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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마저 촛불 희생자를 잊는다면, 누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나?

연거푸 촛불에 대한 글을 올리고 있다. 그 까닭은 그만큼 절박해서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이것은 민주주의와 진보를 외치는 정치인들에게 그 기본을 되새기라는 준엄한 요청이기도 하다. 너무 자주 이런 주제의 글을 올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만큼 이 문제에 대해 너무 반향이 없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1. 지금 야권의 대선 주자들은 모두 촛불시민의 수혜자다


2008년 촛불은 특히 서울지역 시민들에게는 엄청난 자부심의 원천이자 동시에 씻을수 없는 상처와 아픔으로 남아있다. 반대로 아무런 희망도 꿈도 갖지 못한채 왜소화되었던 야권과 진보진영에게는 기적과 같은 경험으로 남아있다. 2008년 촛불은 결국 진압되었다. 촛불에 참가했던 시민들은 이 정권의 무자비한 공권력의 완강함만을 경험하였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승리 선언"을 하는 운동권 지도부들의 무책임을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의 열매는 컸다. 그리고 그 열매는 대부분 민주당이 챙겨갔다. 2008년 4월만 하더라도 민주당은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정당이었다. 지금처럼 거대야당이라는 소리를 듣고, 유력 대선주자들을 배출하는 그런 정당이 아니었다. 정동영 후보의 참패와 이명박의 압승, 그리고 이어진 18대 대선의 압도적인 보수화에 질려서 아무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그런 정당이었다.


그런데 그 높디 높던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을 촛불이 반토막 냈다. 2008년 5월~7월 동안 이어진 촛불과 그 촛불에 대한 폭력적인 반응은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이명박의 이미지를 고집스러운 수구 이데올로그로 탈바꿈 시켰다. 그리고 그때 반토막 난 지지율은 임기내내 회복되지 않았다. 2008 촛불이 아니었다면 이후 이어진 여러차례의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연승행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주가를 높이고 있는 야권 대선주자들은 모두 촛불에 빚진 셈이다. 그리고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2008 촛불 시민들의 마음속에는 깊은 한과 상처가 남아 있다. 이 한과 상처를 풀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2. 촛불에 대한 태도는 박근혜와 야권의 대선주자들을 가르는 경계선이다.


지금 박근혜조차 복지를 말하고 인권을 말하고 노동을 말한다. 경제민주화를 말하고 평등을 말한다. 물론 선거가 끝나면 혹은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지면 쑥 들어갈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 야권 후보나 여권 후보나 색깔이 비슷하다. 한결같이 좌파일변도다. 모두가 이렇게 좌파 코스프레를 하고 있을때 2008 촛불에 대한 단호한 대처는 야권 주자의 선명성을 가르는 아주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조중동과 보수세력은 시종일관 2008년 촛불을 촛불난동, 심지어는 좇불 난동이라 부르며 백안시 했다. 따라서 박근혜는 절대 2008년 촛불을 긍정할 수 없으며, 2008년 촛불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한 경찰 책임자들과 법무장관 등을 문책할 수 없다. 아무리 좌파코스프레를 하고자 해도 이건 할 수 없다.


따라서 야권주자들은 얼치기 진보의 가짜 좌파 코스프레를 가려내는 리트머스로 촛불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2008 촛불 피해자에 대한 국가 보상과 진압 책임자 문책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면 2008년 당시 진압하던 자들이 진압당하고 공권력을 빙자한 폭력을 휘두르던 자들이 법의 철퇴를 맞고, 존재하지 않던 폭력 시위와 난동을 조작하던 거짓된 언론은 그 거짓된 입에 재갈을 물게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선언해야 한다. 즉 한 마디로 수구세력과 조중동에게 쫄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선언해야 한다. 이건 박근혜가 천만번 코스프레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며, 진정한 야권 후보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3. 민주주의를 위한 헌신과 희생은 보상받아야 한다.


이런 정치공학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흘리고 다치고 상처입은 사람들은 반드시 보상을 받아야 한다. 518 피해자가 여전히 그 상태였다면 1987년의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이 여전히 그 상태였다면 그 이후 이루어진 정권교체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영광스러운 기념비와 역사의 페이지를 할애했기에 이후에도, 이후에도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정의감이 이 사회에 살아남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 야권 주자들은 모두 그 정의감에 빚졌다. 그러니 2008년 촛불을 그냥 잊혀지게 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이렇게 잊혀진다면 앞으로 누가 민주주의를 위해 몸을 던지겠는가?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이 바보짓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야권 대선주자 누구도 2008년 촛불을 말하지 않는다. 계승한다고도 하지 않고, 영광스럽게 해주겠다고도 하지 않고, 또 원한을 갚아주겠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벌써 촛불을 잊었다. 아니 시민들 스스로 잊었는지도 모른다. 상처로만 남은 촛불을 잊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잊혀져서는 안되는 기억이며, 반드시 기념되고 영광을 누려야 하는 기억이며, 원한을 풀어야 하는 기억이다. 이걸 내 걸지 않는 후보는 아무리 코스프레를 열심히 해도 진보가 아니며, 민주주의자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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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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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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