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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노조의 새 비젼: 산별노조에서 전문직 조합으로


이거, 오래 전에 번역했던 글인데, 요즘 갑자기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교조가 이렇게 무력해진 것은, 이미 변화된 상황에 맞는 옷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8년전 미국과 캐나다에서 일어났던 논쟁을 소개합니다. 참고로 캐나다는 전문직조합으로 변신했고, 미국은 여전히 교원노조의 틀을 유지했지만, 그 결과 미국이 훨씬 더 비참해 졌습니다.

교원노조의 새 비전이 필요하다


밥 피터슨 Bob Peterson (2004년 Rethinking School 통권 11권 4호에 수록)
         저의 번역이 의심스러우신 분들은 인터넷에 해당 아티클이 공개되어 있으니 참고하십시오

NEA위원장 밥 체이스의 정책기조 연설이 끝나자 NEA의 가장 큰 지부인 위스콘신 교원노조 위원장과 집행위원장들이 일제히 체이스를 비난하고 그의 소견을 “섬뜩하다”라고 표현했다.

체이스는 이미 2월 5일에도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새로운 NEA: 새로운 시대를 위한 교원노조 개편”이라는 주제로 연설한 바가있다. 체이스는 NEA는 전통적인 노-사 대립론을 극복하고 공교육에 대한 공동체와 학부모의 관심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학교를 개혁하기 위해 학교재단, 교육청 등과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체이스의 주장중 가장 관심을 모은 것은 교원노조가 교사의 질, 그리고 학교의 학습 환경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체이스의 말을 들어보자. “무엇보다도 우리는 초점을 넓혀야 한다. 우리는 조합원들의 임금, 혜택, 근로조건, 안전 뿐 아니라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품질에 대해서도 그 만큼의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리씽킹 스쿨 11권 3호)

부정적인 반응들

위스콘신 교원노조 간부들의 반응은 그나마 부드러운 편이었다. 2월 20일 밀워키 교원노조의 매디슨, 래신, 그린베이 지부장들과 집행위원장들은 연대하여 체이스에게 그의 연설을 비판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그들은 체이스가 노사간의 협동을 고무하고 노조가 조합원 자질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함으로써 공교육을 파괴하려는 집단의 손에 놀아나고 있다고 비난했다. “우리 조합의 기초가 당신 주장을 조합의 약함을 드러낸 것으로 악용하려는 자들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라고 그들은 썼다. 2주 뒤 위스콘신 교원노조위원회는 체이스에게 지부장들의 편지들보다는 부드럽지만 추가로 비판 편지를 보냈다.

체이스는 위스콘신 교원노조에 보낸 답장에서 그는 비판을 환영하며 이런 대화와 소통이 NEA에 도움이 된다고 썼다. “한 마디로 NEA는 더 이상 교육개혁 논쟁 바깥에 국외자로 버티고 있을 수 없다.” 이 서신교환은 교원노조운동의 미래에 대해 필요한 논쟁의 국면이 무엇인지 드러내었다. 이 편지들은 또한 여전히 많은 교원노조 간부들의 마음에 강하게 자리 잡은 낡은 노동조합주의의 취약함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논쟁의 주도권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교원노조가 다루어야 할 수 많은 교육 쟁점이 있고, 각각의 쟁점에는 일련의 잠재적 응답들이 있다. NEA의 220만 조합원들, 그리고 AFT의 90만 조합원들은 교사 파업에서부터 교원노조의 교육개혁 참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들을 가지고 있다. 같은 노조 내에서도 지역, 혹은 주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견해차가 존재한다. 더욱이 국가차원의 교육정책이 반포될 경우에도 그것의 이행은 지역과 주 수준에서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원노조가 직면한 근본적인 질문은 교사가 새로운 교원노조운동의 비전하에 단결하고 그러한 비전을 가지고 이끌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체이스는 교원노조는 교사, 학생, 학교의 향상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위스콘신 등의 교원노조 위원장들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데, 이들은 현재 교원노조의 실천들 그리고 임금, 근로조건과 같은 이른바 빵과 버터 쟁점을 완고히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교원노조가 학교개혁 참여를 받아들여야 할 뿐 아니라 여기서더 나가야 한다는 세 번째 관점도 있다. 이 관점은 교원노조가 지역사회 이익을 위해 협동하고 사회정의와 형평성 같은 쟁점을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나는 이 세 가지 교원노조관을 "산별노조주의" "전문직조합주의" 그리고 "사회정의조합주의"로 일별하고자 한다. 물론 이분류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들은 서로 중첩될 뿐 아니라 산별노조 조합원이면서 이 셋 중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견해를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 관점의 스펙트럼에서 바라보는 것은 교원노조운동과 관련한 논쟁을 명료화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산별노조주의

