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대통령과의 대화(9) 경쟁교육은 교육경쟁력을 갉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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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대통령과의 대화(9) 경쟁 교육은 교육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나교수: 자, 이제 경쟁력, 경쟁교육이란 주제로 당선인께서 말씀하시겠습니다.

교육 대통령: , 그럼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저 국가 경쟁력을 강조하시는 이 장관님께 여쭙겠습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국가 경쟁력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묻고 싶네요.

이홍주: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 이지 뭐겠습니까?
교육 대통령: 그러니까 대체 무엇으로 이긴다는 말씀이십니까? 설마 전쟁을 하자는 것은 아니겠죠?
이홍주: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내가 말하는 건 경제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나라보다 생산성을 높여 더 좋은 상품을 만들어 수출 많이 하는 나라가 이기는 그런 경쟁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교육 대통령: 아 그렇군요. 그런데 그런 말씀은 교육 뿐 아니라 경제도 책임져야 하는 제 입장에서는 상당히 무리한 말씀으로 들립니다. 생산성을 높이고 더 좋은 상품을 만드는 건 물론 좋은 일이겠지만 , 그 목적이 다른 나라보다 수출을 더 많이 해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너무 편협하지 않습니까? 경제 정책의 목표는 국민의 후생을 개선하는 것이지 단지 달러를 많이 버는 게 아닙니다. 달러를 많이 벌어들여도 그게 국민들의 삶의 질에 전혀 투자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이라면 그게 국가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홍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달러를 많이 벌어야 국민 후생도 좋아지죠.
송혁재: 경제 이야기 하시니 잠깐 태클 좀 걸까요? 이장관님 경제학자 출신 맞아요? 하긴 아무리 시중 서점을 뒤져봐도 이장관님의 경제학 저서는 없더라고요.
이홍주: 지금 인신공격하는 자립니까, 여기가?

교육 대통령: 아니, 인신공격이 아니라 송선생님의 지적이 아주 적절합니다. 지금 장관께서 경제학적으로 엉뚱한 말씀을 하고 계시니 의심이 들 수밖에요. 달러는 많아도 적어도 안 되며,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건 경제학 상식 아닙니까? 수출은 왜 합니까? 물론 달러를 벌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달러는 왜 벌죠? 그건 우리 후생에 도움이 되는 상품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할 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수출의 목적은 수입이다. 이건 경제 원론에도 나오는 얘기 아닙니까?
이홍주: 아니, 딸라가 흘러 나가는데 어떻게 이익이 된단 말입니까?
교육 대통령: 내 참. 명색이 경제학 교수를 지내셨다는 분이 어떻게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달러를 많이 벌어들여서 외환보유고가 아무리 높아져도 그게 국민의 삶의 질에 아무 보탬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경제가 제대로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우리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양질의 재화와 서비스를 얼마나 저렴하게 얻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지 다른 나라와의 무역경쟁에서 이기느냐 지느냐를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홍주: 그건 당선인의 희망 사항이죠. 국제 사회가 무한경쟁의 시대이며, 세계 시장은 냉혹해서 순식간에 도태될 수 있다는 건 상식 아닙니까?
교육 대통령: 좋습니다. 그렇다고 칩시다. 하지만 설사 그 무한경쟁의 시대 운운하는 말씀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 장관께서 강조하신 학교끼리, 교사끼리 경쟁 붙이고, 결과적으로 속된말로 애들 빡세게 돌리고 치열하게 경쟁 시키는 그런 교육은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런 교육은 그저 시험 잘 치는 학생들이나 길러내지 경쟁력 있는 학생들을 길러내지 못합니다. 그러니 역설적이게도 경쟁교육은 경쟁력을 갉아 먹는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홍주: 거 요상한 말씀으로 현혹시키려 들지 말고 근거를 대 보세요. 난 당신처럼 요상스런 말재주 자랑하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노무현이가 대통령할 때도 난 그 사람을 한 번도 대통령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요.
교육 대통령: 그러세요 나도 당신이 교육부 장관일 때 한 번도 당신을 장관이라고 생각한 적 없었습니다. 나를 대통령으로 여기건 말건 그건 그쪽 자유지만 경쟁교육이 경쟁력을 갉아 먹는 까닭만큼은 똑똑히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하나 물어 보겠습니다. 경쟁력을 그토록 강조하시니 잘 아시겠네요? 그 교육 경쟁력을 어떻게 확인합니까?

