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대통령과의 대화 (3) 1. 대한민국 학부모는 교육열이 너무 낮다.


앞의 편들을 보지 않으신 분들은 링크를 따라 앞의 편들을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 학부모는 교육열이 너무 낮다.


오자모: 당선인 말씀을 들으니까 좀 매정하게 느껴지네요. 솔직히 좀 서운합니다.

교육 대통령: 서운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습니다. 단지 국민들이 서운하게 느낀다고 해서, 해서는 안 될 일까지 해 주겠다고 나선다면 그거야 말로 파퓔리즘이 아니겠습니까?

우부친: 하지만 자식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사교육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물론 학원이 편법이고, 공교육을 교란하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안하면 대학에 가지 못하니 문제인걸 알아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이게 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높아서 비롯된 문제인데, 무작정 나무라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학부모의 교육열은 오바마도 부러워하지 않았습니까?

원정규: (끼어들며)저는 우리나라 학부모의 교육열이 높다고 해서 교육에 관심이 많다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교수; , 한국 학부모가 교육에 무관심하다? 그건 상당히 상식과 어긋나는 발언이신 것 같은데, 좀 자세히 설명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원정규: 어떻게 보면 좀 의외라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예를 한 번 들어 봅시다. 축구인들이 항상 국민들한테 주문이라도 걸린 듯이 하는 말이 국가대표 경기나 월드컵에만 관심을 주지 말고 국내 축구에 좀 더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입니다. 올림픽에서 펜싱이나 핸드볼이 금메달을 따면 이구동성 반복되는 말이 무관심 속에 일궈낸 값진 성과입니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그것을 화제로 많이 삼는 것과 그것에 관심이 많은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에 대해 대화 꽃이 만발하다고 해서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것이 아니며, 월드컵에서 국가 대표팀 응원하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고 해서 한국인들이 축구에 관심이 많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스포츠 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고, 스포츠 경기장마다 관중이 들어찰 때 비로소 한국인은 스포츠에 관심이 많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스포츠를 교육으로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대학입시로 바꾸어 놓으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홍주: (빈정거리는 투로) 그럼, 거 교육에 관심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원정규: 어떤 남학생이 어떤 여성에게 관심이 있으면 어떻게 할까요? 우선 그 여학생에 대해 알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알고 싶은 까닭은 다만 호기심이 아니라 그 여학생과 관련한 어떤 실천을 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잘되게 하던 아니면 보복이나 해꼬지를 하건 간에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저 보기만 한다면 그건 관심이 아니라 다만 관조에 불과하죠. 또 연예인에게 관심이 많은 청소년을 봅시다. 이 청소년은 그 연예인의 인기가 더 늘어나길 바라며, 그러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 무엇을 실천하려고 하며, 기회가 되면 실천할 의사가 있습니다. 또 그 연예인이 잘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 연예인의 현재 상태에 대해 더 잘 알고자 합니다. 이렇게 인식과 실천이 상호작용하면서 우리 삶이 개선되고 진보하는 것이겠죠.
그런데 우리나라 학부모님들, 물론 여기 계신 분들을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학부모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한국 교육, 학교가 어떤 식으로 개선되고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혹은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대해, 또 그 학교가 포함된 한국의 공교육 체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며, 또 알고자 노력하고 있나요?

오자모: 그렇게 거창한 것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 아이에 대해서는 잘 되기를 바라고 또 내 아이의 교육에 대해서는 알고 싶거든요.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럼 교육에 관심이 많은 것 아닌가요?

원정규: 지금 내 아이의 교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머님의 관심의 대상은 내 아이인가요 아니면 내 아이가 받는 교육인가요? 적어도 이 둘에 관심이 있다면 내 아이의 개선, 즉 내 아이가 더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야 하며, 교육의 개선, 즉 교육이 아이들에게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할 수 있기를 바라야 합니다. 그렇죠?

오자모: 그거야 당연하죠. 다 자식 잘 되라고 부모가 쓰고 싶은 돈 안 쓰고 하고 싶은 일 안하고 아껴가며 공부시키는 거잖아요?

원정규: , 이렇게 당장의 욕망을 억제하고 자녀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은 아주 훌륭한 미덕입니다. 저는 이런 한국 학부모들의 교육열을 높이 평가합니다. 문제는 열정은 있으나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내 자녀가 혹은 우리 국가대표 팀이 이기는 건 원하는데, 학교가, 공교육 제도가 혹은 축구리그가 어떻게 하면 발전할 것인가에는 관심도 없고, 참여할 의사도 없습니다. 이건 마치 월드컵 응원의 열기가 축구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과 판박입니다.

