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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쇄신되어야 한다면 뭐가 쇄신되어야 할까?

안철수는 올듯말듯하며, 안철수계열의 분들은 계속 안철수를 부르지 말고 먼저 민주당이 쇄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의 주장은 항상 둘이다.

1) 기득권을 내려 놓아라. 
2) 정치를 혁신하라. 

그런데 지금은 곁을 떠났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싫어했던 화법이 바로 이런 식의 화법이었다. 운동권출신들이 항상 이런 화법을 구사하는데, 그때마다 노대통령은 이런식의 의견과 함께 반려시켰다고 한다.

"대통령에게 그 기득권들이 뭔지를 스스로 연구하게 하고, 정치 혁신을 스스로 계획하는 부담지우는 것 보다는, 무슨 지시와 무슨 결정을 원하는지 적시해서 주세요."

그러니 안철수의 멘토 분들은 저런 선문답 하지 말고, 예를 들면 3대영역 12과제와 4단계 로드맵, 이런 시의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기 바란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구체적인 안은 그 안에서 실제로 부딪치며 고민하고 싸운 사람들이라야 생각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사경험이 없는 관료들의 교육혁신안이 공허한 것과 마찬가지로 도도한 민주화운동의 물결 근처에도 없었던 사람이 그 과정속에서 생겨난 어느 정치집단의 혁신안을 구체적으로 만들수는 없는 것이다. 그럴때는 배워야 한다. 정당정치의 혁신을 꿈꾸었던 노무현의 실패로부터

저번에 민주당의 역사(전편 보기)에 대해 보았다면, 이렇게 이합집산을 거듭하다보면 자연히 그 내부에 파벌들이 생길수 밖에 없음은 쉽게 짐작할수 있다. 그리고 그 파벌들에는 보스가 있다. 민주당은 일종의 연맹왕국 혹은 중세 봉건왕국 같아서 이 파벌에 속한 정치인들은 중세때 기사들처럼 당대표(국왕) 보다는 자기 계파의 보스에게 직접적으로 충성한다. 그러니 언제든지 계파 보스가 "당 깨고 나가자!" 그러면 우르르 몰려 나가는 것이다.

노무현이 이런 계파정치의 폐해를 가장 뼈져리게 느낀것이 바로 3당 합당때였다. 김영삼은 지금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중요한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다. 엄밀히 말해 김대중은 유신정권 내내 국외에 있었고, 국내에서 유신과 전두환 독재의 칼바람에 온몸으로 맞선 사람은 김영삼이었다.  아래 사진을 보라. 경찰에 끌려가는 김영삼의 굳세게 깨무는 입. 솔직히 요즘 민주당 의원들에게는 저런 결기를 정말 찾아보기 어렵다. 그 시절 김영삼은 참 대단했다.
유신에 맞서 노동자들을 옹호하다 사복경찰에게 연행되는 김영삼 신민당 총재
5공에 항거하다 최루탄을 뒤집어 쓰고 닭장차로 끌려가는 김영삼 통민당 총재

당연히 김영삼과 계파원들인 상도동계 정치인들 역시 유신과 5공 독재의 모진 탄압에 함께 고초를 겪었다. 그런데, 이랬던 사람이 유신의 박정희의 2인자인 김종필, 전두환의 2인자인 노태우와 합당을 하곘다고 한다고 하면, 이걸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이건 평생의 삶에 대한 부정이며, 자기 자신을 모욕하는 일이며, 따라서 인간성을 모욕하는 일이다.

굴욕적인 3당 합당

그런데, 놀랍게도 당시 통일민주당의 국회의원 59명중 8명만 빼고 평생 싸워온 상대인 군부독재의 똘마니가 되는 길을 기꺼이 선택했다. 왜? 계파 보스인 김영삼이 선택했으니까. 그러니 이들은 김영삼이 반독재 투쟁을 했기에 싸운 것이고, 김영삼이 독재에 투항했기에 같이 투항한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정치적 소신도 판단도 없다. 그리고 이런 식의 메카니즘은 3당합당에 참가하지 않은 평화민주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약 김대중이 노태우와 손을 잡는 선택을 했다면, 호남기반의 평화민주당 70명 의원들 역시 기꺼이 광주학살 주범의 똘마니가 되는 길을 군말없이 선택했을 것이다.

지금 민주통합당에서 이런 모습이 그나마 덜 보이는 것은 당이 개혁되어서가 아니라 당시 김영삼, 김대중 같은 절대적인 보스가 없어서, 여러 군소 계파들이 할거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보스정치, 이게 바로 60년 된 정통 야당 민주당의 가장 고질적인 병폐이다. 그런만큼 이런 보스 계파정치에도 불구하고 보스가 아닌 대의를 선택했던, 그래서 김영삼의 명령을 거부하고 군부독재의 하수인이 될수 없다고 버틴 8명의 이름은 기록해 둘 만하다.이기택, 김정길, 장석화, 김상현, 박찬종, 홍사덕, 이철, 그리고 노무현. 이 중 끝까지 지조를 지킨 인물은 장석화, 이철, 김정길, 노무현이다.

