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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대통령과의 대화 (4) 진짜 학부모의 교육열이란 이런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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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학부모의 교육열이란 이런 것이다




나교수: . 잘 들었습니다. 그럼 이제 당선인의 생각을 한 번 들어 볼까요? 지금 우리 나라 학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과연 관심이 많은가를 놓고 상당히 격렬한 토론이 오갔는데요, 당선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교육 대통령: . 저는 대체로 원정규 교수님 말씀에 동의하는 편이고요. 이건 마치 긴 말 필요 없이 먼저 사례를 하나 보여 드릴게요. , 사진 좀 보여 주세요.(보좌관이 다음의 사진을 프로젝터로 쏜다)



 
우부친: 이건 데모 하는 사진 아닙니까?

오자모: 혹시 학부모들더러 데모 좀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교육 대통령: 하하하.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 제발 부탁드리는데 데모들 좀 해 주세요. (웃음) , 물론 그렇다고 다고 무작정 데모 하라는 뜻은 아니고요.

나교수: 그런데 이 사진은 어떤 시위 장면이죠? 예산 삭감을 중단하라 이런 내용이 피켓에 적힌 것 같은데?

교육 대통령: , 이 사진은 201012월 영국의 글래스고우란 도시에서 학부모들이 정부의 교육 예산 삭감에 반대하며 들고 일어난 시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이런 학부모들의 시위를 보는 것이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닙니다. 저 당시 학부모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보면 교육에 들어가는 돈은 단지 지출성 경비가 아니라 미래와 우리 아이들을 위한 투자다.” 같은 발언을 선명하게 하고 있어서 무척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학부모들이 교육 예산이 늘어나는지 줄어드는지에 관심이나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학부모님들한테 좀 여쭤 보겠는데, 제가 만약 교사들의 보수를 삭감하겠다고 발표하면 여러분은 시위에 나서시겠습니까?

우부친: 그거야 교사들이 시위를 했으면 했지, 우리까지 나설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교육 대통령: 우부친 씨처럼 대답하시면 그 정도면 아주 점잖으신 거고요, 아마, 제가 그런 발표를 하고, 교사들이 거기에 반대 시위라도 하면, 거기에 대해 욕설에 가까운 악플이 수만개씩 붙을겁니다. 보수를 아예 20%쯤 깎아라, 철밥통을 깨라 어쩌구 하면서요.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음 사진은 2006년 프랑스 전국을 휩쓸면서 연인원 수백만명이 참가했던 대규모 시위의 모습입니다.

 

우리 나라의 2008년 촛불 시위를 연상시킨 이 엄청난 시위 행렬의 시작이 뭐였냐 하면, 대학 교수의 수를 줄이려는 정부에 항의하는 대학생들의 시위였습니다. 대학생들이 교수를 위해 시위를 했고, 여기에 수백만명의 시민이 동조한 것입니다. 정작 피해자는 교수들인데 말입니다
왜냐하면 교수의 수를 줄이면 교육의 질이 떨어지며, 이것은 학생들의 피해이며, 궁극적으로 시민사회의 피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즉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 교육예산을 감축하려는 정부의 철학에 반대했던 것입니다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이런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몇 해 전에는 프랑스의 고등학생들이 대대적으로 시위에 나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이슈가 "기간제 교사 비율을 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고등학생들이 학교의 교사들의 고용을 보장하라는 시위를 하러 튀어 나오다니! 이 당돌한 고등학생들의 주장을 들어보면요, 교사들의 정년을 보장해야 궁극적으로 학생들이 이익을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학부모들도 이들의 주장에 적극 호응했습니다. 그게 바로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부친: , 듣고 보니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그런 일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교육 대통령: 다른 예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만약 교사들이 법에 금지된 파업을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자모: 그건 안 되죠. 선생님들이 파업을 하다뇨. 더더군다나 불법 파업이라뇨.

