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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대통령과의 대화 10 국영수는 제일 중요한 과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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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영수는 제일 중요한 과목이 아니다.
 
나교수: , 이제 주제가 넘어갑니다. 당선인께서는 인문 예술 교육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재편하겠다는 식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일반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은 국영수는 어떻게 되느냐며 불안해 할 수도 있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토론을 시작합니다. 문제제기 하신 쪽에서 먼저 말씀하시죠.

오자모: 제가 먼저 말 꺼냈으니까 계속 할게요. 저도 예술이나 교양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공부는 말하자면 일종의 액세서리 같은 거죠. 있으면 예쁘고 좋지만 그렇다고 그것부터 먼저 챙길 건 아니라고 봐요. 그런데 당선인께서는 국영수 같은 중요과목에 대해서 좀 가볍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솔직히 학부모 입장에서는 불안하네요. 애들이 배운 것 없이 멋만 드는 건 아닐까 하고요.

이홍주: 내 말이 바로 그겁니다. 영어 수학 못하면서 음악, 미술 아무리 잘하면 뭐합니까? 교양이 아무리 풍부하면 뭐합니까? 고급 실업자 밖에 더 되겠습니까?
교육 대통령: 하하 은근슬쩍 국영수에서 국어 빼고 영수만 말씀하시네요? 왜 그러시나요? 그리고 그렇게 실용적이신 분이 왜 실업계 학교를 강화하지 않고 자율고니, 국제고니 하는 거만 늘렸습니까?

이홍주: 그거야 이제는 고급 인재를 육성해야 하니까 그랬죠.
교육 대통령: 그러니까 이 장관님의 고급 인재는 국영수 잘하는 사람입니까?
이홍주: 영수는 일단 기본이죠. 이 기본 위에 다른 것들을 겸비한 사람이 인재죠. 일단 영어 수학을 잘해야 다른 과목들도 잘하게 되는 겁니다.
교육 대통령: 허어, 아직도 세상 돌아가는 꼴을 모르십니다. 오늘날 인문적 교양과 예술적 소양이 고부가가치 산업의 기반이라는 것은 거의 상식입니다.
이홍주: 그런가요? 난 못 들어 봤는데, 왜 그렇죠?

교육 대통령: 아까 관계망을 형성하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출할 수 있는 상품이 21세기의 고부가가치 상품이라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뭐하셨습니까? 조셨나요? 내 참, 그래서 교양이 필요한 겁니다. 교양은 자기 삶을 성찰하고 또 삶을 창출할 수 있는 소재가 되는 것들입니다. 지식과 정보, 그리고 각종 기능들을 자기 삶을 통해 깊게 생각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녹여 낼 수 있는 내공, 이것이 바로 교양이란 말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지식·정보가 빠르게 전파되고 공유되는 세상에서는 제품의 성능만으로는 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중국의 ZTE같은 기업이 적어도 기기의 성능만큼은 애플이나 HTC를 순식간에 따라잡는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뭐냐 하면 그 제품을 가지고도 어떤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할 수 있느냐, 그리고 어떤 미적인 감수성을 자극하느냐 하는 부분입니다.

이홍주: 기계는 그렇다 치고, 하지만 영어 수학이 바탕이 되어야 그런 것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교육대통령: 영어요? 번역기의 성능이 점점 향상되고 있습니다. 구글 번역기 같은 건 영어로 된 웹사이트를 순식간에 통째로 우리말로 옮겨 줍니다. 수학이요? 요즘 컴퓨터가 어떤지 잘 아시잖아요? 완전 수학 천재죠. 중요한 건 영어나 수학을 잘하는 것 보다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디에 사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어와 수학을 인간보다 월등히 잘하는 로봇이나 컴퓨터는 상상할 수 있어도 교양을 갖추고서 삶을 성찰하고 삶을 창출하는 그런 로봇이나 컴퓨터는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이홍주: 하지만 그 교양이라는 것도 기초과목의 소양이 없으면 얻을 수 없지 않습니까?

