가 주장하는 통일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고, 보수가 주장하는 남침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통일의 경우는 실제로 우리가 얻을 실익이 거의 없고, 북한과의 공통점 보다는 차이를 더 분명하게 느끼고 있으며, 북한 정권이 절대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사실상 북한의 현재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한, 한반도의 통일은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 외에는 답이 없다. 북은 이미 소위 적화통일을 할 의지도 힘도 상실한 상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보수진영이 국민들을 두렵게 만들기 위해 퍼뜨리는 남침위협에 대해서도 시민들은 관심이 없다. 북한이 남침을 할 경우 그 귀결은 오히려 북의 궤멸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 과정에서 서울에 최소 5000발의 장사정 포와 각종 스커드 미사일이 날아온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잃을것이 없는 북한과 잃을 것이 많은 남한의 차이이다. 따라서 시민들이 남북 대결국면을 싫어하고 햇볕 정책을 지지한다 해도 그것은 북한을 좋아하거나 혹은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단지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그럴 뿐이다.

하지만 2002년만 해도 북한에 대해서 이렇게 냉정하지 않았다. 2002년 월드컵 직후 불타올랐던 민족주의는 그대로 남북화합 분위기를 조성했고, 그 과정에서 하일라이트를 이루었던 것이 바로 부산 아시안 게임이었다. 이때 남북 선수단 동시입장, 그리고 날마다 사진 공세를 받았던 이른바 북한의 미녀응원단 열풍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미 이때 식자층을 중심으로 남과 북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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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청년을 보면서 "민족은 순결해야 한다. 조선민족은 순결하다. 저런 머리는 안된다."라고 말하는 여성의 모습은 지금 다시 보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같은 공산권 우방국인 쿠바 대사를 "어디 깜둥이가 더럽게 조선을 드나드냐?"며 집단 구타한 대형사고를 친 그들의 그 편협한 민족주의가 아직도 그대로임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그냥 애교로 넘어갔다. 또 유난히 민족주의 정서가 강한 한국인들은 오히려 그런 말을 교훈으로 듣기까지 했다. 노친네들이 "그 말이 맞지. 거 머리 꼴이 그게 뭐냐?" 이럴 정도였으니. 그리고 교과서에서 받은 반공교육 처럼 북한이 그런 억압체제는 아니고, 단지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다소 올드 패션드 국가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시안게임 기간 내내 내숭떨며 본색을 잘 감추던 미녀응원단이 갑자기 폭발한 것이다. 이른바 김정일 현수막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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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에서는 이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보는 모양인데, 이 사건은 아주 결정적이다. 교과서에서 배운 반공교육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 스스로 증명시켜준 사건이다. 완전히 이성을 상실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저들의 모습과 통진당 폭력사태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당대표 머리끄덩이를 잡아 당기던 소위 청년당원들의 모습을 중첩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 열풍은 싹 식어버렸다. 6.15 정신? 그딴거는 자폐증 걸린 진보우파들끼리나 축하하는 그런 것이 되었다. 일반 시민들은 북한이 어떤 체제인지 적나라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저런 체제로는 절대 통일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저런 체제를 가진 사람들과 단지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굳혔다. 우리가 저들 같아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저 정도 광신도들을 합리적 민주시민으로 개조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민족주의와 통일염원(? 오, 난 이게 싫다)이 절정에 다다른 순간에 북한 스스로 그 불길에 찬물을 냅다 뿌린 셈이 된다. 나는 저 응원단이 우연히 저런 행동을 했다고 보지 않는다. 찬물을 끼얹을 필요가 있었으니 했을 것이다. 김정일은 통일 열기가 정말로 일어나는 것은 바라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남측에는 미국놈들이 삥을 뜯고, 괴뢰정부가 북침을 호시탐탐 노리니, 백성보다 군대가 우선시되는 것을 참고 견디라는 선군정치를 정당화해야 하지 않겠나? 평화무드, 이건 말도 안된다. 정권에 위협이 된다.