교육 대통령: 그런데 마찬가지로 2006년 캐나다 브리티쉬- 콜럼비아 주에서 교원노조가 불법 파업을 했습니다. 이들은 주 정부가 계속해서 교육예산을 삭감하고 있으며, 지나친 학업 성취도 평가로 학생들의 다양한 교육권을 질식시키고 있다면서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전면적인 파업에 돌입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캐나다 학부모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수업 결손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학부모의 62%가 교사들의 불법 파업을 지지했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교사들을 지지하는 집회와 시위를 열고, 불법 파업으로 인해 교사들이 물게 될 벌금을 50만 달러나 모금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습니다. 캐나다 교원노조는 2012년에도 역시 파업을 했는데, 이때도 학부모들의 일방적인 지지 속에 교육청을 굴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오자모: 그것 참 놀랍네요. 수업을 안 하겠다는 선생님들을 지지하다뇨?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교육 대통령: 그것은 당시 교원노조가 자신들의 이익보다는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에 대한 반대와 학생들의 학습권을 지키기 위해 파업을 했고, 학부모들은 정부의 교육정책이 잘못되었고, 교원노조가 제시한 교육정책이 올바르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즉 이 학부모들은 교육 정책의 내용과 예상되는 결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으며, 올바른 교육 정책에 대한 관점들을 가지고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의 잘못된 교육 정책에 대해 교사들이 반발하고 투쟁할 때 그게 교사들만의 일이 아님을 알고 같이 분노하고 같이 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참으로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들의 모습입니다. 이들은 내 자녀가 어떤 점수를 받았느냐 뿐 아니라 현재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도 큰 관심을 보였던 것입니다.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나라의 집회나 시위 중 지역의 교육 정책과 관련된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부모들은 어떨까요? 교육의 결과, 즉 성적에는 아주 관심이 많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관심도, 지식도 부족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우부친: 그건 너무 야박한 평가 아닙니까? 우리 나라 학부모가 정말 그렇게 관심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교육 대통령: 2008년 당시 이명박 정부가 각 시도 교육청에 일괄적으로 10%씩 예산을 삭감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교육청이 10%나 예산을 삭감하면 누가 손해를 보겠습니까? 어차피 교사, 공무원의 보수, 그리고 각종 시설 관리비 등의 경직성 경비는 예산이 아무리 삭감되어도 줄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학생 활동, 학생 복지와 관련된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교원 단체들만 반발했을 뿐 학부모들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의심될 지경이었습니다.
또 교육청 예산 삭감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교육세를 폐지할 수도 있다는 여당의 방침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교육세가 폐지되면 그 피해는 누가 보겠습니까? 당연히 학생들이 봅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거 미국이나 유럽 같았으면 주민들이 들고 나와서 피켓팅하고 난리 났을 사안입니다. 그런데 학부모들의 움직임은 거의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그렇게 성적에 관심 많다는 우리 나라 학부모들이 “** 지역 학업 성취도 전국 꼴찌이런 식의 기사에도 별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술렁대는 정도였지, 교육청 앞에 학부모들이 모여서 대책을 요구하거나 하는 움직임은 일체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무관심 속에 지난 정권 동안 학교는 점점 더 열악해지고 말았습니다. 서울을 기준으로 32-33명이었던 중학교 학급당 인원수가 야금야금 늘어나서 40명이 넘는 학급들이 부지기수로 나타나는가 하면, 심지어 33명씩 10학급이었던 학교를 40명씩 9학급으로 뜯어고치는 경우까지 나타났습니다. 한국 교육사상 학생 수가 폭증해서 학급당 인원수가 늘어난 적은 있지만, 학생 수가 그대로 있거나 줄어들고 있는데 학급수를 줄여가면서 학급당 인원수를 야금야금 늘린 적은 지난 정권 때 처음 일어난 일입니다. 심지어 어떤 중학교는 학급당 인원수가 50명에 육박해서, 교실에 책상이 다 들어가지 않아 급기야 사물함을 복도로 들어 내는 사태에 이르기까지 했습니다. 이게 돈푼깨나 있고 힘 좀 쓰고, 교육에 열성이 높다는 소위 알파맘들의 집합처인 강남지역 고급아파트 촌에 있는 학교의 사례입니다.
2012년에는 교과부에서 일방적으로 교원 정원을 10%나 감축했습니다. 이때 뿐이 아닙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아예 교원 배치 기준 자체를 삭제해서 교사수를 엄청나게 줄이려다가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1997년 이래 정부는 야금야금 교사 정원을 줄여왔습니다. 학교마다 선생님들이 담당해야 하는 학급은 야금야금 늘어나고요. 소위 경제적 효율성의 원리죠. 그럼 당연히 학생들이 받게 되는 수업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되죠.
그런데 저는 이 힘 있는 강남엄마들이 서울시교육청이나 정부를 항의방문해서 학급당 인원을 줄이고 교사수를 증원할 것을 요구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이들은 교육청을 수시로 항의 방문합니다. 주로 "왜 우리 애를 a학교가 아니라 B학교로 배정했느냐?"하는 식으로 따지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가 다니게 될 a학교를 개선해 달라는 요구는 없고, 우리 아이를 열악한 a학교가 아닌 곳으로 빼 달라, 이런 요구만 한다는 것입니다. 교육에 관심이 많다는 학부모들은 대체 어디들 계신 것일까요?