3당합당에 반대하다가 당직자에게 제지당하며 절규하는 노무현, 김정길 의원

그렇다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가능하게 한 계파정치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음 둘이 조합한 연립방정식이다.

1) 계파는 특정한 지역(동교동계는 호남, 상도동계는 부산경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2) 계파의 보스는 국회의원의 공천과 정치자금 조달의 전권을 쥐고 있다.

이 둘이 결합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 부산 경남에 김영삼의 추천을 받은 후보라면 막대기를 꽂아 놓아도 당선이다. 반대로 호남에 김대중의 추천을 받은 후보라면 강아지도 당선이다. 따라서 부산 경남, 혹은 호남에 공천을 받기만 한다면 그 사람은 인생이 바뀐다. 그렇다면 공천권을 쥐고 있는 계파의 보스에게는 절대적으로 충성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되는 공식은 그것 뿐이다. 

게다가 정치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유명한 정치인일수록 후원금이 많이 들어오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 계파의 보스라면? 이 돈을 신진 정치인에게 적절히 나누어 주는 것 역시 보스 권력의 원천이다. 신진 정치인은 보스가 지역구에 공천해주고, 또 보스가 지역구 관리할 실탄도 분배해 주니 복종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눈 밖에 나면 지역구도 날아가고, 정치자금도 끊긴다. 보스를 거역하고 3당합당에 참여하지 않은 8명은 이후 정치활동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렇게 보스의 권력이 크다보면, 당연히 계파원들을 관리하고 자금 및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측근 그룹이 생기기 마련이다. 김영삼 옆에는 항상 돌격대 역할을 하는 김동영, 최형우, 각종 정치자금을 관리하는 서석재, 김덕룡, 책사 황병태 같은 가신들이 있었다. 김대중 옆에는 정치자금 및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권노갑, 돌격대 김상현, 한화갑, 잡다한 일을 해결해주는 한광옥, 그리고 책사 박지원이 있었다.

측근 그룹이 또 세월이 지나면 중간보스급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이 중간보스들에게 줄을 대는 자들이 나타나고, 결국 당은 여러 작은 계파들간의 이전투구의 장으로 바뀌어 버린다. 하지만 공천권을 보스가 쥐고 있는 한, 아무리 까불어 봐야 별 볼일 없다. 김영삼, 김대중이 모두 대통령이 된 다음에도 자기 당의 총수 자리를 내어놓지 않고 공천권을 행사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김대중은 가족같던 가신 김상현을 내치는 비정한 모습도 보이고, 한화갑등 옛 동교동계 가신보다 박지원, 이해찬 등 신진 세력을 중용하면서 서로 견제하게 하는 등 절대 2인자가 나오지 못해게 했다. 반면 김영삼은 대통령이 된 뒤 계파 관리를 소홀히 하면서 중간보스들이 통제 불능이 될 정도로 성장했다. 특히 상도동계의 좌장인 김동영이 사망하고, 때맞춰서 또다른 좌장인 최형우가 맛이 가면서 김덕룡, 서석재, 서청원, 강삼재 등의 중간 보스들이 각개 약진하면서 오랜 역사를 지닌 민주계(상도동계)는 계파로서 최후를 맞이한다.

그럼 이런 보스정치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1) 정경유착의 가능성: 보스는 자금을 관리해야 한다. 계파원을 먹여살리지 못하는 보스는 계파를 유지하지 못한다. 이런 목돈은 자본가가 아니면 내어놓기 어렵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정경유착의 고리가 형성된다. 당시 재벌들은 항상 야당에도 "보험"을 들어놓기 때문에 김영삼, 김대중 같은 유력한 야당 지도자들은 잠재적 대통령으로써 넉넉한 자금을 구할 수 있었다.

2) 민주화에 대한 절박성 상실한 기득권그룹 발생: 보스에 대한 충성이 확인된 의원들은 이제 당선이 확실시되는 지역에 안정적으로 공천받게 된다. 즉 김영삼의 측근은 부산 경남에, 김대중의 측근은 호남에, 또 수도권에서도 전통적인 강세지역에 안정적으로 공천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3선, 4선, 5선, 거의 무한대선 의원이 가능하다. 그러니 이들이 보수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예컨대 김대중의 계파 호남지역 국회의원들이 바라는 것은 특별히 야심이 없다면, 이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민주당이 권력을 잡지 못해도, 민주당이 소수정당으로 전락해도, 민주당 당적을 유지하고, 호남에 공천이 되는 한 그의 권력은 영원하다. 마침내 이들은 그 지역의 호족이 된다.

3) 이러한 상황은 지방자치제와 함께 보스가 해 줄수 있는 자리가 엄청 늘어나자 더욱 심각해졌다.