진보진영은 여기에 대해 대답을 해 주었어야 했으나, 아무도 책임있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 우리는 같은 민족" 담론은 사실상 수명을 다했으며, 이후 어떤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6.15 선언과 비교하면 완전히 싸늘하게 식어버린 1004 선언에 대한 반응을 보라. 더구나 6.15 선언을 북한에서는 "김대중이 사회주의를 포기하라고 협박하러 왔으나 김정일에게 감복하고 설득하여 도리어 6.15 선언에 서명했다."는 식으로 선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일반 국민은 몰라도 노대통령은 알았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 역시 북에 대해 큰 애착이나 흥미를 버렸다.
영화 '코리아'에 대해서도 '공동구역 JSA'와는 자뭇 공감의 정도가 다르다. 아니 이 영화는 그만 공감을 얻어내지 못하고 말았다. 2002년에 젊은이들이 외쳤던 구호는 태극기, 애국가와 함께 어우러진 "대한민국"이었지 "한민족"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에서 그 방계이자 가난한 형제인 북한을 동정했던 것이지 동경한다거나 최소한 동등하게 본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북한에 마취된 운동권들은 그만 이런 정서를 오판했다.

이는 미군장갑차 사건의 의미를 오독한데서도 드러난다. 당시 젊은이들이 분노하며 촛불을 들었던 배경에는 대한민국의 국력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이들은 대한민국이 찌질한 시대가 아니라 이미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시대에 자라난 세대다. 이들이 분노한 대상은 미국이 아니라 미국에게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찌질한 어른들, 찌질한 고위직들, 정치가들 이었다. 이들은 대한민국이 미국의 식민지라서 분노한 것이 아니라(사실 어디를 둘러봐도 식민지의 증거는 찾을 수 없다), 미군이 있어서 분노한 것이 아니라, 식민지도 아니면서 왜 굽신대냐는 분노, 그리고 왜 미군에게 정당한 땅값을 받아내지 못하며, 그들을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규제하지 못하느냐에 대한 분노였다. 따라서 이 촛불행렬을 "반미, 주한미군 철수"로 유도하려던 선동은 촛불집회 현장에서 거센 반발에 부딪치며 실패하고 말았다.

이런 오판은 4.11 총선에서 강정마을에 대한 개입 방향 미스에서도 드러났다. 강정마을 문제에 대해 분노한 젊은층은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환경, 자연, 생태의 가치를 무시하는 해군의 처사에 대한 것이었지, 거기에 미군이 들어온다 만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그럼 강정마을에 미군이 들어오지만 않으면 해군기지를 지어도 된다는 말인가? 하지만 강정마을 문제에 개입한 운동권들은 이런 방향 미스를 저질렀고, 이후 강정마을에 대한 개입은 통진당, 민통당의 득표를 깎아먹은 원인이 되었다.

이건 좀 과잉해석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2002년에 정점에 올랐던 NL식 운동 담론은 그 정점의 순간에 사망했다. 만약 그 담론이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북한을 딛고 갔어야 했지만 그러하지 못했다. 여기에 북한 핵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은 결정타를 때렸다. 천안함 때만 해도 이명박 정부가 북풍 조장을 하려고 조작하고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북한은 직접 포를 갈기면서 빼도박도 못할 증거를 만들어주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과거 진보였던 활동가들은 이러한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걸 받아들이고 다시 시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냐, 아니면 갈수록 숫자는 줄어들지만 "순결성"은 높아지는 동창회, 더 나아가 옴진리교로 생명을 마감할 것이냐는 그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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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12.

혁신학교를 부동산 마케팅과 적의 마수에서 구한 경기도 교육청의 대응

내가 며칠 전에 인터넷 신문 '미디어 오늘'에  혁신학교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기사보기) 라는 기사를 썼더니, 그것 때문에 경기도 교육운동가들로부터 많은 항의전화를 받았다. 교육운동가들의 전화는 되도록 받았지만 교육청 관료들의 전화는 받지 않았다. 아마 서울교육청에도 항의전화가 들어갔는지 곽노현 교육감의 보좌관이 기사의 전말을 물어보기도 했다.