오자모: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원정규: 자녀의 교육에 투자한다는 것은 자녀가 미래에 성공하기를 바라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이 성공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셨나요? 또 성공의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저 떠도는 통념이 아니라 실제 자료를 뒤지면서 공부해 보셨나요?
자녀의 성공은 두 가지 요소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자녀, 그리고 미래의 성공. 따라서 자녀의 성공을 바란다면 자녀를 알아야 하고 미래의 성공 조건을 알아야 합니다. 성공을 한다는 것은 결국 사회 속에서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기여한다는 뜻일테니 말입니다.
즉 우리 사회, 더 나아가 국제사회의 현실과 전망에 대해서도 알아야 미래의 성공을 말할 수 있겠죠. 그리고 우리 사회, 더 나아가 국제사회, 지구 사회가 더 좋은 세상이 될수록 내 자녀가 좋은 삶을 살 가능성도 더 커지는 것이겠죠. 하지만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고, 내 자녀의 성공만을 맹목적으로 바란다면 이건 관심이 아니라 강박이겠죠. 그런데 어머님, 그리고 아버님 실례지만 자녀가 무슨 생각하는지, 혹은 자녀가 무엇을 원하는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십니까?

오자모: 사실은 그렇게 까지는...

원정규: 그리고 우리 사회, 더 나아가 국제 사회에서 어떤 이슈가 제기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 그리고 세계가 더 좋은 세상이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신 적 있습니까?

오자모: 먹고 살기 바쁜데 언제 그런 거 까지 신경쓰나요.

원정규: 자 보십시오. 자녀의 내면에 대해서도 또 자녀가 살아가야 할 세상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러면서 그저 치열한 경쟁, 학력만이 살길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모르고 있고, 또 알려 하지 않는데 무슨 관심이 있다고 할까요? 이건 자녀에게 자신의 인생 방정식을 강요하는 것이지 결코 자녀의 성공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 학부모들은 자녀 교육을 화제로 많은 이야기들을 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것에 관심이 많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자모: 우리가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실이 그렇잖아요? 한국 같이 대학 서열화가 되어 있는 나라에서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는 거 외에 어떤 성공이 가능하죠?

원정규: 그러니까 공부를 잘 하는 쪽이 이 사회에서 성공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죠?

오자모: 물론입니다.

원정규: 그런데 어떤 사람을 성공했다고 하시나요? 위신 있는 직업에 종사하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인가요?

오자모: 그만하면 되겠네요.

원정규: 그렇다면 우리 같이 살펴보도록 할까요? 우리 앞에 바사장이라는 분이 있다고 합시다. 이 분은 공부는 뭐 그냥저냥 중간치였고, 또 학교도 고등학교까지만 다녔지만 손재주가 뛰어나고 성실해서 자전거 수리에 일가견이 있다고 합시다. 그래서 이분은 작은 자전거 점포를 개업했고, 이 분의 솜씨가 입소문을 타고 타서 손님이 부쩍 늘어, 마침내 전국에 수십 개의 점포망을 거느린 거대한 자전거 쇼핑몰의 사장님이 되었고, 일련에 수십억씩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이 분은 성공하신 분이죠?

오자모: 두말 할 필요 없이 성공한 분이시죠.

원정규: 그럼 이 경우는 어떨까요? 공박사라는 분이 있다고 칩시다. 이 분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최고 대학을 나오고, 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제법 많은 저서와 논문을 남겼고,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면서 가르쳤던 훌륭한 제자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직 정규 교수 자리를 얻지 못해서 현재 나이가 서른 여섯이지만, 이렇다 할 직업은 아직 없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한 강의료, 각종 인세 수입 등으로 그럭저럭 살아갑니다. 걸핏하면 생활고에 쪼들리며 자기 집도 없이 전세살이에 겨우 마이너스 면한 통장이 자산의 전부입니다. 이 사람도 바사장 만큼 성공했다고 할 수 있나요?

오자모: 그건 좀....

원정규: 그렇다면 어머님께 선택의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자녀가 부유한 자전거 수리점 주인과 가난한 학자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길 바라십니까?

오자모: 어렵네요. 하지만 부유한 쪽이 더 나을 것 같네요.

원정규: 그러니까 저 둘 중 바사장이 더 성공했다는 뜻인가요?

오자모: 그런 셈이죠.

원정규: 돈을 더 많이 벌어서인가요?

오자모: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대학 강사와 큰 쇼핑몰 사장은 너무 격차가 많이 나잖아요?

원정규: 공부는 저 두 사람 중 누가 더 잘했죠?

오자모: 그거야 공박사죠.

원정규: 하지만 성공은 공부를 더 못한 바사장이 거두었네요? 그럼 공부와 성공은 별 상관이 없단 뜻인가요?

오자모: 아니, 잠깐만요. 바사장이 꼭 공부를 더 못했다고 할 수만은 없잖아요?

