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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대통령과의 대화 (1)

이 글은 원래 단행본으로 내기 위해 출판사와 2010년에 계약했던 원고입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편집 작업에 들어가지 못해 묻혀버리게 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이런식으로라도 먼저 공개할까 합니다. 대통령 선거기간 지나면 애초의 집필의도도 사라지니 말이죠. 혹시 인터넷에서 인기라도 끌면 다시 편집작업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육대통령과의 대화



: 20**12월의 어느날
장소: 방송국 스터디오
 
등장인물
고정 출연자
교육대통령: 대통령 당선인. 교사 출신이며 교육대통령이란 필명으로 활동한 블로거였다가 정말로 대통령으로 당선됨.
원정규: 사범대학 교수. 철학자
나교수: 사범대학 교수. 정치학자
오자모: 중학생, 초등학생 자녀를 둔 어머니.
우부친: 고등학생 자녀를 둔 아버지
이홍주: 전직 교육부 장관
송혁재: 교사, 전교조 활동가
하열광: 교사, 교총 회원
 
 
그 외 교사들, 학부모들, 학생들 필요에 따라 등장
 
프롤로그: 교육에 대해서는 쉽게 말할 수 없다
 
방송국 스탭들이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나교수가 긴장된 모습으로 원고들을 뒤척이고 있다. 이때 원정규 등장.
 