이홍주: 그거야 학생들이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했느냐에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는 공부 잘 하면 성공하는 사회니까 공부를 얼마나 잘 가르쳤느냐, 그러니까 성적을 얼마나 높였느냐 하는 걸로 확인할 수 있는 거고. 그러니까 학업성취도 평가도 자주 자주 해야 하고. 성과가 부진한 선생은 좀 질책도 하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교육 대통령: 바로 그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지금 이 장관께서는 통념을 말하고 계십니다. 별다른 근거 없이 다수에게 그럴듯하게 믿어지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경쟁력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지금 글로벌 경쟁의 기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으며, “경제 우선을 주창하시는 분들이 정작 경제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까요? 당신들의 알량하고 얕은 밑천을 이렇게 쉽게 고백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홍주:(화를 벌컥 내며) 내가 뭘 모르고 뭘 저해한다는 겁니까? 그럼 당신은 알아요? ?
교육 대통령: 물론 알죠. 그런데 댁께서는 잘 모르시는 것 같으니까 가르쳐 드리죠. , 경쟁력의 기준은 불변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일까요?
이홍주: 그거야 당연히 시대에 따라서 변하겠지.

교육 대통령: 그리고 댁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경쟁력은 다른 나라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글로벌 경쟁력이겠죠?
이홍주: 왜 자꾸 뻔한 걸 자꾸 묻소?
교육 대통령: 그렇다면 그 살벌한 경쟁의 장소에서 살아남으려면 더더욱 때와 장소에 가장 어울리는 그런 능력을 갖춰야겠죠? 만약 그 무대가 월드컵이라면 공을 잘 차야 살아남을 것이고, 메이저리그라면 공을 잘 던지고 잘 받고 또 잘 쳐야 살아남겠죠?
이홍주: 자꾸 뻔한 이야기 늘어놓는 것 보니까 뭔가 수상한데? 그냥 묻지 말고 혼자 마음대로 말하쇼. 난 절대 안 낚일 테니까.

교육 대통령: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강의하듯 말 할 테니까 무슨 일방적이네, 불통이네 하는 말하기 없깁니다. 특히 저기 조중동 기자님들 조심하세요. 전 명강의로 유명한 유능한 교사이자 교수였습니다. 제 강의 듣다보면 기자님들도 어느새 좌빨 될 수 있습니다. (모두 웃음을 터뜨리고 조중동 기자들 쑥스럽게 머리를 긁는다.) 자 그럼 강의시작하겠습니다.
이장관의 말씀을 따른다면 교육의 목표는 경쟁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쟁력은 세계 경제가 현재 어떤 종류의 경제인가에 따라 달라지겠죠. 요컨대 지금이 13세기라면 땅 잘 갈고, 농사 잘 짓는 능력이 있어야 경쟁에서 살아남겠죠. 19세기라면 규율 잡히고 일사불란한 작업을 빈틈없이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경쟁력이며,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표준화되고 규율 잡히고 일사불란한 교육을 통해 대량으로 양성하는 기관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학교입니다. 공교육제도와 학교는 말하자면 산업시대 국가 경쟁력의 산실이었던 것이죠. 남들보다 훨씬 늦게 산업화를 시작했던 독일이나 일본이 순식간에 최고 수준의 산업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학교제도가 이런 일사불란한 노동자들을 효율적으로 양성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21세기가 벌써 1/10도 더 지나간 지금은 어떤 능력을 갖추어야 경쟁력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이 장관님의 논리를 또 따라가 본다면, 많이 남길 수 있는 상품을 내어 놓을 수 있는 능력, 소위 고부가가치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경쟁력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상품이 고부가가치 상품일까요? 만약 다른 사람들이 이 제품을 개발하려고 한다면 많은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지만 나는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면, 그게 바로 고부가가치 상품입니다. 즉 나는 유능하기 때문에 이것을 손쉽게 생산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싸게 팔수 있는 것이죠.

