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C가 박종우의 동메달을 박탈하더라도 흥분하지 말자

얼마 전 막을 내린 런던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열광시킨 경기는 금메달 결정전도 아닌 동메달 결정전이었던 축구 한일전이다. 그런데 동메달의 감격도 잠시 박종우 선수가 들고 달린 "독도는 우리 땅" 파문 때문에 한일간 민족감정으로 사태가 치닫고 말았다. 여기에 엎친대 덮친 격으로 대한축구협회는 일본 축구협회에 해명 메일까지 보내서, 이게 사과다 아니다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자크 로제 국제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은 박종우의 이 행위가 명백히 정치적 행위(polotical action)으로 보인다고 나름의 의견을 밝혔다. 여기에 대해 국내 네티즌들 중 상당수가 올림픽 위원회가 일본 편을 든다면서 끓어오르고 있다.

그 동안 스포츠를 민족주의적으로 소화시켜온 한국은 이렇게 스포츠에 대해 과몰입, 과잉 의미부여 하는 경우가 많다. 이기면 우리 민족의 정기를 드 높인 5천만의 쾌거가 되며, 지면 심판이나 주최측이 약소국을 무시한다며 울분을 삼키는 패턴은 어떻게 수십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을 좀 냉정하게 살펴보자. 그래야 우리는 앞으로 이 실수로부터 배우는 것이 생긴다. 하지만 이렇게 흥분해서 쪽발이편이냐 아니냐 난리굿을 피우면 아무것도 배우는 것이 없을 뿐 아니라 느닷없는 독도방문과 대일 강성발언으로 뉴스의 촛점을 돌리려는 가카의 꼼꼼하심에 넘어가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흥분되기 쉬운 문제에서 냉정하게 추론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 바로 사회과 교육의 목표이기도 하다.

먼저 정치적 행위가 무엇인가 보자. 고전적인 정치학에서 정치적 행위라 함은 바로 "표현"의 문제다. 하나 아렌트가 강조했듯이 정치적 행위는 자신의 독특함을 드러내고 생각을 퍼뜨리고 설득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고대에는 자신의 주장을 밝히는 연설과 논변이 주된 정치적 행위였지만 근대 이후에는 집단적으로 주장을 드러내는 시위(demonstration) 상징과 기법들을 사용하여 자신의 주장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프로파간다가 널리 활용되었다. 테러 조차도 살상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어떤 견해를 강렬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축구장 안에서 토론을 할 수는 없으니 선수가 어떤 정치행위를 경기장에서 한다면, 그건 주로 프로파간다나 시위다. 그리고 IOC는 바로 경기장에서의 시위나 선전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선수는 정치적 행위를 경기에 끌고 들어올수는 없지만 반대로 경기장 밖에서 한 정치행위나 정치적 견해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일도 없다. 이 둘이 다 겸비되어서 정치적 중립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k리그 최고의 윙포워드였던 마니치(아마 이 선수의 도움이 없었으면 안정환의 k리그 평정도 어려웠을것)의 골 세레모니다. 당시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한창이었는데, 유고 출신의 마니치, 샤샤는 이렇게 나토의 공습 중단을 촉구하는 골 세레모니를 펼쳤다. 이들이 모두 탁월한 골잡이였기에 이럴 기회가 많았겠지만, 이들은 곧 경고를 받고 이러한 행위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전쟁에 대한 반대가 가지는 보편적인 가치, 이들의 가족이 있는 곳이 폭격당하고 있다는 사정 등이 고려되어 중징계 는 피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k리그가 아니라 A매치에서 유고슬라비아 대표선수로서 이런 행동을 했다면 문제는 심각해졌을 수 있다. 또 이 선전문의 내용이 "공습을 중단하라"가 아니라 "코소보는 유고슬라비아 땅이다!" 이런 종류의 것이었다면 아마 선수생명이 끝났을 것이다.