원정규: 아이고, 나교수님 오랜만입니다.
나교수: 잘 지내셨죠?
원정규: 그거야, ‘이란 것이 무엇을 뜻하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이 별 탈 없이란 뜻이라면 잘 지냈습니다. ‘이 어떤 바람직한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느냐를 뜻한다면 글쎄요, 그건 확답을 드릴수가 없습니다.
나교수: 하하하, 그냥 인사말에 뭘 그리 분석적으로 대답하십니까? 하긴 그 분석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에 제가 원교수님을 모신 겁니다만.
원정규: , 아닌게 아니라 나교수께서 저를 토론회 고정 패널로 추천하셨단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 평소 나교수님은 저랑 상극이라고 생각했던지라. 저는 소위 좌빨 아닙니까?
나교수: 그건 대통령 당선인이 먼저 절 놀라게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우파라고 할 수 있는데 진보진영 후보로 대통령 당선된 분이 저한테 주례 방송 토론회의 진행자가 되어달라고 부탁을 했으니 말입니다. 저는 그걸 교육정책은 좌우의 모든 견해를 폭넓고 다양하게 듣고 결정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정 반대편에 계신 원교수님이야 말로 적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원정규: 멋지십니다. 나교수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최대한 왼쪽에 서 보겠습니다. 그런데 또 어떤 어떤 분들이 나오십니까?
나교수: 우선 당선인과 대를 세울만한 정치인으로 이홍주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모셨고요. 학부모 두 분과 전교조 및 교총 선생님 한 분씩을 모셨습니다. 그 외에 방청객 패널들을 모셨고, 경우에 따라 게스트를 초빙할 생각입니다.
원정규: , 이거 정말 기대가 되는데요?
나교수: 그런데 방송 들어가기 전에 제가 좀 감을 잡아야 할 것 같아서 그러는데요, 원교수께선 교육이란 대체 무엇이며, 무엇을 목적으로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원정규: , 이거 어려운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기 어렵겠는데요?
나교수: 아니, 철학을 전공하신 분이 초장에 답을 못 찾겠다고 나가 떨어지시면 어떡하십니까?
원정규: 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더 그러는 겁니다. 이른바 교육철학의 명저들은 거의 대부분이 결론을 물음표로 끝내더러는 것입니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하고 책을 시작하고서는 결국 교육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아니면 교육은 어떠해야 할까? 하면서 책이 끝나버립니다. 어떻게 보면 교육철학이라는 것이 끝없이 물음표를 던지는 작업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나교수: 듣고 보니 그러네요. 그런데 교육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어렵고 복잡하다는 건 우리 교육학자들은 누구나 다 아는 얘기 아닙니까?
원정규: 물론이죠. 문제는 우리는 그게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교육 전문가나 교육학자가 아닌 사람들은 그걸 전혀 어렵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교수: 하기사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가 교육전문가라는 말도 있죠.누구나 교육에 대해서는 한 마디씩들은 하니까요. 하지만 그거야 웬만한 대한민국 남성들은 저마다 군사전문가이고 축구해설가인 것과 비슷한 현상이 아닐까요?
원정규: 그렇죠? 대부분의 남성들이 사실상 군인 출신이니까요. 그래서 국방관련 문제 나오면 저마다 다 아는 척들을 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작전체계라거나 무기 체계 같은 것들을 알고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또 축구도 그렇죠? 실제로 축구의 기술이나 전술에 대해서 잘 알면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그냥 TV중계 본 거, 군대에서 공 차본 거 정도가 전부죠.
나교수: 교육 이야기랑 축구 이야기는 경우가 좀 다르지 않을까요? 평범한 시민들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중년층이 되었을 때 적어도 한 두 명의 자녀를 꽤 여러 해 동안 키우고 교육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아이들을 십 수 년 길러 봤으니 교육전문가 내지는 아마추어 발달심리학자로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원정규: 과연 그럴까요? 물론 누구나 자기 아이들을 키워 봤으니 교육에 대해서는 웬만큼 알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통념이긴 합니다. 하지만 실상 많은 부모들이 교육은 커녕 자기 아이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 알지 못하면서도 내 자식은 내가 잘 알고, 내 자식의 진로는 내가 결정한다는 고집을 부리면서 전문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이런 저런 요구만 하니 문제라는 겁니다. 너도 나도 교육에 대해 한 마디씩은 하지만 그건 알고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책임한 발언들이죠.
나교수: . 그런 면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실제로 교육에 대한 여론은 좀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면이 많습니다. 사사로운 욕망이나 견해가 너무 쉽게 공론화되죠.
원정규: 사실 교육 당국의 태도도 잘못되었습니다. 공교육의 목적은 개개인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 아닙니까? 의무교육이 뭡니까? 내 자식 내가 가르치겠다는 것을 금지하고 강제로 모든 아이들을 학교로 끌고 오는 것입니다.
나교수: 알고 보니 원교수님이 나하고 그렇게 뜻이 다른 것 같지 않습니다. 그동안 교육당국의 태도는 확실히 문제가 많았습니다. 공교육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서비스일 뿐 아니라 여기서 이런 것들을 배워야만 합니다라는 시민의 의무이기도 한데 서비스만 강조했었죠. 그래서 학부모들의 이기적인 요구들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긋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건 김대중, 노무현 두 분 대통령 때도 마찬가지 아니었나요?
원정규: 아무리 교육에 대해 잘 모르면서 아는척 하는 사람들이라 해도, 결국 그들이 유권자고 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정치하는 사람들이 표 가진 사람들 앞에 큰 소리 치기는 어렵죠.
나교수: 그러니 수능 난이도를 낮추겠다느니 EBS 교재에서 출제해서 누구든 고득점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따위의 말이나 하는 것 아닙니까? 이런 건 교육 당국자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습니다.
원정규: 그럼 뭐라고 말했어야 했죠?
나교수: “수능의 목적은 현재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가려내는 것이다.” 라고 단호하게 말했어야 합니다.
원정규: . 그건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니다. 하지만 표 달아나는 소리가 다 들리는군요.
 
이때 담당 프로듀서가 등장한다.
 
프로듀서: , 이제 다른 패널들도 오셨으니 인사 나누시고 대통령 당선인께서 들어오시면 시작하겠습니다.
 
오자모, 우부친, 이홍주, 송혁재, 하열광이 들어와서 자기 지정석에 자리한다.
 
