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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교육감 선고공판 뉴스보다 짜증나는 차기 하마평

곽노현 교육감의 상고심 선고공판 날짜가 나왔다. 또 추석 전날. 작년에도 추석 전날에 구속시키더니, 또 추석 민심용 이벤트를 하려나 보다. 물론 대법원에서 결단을 내려 뜻밖의 선고를 할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최선을 다하되, 최악에 대비하라"는 아웅산 장군의 말 대로 일단 최악도 생각해 두기는 해야겠다.

그런데 곽교육감의 직상실 운운하는 뉴스보다 더 짜증나는 뉴스는 따로 있다. 교육감직 상실이야 이미 지난 4월17일 항소심 판결 이후 각오하고 있던 일이다. 그래서 곽교육감과 그를 위해 일하는 서울교육혁신 일꾼들은 언제 교육감을 잃게 될지 모르는 상황속에서 되도록 많은 개혁성과를 이루기 위해 피눈물나게 싸워왔다.

보수파 관료들이 6월 28일, 늦어도 7월 17일이에 선고공판과 함께 곽노현 교육감은 사라진다고 생각하며 사보타지 할때 어거지로 개혁을 밀고가던 입장에선, 그래도 9월 인사 및 2013년도 사업계획, 그리고 조직개편안까지 마무리 짓게 된것은 하늘이 도와주신것이라 생각하며 매우 감사히 여기고 있다. 나는 7월 초, 정말 선고공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을때, 초촐한 식사자리에서 곽교육감이 보여준 각오와 달관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때 강경선 교수가 "저들은 결국 너를 집어 넣으려 할거야"라고 단언하자, 곽교육감은 "아니, 넉달 들어갔다 온걸로 부족해?"라고 반문했지만, 이미 어떤 결과든 다 걸머지고 가겠다는 모습이었다. 그때부터 곽교육감은 나에게 나이차는 10년 이상 나지만 더 이상 진보교육감이나 뭐 그런 것이 아니라 오랜 벗처럼 느껴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직을 상실하건, 남은 8개월을 복역하건, 아니면 나중에 다시 명예가 회복되건, 한 사람의 삶은 그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평가할 수 있는 것이며, 그는 그 순간 모든 보상을 충분히 받고 그가 믿는 신의 품으로 갈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곽노현 교육감의 선고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상황에 따른 플랜 A와 플랜 B를 가동할 뿐, 흔들리거나 멘붕하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교육감이 생환하면 이제부터 초고속으로 교육개혁을 밀어 붙일 것이며, 만약 저들의 손아귀에 떨어진다면 최선을 다해 투쟁하면 될 일이다. 어차피 나는 교육청과는 협조보다는 투쟁이 더 익숙하다.

정작 나를 짜증스럽게 만드는 뉴스는  12월에 재보선 운운하면서 거론되는 예비 후보들, 특히 특히 진보교육감 후보들에 대한 하마평들이다. 거기에 더 이상 보는것만도 지겨운 인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전교조 위원장을 거쳤다는 것이다.

물론 이분들이 교육민주화 운동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고생은 합법화 이후 한국 최대의 시민단체인 전교조의 위원장을 역임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받은 것이 아닐까? 전교조 합법화만으로도 꿈같은 기쁨이었을텐데, 그 합법 전교조의 위원장까지 지냈으니, 평생의 영광과 보람으로 느끼고, 다시 교단으로 돌아가서 아이들 잘 가르치고 정년퇴임한뒤 후배 교사들에게 도란도란 이야기나 남겨주는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런데 왜 이렇게 노욕이 남아 자꾸 정치판 선거판을 기웃거리나?

이 전직 전교조 위원장들을 모두 만나본 내 소감은 이 분들은 정치는 커녕 교육에도 전문가가 아니라는 냉정한 평가였다. 이들이 얼마나 교육에 전문적이지 못하고, 이들의 교육혁신관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졌는지는 이분들 중 한분이 최근 신간발표회까지 수천만원 들여가면서 낸 책을 슬쩍 훑어보기만 해도 금방 알수 있다.

게다가 그 분은 정치권에 진출했던 분이다. 그래서 이미 정당 대표까지 지내고, 서울시장 후보도 나오려고 했던 분이다. 다시 학교를 생각한다고 하시긴 하지만 실제로 1999년 전교조가 합법회 된 이후 2012년 지금까지 그 분이 학교에 계셨던 시기는 2006~2007년 뿐, 나머지 기간은 늘 노조전임, 민주노총위원장, 민노당비대위원장, 방문진위원, 그 외 김대중, 노무현 정권 아래서 수만가지 감투들을 쓰고 계셨을 뿐이다.

나는 이 분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때 이미 시작된 신자유주의 교육시장화에 대해 단 한마디도 부딪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 분이 전교조 원로답게 기성의 주류 교육학을 박살내고 통쾌한 진보교육담론을 펼쳐나간 것을 본 적이 없다. 이 분이 곽노현 교육감처럼 어찌 보면 몽상과도 같은 새로운 교육의 꿈을 설파하는 것을 들어 본적이 없다.

부탁하노니, 제발 전교조 전직 위원장님들은 이제 그만 나오셨으면 한다. 이미 정진후 의원만으로도 충분히 전교조는 망신을 당했다. 굳이 전교조 출신 누군가가 필요하다면 7만 조합원 중에서 훌륭한 인재를 많이 추천들 해 주시라. 그게 위원장이 할 일 아닌가?

물론 이분들의 고된 투쟁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투쟁의 보상과 영광은 이분들이 평생을 바친 전교조에서 만들어 주어야지, 교육청이나 정부가 만들어 줄 일은 아니다. 그건 그분들의 투쟁을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일찍이 한나라를 세운 고조는 자신은 마상에서 칼쓰고 활쏘면서 천하를 얻었다면서 선비들을 무시하고 깔보았지만 "마상에서 얻는 천하, 마상에서 다스리시려나?"란 말에 바로 설복하고, 무사가 아닌 선비들을 중심으로 나라를 꾸리기 시작했다. 민주화 투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간난신고끝에 투쟁에서 승리하는 능력과, 공식적인 정부기구를 맡아서 혁신하고 제대로 운영하는 능력은 다른 것이다. 이제는 투사가 아니라 전문가가 필요한 시대다.

투사들이여. 진보진영에도 전문가는 많다. 자꾸 투사들을 내보내서 보수진영의 전문가 앞에서 망신당하게 하지 말고, 전문가들을 내세우라. 그대들에 대한 보상은 그대들의 삶, 역사의 평가가 해줄것이다. 그것으로 부족한가? 그럼 무슨 진보인사?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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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