1960~1970년대 초반까지 주도적이었던 오래 된 산별노조주의는 빵과 버터 조합주의로 잘 묘사된다. 1959년 위스콘신주 초등 공교육 종사자 단체교섭법과 함께 교사들의 단체교섭 기회가 증대되었다.

처음에는 AFT가 파업 의지가 더 강했고 대도시 교사들에게 조합주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데 더 성공적이었다. 이는 NEA가 보다 더 전투적인 산별노조 모델을 채택하는 추진력이 되었다. NEA에게 이는 큰 변화를 의미했다. 1960년대 중반까지 이 단체의 본부는 교사를 전통적인 노동조합 관점의 노동자로 보려하지 않던 관리자, 행정가들이 지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후반 그리고 1970년대 초반에 이르러 AFT와 NEA는 모두 더 높은 임금과 혜택, 연금, 전제적인 교장과 학교재단으로부터 보호 등을 놓고 파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는 대부분의 교육구들로 하여금 단체교섭을 하도록 강제하였다(남부는주목할 만한 예외였지만). 두 노동조합은 양적으로 성장하고 힘도 강해졌으며 여러 측면에서 지역 교육청과 광범한 교육정책에 결정에관여하는 “이중의 권력”을 수립하였다. 이러한 관계들은 양립되기 어려웠고, 교원노조와 교육청은 서로를 적대자로 바라보게 되었다. 교원노조들은 교사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우선하였고 학생들에게 무엇이 최고의 이익을 주는가 하는 것은 부차적인 것으로 다루었다.

이 모델의 약점은 그것의 비전이 임금, 작업조건, 그리고 일종의 콘체른의 담장을 치는 고용안정성 같은 편협한 업종노조주의를 벗어나지못한다는 것이다. 교육 분야 단체교섭에서 산별노조 모델은 불충분한 것이었다. 교사들은 기계부품을 만들거나 고기를 자르는 것이아니라 광범한 사회적 문화적 요구를 가진 아이들을 가르친다. 이것을 이해하는데 실패함으로써 학습의 질 같은 전문적 관심사는최소화되고 보다 넓은 지역사회와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지역사회 이익과의 충돌은 1968년 뉴욕의 Ocean Hill-Brownsville 파업에서 가장 생생하게 나타났다. 뉴욕시 교원노조(UFT)의 치명적인 파업은 알버트 섕커의 지휘하에 흑인 교사들을 포함한 흑인 공동체에 대항하여 일어났다. 갈등의 중심은지역사회가 특히 직원 채용의 문제에서 학교를 통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생커의 UFT는 뉴욕 중앙정부와의 투쟁에서 잔뼈가 굵었는데, 이제는 지역사회가 교사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고 그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중앙정부의 가장 큰 지지자가 되고 말았다. 어쨌든 교원노조가 승리하였고, 지역사회의 학교 통제는 뉴욕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이후 몇년 간 계속 학교정책은 대부분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정부와 고도로 중앙집권화 된 교원노조의 협상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는 민간 산업부문의 사용자-노동자 모델을 복제한 것이며 학교의 공적이고 민주적인 성격을 염두에 두지 않은 처사였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특히 교사의 경쟁력에 해당되는 사항들 혹은 상급자에 의해 요구되는 전문성 관련 사항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에 대해 부차적인 것이 되어왔다. 평가기간 연장과 해고 방지를 통한 조합원의 보호는 이제 최악의 교사들을 퇴출하는 일을 번거롭고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다. 교사임용 쟁점을 보면 대부분의 교육구에서 교사들은 학교 교육과정상의 필요, 학교의 교육 철학 등과의 적합성과는 무관하게 상급자에 의해 임용되었다. 세 교원노조 모델이 모두 교사 권리 보호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산별노조모형은 정당한 권리와 교사권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편협한 기득권을 구별하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문직 조합주의

