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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대통령과의 대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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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문제는 심각한 교육문제가 아니다


교육 대통령: (빙긋이 웃으며 마이크를 당긴다) 하하. 마침 나도 말이 하고 싶어 근질근질했지만, 되도록이면 시민들 생각을 많이 들어보고 싶어서 억지로 참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모두 웃음) 옛날 얘기 하나 해 볼까 합니다아마 여기 패널에 나오신 분들은 제 또래들이시니 1989년에 나온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를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원래는 임정진씨의 소설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강우석이 감독이었고, 주연이 누구였더라...

우부친: 거 있잖습니까, , ... , 이미연

교육대통령: 맞아요! 고맙습니다. 이미연이 나왔었죠. 아마 이 영화 내용은 다들 아실겁니다. 과중한 입시부담 때문에 고통 받던 여고생이 결국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라고 절규하면서 자살하고 만 슬픈 이야기였죠. 이 영화를 보고 당시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까? 입시지옥이라는 말이 널리 알려지게 만든 계기도 되었죠. 그런데 그때 입시 지옥이라는 말을 썼던 것은 이 영화에서처럼 학생들이 고통 받는다는 의미였지, 결코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이 고통스럽단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즉 사람의 문제였지, 돈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자모를 보며) 혹시 그 당시 우리 고등학생들의 고통의 상징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오자모: 그거야 당연히 야자, 보충수업, 0교시 이런 거죠.

교육대통령: 그렇습니다. 당시 고등학생들의 고통의 상징은 야간자율학습보충수업”, “0교시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활동들은 모두 사교육이 아니라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이었습니다. 물론 금전적 지출도 그리 크지 않습니다. 당시 보충수업비, 자율학습비 때문에 허리가 휠 정도라면서 탄식하는 학부모님들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이라는 말까지 나온 것은 한창 자라고 꽃피어야 하고 꿈을 키워야 할 청소년들이 새벽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붙잡혀서 지루한 학습노동을 강요받는 것이 안타까워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런 현실에 대해 얼마나 많은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가슴 아파 했습니까? 그리고 바로 그게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의 창설로 이어졌던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시절을 요즘과 비교해 봤더니 이건 뭐 1365일 방학이나 마찬가집니다. 그 당시 고3병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는데, 그건 그만큼 입시 부담이 고3때 집중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시절에는 밤 아홉시가 되면 어린이 여러분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라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린이들은 어떻게 하고 있죠? 아홉시에 잠자리요? 어림도 없죠. 초등학생 조차 밤낮으로 학교야 집이야 학원이야 뛰어다니느라 제대로 챙겨 먹지도 못하고, 운동은 절대 부족하며, 12시 넘어서 잠자리에 들기가 일쑤 아닌가요? 늦어도 초등학교 3학년 때 부터 이런 생활을 대학 들어갈 때 까지 해야 합니다. 10년을요

이게 무슨 짓이란 말입니까? 전 적어도 양식 있는 학부모라면 이런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 할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애들 잠좀 푹 자게 해 주세요. 이런 말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러리라 예상은 하고 있엇지만, 결국 사교육비 문제가 나왔습니다.

우부친: 하지만 당장 대학 들어가는 일이 급하지 않습니까? 일단 급한 일부터 해결해야죠. 그게 현실입니다.

교육 대통령: 아니죠. 지금 당장 급한 것은 우리 아이들은 망가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요. 그것도 부모의 적극적인 협조나 방조 아래서 말입니다.
원정규: 저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도 문제지만 우리 기성세대의 도덕과 감수성이 무뎌지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나교수: , 드디어 원 교수님이 포문을 여시는군요.