나교수: , 다들 잘 오셨습니다. 제가 이제 이 토론을 진행하게 될 겁니다.
송혁재: 진보 대통령이라더니 취임도 하기 전에 배신하시는군. 이런 중요한 방송 토론에 수구꼴통을 사회자로 세우다니.
나교수: 제가 보수적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그렇다고 수구꼴통까지는 아닙니다.
원정규: 하하. 저도 나오지 않았습니까?
송혁재: 원교수는 무슨 진보인줄 아세요? 원교수님은 다만 양심적 엘리트거나 기껏해야 개혁주의자에 불과하다고요.
원정규: 아이구, 그렇게 보십니까? 하지만 여기 하선생님은 달리 보시는 것 같은데요?
하열광: 그야 물론이죠. 원교수 당신은 좌경용공세력이라고.
오자모: 다들 왜 그러세요? 교육의 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학부모들 앞에서 서비스 공급자들이 그렇게 서로 언성을 높이면서 편싸움들이나 하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이게 무슨 꼴이죠?
송혁재: (발끈하며)뭐요? 서비스, 공급자라고요? 그럼 우린 선생이 아니고 무슨 장사꾼이란 말입니까? 교육이 무슨 사고 파는 물건입니까?
이홍주: (무게 잡으며) 교육이 그럼 서비스가 아니면 재화입니까? 거 경제 공부 좀 하세요. 교육도 엄연히 서비스 상품이라고요. 그러면 당연히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맞춰야지. 그런데 그 동안 공급자 위주로만 교육이 움직인 건 사실이잖아요?
송혁재: 아이고, 퍽도 수요자 중심이셨습니다. 그렇게 수요자 중심이라서 폐지한 체벌 도로 살리고, 수요자들이 선택한 교장을 한사코 임명 안하려고 몸부림을 치셨습니까?
이홍주: 그거야 교장 공모제가 원래 취지와 달리 정치적으로 편향된 전교조 교장을 자꾸 만들어내는 것 같으니까.
송혁재: 그럼 그것도 수요자들의 선택에 맡겼어야죠? 좌경이건 우경이건 간에 학부모가 선택한 건 존중했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홍주: 그 학부모 대표라는 사람들부터 이미 편향된....
 
프로듀서:(당황하며) , 이제 좀 진정하셨으면 합니다. 당선인께서 도착하셨습니다. 곧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 정숙해진다. 잔뜩 긴장하고 기대에 부푼 모습. 교육대통령 카페이 입장해서 자리를 잡는다. 교육 대통령이 자리에 앉자 사람들도 모두 자리에 앉는다.

교육대통령: 이렇게 많은 분들이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잠시 분위기가 정돈 되고 나서) 여러분이 다 아시다시피 저는 교육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되었습니다. 따라서 제가 취임하기 전에 가장 공들여 준비해야 하는 정책도 교육정책입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의 허심탄회한 의견이 매우 필요합니다.

앞으로 이 자리는 되도록 제가 여러분들의 말씀과 자유로운 토론을 경청하는 자리로 가져갈까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여러분들의 의견을 모두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정책에 반영할 만한 말씀을 하신다면 그것은 반드시 반영할 것이지만, 여러분들이 교육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실 경우에는 오히려 그것을 분명하게 지적할 것입니다. 그러니 때로는 제가 조금 단호하고 비판적으로 대답하더라도 너무 마음 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사실은 저보다도 저기 계신 원정규 교수님을 조심해야 하겠지만요. 말에서 조금만 빈틈이 보이면 바로 지적하시는 분이라서. (원정규가 씩 웃는다) , 나교수님, 이제 진행해 주시겠습니까?