부분적으로는 앞에서 제시한 산별노조 모형에 대한 응답으로 또 부분적으로는 학교개혁에 대한 강한 압력에 의해 최근 10여년 사이에 일부 교원노조 활동가들 특히 지회 수준 활동가들 사이에서 전문직 조합주의로 전향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이 관점은 커치너와 코피치가 설명했듯이 교사를 높은 교수 기준을 지탱하고 노동자와 지방 교육청의 상호의존을 이해하고 있는 전문직으로 간주하는것이다.

이관점은 “그들 vs 우리” 라는 전통적 노동조합의 대립주의를 벗어나 상호관심의 영역에서 작업하기 위한 책임의 공유를 받아들인다.신시내티 교원노조의 톰 무니를 비롯한 AFT의 몇몇 지도자들과 뉴욕의 아담 어반스키 등 NEA 지도자들은 이 흐름의중심인물이었다. 이들이 이끄는 지역은 승진 제도 개선, 동료평가와 같은 교육개혁을 촉진하기 위해 협상들을 진행해 왔다.

이러한 전문직 접근은 교원노조개혁네트워크(Teacher Union Reform Network)같은 조직에 의해서 채택되었다. NEA, AFT의 21개 지역 노조 지도자들을 포함하고 자선기금의 지원을 받은 이 그룹은 어떻게 지역 교원노조들이 교육 개혁에서보다 능동적인 역할을 하도록 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정기적인 회합을 가져왔다.

TURN은 스스로 "교원노조를 이끌어 이들이 국가의 교육개혁을 추동하고 궁극적으로 미국 어린이들에게 더 높은 학습과 성취를 제공하도록하자...TURN의 국극적인 목표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세상에서 아이들에게 학교의 높은 수행능력을 수립하고 유지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는 새로운 교원노조 모형의 창출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회정의 조합주의

나는 산별노조 혹은 전문직조합  중 어느 하나에만 의존하는 것은 부적당하다고 믿는다. 두 모델 모두 인종, 평등, 그리고 학교와 광범한 사회적 문제와의 관계 등의 쟁점을 만족스럽게 다루지 않았다. 사회정의 조합주의는 논쟁을 더 완성도 있게 구성하는 것을돕는다. 이는 산별노조와 전문직조합의 장점을 따왔지만 형평성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기여를 포함시켰다. 이는 교사의 기본적인 권리와 이익을 옹호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교사의 이익은 교사들이 보다 전문적이 되고 사회정의와 관련한 쟁점을 받아들일 때 가능함을 알고 있다.

1994년 29명의 교사 활동가들은 조합 내부 민주주의와 모든 아이들에게 봉사하는 교육개혁, 그리고 지역공동체와의 협력, 형평성과 관련한 보다 넓은 쟁점에 대한 고려 등을 요구하는 성명서에서 사회정의 조합주의의 밑그림을 제시했다.

그 밑그림은 주장하기를 “개혁은 형평성과 사회정의의 기준에 의해 이끌어져야 하며 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높은 수월성과 기대를 포함한다. 우리로 하여금 조합을 결성하게 하고 경제적 정의를 위해 투쟁하게 만드는, 우리로 하여금 처음 교직에 입문하게 만든 이상들, 예컨대 아이들을 돕고, 미래를 희망차게 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공교육이 사회의 평등한 기회와 민주주의의 초석이라는 이런 이상들은 전혀 약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꿈들은 현재 우리의 학교 혹은 우리의 교원노조의 일상적인 업무를 통해서는 이룰 수 없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체이스에 대한 공격