교육 대통령: 물론 기초소양으로서 언어 수학 과목의 중요성은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게 모든 학년 학교 수업시간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흔히 국영수를 기초교과, 도구교과라고 합니다. 왜 기초고 왜 도구이겠습니까? 그걸 익혀서 다른 교과를 공부할 수 있게 하니까 도구이고 기초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초등학교 과정에서는 국어·수학을 매우 비중 있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장관께서는 골프를 치실 테니 골프로 예를 들어보죠. 레슨 초기에는 기본 자세, 기본 스윙 연습하는 시간을 길게 가지겠죠. 하지만 레슨이 진행되면 될수록 그런 기본기 연습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나중에는 코스 공략 위주로 레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기초과목인 국영수의 비중은 점점 줄이고, 그 대신 각종 교양과목과 예술 과목의 비중을 늘리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영어 수학을 배우는 까닭은 단지 영어 수학만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 고급 지식을 많이 얻을 수 있고, 교양을 넓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지식을 얻고, 교양을 넓힐 기회는 주지 않은 채 막무가내 영어 수학 공부만 지겨울 정도로 강요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 도구를 재미있게 사용할 기회는 점점 줄여나가면서, 도구를 연마하는 시간만 점점 늘리고 있으니 공부가 재미없는 겁니다. 만약 이 장관께서 골프레슨을 받는데, 필드에 제대로 나가보지도 못하게 하고, 게임 한 번 안 시키면서 10년이 넘도록 스윙연습만 시킨다면 어떻겠습니까?

우부친: 그렇다면 당선인께선 중고등학교의 국영수 시간을 줄일 생각이십니까?
교육 대통령: 물론입니다.
우부친: 그래도 과연 공부가 될까요?

교육 대통령: 거꾸로죠. 공부를 하면서 국영수도 익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회 과목이나 윤리, 철학 과목에서 읽어야 할 글들은 대부분 논설문이나 설명문입니다. 그렇다면 국어라는 과목에서 논설문, 설명문이라는 단원이 별도로 있어야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또 고등학생이라면 사회 시간에 외국의 사례나 학설을 살펴볼 기회도 주어야 하고, 다른 나라 정부 웹사이트도 방문하고, 국제적인 NGO 사이트를 방문하면서 질의응답을 할 수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제적인 이슈를 놓고 다른 나라 학생들과 인터넷 토론을 할 수도 있겠죠. 이러면서 저절로 영어공부가 되는 겁니다. 단지 영어시험을 위한 영어가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영어가요.
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시간에 통계를 다룹니다. 경제시간에는 상당히 까다로운 함수와 도함수를 다룹니다. 과학시간에는 상당히 고급 수학까지 다룹니다. 이렇게 거의 모든 교과에 수학이 흩어져 있습니다. 이런 여러 영역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종류의 수학이 왜 필요한지 깨닫고서 관련되는 수학을 공부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지 않겠습니까?

오자모: 물론 그러면 좋기는 하겠지만, 솔직히 불안할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영어 수학을 공부하면 정말 영어 수학 실력이 늘고 있는지 알 수 없잖아요?
교육 대통령: 하하하. 제가 교사시절에 학생들도 그렇게 질문 하더군요. 뭔가 확실하게 정리가 되고, 시험 칠 준비를 해 줘야 가르치고 배운 거라고 생각들을 하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 오자모 씨 혹시 운전 하시나요?
오자모: . 물론이죠. 특히 애들 고등학교 들어간 다음부터는 학원 데려 다니느라 운전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교육 대통령: 그럼 그 동안 운전 실력이 많이 늘었겠네요?
오자모: 확실히 많이 늘은 것 같아요.
교육 대통령: 최근에 특별히 운전 연습을 하신 적 있으십니까? 굴절코스, T자 코스, 언덕, 돌발 이런 것들?
오자모: 그런 연습을 왜 해요? 그건 면허 시험 칠 때나 하는 거죠.
교육 대통령: 그럼 만약 지금 면허시험장 가서 굴절코스니, T자코스니 이런거 시험 치라고 하면 연습이 부족해서 떨어질까요?
오자모: 그럴 리가 있나요? 운전을 벌써 10년째 하고 있는데? 그런 기초적인 코스야 쉽죠.
교육 대통령: 바로 그겁니다. 그런 기초기능을 따로 일부러 연습하지 않아도 실제 상황에서 운전을 계속하면 그런 기능은 저절로 향상되기 마련입니다. 물론 실제 운전하는 와중에 어떤 특정한 기능이 좀 뒤떨어진다고 판단하면, 예를 들면 후진 주차가 잘 안된다고 생각되면 그것만 따로 연습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일단 도로주행을 다니기 시작하면 굳이 따로 연습하지 않아도 경험이 쌓이면서 운전 기능이 향상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국영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운전을 하고 다니면서 각종 코스 기능 연습을 따로 하지 않아서 불안감을 느끼는 운전자는 거의 없습니다. S자 연습을 안해서 굴곡진 길을 운전하지 못할까 두려워하거나 하지 않죠. 그러니 우리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다양한 인문·사회·과학 문헌과 사례를 공부하고 실험을 하고 토론한다면 그 와중에 국영수 기능은 저절로 향상되기 마련이니까요.

