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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이 물러나면 교육혁신은 교육혼란이 된다는 헛소리

어제 곽노현 교육감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교육감은 학교폭력을 다룬 연극 '니들 부모의 얼굴이 보고싶다'를 관람하고, 공연이 끝난 뒤 윤호진 교수(영웅, 명성황후 감독), 손숙 전 장관 등과 환담하고 관객들과 대화했다. 이때 취임 2주년 기자회견때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아마 기자들의 생각은 대법원 판결과 함께 직을 상실할 것인데, 앞일을 물어봐서 뭐하겠느냐 정도였을 것이다. 심지어 조중동과 보수언론들은 직을 상실하고 나면 곽노현표 교육개혁은 고스란히 정리해야 할 폐품이 되니, 결국 일을 벌리면 오히려 혼란만 준비하는 것이라고 거품을 물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곽노현 교육감은 임기가 2년이 남았건 두달이 남았건, 교육개혁의 씨앗을 심는 일을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대해 여전히 은인자중하라는 요구들이 심지어는 진보진영에서조차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것을 망각한 처사다.

교육의 작은 개혁 하나하나의 결실은 최소한 한세대, 보통은 두세대는 지나야 그 결과를 볼수 있다. 그러니 그 긴 시간을 염두에 둔다면 임기가 두달이 남았건 2년이 남았건 어차피 자기가 뿌린 씨앗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케르센슈타이너, 에르끼 아호 같은 전설적인 교육개혁가들은 교육정책을 관장하는 위치에 10년 이상 있었기 때문에 일관성 있는 개혁을 펼칠수 있었다. 2년과 2개월을 비교하는 것은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그러니 잔여임기 같은 생각 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게 유일하게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더구나 모든 진보교육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존 듀이 사상의 핵심도 바로 "현재를 위한 과거, 현재를 저당잡지 않는 미래"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지금을 즐기라(카르페 디엠)'고 말한 것은 결코 쾌락주의나 향락주의적 의미가 아니다. 훗날을 대비해 지금을 희생하지 말고, 지금 당장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바로 교육개혁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아이들이 지금을 행복하게 보내는 학교.

그런데 이런 교육을 꿈꾼다고 말하면서 2년이 될지 2개월이 될지 모르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라? 이것이야 말로 그 동안 우리 학생들을 괴롭혀온 입시이데올로기와 같은 논리 아닌가? 진보진영의 주요 논객들이 사실상 입시교육의 승리자인 경우가 많아서 빚어지는 현상인가?

곽노현표 개혁은 그의 퇴진과 함께 고스란히 교육혼란이 될 것이라는 조중동의 주장은 더 한심스럽다. 그들은 재임기간 내내 교육과정을 걸레로 만들고 마지막 가는날까지 도종환 시 스캔들을 일으키고, 3주만에 교과서를 다 고쳐쓰라는 만행을 저지르는 이주호 교과부 장관의 혼란유발 정책이나 비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들의 이 엉뚱한 주장은 두 가지 전제를 가지고 있다. 1)곽노현의 정책은 영 틀렸고, 엉뚱한 것이라 교육감이 바뀌면 바로 폐기된다 2)곽노현의 정책은 곽노현 혼자의 생각이다. 하지만 이건 그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곽노현의 교육정책은 한마디로 학생들의 행복이 우선이 되고, 이 행복의 격차,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조중동 기자들은 지금 당장 자기들의 여신인 박근혜의 교육공약을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입시위주 교육을 창의적이고 행복한 교육으로 어쩌구 하는 미사여구가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즉 곽노현의 교육정책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지 특정한 개인과 집단의 편협한 이념이 아니다.(그건 이주호의 시장주의, 경쟁주의에게나 돌려야 하는 말이다). 또 조중동 기자들은 주사파라 그런지 몰라도 항상 어떤 수령님이 모든 것을 다 결정한다고 여기지만, 곽노현의 교육정책은 엄밀히 말하면 곽노현표 교육정책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망라되어 곽노현을 통해 관철되는 것일 뿐이다.

최근 곽노현은 중요한 교육정책을 반드시 시장, 구청장, 시의회, 경찰청장 등과 함께 발표했다. 즉, 이건 서울이 시민이 합의한 교육정책인 것이다. 이게 말로만 떠들던 거버넌스라는 것이다. 심지어 장학관, 장학사들도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으로 많은 개혁안들을 제출하였다. 따라서 지금 발표되고 있는 서울시교육청의 정책은 서울시민의 교육정책이지 곽노현의 정책이 아니다. 그런데 보수언론들은 누구를 대신해서 무슨 자격으로 해라 마라 하는가? 이 정책들은 심지어 곽노현이 은인자중하기를 원한다 하더라도 시민의 이름으로 남은 임기가 얼마가 되건간에 해내라고 요구되어 온 것들이다.

따라서 곽노현 교육감의 잔여임기는 곽노현표 교육개혁의 지속여부에 전혀 변수가 되지 못할 것이다. 작년 하반기에 이주호가 이대영을 꽂아 넣어서 어거지로 되돌리려고 해도 끄떡도 없이 교육감 없이 추진되었던 교육개혁이었다. 시장이 지지하고, 시의회가 지지하고, 시민이 지지하고, 교사가 지지하고, 교육전문직이 지지하는데 부교육감 혼자서 뭘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이 교육개혁은 심지어 박근혜마저 흉내를 내어야 하는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그러니 감옥에 있는 공정택을 꺼내다가 교육감을 시켜도 손톱만큼의 흠집도 내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혼란의 원인 제공자는 이 시대정신을 거스르려는 한줌의 보수주의자들일 것이다.

조중동과 보수언론은 눈을 들어 세상을 보기 바란다. 이미 자신들은 심지어 새누리당에서조차 시대에 뒤떨어진 수꼴로 전락하고 있음을. 심지어 새누리당에서조차 시장과 경쟁대신 복지와 협력을 말하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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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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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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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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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