우부친: . 흥미 있는데요? 그런데 예를 좀 들어 주세요.
교육 대통령: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옷을 직접 디자인해서 입으려면 천 값을 제외하고라도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들여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천재적인 디자이너가 있다면 그는 훨씬 쉽게 옷을 디자인 하겠죠. 하지만 그 옷을 구입할 일반인들은 자신을 기준으로 그 옷의 가치를 평가합니다. 따라서 자신들이 직접 디자인 하려 했더라면 들였을 엄청난 비용을 기준으로 기꺼이 그 옷의 값을 지불할 겁니다. 그 결과 우리의 천재 디자이너는 실제 자기가 들인 비용에 비해 훨씬 많은 부가가치를 획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그런 큰 이득을 본 까닭은 무엇입니까? 보통 사람은 쉽사리 할 수 없는 일을 쉽사리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보통 사람은 쉽사리 할 수 없는 일들이라는 것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건 시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 40년 전만 해도 인쇄라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원고를 보면서 활자를 찾아 배열하고, 또 조판도 하는 등 고도로 숙련된 기술자가 아니면 하기 어려웠죠. 그래서 식자공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기술자와 인쇄소가 높은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이 기술은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누구나 쉽게 컴퓨터로 편집해서 프린터로 인쇄하고 있으니까요.
또 자동차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자동차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고부가가치 상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개발도상국들까지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GM이나 포드가 미국 10대 기업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그 위상이 추락했습니다. 이렇게 어떤 능력이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인지, 즉 경쟁력인지는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거꾸로 만약 아주 유능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는 전혀 경쟁력이 없는 인간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부친: 하하하, 농사도 제대로 못 짓는 얼간이 아닙니까?

교육 대통령: 그렇습니다. 조선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은 농사입니다. 그러니 경쟁력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그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경쟁력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 그렇다면 21세기는 어떤 능력을 요구할까요? 흔히 오늘날의 사회는 지식·정보산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네트워크 사회라고들 합니다. 즉 실물이 아니라 비물질적인 지식·정보의 생산이 중요해지고, 또 사람들 간의 관계를 산출하는 산업이 중요해진다는 뜻입니다. 이게 무슨소린지 설명해 볼까요?
지금 여러분이 수강료를 내고 내 강의를 듣고 있다고 합시다. 그럼 여러분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습니다. 내 머릿속에 든 것이 내 강의를 통해 여러분의 머릿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러분이 낸 수강료가 무엇에 대한 댓가인지가 모호해집니다. 그것은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과 정보의 댓가인가요, 아니면 나와 만나고 내가 하는 말을 들을 권리, 즉 나와 접속할 기회에 대한 댓가인가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우부친: 그 둘이 어떤 차이가 있죠? 그게 그거 같은데?
교육 대통령: 만약 지식과 정보를 구입한 것이라면 내가 여러분에게 지식·정보를 판매함과 동시에 그 지식·정보의 주인이 바뀌어야 합니다. 즉 그 지식·정보는 전달과 동시에 내 머리 속에서 지워져야죠. 그래야 소유권이 이전됩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무슨 인셉션 하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여러분이 내 강의를 들은 결과는 그 지식·정보가 이전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소유자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즉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여러분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거꾸로 여러분이 내 강의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칩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환불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수강료란 강의를 들을 권리, 즉 내가 알고 있는 지식·정보에 접속할 권리이지 지식·정보 그 자체에 대한 댓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식·정보 산업에서 얼마나 많이 팔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접속시켰느냐가 중요하며, 이 접속자들의 네트워크를 얼마나 형성시켰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실제로는 대만의 홍하이 정밀에서 생산하는 아이폰을 애플사 제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애플이 이 전화기를 통해 접속할 수 있는 소위 생태계라고 부르는 지식·정보 네트워크 접속권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교수: 그럼 이런 시대의 경쟁력은 어떤 능력을 말하는 것이죠? 그 설명을 하시기로 했으니 부탁드립니다.

교육 대통령: 이미 답이 나왔습니다. 지식·정보 네트워크에 접속하고 소통하는 것이 경쟁력입니다. 즉 접속과 소통능력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접속과 소통능력은 단지 마당발 같은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접속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가 아니라 어떻게 더 질 높은 소통을 하면서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즉 아는 사람이 많은 게 아니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지속적으로 상호작용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이 중요합니다.
오자모: 그럼 친절하고 예의바른 아이로 길러야겠네요.