나교수: , 그럼 대통령 당선인과의 대화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패널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제 왼쪽에 계신 분부터 차례로 소개하겠습니다. 시민교육철학 연구회 회장이신 원정규 교수님이십니다. 전국교직원 노동조합 서울지부장을 지내신 송혁재 선생님이십니다. 이홍주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십니다. 하열광 한국교원단체 총연합 정책연구소장이십니다. 그리고 학부모님들을 대표해서 오자모 어머님과 우부친 아버님이 나오셨습니다. (박수) , 그럼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토론의 방식은 먼저 패널들이 어떤 화두를 놓고 자유로이 토론한 뒤 대통령 당선인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당선인께서는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을 뿐 아니라 중학교에서 20, 대학교에서 6년을 가르치신 교육 실천가이기도 하십니다. , 그럼 첫 번째 화두를 던져 볼까요? 처음이니 만큼 문제제기부터 시작해야겠죠? 그래서 한국 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이 화두를 먼저 던져볼까 합니다. 어느 분부터 말씀 하시는 게 옳을까요? 아무래도 학부모님 말씀을 먼저 들어 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오자모: 제 생각은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랍니다. 뭐니 뭐니 해도 저는 당선인께서 학부모들의 사교육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저희 집이 그래도 중산층은 되는 집인데도 사교육비 때문에 저나  아빠나   없이 허리가  지경이랍니다

나교수: 사교육비를 줄여달라는 말씀이셨습니다.(교육대통령의 다소 언짢아 하는 모습을 잠깐   그럼  다른 말씀은 없으십니까
우부친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저는 고등학생 자녀를 둔 아버지입니다.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뭣보다도 새 정부는 학교 선생님들이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자식이다 생각하고 열과 성을 다해서 가르친다면  그렇게 돈을 들여가면서 학원에 보내겠습니까? 학교에서 원하는 만큼 공부가 안되니까 모자라는 공부를 하려고 학원에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제는 학교 선생님들도 세상의 매운맛을  보여 줘서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합니다 대통령 당선인께서 그런 일을  해주셨으면 합니다.(학부모로 보이는 사람들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일부는 박수도 친다

