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진짜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어볼까? (1)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지를 반대했던 전교조 간부

얼마 전에 "블랙박스"라는 책을 열심히 선전하던 사람들을 만났다. 소위 당권파의 억울함을 선전하는 책이었는데, 나름 억울한 면도 있겠지만, 그 정도를 가지고 블랙박스라고 하기에는 매우 미흡했다. 그들이 엄청나게 많은 블랙박스를 갖고 있는 자들이었으니. 게다가 그들은 참여계도 부정을 저지른 주제에 우리만 뭐라한다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참여계가 먼저 사퇴하면서 이석기, 김재연의 사퇴 뒤 자리를 승계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사실은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즉, 비례대표 경선 자체가 개판이었으니, "너나 가릴것 없이 경선으로 뽑힌 비례 대표들은 다 물러나자"가 팩트다. 서기호, 정진후, 박원석 등은 경선을 거치지 않은 후보들이니까 물러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블랙박스를 조금씩 열어볼까 한다. 그들이 특별히 나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전혀 진보가 아닌데 진보 행세를 하면서 진보를 엉뚱한 종족주의로 오해받게 만들고 있어 그 병폐가 심각하기 때문에 이들을  적출하기 위해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뀐 뺑소니 사건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은 뺑소니를 해서라도 몰아내야 할 세력이다. 적어도 진보라는 이름은 쓰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 경험담 몇 개 풀어본다. 그 중 첫번째 경험담이다.

2007년 어느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미얀마에서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있었다. 특기할만한 것은 승려들이 다수 참여했다는 것이었고,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이 군인들의 총에 맞아 쓰러졌다. 국제사회에서 다시 미얀마 독재정권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아웅산 수치 석방", "학살의 중지", "공정한 선거 실시"등을 요구하는 국제적인 압력과 시민단체들의 연대성명이 확산되었다. 시민단체들의 거센 항의와 불매운동에 견디지 못하고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이 미얀마에 투자한 법인을 철수하는 일도 발생했으며, 독재자라 할지라도 돈 벌게 해주면 상관없다던 일본조차 일본인 기자가 총격으로 사망한 상황에선 더 이상 미얀마를 지원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국제사회의 눈은 한국을 바라보았다. 사실 2007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은 아시아 민주화 운동의 희망이고 등불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미얀마든 버마든 여튼 그 나라 민주화 운동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었다. 1988년 8월 8일 군부의 무자비한 총격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목숨을 잃은 그 나라의 8888 민주항쟁이 우리나라의 1987년 6월 항쟁과 필리핀의 피플파워 투쟁의 사이클 속에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에 힘을 보태고 싶었고,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당연히 참여연대 등 한국의 여러 진보단체들도 버마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지의 뜻을 표명했고 군부정권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아울러 버마에 시설을 두거나 거래하고 있는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 등을 결의했다. 이런 흐름속에서 전교조도 예외가 될수는 없기에 전교조에 대변인도 규탄성명을 내고 행동지침을 내기로 했다. 그걸 작성하는 일은 당시 부대변인었던 내 몫이었다. 대변인과 상의해서 성명서를 작성해서 내려고 했는데, 집행위원회에서 태클이 들어왔다. 당시 "통일위원장"(요즘 전교조에 마음에 드는게 딱 하나 있다면 통일위원장이 근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 거의 땅바닥에 드러눕다시피하며 이것을 반대했고, 여기에 상당수가 동조했다.

이들의 주장은 이러했다.

1. 이건 단지 미얀마 내부의 소요상태에 불과하며, 미국과 유럽이 선동해서 일어난 일이다.
2. 아웅산 수치는 친미친영 부르주아 인사이며 민족민주세력으로 분칠된 짝퉁이며, 미국과 유럽의 여론 조작으로 만들어낸 허상이다.
3.  한나라당 등 보수파들이 이들의 소요를 민주화 운동으로 둔갑시킨 것이니 전교조가 여기에 부화뇌동하면 안된다.
4. 따라서 미얀마 정권을 지지하는게 진보진영의 올바른 포지션이다.