원정규: 저는 이홍주 장관께서 자랑하신 방과후 학교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까 송 선생님 말씀처럼 이건 80년대처럼 아이들을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붙잡아 두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아까 당선인 말씀처럼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가혹하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학원에서 늦게까지 붙잡혀 있으나 학교에서 늦게까지 붙잡혀 있으나 학생들 입장에서 뭐가 다들까요? 어차피 학습 중노동 하는 건 마찬가지 아닐까요

냉정하게 말하자면 학원과 방과후의 차이는 돈입니다. 학원에서 비싼 돈 들여가며 아이들 혹사시키던 것을 학교에서 저렴하게 혹사시키는 걸로 대체한 겁니다. 그러면서 사교육비 경감에 성공했다고 자화자찬하셨고, 학부모님들도 거기 동의하셨단 말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하지만 그러면서 우리가 진짜 고민해야 할 논점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 다시 정리해 보죠. 우리가 사교육을 문제라고 말한다면 그게 학생들의 과중한 학습노동 때문인가요 아니면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 때문인가요?

이홍주: 그 두 개를 어떻게 따로 떼어놓고 말할 수 있습니까?

원정규: 경제학을 전공하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다뇨? 좋아요. 경제학 식으로 말해볼까요? 다른 조건이 같고, 학생들의 학습노동,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 중 하나만 해결할 수 있다면 우린 어떤 것을 먼저 해결해야 할까요?

우부친: 글쎄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일단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할 것 아닙니까?

원정규: 그 발등의 불이란 게 뭐죠?

우부친: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제대로 된 삶을 살 것 아닙니까?

송혁재: 정말 들어 넘기기 어렵군요. 겨우 너희들 미래를 위한거야 한 마디로 어린 청소년들에게 만약 어른들이었다면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해야 할 정도의 장시간 학습 노동을 강요하는 걸 합리화 하십니까? 그러니 여러분들 정말 부모가 맞습니까 하고 내가 물었던 것입니다. 대체 우리 어른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냉담진겁니까?

오자모: 제가 늘 느낀 건데 전교조 선생님은 말씀들을 참 잘하세요. 그런데 정작 책임들은 안 지시는 것 같아요. 송 선생님도 자제분 대학 보내실 거잖아요? 그리고 되도록 좋은 대학 보내실 거잖아요? 송 선생님은 댁에서 자녀들한테 건강 챙기고 즐겁게 살아라, 놀고 싶으면 놀아라 그러시나요? 왜 자기 자식한테는 안 그러면서 남의 자식 기르는 거 가지고 뭐라고 그러시나요? 일단 대학을 들어가야, 그것도 좋은 대학 들어가야 뭘 해도 하는거잖아요? 현실이 그런데 왜 자꾸 꿈같은 소리를 하세요? 그래서 정부가 일선 학교 선생님들 잘 복돋워서 우리 아이 공부 잘하게 해서 좋은 대학 가게 해 달라고 하는 건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생각인가요?

나교수: , 그럼 여기서 제가 중간정리를 좀 해도 될까요? 우리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라는 화두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1) 사교육비 부담이 문제다, 2) 학생들의 과중한 학업 부담이 문제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입이라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것 아니냐 이런 정도로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다소 불만스러워 하는 오자모, 우부친의 얼굴을 보고). 좋습니다. 그럼 사교육문제, 학생들의 학업 부담 문제, 대입 문제 이렇게 정리해 볼까요? (다들 동의하는 모습). 그럼 당선인께 한번 여쭈어 보겠습니다. 취임하시면 이것들 중 어느 것을 우선적으로 해결하실 생각이십니까?

교육 대통령: 당연히 두 번째 것부터 해결할 생각입니다.

나교수: 그럼 사교육 문제나 대입 문제는 덜 심각하단 뜻인지요?

교육 대통령: 저는 사교육 문제는 교육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대입 문제 역시 교육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패널 뿐 아니라 객석의 학부모들도 충격을 받은 모습으로 침묵들 하고 있다)

나교수: 그것 좀 의외의 대답이신데,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교육 대통령: 우선 사교육 문제부터 말씀드리죠. 엄밀히 말해서 우리나라의 사교육 문제는 사교육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너무 부족한 게 문제입니다.

