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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전교조의 노래: 나 태어난 이 강산에 전교조 되어..절망


유신시절 군사독재가 서슬 퍼렇던 시절에 군인을 처량하게 묘사하여 금지곡이 되었던 김민기(양희은)의 “늙은 군인의 노래”는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노래다. 저항가요를 만들던 운동가가 군가 작곡을 강요받자 만든 노래로, 평생 군인으로 살다 퇴역하게 된 어느 준사관의 회한을 쓸쓸한 행진곡으로 엮어 낸 정말 역설적인 노래다.
먼저 노래부터 좀 들어 보자. 노래 듣기

이건 정말 적어도 어떤 경력을 20년 이상 지켜온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노래다. 하지만 중년기를 넘어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수밖에 없는 그런 가사다.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 내 청춘 다 갔네” 이런 대목에서 누가 마음 약해지지 않을까?

인생 8단계설로 유명한 심리학자 에릭슨은 노년기를 “통합이냐 분노냐”로 정리했다. 나는 그 중 7단계를 살고 있다. 맙소사 7/8 지점이라니! 7단계에서는 다음 세대에 영향을 미칠만한 뭔가를 세상에 남기고 있느냐 아니냐가 문제가 된다. 현재 후세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한결 여유롭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침체감, 권태, 대인관계 악화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럼 8단계로 넘어가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행복하게 되돌아보며 어린 시절부터 늙은 지금까지의 인생을 하나의 일관된 내러티브로 통합할 수 있다. 이거야 말로 완전한 자아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은 바로 이러이러하기 위한 것이었어. 그때 했던 이런 일이 나중에 이런 결과가 되었지 하하”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인생. 자신이 했던 일들이 인생의 뒷 단계와 인과적으로 잘 연결되어 늙은 지금까지 단절없이 인과적으로 잘 이어지는 삶. 스스로 자기 인생을 설명할 수 있는 삶. 이렇게 자아통합을 이룬 사람이 가지게 되는 훌륭한 능력이 바로 “지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지나간 인생을 회환, 후회, 분노, 좌절감, 증오로 돌아보게 되며, 아득한 절망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지혜와 절망!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이르러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불행히도 많지 않다. 더군다나 청소년기만 지나면 더 이상 공부도 교육도 필요 없다고 여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삶을 배울 기회가 없기에 더더욱 그렇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나온 인생을 여유로운 성찰대신 성마른 절망으로 돌아보게 되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 동안 뭔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초조함과 성급함을 드러내게 된다. 얼마나 슬프고 아득한 일인가?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을 탄식한다는 것은!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평생 옳은 일, 가치 있는 일을 위해 헌신했다고 자부했던 사람들이 더 이상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통합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다.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 같은 경우가 그렇다. 수많은 운동가들이 진보정당을 국회에 입성시키기 위해 수십년을 애써왔고, 또 이를 넓히기 위해 삶을 바쳐왔지만, 이제는 그 과거가 온통 부끄러운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수십 년의 운동이 순식간에 회한덩어리가 되어버렸을 때 그 아득한 절망감을 누가 공감해 주겠는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겠는가?