오자모: 그거야 어차피 알파맘들은 학교에 대해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어차피 알파맘들의 관심은 학원이랑 사교육에 가 있잖아요?

교육 대통령: , 학원이요. 그런데 그 알파맘들이 학원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있었던 거 같지는 않습니다. 학원 강사, 원장들의 허위학력, 허위경력 사기질에 대한 기사가 걸핏하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알파맘들이 뭘 했나요? 당장 교육청이나 교육부로 가서 학원 강사들의 자질을 검증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라는 항의 집회 같은 거라도 열거나, 학원 및 사설 강습소 종사자 자격인증제 같은 거 입법 청원이라도 했어야 하는 거 아니었나요
생각해 보십시오. 애초에 학원들이 학력, 경력 사기질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건 우리의 알파 맘님들이 사교육 비즈니스멘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서 정작 그들의 자질과 경력을 검증해 보려는 노력을 하나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단 학원비가 비싸고, 잘 꾸며져 있고, 그럴듯하게 말을 하니까 그냥 믿어버린 거죠. 그러니 결국 저 알파 맘님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이란, 돈을 많이 쓰면 결과도 좋겠지 하는 식의 명품쇼핑 심리와 다를 바가 없지 싶습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교육에 관심이 많다고 하는 말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오자모: , 그 말씀은 와 닿네요. 용한 강사, 용한 학원 정보만 주고 받았지, 정작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는지는, 어떤 곳에서 어떤 환경에서 공부하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교육 대통령: 관심이 대체 뭘까요? 그건 덮어놓고 결과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함께 존재해 보는 것입니다. 교육에 관심(interest)이 있다면 교육이 이루어지는 그 현장에(inter) 존재(est)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된 관심은 학습과 행동을 수반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청년이 아름다운 소녀에게 관심이 있다고 합시다. 그럼 그 청년은 그 소녀와 키스하고 마침내 결혼하는 것만 마냥 바라고 요구할까요? 당연히 아니죠. 그는 그녀에 대한것들, 심지어 부모도 모르는 사소한 버릇까지 다 알아 나가려고 할 겁니다. 그리고 그 소녀에게 자신의 호감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며, 그 소녀를 매사에 배려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해 주려고 노력할 겁니다. 그런 게 관심입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게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그 대상에게서 결과만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대상에 대해 알아나가길 바라며, 또 그 대상을 위해 무엇인가 하기를 바랍니다. , 학부모님들. 과연 교육에 관심이 많았습니까?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교사들조차 교육에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이제 저, 교사, 그리고 학부모님과 학생들이 함께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또 교육을 사랑하고, 그럼으로써 서로가 사랑할 수 있게 잘 해 나갑시다. 저의 간곡한 부탁입니다.(학부모들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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