전말이랄것이 뭐가 있겠나? 여기 저기서 혁신학교 때문에 아파트 전세값이 올라가면서 강남 8학군 신화가 무너진다는 기사들이 나왔고 이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을 뿐이다. 만약 혁신학교가 강남 8학군으로 몰리던 수요를 대신 받아먹는 학교라면 그건 결코 진보적인 학교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사들은 한결같이 경기도 지역의 혁신학교를 예로 들면서 혁신학교 덕분에 지역 부동산 경기가 살아 날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기사를 보고 우쭐대는 혁신학교 관계자들을 보았다. 심지어 이걸 가지고 김상곤이 이주호에게 승리한 증거라고 말하는 사례까지 있다고 했다. 물론 사실이 아닐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이건 좋은 흐름이 아니다. 혁신학교와 아파트값을 연결짓는 흐름에 말려드는 것은 적들이 쳐놓은 그물에 빨려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얼토당토 않는 말을 지껄이는 토건 언론에게 엄중하게 항의한 것이며, 경기도 교육청에게도 엄중히 항의할 것을 촉구했다. 그런데 그게 기분나쁘다고 느껴진 혁신학교 관계자가 있다면, 아마 그들은 토건족과 동맹이거나 한패일 것이다.

이 얼토당토 않는 혁신학교=부동산 기사의 근원지를 추적하다보니 결국 여기에 도달하였다. 다른 신문사의 혁신학교 부동산 기사들이 주로 5월자인데 이 신문사의 해당 기사는 1월자, 월등히 앞선 선구자다. 그 신문은 어디일까? 당연히 조선일보다. (조선일보 기사보기). 우리는 조선일보가 대단히 정치적인 신문임을 안다. 그리고 혁신학교 역시 단지 학교가 아니라 대단히 정치적인 소재임을 안다. 저들이 혁신학교를 무너뜨리고 싶어서 안달나 있음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저 기사는 절대 좋은 마음으로 쓴 것이 아니며, 의도가 있어서 쓴 것이리라. 이건 물타기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평소 서울교육에만 몰두하다 교육기사를 넓게 모니터 하지 못한 내 잘못도 크다. 하지만 이렇게 뒷북이라도 때리는 것이 우리 나라에 몇 안되는 진보교육논객의 임무일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 이런 종류의 혁신학교 부동산 광풍에 대해 문제제기가 없었던 것이 사실 더 신기하다.

다행히도 경기도 교육청은 자신들의 혁신학교를 부동산 투기에 연결시키고, 혁신학교 지구를 강남 8학군에 등치시키는 수구토건세력들의 음모에 즉각 대응했다. 내 기사가 나가고 하루만에 교육청 대변인을 통해 언론사들에게 항의 한 것이다. 혁신학교가 집값 상승 요인? 경기도 교육청 당혹 기사 보기. 늦었지만 문제가 발견된 즉시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경기도교육청은 진보교육으로서 혁신학교의 상을 움켜쥐고 있다고 인정할 수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매우 불편할 수 있는 나의 칼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빨리 대응해 준 김상곤 교육감과 경기도 교육청 학교혁신 일꾼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여기에 남긴다.

그런데, 경기도의 혁신학교에서 혁신부장을 하고 있는 나의 지인은, 나의 그런 글이 제대로 된 혁신학교를 하려는 많은 경기도 진보교육자들의 상처를 주었다고 한다. 특히 "경기도 교육청은 혁신학교의 의미를 다시 성찰하기 바라며"라는 문구가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혁신학교는 혁신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 동안 우리 혁신학교들은 "달라져야 한다"는 강박에 너무 달려온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심지어 무엇을 왜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교육학적 성찰조차 충분하지 않은채 그저 내달린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그러니 지금은 반성의 시간이다. 경기도 뿐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다른 교육청들의 혁신학교들도 모두 성찰하고, 혁신학교를 혁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혁신학교라는 말이 거의 보편화되다시피한 지금 이 시점이야 말로 그동안의 혁신학교 운동을 돌아보고 비판해볼 시점이 아닐까?

그 지인은 사토 마나부의 배움의 공동체를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토 마나부도 그러지 않았는가? 배움의 공동체가 상처없이 이룰 수 없음을. 교사들이 많이 깨지고 울고 괴로워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하지 않았나? 그리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전문가로서의 새로운 즐거움의 길에 들어선다고. 말단 관료, 공무원이 아니라.

이런 점에서 경기도의 교육운동가가 쓴 이 시론을 참고할만하다. 교육시론: 대학입시와 혁신학교. 실제로 혁신학교 학부모 설명회에서 "새로운 입시명문이 될 것이다." 이런식의 자랑질까지 한다는 전언을 들으면 억장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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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8.