내가 몸담아 온 교육운동 단체인 전교조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몇 줄로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전교조의 상태는 이 조직을 만들기 위해 두 번씩이나 해직되었던, 그래서 이제 정년퇴직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연금 수급에 필요한 20년 경력도 빠듯한 그런 분들을 아득한 절망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이 분들은 “대체 내가 무엇을 위해 남들 출세하고 승진할 때 그런 것 다 포기하고 이 고생을 했단 말인가?” 하며, 꽃다운 내 청춘을 탄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은 공동체의 승인과 인정, 그리고 로마인들의 표현에 따르면 영광을 원하는 존재다. 수십 년을 교육민주화와 참교육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다면, 이제 그 삶이 마무리 되는 노년기쯤 되면 뭔가 기억되고 기념될 것들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전교조다. 이제 합법조직에다가 한국 최대의 시민단체인 전교조 아닌가? 말이 민주노총 산하연맹이지 실제로는 민주노총보다도 더 영향력이 큰 전교조 아닌가? 그 전교조에서 이제 은퇴할 나이가 다가온 노 조합원들의 삶과 헌신을 기리는 멋진 기념물을 남겨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전교조는 전직 위원장들 중 한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만든 것이 마치 그 간의 간난신고에 대한 보상인양 하는 이상한 모양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수많은 희생자들은 탄식한다. 그들의 그 고통과 괴로움과 인내가 결국 정 아무개 국회의원 만들어주기 위한 일이었단 말인가? 그 정 아무개가 무슨 넬슨 만델라처럼 모든 교사들이 애타게 국회로 들어가소서 하며 갈망했던 대상도 아닌데 말이다. 어디 그 뿐인가? 전교조 활동가였다는 경력을 이용해서 참여정부나 진보교육감 진영에서 나름 중책을 맡거나 큰 인정을 받았던 사람들이 제법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영광을 전교조에 돌리지 않았고, 그들과 함께 청춘을 흘려보낸 동지들에게 돌리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50대 이상 나이 먹은 전교조 조합원들, 특히 평생 헌신과 희생을 많이 하신 분들의 절망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 동안 승진과 출세를 등한히 했던 자신의 삶이 후회스러워지고, 인생이 회한으로 가득차게 된다. 그리고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나도 출세하고 승진해야겠다는 익숙치 않은 욕심과 야망의 유혹이 점점 가슴 속에서 맥박치듯 밀려 올라온다.  전교조는 어쨌든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조직이다. 비록 지금은 아무 실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전교조가 20년간 쌓아온 공적과 역사는 그 자체로 자산이다. 그리고 그런 전교조의 원로활동가였다는 경력은 아직도 쓸모가 있다. 이게 쓸모가 있을 때 빨리 이것을 세속적인 성공과 출세로 교환해야 한다. 그래야 기껏 이런 전교조 따위, 이런 통진당 따위에 바치느라 날려버린 꽃다운 청춘을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 분들이 이렇게까지 타락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하지만 전교조 지도부와 수뇌급 활동가들이 함께 싸워왔던 수많은 늙은 동지들의 영광과 명예를 높이는 일 대신 자신들의 자리와 명성을 높이는 일에만 계속 몰두한다면, 이런 슬픈 타락의 물결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이걸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6년이 넘는 해직기간을 견뎠고, 같이 발령받은 동기들이 교감되고 교장될 때 그 밑에서 교감은커녕 부장교사도 못하면서 그 수모를 견뎌온 것은 그들이 갖지 못한 고귀한 가치를 지키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가치가 의미 없어진다면? 그럼 공모제 교장이라도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그리 큰 잘못인가? 위원장, 지부장급들이 온갖 명분을  내세우며 국회의원 등등이 되면, 노 활동가들은 공모제 교장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전교조 경력이 크던 적던 도움이 되어 국회의원되고, 교육감 되신 분들이 노 활동가들, 노 조합원들을 모셔서 존경과 감사를 표시하는 공식적인 기념식과 그들의 지혜를 존중하고 배움을 청하는 자리를 몇 번 만들었다면 아마 이런 사태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리하지 않았다. 이제 전교조 30년의 고난을 출세로 보상받으려는 자연스러운 욕망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년기의 그들에게 그런 욕망을 억제하라는 것은 20대에게 연애하지 말라는 것 만큼이나 어려울테니.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나도 이미 교사 경력 21년이며, 대학생 시절 전교조 사수대 활동까지 치면 24년째 전교조와 엮여져 살아왔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 24년을 전교조 활동에 올인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만약 그랬다면 지금쯤 절망감에 사로잡혀 무슨 짓을 하거나, 아니면 그 절망을 보상받을 욕심에 *누리당 쪽에 줄을 댔을 지도 모를 일이다. 문득 어쩌면 다음과 같은 늙은 전교조의 노래를 부르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글을 마친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전교조 되어/ 꽃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이 먹고 힘 빠지만 퇴직하면 그만이지 
(후렴)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팔뚝질에 실려 간 꽃다운 이내청춘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너희들은 자랑스런 전교조의 아들이다 
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아라, 전교조의 아들이다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 우리 손주 학교가서 참교육 받는 걸세 
배움이 행복하고 가르침이 자랑스런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내청춘 다 갔네 

좁은 교실, 높은 계단, 푸른 회의실에 /검은 양복 흰머리에 교장후보 걸어가네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우리 손주 손목잡고 공모제 교장하세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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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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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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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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