원정규: 그건 무슨 말씀이시죠? 가방끈이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데?

오자모: 가방끈이야 공박사가 더 길 수 있겠죠. 하지만 바사장은 가방끈이 짧을 뿐, 성공에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더 열심히 공부했을 거에요.

원정규: 이를테면 자전거의 구조, 자전거의 기능, 자전거 마케팅, 그리고 자전거 선진국인 일본이나 대만과 교류해야 하니 일본어, 중국어도 공부했을테고 이런 것 말씀이시죠?

오자모: 거기에 점포 관리라거나 고객 관리 같은 것들도 공부했겠죠.

원정규: 어쨌든 바사장은 학교 공부는 아니더라도 성공에 필요한 공부를 더 열심히 했을 것이라는 말씀이시죠? 그렇다면요, 만약 바사장이 자전거를 공부하는 대신 국영수를 공부했더라면 어땠을까요? 그래도 성공했을까요?

오자모: , 그건 아닐 것 같네요. 아무래도 학교 성적은 그다지 우수하지 않다고 했으니까요.

원정규: 그럼 공박사가 박사 공부 하는 대신 자전거를 공부했다면 성공했을까요?

오자모: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학교 공부를 잘했다고 해서 다른 거 까지 다 잘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원정규: 그러니까 사람마다 성공할 수 있는 영역이나 분야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죠?

오자모: 그렇죠.

원정규: 그렇다면 사람마다 성공의 방식과 분야가 다르니 해야 하는 공부의 종류도 서로 다르겠네요?

오자모: 그야 서로 다르겠죠.

원정규: 그렇다면 공부를 얼마나 잘하느냐 하는 것은 학교 시험이나 대학 시험 점수가 아니라 각자 서로 다른 성공분야를 얼마나 잘 대비하느냐로 판단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 나라 학부모들은 왜 그렇게 일방적으로 학교 성적과 대학 입시에만 관심을 기울이죠? 제 눈에는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기는커녕 자녀의 실패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가면서까지 자녀의 실패를 준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자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원정규: 학교는 물론 많은 돈을 들여가며 학원까지 보내지 않습니까?

오자모: 당연한 걸 왜 자꾸 물어요?

원정규: 그런데 그 학원들이 학생들 저마다의 다양한 성공 분야를 준비시키는 곳이 아니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대부분의 학원이 똑 같은 것을 가르치는 곳, 즉 시험 치는 공부하는 학원이던데?

오자모: 그건 사실입니다.

원정규: 그건 자전거 기술 분야 뿐 아니라 학문이나 지적인 분야에서도 쓸모없는 공부입니다. 오직 시험 치는 용도 외에는 아무 소용이 없죠, 그러니 학원이야 족집게 과외야 엄청난 돈을 써댄다는 것은 어떤 분야에서의 성공과도 무관한 것을 공부시키느라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대부분 자기 스스로 학원에 갈까요?

오자모: 아니겠죠. 부모가 시켜서 가는 거죠.

원정규: 그러니까 대부분의 학생들은 부모의 강요에 의해 자신들의 성공분야와 무관한 입시학원에 다니고 있는 셈이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의 실패를 비싼 돈 들여가며 바라고 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자녀 교육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부친: (자리를 박차다시피 마이크를 끌어당긴다) 거 듣자 하니 정말 너무하시네요. 이 보세요 교수님. 제가 바로 말하자면 교수님이 예로 들었던 바사장같은 사람입니다. 저는 무대 음향기술자로 죽 일해 왔고, 음향 장비 판매, 대여 쇼핑몰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음향 일, 정말 어렵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사장님 따라 전국 방방곡곡 다니면서 시골 장터에서부터 상암동 경기장의 큰 행사까지 음향 설치 안해 본 곳이 없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덕분에 지금 이렇게 기반을 닦을 수 있었죠. 벌이는 꽤 좋습니다. 웬만한 직장인 보다 훨씬 많이 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내가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 자식들은 전부 대학에 보낼 거고, 가능하면 서울대학에 보낼 겁니다. 그래서 자식이 둘인데 한 놈 당 사교육비로 150만원도 넘게 쓰고 있습니다. 이 놈들은 교수나 교사를 시킬 겁니다.

원정규: 가게는 안 물려주실 겁니까?