4개 지역 교원노조 위원장들의 체이스 비판 편지는 산별노조의 몇몇 단점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네 위원장들은 주장하기를 교원노조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부적격교사의 퇴출을 돕는 것은 잘못되었을 뿐 아니라 위험하다고 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하였다.“조합원들은 우리에게 이익을 증진시켜 달라고 조합비를 납부했다. 우리가 왜 교수의 질이 열악한 것에 대해 책임져야하는가? 그것은 교원양성 프로그램의 열악함, 학교재단이나 교육청의 정치적인 편의에 의해 자행한 부당한 임용절차 탓 아닌가?”

그들의 관점에는 아주 중대한 문제가 있다. 바로 현실감 결여! 지금 공교육은 위기다. 사방팔방에서 공격과 비판을 받고 있으며 대중의 지지를 계속 잃어가고 있다. 그 존속 여부조차 위험한 지경이다. 민중들에 의한 많은 공격들이 공교육의 이념 그 자체 혹은 교사권리의 조직화를 명백히 반대하고 있다. 그러니 교원노조는 공교육 내에서도 심각한 결점과 불평등이 자리잡고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물론 우리는 부적당한 교원양성 교육 프로그램이나 엉터리 채용 절차를 비판해야 하겠지만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교사의권리,교육의 공공성이라는 주문만 읊어대는 것은 교사와 교원노조가 우리 학교의 문제점들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지 않는 한 아무 의미가없다.

이때 체이스는 다른 접근을 보여주었고 공교육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유연하고 창의적인 실험으로 교원노조를 이끌었다. 이러한 접근은 체이스가 그의 진술들 속에서는 NEA가 기존의 노동조합과 전문직조합의 역할을 모두 할 수 있기 바란다고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커치너와 코피치가 예로 든 전문직조합주의에 가까워 보인다.

네 위원장들은 체이스의 접근을 “이적행위”이며 1930년대 나찌에게 타협한 것과 비슷하다며 비난한다. 그러나 네 위원장들은 그렇다면 어떻게 지역교육청과 협력하여 교육의 사사화를 요구하는 대중들의 공격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을 보여주지 못했다.사실상 교육개혁에 완강히 반대하는 교원노조야 말로 도리어 공교육을 사사하고 교원노조를 포위하려는 대중들의 욕구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예를 들면 1991년 두 흑인 침례교 학교들의 채용규칙 개정에 대한 밀워키 교원노조의 반대는 밀워키 전체에 반 교사정서, 반 공교육 정서를 확산시키고 말았다. 이러한 교원노조의 완고함은 또한 미디어에 의해 공교육의 독점이 해체되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활용되기도 한다.

나는 체이스의 연설을 여러 차례 되읽었지만, 그 어디에서도 이적행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체이스가 기업공동체에게 “NEA는 학생 성취를 높이기 위해 협력할 것이며 고교 졸업자들이 최소한의 문해능력, 기초 기능에서의 경쟁력,그리고 일할 태세가 갖출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럼 네 위원장들은 공교육이 기초학습능력이 결핍된 학생들을 양산한다는 비판에 대해 교원노조가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이적행위라고 생각한단 말인가?

교원노조가 직면한 진정한 위협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세 교원노조 모델들 중 어느 것도 교원노조가 임금, 근로조건,연금,고용과 같은 생계문제의 보호를 포기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교원노조가 결성되기 전 맥카시 광풍에 의해 수천명의 교사들이 사정없이 해고되었던 사실을 결코 잊지 않으며, 종교적 도덕을 공교육에 투사함으로써 힘을 확장하려는 흐름 속에서 성적소수자 교사, 정치적인 교사들이 직면한 문제를 외면할 수도 없다. 그 뿐 아니라 비단 교육 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서비스에 걸쳐 공공기구와 공적책임을 사사화하려는 강력한 초당적 지지가 있음을 알고 있다.

