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 폐지 투쟁 의지를 꺾어버리는 전교조 위원장의 지침

일제고사는 해마다 교사들의 자긍심을 무참하게 짓밟는 일제고사가 다가왔다. 그나마 서울은 진보교육감 지역이라 학기초의 진단평가와 학년 말의 1,2학년 일제고사는 째고 있었지만 1학기말의 일제고사는 명색이 법이라니 어쩔 도리가 없다. 교육감과 교육청은 공공기관이니 그렇다 치고, 그럼 아이들과 직접 마주대하는 교사로서 나는 또 그 하루 얼마나 자괴감에 빠져야 하나?

2008년, 일제고사 첫 해에는 시험 감독을 해태하고, 서술형 문항 채점을 거부하고, 억지로 채점을 맡기자 아무렇게나 엉터리 채점을 함으로써 내 의사를 표현했다가 하마트면 크게 징계를 먹을 뻔 했다. 학부모의 응시 여부 결정권을 안내했다고 일곱명이나 해직시킨 정권이니 나 같은 행위는 소름끼치는 보복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일곱명이 해직되고나서 일제고사에 대해서는 꼼짝마 침묵모드가 되었다. 이런 상황보다 비참한 상황은 없다. 그렇게 2009년도, 2010년도 치욕스럽게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공정택이 물러나고 곽노현 교육감이 들어섰다. 하지만 교육감이 할 수  있는 것은 해임, 파면의 위험을 막아주는 것 까지다. 공정택 같으면 해임, 파면 시킬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곽노현이라 한들 딱히 더 해줄 것도 없는 것이다. 곽노현은 교육감이지 전교조 위원장이 아니다. 일단 저지르는 것은 전교조가 해야 하며, 교육감은 그 이후 디펜스를 해주는게 맞는 그림이다.

그런데 전교조에서는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검은 리본달기 이런거 말고는. 내 절친들은 이때만큼 전교조라는 것이 쪽팔린적이 없다고 한탄했다. 이때 조합원 게시판에서 이런 글을 봤다.

"일제고사 폐지를 향한 우리들의 간절함을 희망의 ‘연가’로 모아봅시다! 일제고사 폐지의 수레를 돌게 할 새로운 힘을 함께 만들어봅시다! 함께하실 동지들은 아래로 댓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7월 12일 교과부 앞 10시에 만납시다! 서울, 인천, 경기 동지들! 교과부 앞에서 만나요!"


또 연가투쟁? 아니다. 이건 전교조의 연가투쟁이 아니라 아무 지위도 없는 평조합원이 답답한 나머지 개인적으로 게시판에 연가투쟁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한 글이었다. 더구나 그 글을 쓴 사람은 일제고사 관련하여 해직되었다가 얼마 전에 복직된 교사였다. 아마, 그 글을 보고 참담함을 느낀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2008년에야 어찌 하다보니 일곱명이 고립되고 말았지만, 그들을 또 고립시킬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연가 낼 겨를이 없어 교감에게 전화 걸어서 "나는 도저히 일제고사 시험감독을 할 수 없다. 그건 정말 견딜 수 없다. 오늘 학교 가지 않겠다"라고 통보 한뒤, 사실상 무단 결근을 하고 덮어놓고 교과부 앞으로 갔다.
비가 폭포같이 쏟아지는 날에 교과부 앞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전교조의 이름이 아니라 그냥 게시판 보고 모인 사람들. 그들 중 상당수는 나하고 사이가 좀 험악했던 정파 사람들이었지만, 그 날은 그런 것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나마 전교조 서울지부장과 사무국장이 참석했다. 전교조 본부는 아무런 연락도 기별도 없었다. 그렇게 폭우 속에서 2011년 일제고사에 대한 항의가 3시간 가까이 계속되었다. 그 날 저녁, 감기로 앓아 누웠다.

그리고 2012년, 다시 일제고사가 다가오자 교사들이 후끈 달아 올랐다. 인증샷이 올라오고, 곳곳에서 현수막과 1인시위가 벌어졌다. 나도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인 키보드를 이용해서 강하게 일제고사를 두드렸다. 정책연구팀의 일원으로서 "일제고사=낡은평가방식" 프레임을 세우고 PISA 2015를 끌어들여서 일제고사에게 사정없이 얼레리 꼴레리를 날렸다. 이건 꽤 효과적인 펀치였던 모양이다. 일제고사는 완전히 구석으로 몰려버렸다.

아, 그런데 본부가 나선다. 2009년에는 허락없이 모험적인 투쟁을 했다면서 해직교사들을 꾸짖었던 전교조 본부, 2011년에는 아무 말 없이 고요히 즉흥적으로 모여든 동지들을 폭우속에서 생쇼하게 냅두었던 전교조 본부가 마침내 각하가 물러날때 쯤 되어서야 투쟁의 전면에 나선다. 그런데, 나서는 건 나서는데 그 태도가 몹시 고약하다. 이미 조합원들이 먼저 나서서 싸우고 있는데 느닷없이 나타나서 "싸움을 명한다."라며 고압적으로 지시한다. 꼭 공부하고 있는데 와서는 공부하라고 지시하는 꼰대 모양새다. 기가 막히다. 갑자기 하던 싸움도 멈추고 싶어진다. 느닷없이 뒷북치며 다가온 전교조 위원장님께서 하달하신 "명령"을 여기 게시한다. 너무 기가 막힌 명문이라 이건 다 같이 공유해야 한다.

정말 이놈의 지침이 "모든 조합원"이란 말 대신 "우리 전교조는" 이런 식으로 위원장을 포함한 우리로 표현되기만 했어도 이렇게 화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도 빠짐없이 너희는 위원장의 지침을 받아라"식의 명령문을 받고 나니 낙담이 천만이다. 이런 고압적인 지시문은 교육감한테서도 들어본적 없는 문장들이다.



          6월 26일 조합원 행동 지침 (위원장 지침 3호)
 2012. 6. 25. 전교조 위원장 장석웅
 
▣ 모든 조합원은 2013년을 일제고사 폐지 ․ 농산어촌교육지원특별법제정의 해로 만들기 위해 각자의 처지와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 투쟁한다. 


1. 모든 조합원은 6월 26일 검은 옷 입기, 일제고사 반대 표지판 책상 부착 등 학교별로 자발적으로 결의한 방식대로 일제고사 폐지와 학교통폐합 반대 의사를 표명한다. 


2. 모든 조합원은 6월 26일 퇴근 후 교육과학기술부, 시․도교육청에 집결하여 일제고사 폐지 ․ 농산어촌학교통폐합 저지 투쟁 결의대회에 참여한다. 


3. 일제고사 실시 당일 민원제출투쟁에 참여하는 조합원은 교육과학기술부, 시․도교육청에 조합원들의 연서명을 받은 민원서류를 제출한다.


4. 모든 조합원은 출근 시간 전 학교 앞, 교육청 앞 등에서 일제고사 폐지 ․ 농산어촌 학교 통폐합 반대 일인시위 참여 및 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 


 5. 모든 조합원은 일제고사로 인한 교육과정 파행 사례와 농산어촌 교육 소외 실태를 고발하고 일제고사 폐지 ․ 농산어촌 학교통폐합 반대 의사를 담은 민원서류에 연서명 방식으로 참여한다. 


6. 모든 조합원은 민원제출투쟁과 관련하여 교육과학기술부의 징계 움직임이 있을 경우 이를 총력 저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고사는 폐지되어야 하니, 어쨌든 교과부 앞으로 갈 것이다. 전교조 위원장의 명을 받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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