나교수: 예상대로 사교육문제부터 시작되는군요
송혁재:( 못참겠다는 듯이 격렬하게 일어서며)  다들 말씀하시는 게 가관이십니다그러니까 결국 모든 문제가 선생들이 경쟁을 안 해서 비롯된 거라고요
나교수: , 송선생님. 이제 뭐가 가관인지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송혁재: 내가 성격이 직설적이라 그냥 대 놓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거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솔직히 저는 지금 여기서 말씀하고 계시는 부모님들이 진짜 친부모 맞나 의심스럽네요. 혹시 계모, 계부 아니신가요?
우부친: (화를 내며) 아니 뭐 이렇게 무례한 사람이 다 있어요? 뭐라고요? 계모, 계부?
나교수: , 죄송하지만 계부, 계모라는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이혼과 재혼이 드물지 않은 요즘에는 좀 그런 것 같습니다. 실제로 새어머니, 새아버지랑 사는 학생들도 많은데, 그런 편견을 심어주어서는 안되겠죠.
송혁재: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했네요. 좋습니다. 그럼 말을 바꾸죠. 지금 사교육비들을 걱정하고 계시는데, 이렇게 자식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생각들 하고 있는데, 그런 분들을 과연 부모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 하는게 제 말의 요지였습니다.
오자모: 이 보세요. 송 선생님도 자식 키우시잖아요?
송혁재: 저는 자식을 키우지 않습니다. 자식이 가축입니까? 제 자식은 키움을 당하는게 아니라 자라고 있습니다.
오자모: 뭐 어쨌거나 좋아요. 그럼, 자식 둔 부모 입장이라고 하죠. 자식 둔 부모 입장에서 자식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송혁재: 바로 여기에 계시지들 않습니까?
우부친: 우리가 그렇다고요? 내 참. 근거를 대요. 근거를.
송혁재: 근거요? 하신 말씀들이 근겁니다. 아니 어떻게 우리 교육 문제를 한번 풀어보자고 모인 자리에서 제일 먼저 튀어나오는 말이 사교육 문제입니까? 그것도 사교육비 때문에 허리가 휠 지경입니다. 둘이 벌어도 감당이 안 됩니다.” 이 따위로 말입니다. 아니 그럼 돈이 아주 많은 집 아이들은 사교육비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부담되지 않으니 아무런 교육 문제가 없는 겁니까? 그렇게 사교육비가 문제면 교육 이야기 하지 말고 차라리 돈을 많이 벌게 해 주세요 라고 말하세요. 그런데 뭐, 선생들이 경쟁이 부족해요? 선생들을 갈아치워요? 선생들 일자리를 불안하게 만들어요? 이게 지금 하실 말씀입니까?
우부친: 아니, 당신네 선생들이 뭐 잘한 게 있다고 핏대를 올려요?
송혁재: 아니, 학부모는 무슨 면책권이라도 가졌답니까? 학부모기만 하면 아무 소리나 해도 된다고 누가 그래요?
나교수: (둘을 뜯어 말리며) 이거 처음부터 너무 뜨겁게 진행되는 것 같은데 열기를 좀 식혀야 할 것 같습니다.
이홍주: (비아냥 거리며) 하여간 공부하고 일하기 싫어하는 선생들 한테는 전교조가 핵우산이라니까. 그러니 내가 하자는 대로 공교육 강화했어 봐요. 그럼 지금쯤은 사교육 문제는 사라졌을 걸요? 거 무슨 진보교육감이니 하는 것들 때문에 발목만 안 잡혔어도. 어휴.
송혁재: 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세요? 장관, 아니 전 장관님의 공교육 강화 정책이란 게 결국 방과 후 학교에서 밤늦게 까지 과외하는 거, 일제고사 봐서 학교끼리 경쟁 붙이는 거 밖에 더 있었어요? 결국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학교에서 값 싸게 사교육 제공해 주는거 밖에 더 되었어요? 그러니 그것 역시 돈 문제라는 건 마찬가지네요. 사교육비가 비싸다고 아우성치니까 사교육 싸게 만들어주겠다. 이게 무슨 교육 정책입니까? 비싼 돈 내고 죽도록 공부하는 애들은 안쓰럽고, 싼 돈 내고 죽도록 공부하는 애들은 괜찮다는 거지. 이럴 때는 정말이지 어른들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고통에 대해 이렇게까지 둔감할 수 있는지 소름이 다 끼친다니까요. 더구나 부모라는 사람들이. 혹시 애들 괴롭히는 걸 은근히 즐기시는 건 아닌지 의심 간다니까요.
(방청석의 학부모들 노한 듯 술렁인다.)
오자모: 어머 그 말씀은 정말 너무하시네요. 아까는 학부모들을 계모 취급하시더니 이제는 변태 취급하시나요? 우린 다 자식 사랑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좋은 교육을 시키고 싶어서 사교육이라도 시키려고 하는 거고, 그러다 보니 너무 경제적 부담이 된다고 말하는 거지, 돈을 아끼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고요.
나교수: (난처하게) , 송 선생님은 잠시 진정하시고요. 하열광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열광: (무게를 잡으며) 우리 일선 교사와 학교 관리자, 행정직들은 학부모님들이 심려하시는 바가 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최선을 다해서 공교육의 품질을 향상하여 사교육에 결코 뒤지지 않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저희 학교를 믿어주시고 사랑 주시고...(중언 부언한다)
송혁재: (말을 끊으며) 사랑은 안 줘도 좋으니 학교 돈이나 떼어먹지 마세요.
하열광: 아니 뭐요? 거 같은 교직단체끼리 서로 모함하지 맙시다.
송혁재: 같은 교직단체요? 부정부패 횡령으로 기소된 교육자들이 어느 단체 소속인지 한번 자료 열어볼까요? 우린 댁들하고 절대 같은 교직단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나교수: . 두 단체 간의 사안은 두 단체 끼리 따로 해결하도록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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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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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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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