예를 들면 위스콘신에서는 단체교섭권이 주정부가 각 교육청에 부과한 교육예산, 교사임금 상한선 때문에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뉴저지처럼 다른 지역에서도 법원은 많은 교육 정책들을 비교섭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심지어 학급 규모, 수업부담 같은 쟁점까지 “경영권”범주로 분류하고 있다. 이는 빵-버터 쟁점뿐 아니라 교사의 전문성 그리고 교육의 질에까지 영향을 준다.교원노조들은 이러한 정책들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적 현실은 지역교육위원회나 교육청이 이 전투에서 동맹군이 될 수 있음을 자주 보여준다. 그들은 정부의 예산상한선,그리고 여타의 다른 공교육에 대한 위협 같은 교육적 위해를 이해하고 있다. 문제는 교원노조가 어떻게 그들과 연대하여 공교육의 질을 저하하는 위협들과 맟 설 것인가 하는 것이다.

책무성

교육개혁에서 핵심 쟁점은 책무성이다. 이 쟁점에서 세 교원노조 모델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산별노조 모델 관점은 책무성을 외적인 것(교장과 장학관이 강요하는 것이며, 교사의 것이 아닌)으로 간주한다. 이 모델은 노조가 심지어 무능한 교사라 할지라도 합법적 권리를 보호해야 할 뿐 아니라 책무성은 관리자의 몫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러한 무능한 교사들에대한 어떤 간섭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전문직조합 모델은 개별 교사의 사적이익 너머를 보려 하며 학교와 학생들의 광범한 필요를 고려한다. 이는 동료평가와 같은 장치를 이용한 내적인 교사 질 관리를 시도한다. 사회정의 조합 모델에서 책무성의 범위는 학부모와 지역사회를 포괄할 정도로 넓어진다.

여기에서 이 모델은 전문직조합 모델과 잠재적인 대립점을 가지는데, 그것은 많은 도시 지역들은 인종 차별문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외부지역 출신 교사들과 행정가들의 동료평가 가능할까? 아니면 학부모나 지역사회가 교원평가에서 역할을 해야할까?밀워키의 Hi-Mount 초등학교 같은 경우 교사뿐 아니라 학부모가 포함된 교원평가를 시도해 보았다. 다른 학교들은 학부모와 지역사회 구성원이 학교 운영위원회나 지역교육위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책무성 쟁점에 대해 일정정도 권위를 행사했다.

사회정의 조합주의 관점은 교원노조가 지역 수준에서 교육형평성과 책무성을 증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신시내티 교원노조는 어떤 고등학교가 미적분학과 고급언어 코스를 제공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저소득층 거주지역 학교들은 이런강좌들을 거의 개설하고 있지 않았지만 특목고나 대학준비고등학교는 이 코스들을 개설하고 있는 현상이 두드러지게나타났다. 교원노조의 후속작업은 신시내티 공교육의 정책을 전환시켜 모든 학교들이 고급 강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특별할당을 제도화하였다.

인종의 문제

세노동조합 모델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인종 쟁점에서 드러난다.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체이스의 연설이 환영받은 만큼 그가 인종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당혹함도 있었다. 이제 NEA는 여러 쟁점들 중에서 공립학교에 근무하는 전문직 백인 교사가 점증하는 유색인종을 가르쳐야 하는 현실적 문제와 직면해야 한다.
인종주의와 인종 관계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것은 이 나라의 모든 단체, 기구들을 움찔거리게 하는 문제며 특히학교와교사들에게 어려운 문제다. 전문직 조합주의 옹호자들은 학교 재구성, 학생중심 교육과정과 같은 쟁점에서의 교원 능력 개발을 자주 언급하지만 소수민족, 반인종차별 훈련 같은 쟁점은 상대적으로 적게 언급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회정의 조합주의는 인종과 관련한 쟁점을 직접 움켜쥔다. 예를 들면 캐나다의 British Columbia 교원노조는 조합원들에게 인종문제를 인성, 정치, 교육학적 수준에서 다루는 연수 프로그램을 가동하였다. 웍숍과 훈련, 정책 진술,그리고 청소년 조직 등을 조합하면서 BC교원노조는 교사들이 인종 쟁점을 다루고 토론하도록 고무하였다.