그럼 박종우는? 우선 국제사회에서 우리와 일본의 관계는 나토와 유고슬라비아 같은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대등관계다. 즉 박종우의 나라는 마니치의 나라처럼 "이렇게라도 해야 호소할 길이 있는" 그런 고립된 처지가 아니다.따라서 여기서 정상참작의 여지가 사라진다. 그리고 우리야 독도가 당연히 우리땅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건 국제사회에서는 단지 우리 생각일 뿐이다. 독도의 정확한 위상은  "실효적 지배", 즉 "니들이 뭐라고 떠들건 간에 초소 박아 놓은 쪽은 우리" 이게 답인 것이다. 이 실효적 지배란 것이 얼마나 구속력이 강한 것이냐 하면, 국제사회에서 중국만을 합법정부로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만처럼 한 나라를 실효적 지배로서 유지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국제사회에 가서 "독도는 우리땅" 이렇게 외치면 일본은 "다께시마는 우리땅"이렇게 응수하게 되고, 독도는 순식간에 영토분쟁지역으로 전락하게 된다. 바로 우리 가카께서 독도에 방문함으로써 초래한 결과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 가카가 독도방문해서 분쟁을 촉발한 다음날 국가대표 선수가 이런 표어를 들고 운동장을 달렸으니 이게 제3자의 눈으로 보면 잘 계산된 "정치 선전"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씌어 있기 때문에 널리 알릴 목적이 없어서 정치선전이 아니라는 한국선수단측의 해명도 구차하다. 다른 나라 외신기자들을 무시하는가? 한 시간 안에 다 번역되서 돌게 되어 있으니, 오히려 영어로 썻을때 보다 더 주목효과가 크다고도 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해 일부 네티즌들은 일본 체조 선수들의 "욱일승천기" 유니폼을 문제 삼으며 이건 정치적 행위 아니냐며 올림픽위원회가 일본편을 들어준다고 펄펄뛰었다.  자크 로제 IOC위원장은 일본의 욱일승천기에 어떤 정치적 메시지가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라고 대답했으니 형평에 크게 어긋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욱일기는 독일의 꺾인 십자가처럼 정치적 의미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상징이 아니다. 욱일기의 정확한 의미는 "일본 군기"이지 무슨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따지만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은 예나 지금이나 "일장기"다. 조선 총독부에 게양되었던 깃발도 일장기이며, 손기정 선수가 달고 뛰었던 깃발도 일장기다. 그리고 물론 지금도 일본 국기는 일장기다. 마찬가지로 일본 군기는 욱일기다. 이건 아주 심플한 문제다. 게다가 이 욱일기가 무슨 신우파들이 부활시키고 그런것도 아니다. 

욱일기의 사용이 금지되었던 것은 일본이 패전국이기 때문에 군대가 해산되었기 때문이지 여기 무슨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래서 미군정이 종결되고 일본이 다시 군대(이름은 자위대지만)를 보유할 수 있게 된 시점부터 욱일기는 계속 사용되어왔다. 그 시점이 무려 1952년이다. 만약 이 깃발이 나치의 꺾어진 십자가 같은 파시즘적 의미를 상징하는 것이었다면 승전국 측에서 결코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독일 역시 전통적으로 독일 군대의 깃발이었던 "철십자기"는 군대를 보유할 수 있게 된 시점부터 다시 사용할 수 있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나치의 상징인 꺾어진 십자가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아래 사진을 보라. 태극기와 욱일기가 나란히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이건 치욕도 뭐도 아니다. 이건 단지 대한민국 해군과 일본해상자위대를 서로 상징하는 깃발일 뿐이다. 




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 그리고 일본의 침략과 만행이 주로 태평양 전쟁 시기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일제침략이라고 하면 당연히 일본 군대를 떠올리고, 일장기보다 먼저 욱일기를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욱일기만 보면 울컥하는 마음은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 또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욱일기를 자주 휘두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유 역시 욱일기에 어떤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욱일기가 "군기"이기 때문에 휘두르는 것이다. 일본의 극우세력들은 일본의 강한 군대와 병영국가를 주장하기 때문에 국기 대신 군기를 휘두르는 것이다.