너무도 상식에서 벗어난 주장이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미국의 심리전에 포획되었고 자기들만 진리를 알고 있다는듯한 오만한 태도에 양식있는 전교조 선생님들은 매우 당황했다. 그래서 어떤 분이 "아무리 그래도 국민을 총으로 쏴 죽이는 정권을 옹호하냐?"라고 항의하자, 전교조 간부 중 한 사람의 사람을 더 당황스럽게 만드는 대답. "그러게, 아무리 반동분자라도 죽여선 안되지."

하지만 전교조는 양식있는 교사가 이런 꼴통들보다는 더 많은 조직이다. 그래서 미얀마 민주화 운동 지지 성명은 기어코 나갔지만, 아뿔싸, 대변인실에서 작성한 성명서에 누가 집어넣었는지 이런 사족이 슬그머니 삽입되어 있었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도 전 세계적으로 버마의 유혈사태를 비난하면서 민주화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나라들의 태도는 표리부동하다. 이들 역시 국가 이윤에 급급하여 버마의 천연자원 개발에 관여하여 이윤을 챙기고 말로만 민주화 지지 운운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 모 기업은 무기기술까지 거래 했다고 알려졌다. 철저하게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참으로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미국과 유럽이 말로만 민주화 지지 운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치자. 하지만 당시 말로조차도 민주화를 반대해서,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큰 걸림돌이 된 중국에 대해서는 왜 일언반구도 하지 아니했는가? 당연히 못했겠지. 북한이 어른으로 모시는 나라를 어떻게 씹나?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미얀마 민주화 운동 지지성명을 저지하려했던 전교조내 일부 운동가들의 논리가 결국 친북적인 어느 사이트에 게시된 글에 나온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쯤 그 싸이트는 막혔거나 망했거나 했겠지만, 하도 기가막혀서 이럴때 쓰려고 내가 캡쳐해 두었다. 거지 발싸개 같은 국보법 때문에 그 글을 여기에 게시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그 글의 저의는 결국 북한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고 교류를 강화하고 있는 미얀마 정부를 왜 폭정으로 몰고가느냐?였다..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북한하고 비슷한 체제를 왜 나쁜 체제라고 하느냐?" 였다.



여기에 달려있던 댓글도 참으로 가관이다. 이게 그들의 인식 수준이다.
좋은 소식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웅산 수지는 참으로 못생긴 여성이지요.



저 글을 쓴 작자는 나중에 사이버 민족 어쩌구 하는 사이트에 정신병자같은 글 올리다가 정신병원이 아니라 감옥에 갔다.(그래서 국보법은 나쁜 법이다. 바보라는 이유로 감옥에 보낸다니 말이 되는가?) 그러면서 마치 양심수라도 되는양 하고 있는데, 일설에는 재판정에서도 "***장군님 만세"를 외쳤다고 하니 나름 소신범이긴 하다.

하긴 선군정치를 대단한 정치사상이라고 주장하는 무리들에게 군부독재는 최상의 정치 체제이겠지. 부칸도 미얀마도 장군님이 통치하는 나라니 장군님 물러나라는 시위를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겠지.

단언하건대 진보의 탈을 쓴 자들 중에는 인식 수준이 요 정도인 사람들이 제법 있다. 사실 그 수가 많지는 않은데 단결력이 강하고 목소리가 큰데다가, 평소에는 착한 사람으로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가려내기도 어렵다. 그리고 이번 통진당 분열사태는 누가 그들인지 아주 화려하게 커밍아웃 한 사건이다. 나는 철저한 좌파다. 그러다 보니 전술적 관점으로 상황을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니 그들이야 억울하건말건 그건 내 알바 아니다. 역사는 그들을 결국 화석으로 몰아 말려죽일것이며, 그들의 고사됨은 우리역사가 그만큼 진보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