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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경제위기 해설(2): 통화는 합쳤는데, 정부는 그대로.


지난 포스팅에서 유럽의 경제위기가 우파에서 말하는 것 처럼 복지 지출로 흥청망청 한 탓도 아니며, 좌파가 말하는 것처럼 시장개방, 세계화 등 때문도 아니며, 오히려 블랙홀처럼 독일로 돈이 빨려드는 국제수지 불균형 때문임을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어째서 이런 불균형이 십년째 계속되는가 알아볼 차례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독일 상품의 경쟁력이다. 실제로 독일 제조업의 경쟁력은 막강하다. 벤츠, BMV같은 고급품 뿐 아니라 의외로 소소한 생활용품들까지도 독일제품이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노트북 배낭 하나를 봐도 독일 제품은 세심하고 실용적인 배려와 과학적이면서도 미적인 디자인을 발휘하며, 무엇보다도 놀랄만큼 저렴하다. 그러니 주방용품, 거실용품, 학용품, 가방 등 경공업에서부터 각종 고급, 첨단, 정밀기기, 자동차, 기계 등등 할 것 없이 밀려드는 독일제품을 막아내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머나 먼 우리나라에서도 Made in Germany라는 마크는 즉시 품질보증으로 통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유럽의 경우는 이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최근 10년 사이에 갑자기 독일은 흑자 누적, 다른 나라는 적자 누적의 불균형이 일어났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유로화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유로화 이전에도 독일 제품들이 유럽의 다른 나라, 특히 남유럽 나라들로 물밀듯이 밀려드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들 나라에서 독일 제품을 구입하려면 화폐통합 이전이기 때문에 반드시 독일 화폐인 "마르크"로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는 독일제품을 사기 위해 각각 드라크마,  페소, 리라를 팔아서 마르크화(DM)를 구입해야 한다. 


그 다음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온 유럽 나라들이 마르크화를 사겠다고 나서면 결국 수요 공급의 법칙에 따라 마르크화의 가치는 높아지며,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 화폐 가치는 떨어진다. 에컨대 이탈리아에서 1마르크를 600리라에 바꾸었는데, 이제는 800리라에 바꾸어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독일이 이탈리아에 600리라에 팔던 물건을 800리라에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독일이 이탈리아와의 무역에서 흑자를 많이 보면 볼수록 독일 제품의 이탈리아에서의 가격경쟁력은 점점 떨어지게 된다. 이게 왼쪽 그래프와 같은 상황이다. 검은 선은 마르크화의 가치, 붉은 선은 독일 상품의 경쟁력이다. 이렇게 되면 서서히 이탈리아인들은 독일 제품이 너무 비싸다고 여겨서 덜 구입하게 되며, 독일의 흑자도 줄어들면서 균형을 찾아간다.


그런데 유로화로 유럽의 모든 화폐가 통합되면서 상황이 이상해졌다. 독일과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모두 같은 화폐를 쓰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탈리아는 독일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독일 화폐를 살 필요 없이 그냥 가지고 있는 돈을 지불하면 된다. 따라서 독일이 아무리 이탈리아에 물건을 많이 팔고 흑자를 보더라도 독일과 이탈리아가 같은 화폐를 사용하기 때문에 유로의 환율은 변하지 않는다.  독일에서 2유로에 팔던 물건은 이탈리아에서도 2유로다. 더 비싸지지 않는다. 만약 3유로로 값이 올라야 되는 상황이라면 유럽 어디에서나 다 같이 3유로일테니 가격 경쟁력과는 관계 없다. 독일은 이제 수출을 아무리 해도, 흑자를 아무리 보아도 제품의 가격경쟁력도 바뀌지 않는 꿈같은 상황을 맞이했다. 그 결과 독일은 그리스, 이탈리아 등등의 산업 능력이 독일을 추월하지 않는 한 사실상 영원히 흑자를 볼수 있게 된 것이다(그리고 이들이 독일을 추월할 가능성은 내 살아 생전에는 없을 것 같다). 이는 이탈리아 등등의 화폐가 끝없이 독일로 빨려들어간다는 뜻이다. 이는 아일랜드, 포루투갈, 스페인, 그리스도 마찬가지다.