우부친: 천만에요.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웬 줄 아세요? 내가 이 바닥에서 성공하면 할수록 더 뼈져리게 느껴지는 게 이 사회는 대학 나와서 펜대 굴리지 않으면 사람취급을 안해준다는 거였습니다. 내가 월 소득이 천 만원이 넘어도 행사장 같은데 출장 나가서 음향 설치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나를 노가다 취급합니다. 그것도 늙은 노가다죠. 심지어 반말까지 듣습니다.
송 선생님, 그리고 원교수 님은 어디가서 젊은 놈한테 반말 들어본 적 있습니까? 축제나 예술발표회 때문에 중·고등학교에 음향 설치하러 가면 그 학교 선생님들이 어찌나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가 많은지 미칠 지경입니다. 그 중 아주 예의바르신 분들도 계시지만 상당수는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합니다. 그런데 웃기는 건 그쪽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도 따지거나 협의하는 대신 내가 알아서 수그러 든다는 겁니다. 왜요? 못 배운 티 날까봐 함부로 말을 꺼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교수: , 예 잘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학력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풍토가 사라져야겠죠?

우부친: 그런데 원 교수님이 마치 저 들으라는 듯이 자식의 실패를 바란다고 하시잖습니까?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내 자식이 나 같은 대접 받지 말라고 공부 시키는 겁니다.

이홍주: 하하하하! 역시 진보라고 자처하시는 분들의 문제점이 딱 드러나는군요. 말은 잘 하고, 듣기엔 그럴 듯 하지만 결국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란 말입니다.

원정규: 꼭 그렇게만 볼 수 없을 걸요? 아버님께 여쭤보겠습니다. 아버님은 음향 부문에서 누구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아버님처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부친: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게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예민한 음감도 필요하고요. 특히 음악 공연 관련 시설은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음악하시는 분들이 귀가 아주 예민해서 까다롭게 굴거든요. 그러니 우리도 마찬가지로 예민한 감각이 필요하죠. 또 잡음이나 하울링이 예고 없이 터질 수 있기 때문에 아주 미세하게 조정하고, 당황하지 않을 침착함도 필요하고요.

원정규: 제가 말씀 드리려는 게 바로 그겁니다. 즉 아버님이 음향 분야에서 성공하신 것은 그럴 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데다가 적절한 경험과 노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저 같으면 결코 그 일을 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음치거든요. 아마 당선인도 못 하셨을걸요?

교육 대통령: (손을 내저으며) 무슨 소리? 제가 교사 시절에 학교 방송부를 운영했었습니다. 음향에 대해선 잘 알아요. (모두 웃음)

원정규: (웃음) 그럼 저만 못하는 걸로 하죠. 어쨌든 저는 그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자질들이 많이 부족합니다. 음치인데다가 덜렁거리기도 하니까요. 반면에 죄송한 말씀이시지만, 아버님께서 만약 계속 학업을 계속 하셨다면 어느 정도까지 하셨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부친: 막상 그렇게 물어 보시니 뭐라 말하기 어렵네요. 제가 학교 공부를 썩 좋아했던 건 아니고 하니, 대학원까지 다니고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홍주: 잠깐, 무슨 말씀 하시려는지 알겠는데요, 그건 너무 부당한, 아니 건방지다고까지 할 수 있는 발언입니다. 그러니까 원교수는 자신은 공부에 적성과 소질이 있어서 교수가 되었고, 우부친씨는 공부보다는 기술에 적성이 있어서 기술자가 되었다, 이 말씀을 하시려는 것 같은데요? 그러니 공부 잘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예 종자가 다르니 애초에 꿈도 꾸지 마라 뭐 이런 말씀을 하시려는 겁니까?

원정규: 장관께서 묘하게 싸움을 붙이려 하시네요. 원 천만에요. 저는 학교 공부 잘하는 게 공부 잘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부에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이죠. 저는 아카데믹한 공부와 기술, 숙련의 공부 사이에 서열을 매길 수 없다고 봅니다. 둘 다 중요하고, 둘 다 어렵죠. 당연히 둘 다 각자 나름 요구되는 적성을 더 많이 갖춘 학생이 있을 것이고요.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피아노나 그림에 소질이 있는 학생이 학교 공부 대신 예술 공부에 매진하는 건 더 하급으로 떨어진 것처럼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기술에 소질 있는 학생이 기술 공부하는 건 마치 도태되거나 더 저급한 처지로 빠지는 것처럼 여길까요? 그리고 장관께서도 그런 심리에 편승하셔서 슬그머니 토론을 호도하시네요?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을 잘 이해를 못하신 것 같은데, 간단히 정리해 볼까요? 이렇게 서로 다른 영역의 재능이 있고, 이렇게 서로 다른 분야의 성공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녀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또 장차 이 사회에서 어떤 분야가 성공의 가능성이 큰지 등등을 따져보는 노력을 기울여야 비로소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 학부모가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다는 것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비싼 돈을 들여서 고가의 미술품을 구입한 사업가가 반드시 미술 애호가가 아닌 것처럼, 많은 교육비를 지출한다고 해서 그게 교육에 대한 관심을 입증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관심에 합당한 노력을 하는 대신 그것을 돈으로 대체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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