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논란의 핵심은 이석기, 김재연의 사퇴가 아니다

 한겨레에서 이석기, 김재연 의원은 선진상규명 후 책임 밝혀지면 사퇴와 즉각 사퇴를 놓고 여론 조사를 했더니 선진상규명 찬성자가 조금 더 많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는데, 그 기사가 내려졌다고 물의라는 미디어 오늘 기사가 나왔다(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891).

그런데 대학에서 사회조사방법론을 강의했던 입장에서 이 조사는 잘못된 조사이며, 그 기사는 내려가는 것이 옳다. 사회조사방법론에서 설문 문항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전문적인 영역이다. 설문 문항은 단지 앙케이트 조사가 아니며, 측정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하고 정밀하게 반영해야 한다. 만약 어떤 사회적 쟁점에 대해 여론을 묻고자 한다면, 그 쟁점이 정확하게 문항에 반영되어야 한다.

이 문항의 경우 다음 두 가지 중 무엇을 알고자 하는 것인지 모호하다.

1.당권파의 주장과 혁신비대위의 주장 중 어느쪽이 그럴듯한가?
2. 이석기 김재연은 사퇴해야 하는가?

기자는 변명하기를 사실은 1을 물어 본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내려진 기사는 2에 대해 과반수가 반대한다는 식의 뉘앙스를 실어놓고 있었다. 그러니 이 기사는 내려가는게 당연했다. 게다가 이 문항은 이 둘을 섞어서 하나의 문항으로 만들어버렸다. 이걸 사회조사방법론에서는 쌍렬식 문항이라고 부르는데, 만약 학부생이 이 따위 설문문항을 제출했다면 나는 당장 F를 매겼을 것이다.

이걸 한 번 따져보자.사실 이석기, 김재연의 사퇴 여부에 대해서는 세 가지 주장이 있을 수 있다.

1. 사퇴 불가, 2. 책임을 더 밝힌 뒤 사퇴, 3. 즉각 사퇴

만약 이렇게 물었을 경우 각 15% 40% 45% 이렇게 응답이 나왔다면, 이것을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즉각사퇴에 반대여론 이 55%라고 기사를 쓸 수도 있고,  85%가 사퇴 찬성이라고도 기사를 쓸 수 있다. 하지만 통상 가운데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응답특성상 이렇게 셋을 나열하면 2번에 가장 많은 응답자가 몰리게 된다. 이 문항은 바로 이 속성을 은근히 이용한 것이다. 사실 여론조사는 이런식으로 속성을 은근히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가장 많은 응답자가 대답할 가능성이 큰 2번을 만든 다음 양 극단 중 한 편인 "사퇴불가"라는 한쪽 극단만 삭제한 뒤 두개만 물어 본 것이다. 이렇게 즉각 사퇴라는 극단적인 응답과 진상규명후 사퇴라는 다소 온정적인 응답이 나란히 제시될 경우 어느쪽으로 응답이 몰릴지는 매우 명약관화하다.'진상규명후 사퇴'라고 응답한 사람들 중에는 '진상규명이 안 되었으니 사퇴 불가'라는 생각을 가진 응답자와 '사퇴 하기는 해야 하지만...'이란 생각을 가진 응답자가 뒤섞이게 된다. 즉 '사퇴해서는 안된다'는 응답과 '사퇴하긴 해야 한다'라는 응답이 한 문항에 같이 응답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1. 사퇴불가 2. 사퇴 이렇게만 물어보았으면 당연히 2번이 압도적으로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교묘하게 1. 사퇴불가를 제거하고 2. 사퇴를 다시 1. 진상규명후 사퇴, 2. 즉각사퇴로 나누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응답할 칸이 없어진 사퇴불가론자들도 1. 진상규명후 사퇴 에 응답할 것이고 사퇴론자들 중 일부가 갈라져 나가서 진상규명에 방점을 찍게 될테니 당권파에 대한 여론 압박이 훨씬 누그러진 것 처럼 표현하는 것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물어 볼 경우에는 이미 어느 쪽으로 응답이 쏠릴 것을 예상하고 유도했다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또한 1번의 경우 사퇴할 수 없다는 것을 묻는 것인지, 진상규명을 더 해야 한다는 것을 묻는 것인지도 애매하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이번 조사위원회의 경선부실 조사결과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미리 예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설문이 의미를 가지려면,

1. 이 조사결과의 신뢰성과 무관하게 사퇴해선 안된다.
2. 이 조사결과를 믿을 수 없으니 다시 조사한 뒤 사퇴결정해야 한다.
3. 이 조사결과를 믿을 수 있으니 사퇴해야 한다.
4. 이 조사결과의 신뢰성과 무관하게 사퇴해야 한다.

이렇게 네 문항이 나와야 한다. 즉 조준호 대표의 조사결과의 신뢰성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에 대한 판단을 응답자에게 맡겨야 한다. 그런데 대뜸 "진상규명을 먼저 한 뒤 사퇴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렇게 물어버리면 마치 혁신비대위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서 무작정 사퇴를 요구하는 것처럼 응답자를 오도하기 십상이다. 이러고서도 응답을 유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기자는 상당히 뻔뻔하다. 그 기사를 내린 데스크의 판단은 매우 적실하다고 보인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식의 기사는 통진당 사태와 관련하여 논란의 핵심을 자꾸 놓치게 만든다는 것이다. 통진당 경선 논란의 핵심은 이석기, 김재연의 사퇴 여부가 아니다. 통진당 경선의 문제는 부정이라기 보다는 부실이다. 즉 누군가의 책임을 강하게 물을 수 있는 부정이 아니라 누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온갖 지저분한 악재들이 주렁주렁 발생한 부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게임은 누군가가 반칙패, 다른쪽이 반칙승을 하는 상황이 아니라 승자도 패자도 없이 그냥 노게임이 선언되는 상황이다.

지금 누구도 이석기, 김재연에게 부실경선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지 않다. 다만 경선이 부실한 만큼 경선 승리자, 패배자 가릴 것 없이 모두 물러나자는 것이다. 이미 11명의 비례후보들이 사퇴했다. 즉 김재연, 이석기가 물러나더라도 그 자리를 승계하지 않겠음을 명확하게 밝혀 놓았다. 승패를 매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김재연, 이석기는 부실경선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경선자체가 무효가 되었기 때문에 다른 후보들과 함께 물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상한 여론조사는 마치 김재연과 이석기에게 부실경선 책임이 없으면 물러나지 않아도 된다는 교묘한 논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특정한 응답으로 응답자가 몰리게 만드는 트릭 뿐 아니라 그 결과를 교묘하게 호도하는 트릭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교묘한 트릭들을 남들은 읽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한겨레 데스크가 바보가 아니었던 것이며, 또한 독자들도 바보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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