그러니 이런 상태로는 어떤 개혁도 혁신도 불가능하다. 김대중 역시 이를 깨닫고  김근태 등 재야 운동권과 386학생 운동권 출신의 젊은 피를 대거 수혈하는데, 이렇게 들어온 운동권 출신들은 당연히 김대중을 보스로 모시는 기존 정당정치에 기겁할수 밖에 없었고 이후 동교동계와 계속 갈등한다. 대표적 사례가 이들 운동권 출신들이 김대중의 정책을 비판하자 동교동계에서 "어떻게 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라며 반발한 부카닉한 사건이다. 사실 어찌 보면 김대중은 노회하게 보자면 이 갈등을 이용해서 동교동계의 중간보스들, 특히 한화갑이 지나치게 성장하는 것을 견제했다고 볼 수 있고, 좋게 보자면 동교동계는 더 이상 개혁세력이 될 수 없다고 보고 서서히 무게중심을 옮겨갔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민주당은 기존의 호남 기득권층(한화갑 등), 민주당 신파(정동영), 중도개혁파(어거지로 이인제 등), 그리고 386 운동권층(김근태 등)의 대결장이 되었고,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은 바로 이들이 승부를 겨루는 장이었다. 당시 최대 계파는 중도개혁파였다. 그리고 예전처럼 대통령 후보가 당 대의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선이었다면 이인제는 무난히 후보가 되고, 그를 중심으로 한화갑, 정동영이 연정을 구성하고, 김근태를 왕따시키는 구도가 만들어 졌을 것이며, 민주당은 또 그렇게 한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 실시한 국민참여 경선(이것도 계파후보는 조직력으로 동원가능하다고 믿음)에서 계파 조직을 무력하게 만든 시민들의 물결이 엉뚱하게 노무현을 대통령 후보로 만들었다. 이건 계파정치 조직동원 정치 보스정치에 신물난 시민들의 반란이며, 최근 안철수 현상의 원조, 더 강력한 원조다. 

노무현 대통령의 등장은 민주당의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결과였고, 계파들은 혼란에 빠졌다. 만약 노무현이 이 중 몇 정파, 예컨대 정동영계와 김근태계를 친위대로 삼아서 공천권을 무기로 보스역할을 했다면 이인제가 날아간 중도개혁파는 철새집단이기 때문에 그 밑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대체로 그걸 예상했고, 보스정치에 익숙한 기존 정치인들은 심지어 그렇게 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노무현은 대통령과 의회 권력의 분할이 민주주의의 원칙임을 강조하며 국회의원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지 않고, 당 총재 등을 맡지도 않았다. 불행히도 민주당은 보스 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경험을 한 적이 없는 당이다. 민주당은 이름과 달리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당인 것이다. 그 결과는 우왕좌왕, 그리고 이전투구. 아무래도 재야 운동권 출신인 노무현과 그나마 코드가 맞았던 계열은 김근태 계열인데, 이들은 또 불행히도 "밀당"할줄 모르는 우직한 운동권 집단이라 기존 당권파인 동교동계와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이 갈등은 결국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로 이어졌고, 이후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점거해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계속되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도 되는 호남기반 정치인들과 개혁을 밀어붙이고 싶었던 운동권간의 갈등은, 당 지도부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당내 보수파(선대인 말대로 이들의 보스가 김진표였는지는 알수 없다)들이 미온적으로 움직여서 개혁입법의 힘을 빠지게하는 형태로 나타나면서 열린우리당을 허접한 당으로 망가뜨리고 말았다.

자, 이쯤되면 민주당이 쇄신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수 있다.

1) 계파의 중간보스들의 권력을 내려놓아라. 신파인 이해찬도, 구파인 김한길도, 그외 호남 지역 토호들도 모두

2)  아직도 전략공천이란 이름으로 남아있는 중앙당의 공천권을 완전히 박탈하고, 각 지역당에서 당원들이 후보를 선출하게 하라.(사실 이것도 시작단계에선 많은 문제를 불러왔다. 관리도 서투르고 부정의 유혹도 많다. 경험이 없으니)

3) 당의 대표와 당직자들을 시민들이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상시적인 시스템을 마련하라.

4) 당의 정체성을 다시 선명히 하고, 미래의 전망을 열수 있는 정책개발 체계를 갖추어라. 

5) 기초자치단체장의 정당공천을 폐지하라는 안철수측의 요구가 있는데, 이는 후보의 부담을 너무 키우기 때문에, 이 역시 해당 자치구민의 경선을 통해 후보를 정하면 무난하다.

그 밖에도, 앞에서 분석했던 지점들을 잡아낸다면, 여기서 어떤 방향의 혁신 방안을 찾을수 있는지는 금방금방 나올수 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6) 당 혁신위원회 같은 기구를 설치해서 이후 당의 전망을 설계할 전권을 주고, 시민들의 브레인 스토밍을 받도록 하고, 그 위원장에 안철수를 추대하는 것이다.

아이고, 지친다. 이제 다음 편은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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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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