다시 정리해 보자. 유로화가 탄생하기 전에는 상황이 이랬다. 그리스를 예로 들어보자. 그리스는 계속 적자, 독일은 계속 흑자를 보면 마르크화의 값이 오른다. 즉 독일 제품의 드라크마 표시 가격이 올라갈수 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그리스 제품의 마르크 표시가격은 싸진다. 따라서 그리스인들은 독일 제품을 더이상 구입하지 않으려 하고, 독일인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드라크마를 이용하여 그리스 상품을 구입하거나 관광을 가서 돈을 쓸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독일의 흑자는 줄어들고 그리스의 적자는 메워진다.

그래도 그리스의 빈 구멍이 메워지지 않고, 적자로 경기가 침체될 경우 그리스는 드라크마의 통화량을 늘려서 경기를 부양할 수 있다. 드라크마의 기준 금리나 지급준비율을 낮추는 것이다. 드라크마의 금리가 낮아지면 개인이든 기관이든 간에 보유하고 있는 드라크마화 예금을 해지하고 이를 금리가 더 높은 다른 나라 화폐로 바꾸어 갈 것이다. 따라서 시중의 드라크마화가 늘어나면서 경기가 긍정적인 자극을 받는다. 각국이 저마다 자국 화폐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통화정책의 결정권은 각국 정부에게 있다. 

그런데 유로화가 탄생한 다음에는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같은 화폐를 사용하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독일의 흑자는 커져만 가고, 독일 제품의 가격 경쟁력도 그대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독일은 유로존 안에서만 흑자를 보지 않는다. 미국 등에도 수출을 한다. 따라서 달러대비 유로화의 가치는 높게 유지가 되며, 이는 이탈리아, 그리스 등 다른 나라가 비 유럽권에 자국 상품을 수출하거나 유럽권 외의 관광객을 유치하는데도 악영향을 미친다. 독일 관광객들 역시 과거처럼 상대적으로 저렴한 리라, 드라크마화를 쓰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국에서 쓰던 유로화를 쓰기 때문에 이탈리아나 그리스에 관광을 가서도 짠돌이 관광객이 된다.


이리하여 그리스, 이탈리아 등은 경기 침체에 시달리게 되는데, 독일과 같은 화폐를 사용하기 때문에 통화량을 늘리는 통화정책을 사용할 수도 없다. 드라크마를 찍어낼 권리는 그리스에 있었지만, 유로화를 찍어낼 권리는 유로방크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형식적으로는 유로존 회원국들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의사결정을 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큰 물주인 독일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러니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



실업률이 5% 정도로 견조한 상황인데다,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홀로 독야청청 견조하게 경제성장을 유지하고 있는 독일이 유로화를 늘려서 경기를 부양하자고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니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할 수 없게 된 그리스, 이탈리아 등등은 재정정책을 통해, 즉 국채를 발행하여 경기를 부양 혹은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적자의 근원이다. 무슨 복지 퍼주기 하느라 재정적자를 본 것이 아니란 뜻이다. 
빚을 내어 분수에 안 맞는 삶을 산 것이 아니라 빚이 아니면 유지되기 어려운 처지에 내몰렸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들이 빚을 내야 하는 상대방은 독일일수 밖에 없다. 결국 독일 때문에 적자가 누적되고, 독일 때문에 통화량을 늘리지 못한 이들 나라는 모자라는 통화량을 독일에게 빌려서 메워야 한다. 이때 큰 역할을 한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독일에게는 절대 꿀릴수 없다" 주의를  견지해왔다. 그러다 보니 세계에서 깐깐하고 짜기로 유명한 독일에게 힘들게 돈을 빌리느라 지친 이들 나라들에게 훨씬 너그럽고 후한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었다. 문제는 프랑스가 독일에게 꿀리기 싫어서 폼은 잡았지만, 실상은 그렇게 넉넉한 상황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프랑스조차 서서히 국고가 바닥나고 있다. 그런데 만약 그리스나 스페인 등이 파산하기라도 하면 무리해서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프랑스도 같이 훅 가는 상황이다.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프랑스 우파정부는 국가의 자존심을 크게 내세웠지만, 좌파정부가 들어서자 이내 "체면이 밥먹여주냐?"모드로 변경하였다. 