교육 대통령: 물론 그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웃음과 친절만으로 네트워킹이 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질 높은 소통과 네트워크는 관계를 맺고자 하는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가능합니다. 심지어 아부를 잘 하려 해도 상대방이 무엇에 자부심을 느끼는지, 상대방의 기분이 어떤지 잘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네트워킹의 핵심은 공감입니다.
, 그럼 정리가 되었습니다. 21세기의 경쟁력은 지식·정보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을 확대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 간단히 줄이면 창조력과 공감적 소통능력이죠. 우리나라가 그 동안 경쟁력을 발휘했던 표준화된 대량생산 라인은 이미 중국이나 제3세계로 넘어갔습니다. 이런 마당에 지나간 산업사회의 경쟁력을 외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게다가 앞으로 쓸모 있는 일자리는 모두 이 창조력과 소통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그런 영역에서만 주어질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경쟁은커녕 생존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홍주: 이 보세요. 내가 경제학과 나와서 아는데, 당선인께서는 경제에 대한 식견이 좀 모자라시는 것 같아요. 지금이 아무리 지식·정보 사회라고 해도, 그렇다고 산업사회의 일자리가 없어진다고요? 아니 지식·정보만 있으면 어떻게 삽니까? 물건을 만들어야 뭘 해도 할 것 아닙니까?

교육 대통령: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 장관께서도 경제학자로 활동 안하신지 오래 되셔서 경제를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났다고 농업이 사라졌나요? 아니죠. 하지만 농업 부문의 고용은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산업혁명 덕분에 영농 기계화가 이루어져 농업에서 노동력이 많이 절약되었기 때문입니다. 지식·정보혁명의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제어되는 일이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그러니 기존 산업의 위상은 유지될지라도 그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은 크게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고용도 줄어들죠.
앞으로는 기계로 대체가능한 능력을 가지고는 일자리를 잡기가 어렵습니다. 이건 누구나 동의하는 문제입니다. 세계 굴지의 기업들을 보면 본사에는 공장이 아예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특정한 상품을 생산하지 않고, 어떤 삶의 방식, 삶 그 자체를 생산합니다. 아이폰의 성공을 보십시오. 아이폰이 물건이 좋아서 성공했나요? 아닙니다. 아이폰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조했기 때문에 성공했습니다. 그 물건을 가지고 창조해내는 삶의 방식. 이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삶의 방식을 창출한다는 것은 고도로 예술적이고 문화적인 작업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 서로 점수 따기 경쟁, 문제 풀이 경쟁을 해왔던 낡은 교육을 버리고 창조력과 소통능력을 기르는 새로운 교육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홍주: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것입니까? 그럼 경쟁의 품목만 바뀌는 것 아닐까요? 학력경쟁에서 창의성 경쟁으로? 그래서 각 학교별로 창의성 경쟁을 붙이면 창의성도 높아지고, 경쟁력도 높아질 것 아닙니까? 전국 창의력 경진대회 같은 거 실시해서 점수가 저조한 학교는 예산을 축소한다거나 하면 아마 잘될걸요? 그래서 제가 창의과학재단도 만들고, 창의인성학교도 세우고, 또 스팀 융합교육도 보급한 것 아닙니까?

교육 대통령: 지금 용어를 오해하고 계십니다. 장관께서는 시종일관 창의를 강조하시는데,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창조입니다. 창의란 단지 좋은 착상, 아이디어라면 창조란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장관은 시험에 무슨 강박이라도 있으십니까? 본인이 시험 치는 거 좋아했다고 해서 시험이 만병통치약이라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모든 능력은 그 능력에 걸맞는 함양방법이 있는 겁니다. 축구를 잘 하려면 공 차는 연습을 해야 하고 야구를 잘 하려면 공 치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하듯 말입니다.
, 그렇다면 창조력과 소통능력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창조하고 소통하는 경험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험을 치자고요? 시험은 이 두 가지 모두와 상극입니다. 시험은 정답이 있고 풀이과정이 있고 수치화 가능한 점수가 있는 학력 측정 방법입니다. 그런데 창조성은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 둘이 어울립니까? 창조성은 생각을 확산시켜야만 발현됩니다. 하지만 정답이 있고 점수가 있는 시험은 자꾸 생각을 점수 받기 쉬운 쪽으로 수렴시킵니다. 상극입니다. 게다가 소통은 어떻습니까? 시험은 서로 서로를 차단시키는 고립된 경험입니다. 시험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경쟁적인 교육은 학생들 서로간의 소통을 가로막습니다. 즉 이 장관께서 그토록 강조하시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경쟁교육은 창조력과 소통능력, 즉 이 시대에 요구되는 경쟁력을 훼손하는 경쟁력 훼손 교육인 것입니다.