이홍주: 거 말장난 하지 마세요. 당장 여기서 100미터만 나가면 널린 게 학원들인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당선인은 아직 대통령이 아니고 나는 아직 장관입니다. 경거망동하지 마세요.

교육 대통령: 그렇게 반응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그 동안 우리는 사교육 하면 입시학원만 생각해 왔으니까요. 하지만 사교육이냐 공교육이냐 하는 구분은 민간인이 담당하느냐 정부가 담당하느냐에 따른 구분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각종 특목고나 사립학교도 사교육으로 분류해야 하니까요.

이홍주: 사립학교야 운영 주체는 민간이지만 교육 내용은 국가가 지정한 교육과정을 준수하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공교육이죠. 교육학 박사라는 분이 그것도 모르십니까?

교육 대통령: 그러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학원에서 국가 교육과정 말고 다른 거 하나요? 오히려 국가 교육과정 중 극히 일부분, 그러니까 국영수를 집중해서 연습시키죠. 학원은 절대 공교육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공교육 범위를 벗어난다는 것은 학교 시험과 무관해진다는 뜻인데, 그럼 학원 문을 닫겠죠. 그러니 학원이야 말로 철저하게 국가 교육과정을 추종하는 곳입니다. 문제는 그 중 일부 과목에 대한 지나친 편중이죠. 학원이 진정 사교육이라고 불릴 수 있으려면 공교육이 감당하지 못하는 영역을 감당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원은 유감스럽게도 사교육이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이홍주: (퉁명스럽게)그럼 어떤 게 진~정한 사교육입니까?

교육 대통령: 우선 예술, 체육, 기술 교육을 보충하는 교육기관이 필요합니다. 물론 학교에서도 다루지만 이런 영역은 도제방식의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모두 감당하기는 어렵습니다. 예컨대 학교에서 음악 일반은 가르칠 수 있지만, 학생들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악기나 활동까지 감당해 주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건 피아노 학원, 기타 학원 등등에서 감당해야죠. 또 예술의 모든 장르를 학교에서 감당하기는 어렵습니다. 음악, 미술, 좀 더 나가서 연극이나 무용 정도까지는 할 수 있지만, 보다 세분화 된 특수 장르 수준까지는 어렵습니다. 이건 학교에서 익힌 일반적인 예술적 소양을 바탕으로 학원에서 감당해야죠. 체육 역시 기본적인 체력관리, 건강관리는 학교 체육이 감당하지만, 구체적인 스포츠 활동은 다양한 사교육 기관이나 각종 스포츠 클럽에서 감당하는 게 더 좋습니다. 이런 게 바로 진~정한 사교육입니다. 공교육으로는 미처 감당하지 못하지만 꼭 필요한 교육의 영역을 민간 부문에서 보완해 주는 그런 교육 말입니다.

그런데 흔히 사교육문제 하면 떠오르는 각종 입시학원들은 무슨 기능을 하죠? 공교육이 하지 못하는 것을 보충하고 있나요? 아니면 공교육을 대신하는 새로운 교육적 비전을 보여주고 있나요? 오히려 철저히 공교육 시스템을 따라다니면서 그 속에서 더 앞자리에 설 수 있는 요령만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사교육다운 사교육을 늘리는 것이 우리 나라에 필요한 사교육 문제 해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포츠 활동이나 컴퓨터, 디자인 등의 직업 교육 활동, 음악, 미술, 연극 등의 예술 활동을 사설 학원이나 사설 기관에서 배우고자 한다면, 저소득층 자녀를 중심으로 국가가 이를 지원해줄 계획입니다. 하지만 공교육에 기생하는 입시 학원 따위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국가더러 해결해 달라고 한다면 그건 매우 염치없는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입시학원은 공교육 체계 내에서 선발 시험만을 위한 편법을 판매하는 곳입니다. 편법과 반칙의 비용을 국가에게 요구 하다뇨? 이건 안 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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