인종 문제는 두 가지 다른 핵심 영역도 포함한다: 조합들이 지역사회와 유색인종 조직과 함께 발전하는 정치적 통합 ; 그리고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학교와 교사가 발전하는 사회적 전문적 연대.

OceanHill-Brownsville의 교사파업은 어떻게 교원노조가 흑인 공동체와의 관계를 훼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선명한 사례다.이는1996년 단체교섭에서 주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공교육에 대항하여 투쟁했던 클리블랜드 교원노조의 전략과 강하게 대비된다.투쟁의 정점에서 주정부는 예상되는 파업을 예방하기 위해 수백 명의 경찰들을 투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리블랜드 교원노조가 각종 유색인 단체들과 맺은 강고한 연대는 그러한 주정부의 개입을 막아내도록 지역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사태는 파업까지 가지않고 해결되었다.

지역사회와의 연대가 깨지는 또 하나의 원인은 상급기관이 제기하는 쟁점에 대한 노조의 극단적 비타협이다. 밀워키와 보스톤에서 교원노조들은 상급기관의 체계, 다른 말로 골탕 먹이기 체계에 의한 유색인종 교사정원 제도, 유색인 교사 비율의 유지를 위하여 만들어진 "가장 나중에 채용되고, 가장 먼저 해고되는" 전통적인 시스템을 뒤집어 엎기 위해 법정에까지 갔지만, 얼마나 많은 교사들이 그 시스템 하에서 일해 왔는지 고려하지 않았다.

사회정의 조합주의는 과거 차별대우의 흔적기관들을 해소하는 구체적인 정책을 촉진하고 모두를 위한 평등을 증진하고자 한다. 예를들면 클리블랜드 교원노조는 흑인, 백인의 이원화된 승진경로를 승인하였다. 일부 교원노조들은 공격적으로 유색인 교사 채용프로그램을 지지하였고 그 과정에서 지역공동체들과 연대를 건설하였다. 여전히 많은 교원노조들이 지역사회 단체들과 연대하여 교사의 이익과 직접 관련 없는 정치적 캠페인을 수행해 왔다.

예를 들면 캘리포니아교 교원노조는 최근 몇 년간의 반-확실성 행동 국민투표에 대항하여 일해 왔는데 이는 교사와 직접 관계없는 사안에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지표가 되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교원노조가 여러 인종, 여러 유권자들과 연합하는데 실패한 사례가 더 많다. 이나라의 인종 문제의 역학을 고려한다면 이 영역에서의 성공은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연대를 건설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한 요원해질 것이다.

또한 사회정의 조합주의의 옹호자들은 학교수준에서 학교운영위원회, 지역교육위원회 등을 통한 학부모, 지역사회의 참여, 그리고 유급 학부모 조직자의 증가를 주장한다. 많은 조합 활동가들이 교직원들이 투입과 권한이 늘어나는 만큼 지역에 기반한 교육 위원회의 권한 역시 승인한다. 전문직 조합 지지자들은 이제 이러한 위원회들이 고용, 전근, 그리고 시간표 편성 같은 계약조건을 조정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여러 교육구들에서 교원노조들은 교사들이 지역 교육 위원회에서 다수를 보장받도록 협상하였다. 하지만 사회정의 조합주의는 도리어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참여를 더 강조하는데 심지어 교원노조가 학부모의 위원회 동수 참여를 지원하고 학부모들이 동등하게회의에참석하도록 하는 훈련과 교육의 예산 확보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이러한 구조적인 변화들을 판단하는 요점은 모든 학교 사안에 대한 진정한 학부모 참여를 어느 수준까지 증진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교원노조의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에 대한 연대는 학교개혁의 핵심이다. 이는 또한 교원노조의 성공과 생존의 중심 사안이기도 하다. NEA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산별노조로 회귀하라는 압력에 굴복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쟁점은 교원노조가우리의 공교육과 아이들 그리고 지역 사회를 돕는 사회정책과 운동을 증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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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