지금 전교조 처지가 참 딱하다. 하지만 조중동은김칫국 마시지 마라. 난 니들 편 아니다.

요즘 전교조를 보면 참 기가 막힌다. 본부 집행부는 거의 무기력 상태에 빠져있다. 정진후 의원 하나 만드는데 올인한 듯한 모양세로, 거기에 모든 희망을 걸었던 모양인데, 정진후 의원이 당권파와 비대위 사이에서 애매한 기회주의적 행보를 하면서 정치력을 상실하자 개점 휴업이 되었다.
애초에 전교조 본부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민주노총에서 통진당 당권파를 강하게 비판했을때, "총연맹 방침에 따라" 그 정도 수준의 입장 표명이라도 했어야 했지만, 이쪽 저쪽 눈치 보다 시간만 다 보냈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일제고사 반대 조퇴투쟁을 하자고 한다.

평소 열심히 싸우던 집행부면 그러나보다 하겠는데, 411 총선 하나만 믿고 1년간 소나기는 피하고보자 식으로 존재감 없던 집행부가 갑자기 투쟁하자고 하니 오글거리기까지 한다. 지난 2년간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것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그 책임이 딱히 위원장과 집행부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이른바 전교조 활동가들 모두가 걸머 쥐어야 할 책임이다. 지난 10년간 신자유주의 세력에게 교육의제를 철저히 선점당한채 질질 끌려다닌 전교조 활동가들 모두의 책임이다. 나 역시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최근 몇년간 따를 당한 상황이라 그나마 좀 덜 무겁다.

특히 전교조의 정책통 대접을 받으며 온갖 토론회나 발표회에서 발제를 도맡아서 한 몇몇 활동가들은 매우 엄중한 책임과 심지어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 의제를 선점당한 1차 책임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의제를 선점당한 가장 큰 원인이 "공부를 안해서"임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활동가들이 유력 활동가 행세를 할 수 있었던 전교조 및 각종 진보운동권 단체들의 풍토와 문화에서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꼈던 사람들도 모두 책임을 무겁게 지어야 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나와 환경을 서로 바꾸어 나가는 대사작용이다. 이 과정은 학습한다는 뜻이며 즉 학습=삶인 것이다. 그러니 학습하지 않는 조직, 변화하는 상황에 빨리 적응하고 새로운 것을 창발해내지 않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며, 그런 조직에서 한 자리씩 해 먹으면서 아무 문제점을 못느끼고 편안한 사람들도 모두 죽은 사람들이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전교조는 도저히 살아있다고 볼 수가 없다. 외부는 커녕 내부 조합원들에게서 나오는 창발적 아이디어조차 수용할 수 없는, 뉴런 가닥이 다 끊어진 조직이 되어 있다. 게다가 노동부 장관이 서명만 하면 그 즉시 불법노조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있기도 하다. 뉴런 가닥을 다 끊어 놓은 것도, 불법노조의 위기에 처하게 만든 것도 다 이 거대한 조직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어하는 운동권 과두주의자들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을 비판하지 못하고, 비판한다 한들 그들에게 들리지도 않는다. 이런 조직으로 무슨 참교육을 하고, 무슨 세상을 바꾸는 운동을 하겠는가?

밤은 깊어가고 시름도 깊어간다. 그러고 보니 최근 한 달 사이 그리스와 유럽 위기때문에 내 자산이 천만원 이상 줄어들고, 솔로몬 은행에 몇천만원짜리 정기예금 꼴아박혀서 연봉 수준의 돈이 먼지처럼 사라졌지만 그걸 걱정해 본적이 없다는 것이 신기하다. 4.11~ 5.4로 이어지는 진보진영의 무너지는 신기루를 보며 어떻게 낡은 살을 도려내면서도 가치는 지킬 수 있을 것인가를 걱정했을 뿐이다.

