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감 보수진영 후보로 문용린 교수가 나서자 조선일보가 판짜기에 나선다.

(이 글은 단지 상황을 분석한 것일 뿐,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내용이 없으며, 특정후보의 당선 혹은 낙선을 목표로 하지 않음이 명백한 글이니, 선관위 관계자께서는 신경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한사코 출마설을 부정하던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이 마침내 보수교육감 단일 후보로 등록했다. 추대위를 거치겠지만, 보수의 속성상 이 정도 인물이 나서면 잔챙이들은 알아서 물러서면서 사실상 추대 형식으로 나설 것이다. 조선일보도 이를 기정사실로 하면서 은근히 진보쪽 단일화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 (조선일보 기사보기) 저작권 때문에 걸어놓은 링크이니 굳이 가서 조회수 올려줄 필요는 없다.

조선일보의 기사는 아주 교묘하다. 동아일보와 달리 빈틈도 잘 없고 소설도 잘 쓴다. 동아일보는 항상 오버하다가 헛점을 남긴다. 동아일보는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직접 공격하다 역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지만, 조선일보는 전체적인 판을 보면서 판의 흐름을 통해 상대를 쓰러뜨린다. 훨씬 고수다. 그러니 조선일보는 아주 정교하게 봐야 한다.

이 기사의 구조는 얼핏보면 보수쪽, 진보쪽 교육감 후보 단일화 과정이 한창인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보수쪽 단일화에 대해서는 마치 문용린으로 정리 된 것 처럼 써 놓고 있다. 이대영의 때맞춘 불출마 선언이 큰 힘을 실어주었다.

그럼 진보쪽은? 이수호로 대충 정리된 것으로 그려주고 있다. 멋대로 이수호는 NL, 이부영 은 PD로 규정하면서(내가 25년 PD지만 이런 말은 처음 들어본다. 내가 알기론 그 분도 NL이다), 심지어 운동권이 아닌 송순재 교육연수원장까지 PD로 규정하고서는 전교조의 다수파가 NL이기 때문에 이수호 후보가 진보단일후보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해 놓고 있다.

즉 조선일보는 이런 프레임을 깔고 있다.

1) 진보진영 교육감 후보들은 모두 전교조다

2) 전교조는 모두  NL아니면 PD이다. 그중 다수파는 NL이다.(NL이라면 보너스로 종북이라는 꼬리도 함께 따라온다)


3) 따라서 진보진영 후보는 전교조 NL인 이수호다.


여기서 이미 조선일보는 자신이 공격할 방향을 정교하게 세팅해 놓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교조+정치편향이다. 그럼 문용린 후보를 내면서 무엇을 내세울까? 그것은 정치에 좌우되지 않는 교육전문성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1) 문용린은 교육학의 대가 반열에 드는 사람이다. 

인정할건 인정해야 한다. 그는 교육학의 대가다. 나도 그가 쓰거나 옮긴 책들 많이 공부했다. 도덕교육 하면 개나 소나 읊어대는 콜버그의 책을 옮긴 사람도 문용린이며, 요즘 국영수 입시교육 비판하며 그 근거로 자주 제시되는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을 옮긴 사람도 문용린이다. 스턴버그의 "행복 심리학"도 이 사람이 들여왔다. 교육 전문가라는 측면에서는 사실 맞상대할만한 사람이 많지 않다.

2) 문용린은 김대중 정부의 교육부총리다

게다가 교육행정 경험이 있다. 그것도 부총리. 그것도 김대중 정부의. 이렇게 되면 박근혜의 국민대통합 그림이 그려지는거다. 이건 "나를 보수후보라 부르지 말라"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실제로 문용린을 추대한 단체도 "보수"라는 말 대신 "좋은 교육감"이란 말을 사용했다. 여전히 민주진보교육감이란 말을 쓰고 있는 진보진영은 여기서도 한 방 먹고 들어갔다. 그러니 문용린에게 "보수!"하고 공격하면 "교육에 보수 진보가 어디 있습니까? 교육에는 보수적 진보적 측면이 모두 있고, 적절한 균형이 중요합니다."하면서 물먹여 버릴 것이다. 그리고는 도리어 "진보"라는 말의 편향성을 공격하면서 "교육에 정치논리를 끌어들이지 말라" 이렇게 나올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때 거론되다 포기된 조국 카드는 내놓지 않기 천만 다행이다. "당신이 교육을 뭘 아느냐? 교육감 선거를 정치판으로 만드려느냐?" 이러고 나왔다면 아마 대패하고 말았을 것이며, 진보진영은 서울교육감도, 조국이라는 차세대 주자도 다 잃고 말았을 것이다.

3) 문용린은 신자유주의 경쟁교육론자가 아니다

문용린의 교육학은 학생의 소질,적성, 행복을 살리자 방향으로 펼쳐진다. 그가 소개한 다중지능이론이 진보교육자들을 얼마나 열광시켰는지 생각해보라. 그러니 진보진영에서 "경쟁교육 철폐하고" 그러면 문용린은 "맞습니다" 할 것이다. "국영수 위주 교육 철폐하고" 그러면 당연히 "그러니까 다양한 적성을 살리는 교육으로 가야죠"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진보 보수 떠나서 이런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나올 것이다.
그 동안 마치 주문처럼 진보진영이 써대던 담론들은 이 사람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통하지 않는다. 물론 그의 다양성과 자율성, 그리고 학생 선택권 강화가 신자유주의로 가는 지름길이 될수도 있다. 물론 문용린은 교원평가와 학교간 경쟁을 끌고 들어오긴 했다. 하지만 교원평가를 인사나 급여에 반영하는 것은 반대했고, 학교간 경쟁의 조건으로 작은학교 등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사실상 경기도 스쿨디자인21 등 나름 진보라고 생각하는 진영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 경쟁을 학생들 시험점수 비교로 하자는 주장은 분명 아니었으니 말이다.

