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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교조 처지가 참 딱하다. 하지만 조중동은김칫국 마시지 마라. 난 니들 편 아니다.

요즘 전교조를 보면 참 기가 막힌다. 본부 집행부는 거의 무기력 상태에 빠져있다. 정진후 의원 하나 만드는데 올인한 듯한 모양세로, 거기에 모든 희망을 걸었던 모양인데, 정진후 의원이 당권파와 비대위 사이에서 애매한 기회주의적 행보를 하면서 정치력을 상실하자 개점 휴업이 되었다.
애초에 전교조 본부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민주노총에서 통진당 당권파를 강하게 비판했을때, "총연맹 방침에 따라" 그 정도 수준의 입장 표명이라도 했어야 했지만, 이쪽 저쪽 눈치 보다 시간만 다 보냈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일제고사 반대 조퇴투쟁을 하자고 한다.

평소 열심히 싸우던 집행부면 그러나보다 하겠는데, 411 총선 하나만 믿고 1년간 소나기는 피하고보자 식으로 존재감 없던 집행부가 갑자기 투쟁하자고 하니 오글거리기까지 한다. 지난 2년간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것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그 책임이 딱히 위원장과 집행부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이른바 전교조 활동가들 모두가 걸머 쥐어야 할 책임이다. 지난 10년간 신자유주의 세력에게 교육의제를 철저히 선점당한채 질질 끌려다닌 전교조 활동가들 모두의 책임이다. 나 역시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최근 몇년간 따를 당한 상황이라 그나마 좀 덜 무겁다.

특히 전교조의 정책통 대접을 받으며 온갖 토론회나 발표회에서 발제를 도맡아서 한 몇몇 활동가들은 매우 엄중한 책임과 심지어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 의제를 선점당한 1차 책임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의제를 선점당한 가장 큰 원인이 "공부를 안해서"임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활동가들이 유력 활동가 행세를 할 수 있었던 전교조 및 각종 진보운동권 단체들의 풍토와 문화에서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꼈던 사람들도 모두 책임을 무겁게 지어야 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나와 환경을 서로 바꾸어 나가는 대사작용이다. 이 과정은 학습한다는 뜻이며 즉 학습=삶인 것이다. 그러니 학습하지 않는 조직, 변화하는 상황에 빨리 적응하고 새로운 것을 창발해내지 않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며, 그런 조직에서 한 자리씩 해 먹으면서 아무 문제점을 못느끼고 편안한 사람들도 모두 죽은 사람들이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전교조는 도저히 살아있다고 볼 수가 없다. 외부는 커녕 내부 조합원들에게서 나오는 창발적 아이디어조차 수용할 수 없는, 뉴런 가닥이 다 끊어진 조직이 되어 있다. 게다가 노동부 장관이 서명만 하면 그 즉시 불법노조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있기도 하다. 뉴런 가닥을 다 끊어 놓은 것도, 불법노조의 위기에 처하게 만든 것도 다 이 거대한 조직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어하는 운동권 과두주의자들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을 비판하지 못하고, 비판한다 한들 그들에게 들리지도 않는다. 이런 조직으로 무슨 참교육을 하고, 무슨 세상을 바꾸는 운동을 하겠는가?

밤은 깊어가고 시름도 깊어간다. 그러고 보니 최근 한 달 사이 그리스와 유럽 위기때문에 내 자산이 천만원 이상 줄어들고, 솔로몬 은행에 몇천만원짜리 정기예금 꼴아박혀서 연봉 수준의 돈이 먼지처럼 사라졌지만 그걸 걱정해 본적이 없다는 것이 신기하다. 4.11~ 5.4로 이어지는 진보진영의 무너지는 신기루를 보며 어떻게 낡은 살을 도려내면서도 가치는 지킬 수 있을 것인가를 걱정했을 뿐이다.

문득 요란하게 전교조를 탈퇴했던 김대유 선생 생각이 난다. 김대유 선생의 전교조 탈퇴는 조선일보에 의해 대서특필된 바 있다. 변절자다 뭐다 욕을 엄청 많이 먹었지만 그래도 귀담아 들을 말이 꽤 있었다.  나도 그 무렵 전교조에 계속 있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가카가 전교조를 이유없이 탄압하는 바람에 도리어 더 굳세게 남고 말았다. 따져 보니 나도 전교조에서 김대유 선생과 같은 직책을 맡았었으니 조중동이 그냥 둘리 없지 않은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8/12/2009081200978.html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05/2009090500065.html

어찌 생각하면 이게 가카의 꼼수였는지도 모르겠다. 식물 상태가 된 전교조를 계속 연명시킴으로써 새로운 그리고 한결 위협적인 교육운동이 자라나지 못하게 하려는. 지금 상황은 전교조라는 낡고 병든 나무가 화분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새싹이 자라지 못하는, 그렇다고 낡은 나무에게서 꽃이나 열매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애초에 나는 2006년부터 전교조는 몰락하거나 적어도 교육운동을 선도하는 위치에서는 밀려날거라고 보았다. 그래서 전교조가 몰락하더라도 진보적인 교육운동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구명정, 더 나아가 새로운 배를 건조하는 것을 꿈꾸었었다. 하지만 나는 배를 만들지 못했고, 타고 있는 배는 침몰하고 있다. 구명정은 있을까 과연? 하지만 구명정을 찾기 전에 먼저 조타실로 가서 배를 잘못 조종한 선장과 항해사들의 뺨이라도 한 대씩 때려주고 싶다. 도대체 목적지가 어딘지, 항해의 목적이 뭔지도 모른채 그때 그때 나오는 장애물을 피하는 식으로 배를 몰고가다 망망대해 한 가운데서 길을 잃어버린 것들이 아직도 권위주의는 남아서 명령조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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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