문득 요란하게 전교조를 탈퇴했던 김대유 선생 생각이 난다. 김대유 선생의 전교조 탈퇴는 조선일보에 의해 대서특필된 바 있다. 변절자다 뭐다 욕을 엄청 많이 먹었지만 그래도 귀담아 들을 말이 꽤 있었다.  나도 그 무렵 전교조에 계속 있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가카가 전교조를 이유없이 탄압하는 바람에 도리어 더 굳세게 남고 말았다. 따져 보니 나도 전교조에서 김대유 선생과 같은 직책을 맡았었으니 조중동이 그냥 둘리 없지 않은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8/12/2009081200978.html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05/2009090500065.html

어찌 생각하면 이게 가카의 꼼수였는지도 모르겠다. 식물 상태가 된 전교조를 계속 연명시킴으로써 새로운 그리고 한결 위협적인 교육운동이 자라나지 못하게 하려는. 지금 상황은 전교조라는 낡고 병든 나무가 화분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새싹이 자라지 못하는, 그렇다고 낡은 나무에게서 꽃이나 열매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애초에 나는 2006년부터 전교조는 몰락하거나 적어도 교육운동을 선도하는 위치에서는 밀려날거라고 보았다. 그래서 전교조가 몰락하더라도 진보적인 교육운동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구명정, 더 나아가 새로운 배를 건조하는 것을 꿈꾸었었다. 하지만 나는 배를 만들지 못했고, 타고 있는 배는 침몰하고 있다. 구명정은 있을까 과연? 하지만 구명정을 찾기 전에 먼저 조타실로 가서 배를 잘못 조종한 선장과 항해사들의 뺨이라도 한 대씩 때려주고 싶다. 도대체 목적지가 어딘지, 항해의 목적이 뭔지도 모른채 그때 그때 나오는 장애물을 피하는 식으로 배를 몰고가다 망망대해 한 가운데서 길을 잃어버린 것들이 아직도 권위주의는 남아서 명령조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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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3.

통합진보당 논란의 핵심은 이석기, 김재연의 사퇴가 아니다

 한겨레에서 이석기, 김재연 의원은 선진상규명 후 책임 밝혀지면 사퇴와 즉각 사퇴를 놓고 여론 조사를 했더니 선진상규명 찬성자가 조금 더 많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는데, 그 기사가 내려졌다고 물의라는 미디어 오늘 기사가 나왔다(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891).

그런데 대학에서 사회조사방법론을 강의했던 입장에서 이 조사는 잘못된 조사이며, 그 기사는 내려가는 것이 옳다. 사회조사방법론에서 설문 문항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전문적인 영역이다. 설문 문항은 단지 앙케이트 조사가 아니며, 측정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하고 정밀하게 반영해야 한다. 만약 어떤 사회적 쟁점에 대해 여론을 묻고자 한다면, 그 쟁점이 정확하게 문항에 반영되어야 한다.

이 문항의 경우 다음 두 가지 중 무엇을 알고자 하는 것인지 모호하다.

1.당권파의 주장과 혁신비대위의 주장 중 어느쪽이 그럴듯한가?
2. 이석기 김재연은 사퇴해야 하는가?

기자는 변명하기를 사실은 1을 물어 본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내려진 기사는 2에 대해 과반수가 반대한다는 식의 뉘앙스를 실어놓고 있었다. 그러니 이 기사는 내려가는게 당연했다. 게다가 이 문항은 이 둘을 섞어서 하나의 문항으로 만들어버렸다. 이걸 사회조사방법론에서는 쌍렬식 문항이라고 부르는데, 만약 학부생이 이 따위 설문문항을 제출했다면 나는 당장 F를 매겼을 것이다.

이걸 한 번 따져보자.사실 이석기, 김재연의 사퇴 여부에 대해서는 세 가지 주장이 있을 수 있다.