이홍주: 그게 문제라면 팀을 이루게 한 다음에 팀끼리 경쟁시키면 되죠. 그럼 경쟁력도 살고, 또 협동하고 소통하는 능력도 살 것 아닙니까?
교육 대통령: 그럼 팀원끼리는 협동하겠지만, 팀끼리도 협동과 소통이 이뤄질까요?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소통이 다만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 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걸로 보입니까? 계속해서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 단위로 흩어져서 경쟁하나, 서 너 사람 단위로 흩어져 경쟁하나 네트워크 사회에 맞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홍주: 그럼 어쩌자고요? 그래도 애들을 학교에 불러 모았으면 시험은 치고 등수는 매겨야 할 것 아닙니까?
교육 대통령: 물론 학교 안에서만 교육이 이루어지면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학생들이 학교의 담장을 넘어가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창조의 기회를 가지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할 기회를 가지는 그런 교육을 실시하려 합니다. 이게 이루어진다면 이들이야말로 21세기형의 경쟁력을 갖춘 인재가 되겠죠.

송혁재: 가만, 가만, 이거 말씀이 잘 나가다가 신자유주의로 빠지십니다. 그러니까 당선인 말씀의 핵심은 학교 밖에 있는 단체나 전문가에게 교육을 개방하시겠다는 뜻입니까?
교육 대통령: 그렇습니다.
송혁재: 그렇다면 당선인은 기본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인 이른바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와 다를 바 없는 철학을 가지고 계십니다. 다만 고교 다양화 수준이 아니라 교육기관 다양화를 말씀하고 계시니 오히려 한 수 더 뜬다고 보아야 하겠군요.
교육 대통령: 지식·정보는 거의 실시간으로 발전하고 생겨나고 사라집니다. 그런데 그걸 5~6년 단위로 편성되는 교육과정과 교과서, 그리고 경계가 정해진 교과목으로 가르치는 학교에서 다 따라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송혁재: 아니, 그럼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으면서 아이들을 바깥으로 내 몰아서 자격 없는 사람들한테 맡기는 게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교육입니까? 막무가내 내보내서 각자 알아서 선택해라 하면 창조적이 된답니까?
이홍주: 내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이거 내가 전교조하고 같은 편이 될 줄은 몰랐네요?
교육 대통령: 당사자들은 모르고 계셨지만, 사실 그 동안 두 분은 같은 주장을 하고 계셨습니다. 서로 동지들인 셈이죠.
송혁재: 그런 심한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교육 대통령: 하지만 전교조는 그 동안 국가가 주도하고, 국가가 운영하는 획일적인 학교제도를 뜯어 고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좌우 가리지 않고 무조건 구조조정이니, 신자유주의니 하면서 강하게 반발하지 않았습니까?
송혁재: 그건 교육을 시장화 하려고 하니까 그랬던 거죠.
이홍주: , 전교조 타령은 나중에 따로 하도록 하고요, 이거나 물어 봅시다. 그럼, 당선인께서 학력신장 정책에 탐탁치 않으신 것 같으니 말인데요, 학교에서 아니면 학교 안팎에서 학생들이 뭘 어떻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교육 대통령: 한 마디로 교양입니다. 교양이라는 것은 어떤 특별한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이런 지식이나 정보가 폭넓은 사고와 대화를 통해 한 사람의 인격 속에 축적된 것입니다. 이런 풍성한 교양이 있는 사람이 창조적인 생각을 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상력이 있기에 그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교양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예술교육과 인문교육이 강조되어야 하며, 과학교육 역시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홍주: 하하. 교양이요? 참 팔자 좋으십니다. 이 치열한 국제 경쟁 시대에 한가하게 교양교육?
오자모: 제 생각도 좀 그래요. 당선인 말씀은 꼭 국영수 안하고 음악 미술 수업 늘리겠다는 걸로 들리거든요. 그럼 애들이 너무 배우는 게 없잖아요?
교육 대통령: (답답한 듯) 휴우... 이 이야기는 또 길어질 것 같으니까, 잠시 쉬었다가 별도의 주제로 토론하는게 어떨까요?
나교수: 그게 좋겠습니다. 슬슬 피곤해지고 있었거든요. 방송국 광고수입 올릴 시간도 줘야죠? (대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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