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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교사에게 드리는 편지 12. 교사가 되면 조심할 것들 1

젊은 벗들에게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편지를 쓰지 못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제가 교단을 떠나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 해직된것은 아니고요, 작년에는 연구 휴식년이었고, 올해는 교육연구정보원에서 근무합니다. 장학사 뭐 이런거 된거는 아니니까 금명간에 학교로 돌아가겠죠. 하지만 2년째 수업을 안하고 있으니 뭔가 허전하고, 교실이 무척 그립습니다.

교사가 되면 조심해야 할 것들 - 귀신들 


지금까지 교사라는 직업의 좋은 점을 이야기 했으니 이제부터는 조심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좀 말해볼까 합니다. 물론 교사는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더 많은 직업입니다. 특히 한국적 상황에서 공립학교 교사라는 직업은 단점은 거의 없고 장점은 무수히 많은 그런 직업에 속합니다. 번듯한 정규직 일자리가 10%나 될까말까한 상황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교사가 되고자 멀쩡히 다니던 직장까지 때려치우고 고시낭인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아마 교사직이 이렇게 선망의 대상인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 교무실의 풍경을 그려봅시다. 모두가 선망하는 그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교사들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아주 즐겁고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졸업앨범이나 이런것들을 펼쳐보면 선생님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딱딱하며 즐거움과 행복은 참으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제가 신규교사였던 시절 정말 놀랐던 것은 선배교사들은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불만이 너무 많아서 입만 열면 불만이며, 매사에 신경질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학생들 앞에서 거의 웃지 않았으며 늘 뭔가에 쫓기고 있으며, 행복과는 늘 거리가 먼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끔 지금도 학교를 방문해 보면 그런 모습이 크게 바뀐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짜증스럽고 불만스럽던 얼굴이 요즘은 지쳐있는 얼굴로 바뀌었다는 게 변화라면 변화일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런 선생님들의 불만스러운 목소리와 모습, 그리고 저 힘없고 지친 모습에 관심을 가져보면 교사라는 직업의 나쁜 점도 꽤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나쁜 것”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구별하야 합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즉, 교사가 되면 이럴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불만은 교사라는 직업의 나쁜점의 사례가 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교사의 나쁜 점은 직장인, 노동자의 나쁜 점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쥐꼬리 월급(사실 그게 쥐꼬리인지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지만. 각종 카드사, 보험사, 증권사가 왜 교사를 집중 타게팅 하는지 생각해 보면), 불합리한 승진제도, 각종 부조리한 관행, 관리자의 횡포, 장기판의 졸처럼 취급되며 응분의 존엄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일 따위의 문제가 실제 학교에서 비일비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것들을 교사가 되면 나쁜 점이라고 할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직장생활이라고 하면 어디서나 겪을 수 있는 일들이며 학교가 다른 직장들보다 이런 것들이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도리어 더 가벼운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교육감이 학교를 방문해도 승진에 관심이 있는 몇몇 교사들이나 교장 따라 교육감 뒤를 졸졸 따라다닐뿐, 다른 교사들은 소 닭보듯 해도 무방한 곳이 학교입니다. 회장님 한번 떴다 하면 컴퓨터 키보드 청소까지 하는 이름난 대기업들과는 자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불만으로 가득차 있는 선배교사들은 왜 그랬던 것일까요? 


그래서 저는 그 선배들과 대화하면서 그분들의 개인사를 하나하나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명백한 공통점을 하나 찾아 내었는데, 그 분들은  교사 외에는 다른 직업을 경험하지 못한 분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일반회사, 관공서, 언론사 등에서 근무하다가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서 교사가 된 분들은 저런 종류의 불만을 거의 드러내지 않습니다. 저 역시 언론사에 있다가 교사가 된 케이스인데, 그 삼류저질 언론사가 비록 보수는 두배 가까이 더 많지만, 그리 가라고하면 죽어도 안갈겁니다. 두배 가까이 되는 보수도 전혀 부럽지 않고요. 하지만 교사 이외의 경험이 없는 분들은 그 많은 보수를 부러워 하더군요. 절대 그럴 일이 아닙니다.


자, 그렇다면 교사가 되면, 오직 교사가 되었을 경우에만 나타나는 나쁜 점들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임금이나 승진처럼 눈에 띄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사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으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사를 퇴행시키며 가치를 떨어뜨리고 마침내 스스로를 보람없는 인생을 사는 좀비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것들입니다. 이렇게 소리없이 스며들어 교사를 망친다는 의미에서 나는 이것들을 교사를 나쁘게 만드는 귀신들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사실 교사의 좋은점, 특히 실용적인 장점들은 매우 눈에 잘 띄는 반면에 나쁜점들은 이렇게 귀신같이 스며들기에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사직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이 한국적인 상황에서 멋도 모르고 교직에 입직했다가 귀신에게 사로잡혀 자신은 물론 학생들까지 망칠 위험이 큰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이라는 선정적인 용어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여러분이 특히 이것들을 경계하고 조심했으면 하는 바램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절단신공으로 끊고, 다음 편지 부터 구체적으로 귀신을 한마리씩 잡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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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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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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