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운동사를 돌아보며

우연히 교육운동사 기록물을 열람했습니다. 매우 소중한 기억들이고 귀중한 발걸음 들이었습니다. 제가 매우 가까이 지내는 한 선배가 있는데, 그 기록의 순간 순간마다 이름이 나오더군요. 82년부터 28년간 교직생활을 했는데 그 중 두번에 걸쳐 8년이 해직기간이라 나하고 호봉이 같습니다. 그런데 그 선배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 해직의 고초를 겪으면서도 트라우마가 쌓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트라우마가 없으니 보상심리도 없고, 보상심리가 없으니 과거에 매달리지 않으며, 과거에 매달리지 않으니 발빠르게 앞으로 달려나갑니다.

그래서 "선배들, 당신들의 고초는 알고 있으나, 이제 당신들의 운동은 낡았다."라는 말을 들어도 그 선배들과 자신을 같은 범주로 넣지 않으며, 따라서 성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앞장서서 "이제 89년 세대의 운동관과 세계관이 바뀌어야 한다."고 맞장구를 칩니다. 내 주변에는 이런 분들이 고맙게도 많이 있습니다. 교육운동사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분들이 오히려 더 그렇습니다.

전교조의 1500 동지회... 귀중한 고통을 겪은 분들입니다. 하지만 그 고통의 댓가로 한때 10만에 육박했던 거대 조직의 의사결정을 사실상 독점했던 보상을 받으셨습니다. 합법화 이후에는 더더욱 그것은 현실적인 보상입니다. 하지만 지난 2003년~ 2006년 사이 의제를 선점당하고 반대투쟁으로만 일관했던 모습은 이미 그 분들의 운동론이 시대에 뒤떨어져서 더 이상 교육운동을 선도할 수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그 와중에 전교조 지도부와 조합원들은 완전히 딴 세상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 분들은 다른 조합대중들의 또 미가입 교사들의 마음을 얻으려 한 대신 자신들이 공유한 기억 공동체 속으로 달려갔습니다.

2007년 이후에는 그나마 반대투쟁도 안했습니다. 반대투쟁으로 일관하는 것은 문제지만 그것을 문제제기하는 것은 오히려 선도적으로 의제를 던지고 교육개혁을 주도하라는 요구이지 반대투쟁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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