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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를 부동산 마케팅과 적의 마수에서 구한 경기도 교육청의 대응

내가 며칠 전에 인터넷 신문 '미디어 오늘'에  혁신학교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기사보기) 라는 기사를 썼더니, 그것 때문에 경기도 교육운동가들로부터 많은 항의전화를 받았다. 교육운동가들의 전화는 되도록 받았지만 교육청 관료들의 전화는 받지 않았다. 아마 서울교육청에도 항의전화가 들어갔는지 곽노현 교육감의 보좌관이 기사의 전말을 물어보기도 했다.

전말이랄것이 뭐가 있겠나? 여기 저기서 혁신학교 때문에 아파트 전세값이 올라가면서 강남 8학군 신화가 무너진다는 기사들이 나왔고 이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을 뿐이다. 만약 혁신학교가 강남 8학군으로 몰리던 수요를 대신 받아먹는 학교라면 그건 결코 진보적인 학교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사들은 한결같이 경기도 지역의 혁신학교를 예로 들면서 혁신학교 덕분에 지역 부동산 경기가 살아 날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기사를 보고 우쭐대는 혁신학교 관계자들을 보았다. 심지어 이걸 가지고 김상곤이 이주호에게 승리한 증거라고 말하는 사례까지 있다고 했다. 물론 사실이 아닐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이건 좋은 흐름이 아니다. 혁신학교와 아파트값을 연결짓는 흐름에 말려드는 것은 적들이 쳐놓은 그물에 빨려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얼토당토 않는 말을 지껄이는 토건 언론에게 엄중하게 항의한 것이며, 경기도 교육청에게도 엄중히 항의할 것을 촉구했다. 그런데 그게 기분나쁘다고 느껴진 혁신학교 관계자가 있다면, 아마 그들은 토건족과 동맹이거나 한패일 것이다.

이 얼토당토 않는 혁신학교=부동산 기사의 근원지를 추적하다보니 결국 여기에 도달하였다. 다른 신문사의 혁신학교 부동산 기사들이 주로 5월자인데 이 신문사의 해당 기사는 1월자, 월등히 앞선 선구자다. 그 신문은 어디일까? 당연히 조선일보다. (조선일보 기사보기). 우리는 조선일보가 대단히 정치적인 신문임을 안다. 그리고 혁신학교 역시 단지 학교가 아니라 대단히 정치적인 소재임을 안다. 저들이 혁신학교를 무너뜨리고 싶어서 안달나 있음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저 기사는 절대 좋은 마음으로 쓴 것이 아니며, 의도가 있어서 쓴 것이리라. 이건 물타기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평소 서울교육에만 몰두하다 교육기사를 넓게 모니터 하지 못한 내 잘못도 크다. 하지만 이렇게 뒷북이라도 때리는 것이 우리 나라에 몇 안되는 진보교육논객의 임무일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 이런 종류의 혁신학교 부동산 광풍에 대해 문제제기가 없었던 것이 사실 더 신기하다.

다행히도 경기도 교육청은 자신들의 혁신학교를 부동산 투기에 연결시키고, 혁신학교 지구를 강남 8학군에 등치시키는 수구토건세력들의 음모에 즉각 대응했다. 내 기사가 나가고 하루만에 교육청 대변인을 통해 언론사들에게 항의 한 것이다. 혁신학교가 집값 상승 요인? 경기도 교육청 당혹 기사 보기. 늦었지만 문제가 발견된 즉시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경기도교육청은 진보교육으로서 혁신학교의 상을 움켜쥐고 있다고 인정할 수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매우 불편할 수 있는 나의 칼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빨리 대응해 준 김상곤 교육감과 경기도 교육청 학교혁신 일꾼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여기에 남긴다.

그런데, 경기도의 혁신학교에서 혁신부장을 하고 있는 나의 지인은, 나의 그런 글이 제대로 된 혁신학교를 하려는 많은 경기도 진보교육자들의 상처를 주었다고 한다. 특히 "경기도 교육청은 혁신학교의 의미를 다시 성찰하기 바라며"라는 문구가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혁신학교는 혁신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 동안 우리 혁신학교들은 "달라져야 한다"는 강박에 너무 달려온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심지어 무엇을 왜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교육학적 성찰조차 충분하지 않은채 그저 내달린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그러니 지금은 반성의 시간이다. 경기도 뿐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다른 교육청들의 혁신학교들도 모두 성찰하고, 혁신학교를 혁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혁신학교라는 말이 거의 보편화되다시피한 지금 이 시점이야 말로 그동안의 혁신학교 운동을 돌아보고 비판해볼 시점이 아닐까?

그 지인은 사토 마나부의 배움의 공동체를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토 마나부도 그러지 않았는가? 배움의 공동체가 상처없이 이룰 수 없음을. 교사들이 많이 깨지고 울고 괴로워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하지 않았나? 그리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전문가로서의 새로운 즐거움의 길에 들어선다고. 말단 관료, 공무원이 아니라.

이런 점에서 경기도의 교육운동가가 쓴 이 시론을 참고할만하다. 교육시론: 대학입시와 혁신학교. 실제로 혁신학교 학부모 설명회에서 "새로운 입시명문이 될 것이다." 이런식의 자랑질까지 한다는 전언을 들으면 억장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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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