이제 프랑스마저 돈 빌려주긴 커녕 파산할까봐 걱정인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들 나라들의 빈 구멍은 뭘로 메워야 한단 말인가? 이제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은 이구동성 "유로본드"를 말한다. 즉 유럽의 이름으로 채권을 발행하여 이 구멍을 메우자는 것이다. 유럽의 이름으로 돈을 빌려서 그리스 등등의 빚을 갚아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독일을 제외한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거덜난 상황에서 "유로 본드"는 이름만 그렇지 사실상 "독일 본드"다. 그러니 독일이 거덜난 나라들에게 돈을 빌려주되, 독일 이름이 아니라 유럽 이름으로 빌려주라는 것이다. 
아마 여러분이 독일 입장이라도 이걸 받아들이긴 어려울 것이다. 순 어거지 아닌가? 하지만 문제는 그리스, 이탈리아, 그리고 더 나아가 프랑스 등이 무너지면 유로화가 붕괴된다는 것이다. 유로화가 붕괴된다는 것은 모든 자산을 유로화로 표시하고 있는 독일의 부 역시 순식간에 반토막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도 당연히 이런 상황을 잘 안다. 이 모든 상황은 결국 화폐는 유로화로 통합했으나 경제 단위는 여전히 기존의 국가단위로 운영된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독일의 이름으로, 혹은 프랑스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유럽의 이름으로 이 사태를 봉인하는 것이 맞기는 맞다. 
예를 들어 크게 가뭄이 들어 농촌이 많은 호남지역의 경제가 파탄났다고 하자.그래서 정부가 대규모 국채를 발행하여 호남지역에 엄청난 자금지원을 한다고 하자. 이때 서울시민들이 "어째서 정부는 우리가 힘들여 일해 번 돈으로 게으른 전라도 사람들에게 퍼 붓는가?"라고 시위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서울이든, 전라도든 모두 하나의 경제로 이미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어떤 지역에 대규모 지원을 할 경우 사실상 서울의 돈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집행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불평하는 서울시민은 거의 없다.  지금 유럽나라들이 독일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독일이 잔뜩 벌어들인 돈을 독일의 돈이 아니라 유럽의 돈이라고 생각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독일 국민들은 이걸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 그들은 아직 독일인이라고 생각하지 이탈리아, 스페인인들과 더불어 유럽인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태는 유럽은 화폐만 하나로 통합된 상태이지, 각 지역에 해당되는 국가들은 정치든 경제든 통합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결국 통합의 이득은 하나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각국은 독자적인 통화정책의 사용 가능성만 막히고, 환율을 통한 국제수지의 균형기능마저 봉쇄된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도로 각국 화폐로 되돌아가던가, 아니면 화폐 수준의 통합을 더 진전시켜 유럽 전체의 공동의 경제권을 만드는 것 뿐이다.  하지만 이게 과연 쉬울까? 지금 유럽은 바로 이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도대체 유럽은 왜 유로화로 화폐를 통합했을까? 그리고 이미 많은 경제학자들이 유로화 생기면 유럽 경제가 독일 블랙홀에 다 빨려먹힌다고 경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덴마크와 영국을 제외한 나라 국민들은 무슨 생각에서 유로화에 대해 찬성 국민투표 했을까?(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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