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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밝힌 곽노현 교육감의 교육관 몇 토막

얼마 전 김미화의 오후 두시 라디오 프로그램에 곽노현 교육감이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거기서 그의 교육관이 뚜렷하게 드러난 부분이 있어서 갈무리 해 둡니다. 그의 신상에 어떤 변화가 생기던 간에, 이런 교육은 이런 교육정책은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꾸준히 견지할 수 있는 분이 아니면 진보교육이란 라벨을 붙일 수 없습니다.

(이하 인용)

김미화 : 요즘 아이들이 왜 행복하지 못할까요?

 곽노현 교육감 : 기본적으로는 아이들한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어요. 우리 부모들이 그냥 부모들의 욕망이라고 할까. 물론 아이들을 위한 욕망이지만. ‘너희들만큼은 정규직으로 공무원으로 안정적으로 행복하게 살아야한다. 그러려면 좋은 대학을 가야한다. 그러려면 자나 깨나 국영수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학교마치면 학원을 가야하고. 이렇게 12년을 보내면 네 미래가 창창해진다.’ 이런 생각으로 아이들은 몰아대시거든요. 더구나 엄친딸, 엄친아가 등장하잖아요. 애들은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경쟁을 강요받아요. 그럼 아이들은 숨통을 틀수가 없는 겁니다. 아이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공부, 공부, 공부 잔소리에 치이게 되고, 부모님과 관계가 틀어지고 입을 닫게 되요. 내 마음 갈 곳을 잃고 내 마음 둘 곳이 없잖아요. 이러면서 좌절, 분노가 남에게 향하면 폭력과 왕따가 되고 내부로 향하면 우울과 자살, 절망이 된단 말이에요. 우리 어른이 아이들의 필요를 보지 않고 어른들의 욕망을 주입시키고 있는 거죠. 아이들이 자율이나 자유를 느낄 수가 없는 거예요. 자발적으로 자기주도적으로 하는 것에서 오는 보람 같은 것과는 담을 쌓고 오직 교과서 속 국영수 공부에 매진하게 되는 거죠. 이것이 집안에 희망으로서 네가 할 일이라고 부모님들이 말씀하시니...

 김미화 : 그렇다면 지금 학교 교육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곽노현 교육감 : 기본적으로 ‘제가 원하는 학교 교육이 이겁니다’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맞다고 할 거예요. 다만 현실이 그렇지 않지 않느냐. 현실은 교육감 권한 밖의 사안입니다. 현실은 불안경제, 그 밑에 서열화된 대학이 있고, 여기에 기를 쓰고 명문대에 짚어 넣고 싶은 욕망, 거기에 부응하는 명문대의 난도 높은 시험 출제, 여기에 맞추는 고교 교육과정, 이거에 따라 아이들은 사교육 시장을 내몰아 2-3년 선행학습을 시켜야 하고.. 이런 일련의 원인과 결과들이 있거든요. 이 부분을 사회적 합의로 바꿔내지 않고는 올바른 교육으로 갑시다 라고 말하는 것은 학부모 마음속에 와 닿지 않는 거예요. ‘내 자식만은 지금 현재 명문대 바늘 구명에 집어넣기 위해 말하는 방법이 아니라 내가 아는 방법은 선행학습이야’라고 하는 거죠. 

김미화 : 불안해요. 선행학습 안 시키면.

강인봉 : : 친구 아들, 딸들은 학원 가는데 우리 아이는 집에 있으면...

곽노현 교육감 : 우리 아이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옆집이 하니까 따라한다는 거예요. 그럼 옆집 엄마랑 다 같이 하지 말자고 결의를 하면 되요. 이걸 어디서 하느냐하면, 학교 단위로 학급부모회가 있고, 학년부모회가 있고, 학교전체부모회가 있고, 학교운영위원회가 있잖아요. 나 혼자 있을 때는 내 새끼 주의밖에 남는 게 없어요. 이기적으로 행동할수록 모두가 힘든 겁니다. 내 노후자금을 다 쏟아 넣어서 애들 교육시키는데 애들 90%는 하늘대학 못가잖아요. 그러면 꿈에서 멀어지고 여기서 상처가 생기고.. 힘을 합쳐서 잘못된 교육 시스템을 바꿔보자고 가야죠. 이런데 힘을 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임무예요. ......

 ‘자, 그러면 맞다 당신이 얘기하는 교육철학 다 맞는 얘기다. 그것 중요한 거 누가 모르냐, 그런데 현실은 이렇다’ 하면서 반발을 하셨잖아요.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지금 여기서 가능한 더 나은 교육이 있다는 것을 보여 드려야 하거든요. 그것이 혁신학교예요. 곽노현 표 교육철학과 교육정책을 집대성해서 눈으로 보여드린 곳이 59개 초중고가 서울 전역에 생겼다는 것. 이것이 제가 대안을 보여드린 거니까. 이게 제대로 된다면 확산되지 않을까요.

 강인봉 : 요것만큼은 꼭 고쳐놓고 말겠다. 하는 것은?

 곽노현 교육감 : 사실은 전 수업 혁신인데요, 21세기를 감성의 시대, 지식의 시대, 인성의 시대, 협동의 시대, 네트워크의 시대라고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학교 교실마다 아이들을 국영수 점수 경쟁으로 모래알을 만들어놓고 있죠. 협동교육으로 바꿔야 합니다. 수업시간에 아이들끼리 모듬을 이뤄서 모듬 구성원끼리 협동하고, 발표, 토론하게 해야 합니다. 발표와 토론은 민주주의의 핵심이고요, 모둠과 협동은 협동교육의 핵심이에요. 그럼 수업방식을 칠판을 앞에 두고 아이들 시선을 선생님에게만 향하게 하는 일제식, 주입식 강의에서 아이들끼리 활동하는 수업, 발표와 토론 수업으로 바꿔야 합니다. .......

저는 공교육의 가장 큰 책임은 가정환경의 격차를 이기게 하는 것이다. 제가 계급 계층을 이기는 공교육을 해야 한다고 얘기하는데요. 잘 사는 가정이 특정 구에 모여 살잖아요. 못사는 가정이 특정 지역에 몰려 살고요. 어떤 지역의 학부모는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어떤 지역의 학부모는 상대적으로 부자예요. 학교마저도 격차가 난다면 큰 일 나겠죠. 그런데 현실에는 그렇게 되기 쉬워요. 그래서 가난한 지역의 학교를 더 부자로 만들어줘서 가난한 지역 아이들이 부족한 것이 없도록 넉넉한 마음을 느끼도록 해야죠. 이것을 근본적 목표로 삼고 모든 교육정책에서 학교 빈익빈 부익부를 부추기는 부분을 걸러내야죠. ...... 

첫 번째는 가난한 집의 아이나 장애를 가진 아이와 부잣집 아이나 장애가 없는 아이는 같은 한 명이지만, 교육재정 투입은 달라야겠죠. 만약 똑같은 교육비를 투입한다면 가난한 집 아이나 장애를 가진 아이를 차별하는 셈이거든요. 기계적 평등주의로는 절대로 실질적 평등을 이룰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예산 배정방식을 실질적 평등으로, 그래서 가난한 지역을 더 우대하는 더 지원하는 방식으로 대전환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우선이고요. 더 필요하고 더 가난한 지역에는 더 우선적으로 줘서 더 풍요로운 학교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간신히 격차를 메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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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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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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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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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