1. 사퇴 불가, 2. 책임을 더 밝힌 뒤 사퇴, 3. 즉각 사퇴

만약 이렇게 물었을 경우 각 15% 40% 45% 이렇게 응답이 나왔다면, 이것을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즉각사퇴에 반대여론 이 55%라고 기사를 쓸 수도 있고,  85%가 사퇴 찬성이라고도 기사를 쓸 수 있다. 하지만 통상 가운데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응답특성상 이렇게 셋을 나열하면 2번에 가장 많은 응답자가 몰리게 된다. 이 문항은 바로 이 속성을 은근히 이용한 것이다. 사실 여론조사는 이런식으로 속성을 은근히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가장 많은 응답자가 대답할 가능성이 큰 2번을 만든 다음 양 극단 중 한 편인 "사퇴불가"라는 한쪽 극단만 삭제한 뒤 두개만 물어 본 것이다. 이렇게 즉각 사퇴라는 극단적인 응답과 진상규명후 사퇴라는 다소 온정적인 응답이 나란히 제시될 경우 어느쪽으로 응답이 몰릴지는 매우 명약관화하다.'진상규명후 사퇴'라고 응답한 사람들 중에는 '진상규명이 안 되었으니 사퇴 불가'라는 생각을 가진 응답자와 '사퇴 하기는 해야 하지만...'이란 생각을 가진 응답자가 뒤섞이게 된다. 즉 '사퇴해서는 안된다'는 응답과 '사퇴하긴 해야 한다'라는 응답이 한 문항에 같이 응답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1. 사퇴불가 2. 사퇴 이렇게만 물어보았으면 당연히 2번이 압도적으로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교묘하게 1. 사퇴불가를 제거하고 2. 사퇴를 다시 1. 진상규명후 사퇴, 2. 즉각사퇴로 나누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응답할 칸이 없어진 사퇴불가론자들도 1. 진상규명후 사퇴 에 응답할 것이고 사퇴론자들 중 일부가 갈라져 나가서 진상규명에 방점을 찍게 될테니 당권파에 대한 여론 압박이 훨씬 누그러진 것 처럼 표현하는 것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물어 볼 경우에는 이미 어느 쪽으로 응답이 쏠릴 것을 예상하고 유도했다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또한 1번의 경우 사퇴할 수 없다는 것을 묻는 것인지, 진상규명을 더 해야 한다는 것을 묻는 것인지도 애매하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이번 조사위원회의 경선부실 조사결과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미리 예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설문이 의미를 가지려면,

1. 이 조사결과의 신뢰성과 무관하게 사퇴해선 안된다.
2. 이 조사결과를 믿을 수 없으니 다시 조사한 뒤 사퇴결정해야 한다.
3. 이 조사결과를 믿을 수 있으니 사퇴해야 한다.
4. 이 조사결과의 신뢰성과 무관하게 사퇴해야 한다.

이렇게 네 문항이 나와야 한다. 즉 조준호 대표의 조사결과의 신뢰성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에 대한 판단을 응답자에게 맡겨야 한다. 그런데 대뜸 "진상규명을 먼저 한 뒤 사퇴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렇게 물어버리면 마치 혁신비대위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서 무작정 사퇴를 요구하는 것처럼 응답자를 오도하기 십상이다. 이러고서도 응답을 유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기자는 상당히 뻔뻔하다. 그 기사를 내린 데스크의 판단은 매우 적실하다고 보인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식의 기사는 통진당 사태와 관련하여 논란의 핵심을 자꾸 놓치게 만든다는 것이다. 통진당 경선 논란의 핵심은 이석기, 김재연의 사퇴 여부가 아니다. 통진당 경선의 문제는 부정이라기 보다는 부실이다. 즉 누군가의 책임을 강하게 물을 수 있는 부정이 아니라 누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온갖 지저분한 악재들이 주렁주렁 발생한 부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게임은 누군가가 반칙패, 다른쪽이 반칙승을 하는 상황이 아니라 승자도 패자도 없이 그냥 노게임이 선언되는 상황이다.

지금 누구도 이석기, 김재연에게 부실경선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지 않다. 다만 경선이 부실한 만큼 경선 승리자, 패배자 가릴 것 없이 모두 물러나자는 것이다. 이미 11명의 비례후보들이 사퇴했다. 즉 김재연, 이석기가 물러나더라도 그 자리를 승계하지 않겠음을 명확하게 밝혀 놓았다. 승패를 매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김재연, 이석기는 부실경선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경선자체가 무효가 되었기 때문에 다른 후보들과 함께 물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상한 여론조사는 마치 김재연과 이석기에게 부실경선 책임이 없으면 물러나지 않아도 된다는 교묘한 논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특정한 응답으로 응답자가 몰리게 만드는 트릭 뿐 아니라 그 결과를 교묘하게 호도하는 트릭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교묘한 트릭들을 남들은 읽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한겨레 데스크가 바보가 아니었던 것이며, 또한 독자들도 바보가 아니었던 것이다.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새로운 시대의 교육과 교육운동의 길을 찾아 출항합니다

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연히 학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