김상곤 교육감까지 다양성과 자율성, 학생 선택권 강화를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진보진영의 상당히 많은 교육운동가들이 자기들이 신자유주의를 말하고 있는줄도 모르고 진보라며 말하는 상황이다. 아마 공격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조선일보는 서울교육감 재선거를  "교육전문가 vs 교육정치꾼(그것도 종북적인 전교조)"의 프레임으로 끌고 갈수 있게된다.  

그러자면 문제가 있다. 진보진영 후보들은 죄다 정치꾼이라야 하는데 교육학자가 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곽노현 교육감의 교육학적 멘토로 알려진 교육연수원장이었던 송순재 교수다. (놀랍게도 송순재 교수는 그 동안 진보진영이 내세웠던 교육감 후보들 중 최초의 교육학 교수다. 이게 진보진영의 수준이다.)

문용린 교수가 주류교육학, 미국 교육학의 대가라면 송순재 교수는 대안 교육학, 유럽 교육학의 대가다. 인터넷 서점에서 문용린을 치면 나오는 책들과 송순재를 치면 나오는 책들은 그 무게감에서나 종류에서나 서로 용호상박이다.

사실 나 역시 한 사람의 교육학자로서 대표적인 미국유학파인 문용린과 독일유학파인 송순재의 토론을 보고싶기도 하다. 그럼 이 선거는 단지 교육감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 교육의 방향이 미국식인가 북유럽식인가 선택하는 아주  중차대한 문제가 되어버린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선거 자체가 교육에 대한 진지한 공부와 토론을 할수있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사실 송순재 교수가 나선다 해도 문용린과 맞상대로 이긴다고 장담 못한다. 야구로 치자면 타격의 뒷받침이 되고, 불펜투수가 있어야 한다.

다행히 문용린 교수는 대선결과 진보가 집권하면, 여기에 맞서 서울 교육청을 이끌고 투쟁할 수구보수 전사노릇을 할 인물도 아니고, 박근혜가 당선되면 거기에도 대항할 인물도 아니다. 문용린이 당선되면 서울교육감 선거는 저절로 대통령 선거의 종속변수가 되고 말것이다.

사실 송순재 교수가 문용린 교수와 치열하게 논박하며 토론할 것 같지는 않다. 두 사람은 이미 서로 잘 아는 사이이며, 교육이 지향할 방향에 대해서 그 동안 큰 이견을 보이지 않았으며, 송순재는 교육철학, 문용린은 교육심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도리어 상호 보완적이 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거 참 밋밋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교육감 선거가 평화롭고 교육적으로 치루어지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조중동이다. 조중동은 어떻게든 교육감 선거에 이념, 정치색을 불어넣어 이를 바탕으로 서울에서 부족한 박근혜 표를 긁어 모아야 한다. 따라서 조중동의 관점에서 진보진영 교육감 후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교육적인 인물"이 아니라 "정치적인 인물"이라야 하며, 문용린 후보와 교육문제를 놓고 토론할때 현저하게 스펙에서 밀리는 인물이라야 한다.

문용린이 진보진영에게 난처하듯, 송순재는 보수진영에게 난처한 후보다. 우선 정치적인 활동을 하거나 한 적 없이 평생을 교육과 연구에만 전념해 온 사람이라 정치색 덧칠이 어렵다. 전교조와도 그렇게 밀접한 관계가 아니라서 전교조 프레임도 어렵다. 전가의 보도인 종북놀이도 통하지 않는다. 심지어 감리교단의 중요인물이기 때문에 기독교를 동원해서 공격하기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송순재 교수가 출마선언했을때 보수언론은 일제히  "곽노현 측근" 딱지표를 붙여서 공격했다. 그런데 적어도 서울에서 곽노현 측근이란 딱지는 결코 감표요인이 아니다. 오히려 진보진영을 결집시킬수 있는 대선 시너지 효과까지 우려된다.

무엇보다도 조선일보 프레임에서 곽노현과 전교조는 일심동체라야 하는데, 전교조 후보 따로 곽노현 후보 따로라는 구도는 영 이상하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곽노현의 측근 혹은 조언자로 보도되던 송순재 교수를 엉뚱하게 전교조 PD활동가처럼 분류시켜버리면서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외친다. "자, 진보 교육감 후보 이수호! 나와!"

물론 문용린 교수의 약점도 있다. 교육부총리 시절 접대부가 있는 술집에서 그것도 518 전날 술마시다 걸린 것이다. 김대중 슨상님의 진노를 살만도 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먹힐지는 모르겠다. 음모주라도 마시거나 하지 않는 다음에야 한국인들은 그런일에 관대하다. 그리고 그날 접대부 술판의 주역은 몇몇 386 젊은 의원들이었다(음 지금도 현역의원, 시장 등이라 이름 못 밝힘).

오히려 더 큰 약점은 지금 대표적으로 망한 교육정책인 자사고 및 이른바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교육정책을 처음 주장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물론 문교수는 당시는 획일적인 교육과 학교를 다양화 자율화 하려고 한 것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 다양화와 자율화가 꼭 자사고였느냐 캐물을수는 있겠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사정없이 비판하는 형국이 된다. 난처한 지점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나름 분석해 본 형국이다. 여기서 더 자세히 말했다가는 선거법을 위반할 것 같으니 멈추겠다. 물론 조선일보가 판을 짠다고 해서 다 판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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