그러니 아시아 나라들을 대표하여 일본군의 만행에 상처입은 나라가 많은데,  "올림픽에 군대의 상징을 들이대는 것은 취지에 맞지 않다"라고 따끔하게 한 마디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깃발 자체 혹은 그 깃발이 연상되는 유니폼 자체만으로 어떤 정치적 행위를 했다고 우기기는 어렵다. 더구나 명백하게 문자화된 메시지가 적힌 박종우의 팻말과 같은 급에 놓고 겐세이(이크 일본식 말?) 치자고 우기는 것은  성립되기 어렵다.

사실 관중도, 시청자도, 선수도 한일전에서는 좀 더 냉정했으면 한다.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여기에 한일전, 숙명의 대결 운운하며 의미부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정치적이지 않은가? 선수들이 일본한테만은 질수 없다, 국민을 위해 어쩌구 그러는 것 자체가 이미 너무 정치적이지 않은가? 그러니 기성용의 원숭이 세레모니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손쉽게 민족주의적 열광에 빠져들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독재자들은 스포츠를 이용해서 우민화를 펼쳐온 것이다. 유난히 한일전을 강조하고, 유난히 한일간의 대결을 강조하는 흐름이 감지될때는 저의를 의심해라. 그 배후에서 뭔가 딴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진. 이건 참으로 부끄러운 사진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들이 황인종들을 비하할때 쓰던 "원숭이" 흉내를 내고 있으니, 이건 정말 부끄러운 인종차별 행위다. 이 원숭이가 미국이 하는 거라면 양잿물도 마시는 우리나라에 흘러들어와서 일본을 비하하는 용어로 굳어버린 모양이다. 하지만 당시 미군들이 사용한 이 원숭이는 일본 뿐 아니라 황인종 전반을 비하하는 표현이었다. 사실 미군들 눈에 일본인과 한국인과 만주인은 전혀 구별이 불가능하다. 사실 나도 구별할 수 없다. 그러니 미군들 앞에서 일본인이나 한국인이나 다 멍키였던 것이다.

피파에서 이 세레모니를 크게 문제삼지 않은 이유는 그들 눈으로 볼때 인종차별이라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황인종이 상대방을 황인종이라고 놀리고 있는 형국이니 이건 인종차별이 아니라 코메디였다. 하지만 만약 기성용이 아니라 백인 선수가 일본 선수단을 향해 원숭이 흉내를 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물론 스포츠가 정치 중립지대는 아니다. 그리고 스포츠 스타에게도 애국심은 중요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만약 월드컵이나 올림픽에 선수들이 자기들의 인기를 이용하여 정치선전을 마구 해도 제재하지 않는다면 어떤 나라가 유리할지? 과연 약소국일까 강대국일까? 메달리스트들이 승리 세레모니나 시상식에서 그 열광된 분위기를 이용하여 정치선전을 할 수 있다면 과연 어느 나라가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독일이 기회의 90%를 차지하지 않을까? 그러니 올림픽에서 정치적인 메시지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이 강대국의 위선과 또다른 정치편향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올림픽은 말하자면 일종의 명절이다. 우리도 명절때 사업얘기 하고, 명절때 성적얘기 하는거 싫어하지 않는가?

물론 그래도 그 빈틈을 이용해서 할말을 하고 국민을 시원하게 해주는 스포츠 스타가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때 안정환의 쇼트트랙 세레모니조차도 논란이 되었음을 명심하자. 그리고 WBC에서 일본에게 이긴뒤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은 서재응의  행위에 대해서는 많은 비난이 쏟아졌음도 명심하자. 선수들이 이 둘 사이 적절한 지점에서 적절하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생각을 꼼꼼하게 할 줄 아는" 그런 지혜를 가졌으면 하며, 그런 지혜는 선수들만의 노력이 아니라 부화뇌동하지 않는 합리적인 팬과 관중이 길러냄을 명심하자.

이 글을 읽고 흥분한 네티즌이 여기를 성지로 만들어도 나는 할 말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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