송혁재: 당선인 생각은 뭔지 알겠지만, 저 역시 당선인께서 현실을 너무 안이하게 파악하고 계신 것 아닌가 우려됩니다. 우리 교육 현실은 대입수능이라고 하는 끝판왕이 버티고 있는 실정입니다. 당선인이 어떤 꿈을 꾸시던 간에 이 수능이 있고, 대입이 있는 한 결국은 국영수 위주 수업으로 흘러가고 말 것입니다.
오자모: 맞아요. 인문이니 교양이니 하다가 수능은 어떻게 보나요? 만약 학교에서 그런 걸로 수업하면 결국 학생들은 학원에서 국영수 공부해야 하니 사교육만 팽창 할 것 같아요.

교육 대통령: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물론 수능이 끝판왕, 종결자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수능이 바로 국영수와 연결된다고 보는 것은 오해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렇지 않게 바꿀 생각이고요. 원래 수능은 어떤 교과목과 직접 연결되는 시험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니라야 하고요. 국어 영어 수학이란 과목명을 쓰지 않고 언어, 외국어, 수리라는 이름을 쓰는 게 괜히 그러는 게 아니거든요. 언어는 국어가 아니며, 수리는 수학이 아니고, 외국어는 영어가 아닙니다. 국 영 수 라는 교과를 따라 떼어 공부한 학생보다는 다양한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영역을 한국어로, 혹은 필요하면 영어로, 그리고 다양한 수학적 방법을 응용해 가며 공부한 학생들을 선발 하려는 게 이 시험의 목적입니다. 그게 바로 대학에서 학문을 공부할 수 있는 기초 소양이니까요. 물론 수능의 기능은 거기까지로 제한해야 합니다. 기초 소양이 갖춰졌다고 판정되면 거기서 다시 순위를 매기는 것은 무의미하죠.

이홍주: , 국어 영어는 사회나 과학 시간에 해당되는 내용을 통해 할 수 있다고 합시다. 하지만 수학은 안 될 걸요?
교육 대통령: 저는 국영수 수업을 없앤다고는 안했습니다. 줄인다고 했지.
이홍주: 글쎄 줄이면 안 될 거라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시간이 모자라다고 아우성인데 어떻게 줄입니까? 지금 우리나라 고등학생 수학 평균이 40점대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런데 시간을 줄인다고요?

교육 대통령: 두 가지만 생각해 봅시다. 우선 학생들의 점수가 낮은 것인지, 아니면 나오는 문제가 어려운 것인지. ·고등학교 때 미국이나 캐나다로 유학간 학생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게 뭐냐 하면 수학입니다. 수학이 너무 쉬워서 정말 이정도만 해도 되는지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학 쉽게 배운 나라가 수학이 필요한 기초과학분야가 우리보다 뒤떨어져 있나요? 원 천만에요. 그 반대 아닌가요.
그리고 이렇게도 따져 봅시다. 학생들의 점수가 평균 40점이라면 분명 문제가 심각한것입니다. 하지만 이게 학생들이 못해서일까요, 선생들이 못가르쳐서일까요, 아니면 애초에 그 교과 자체가 지나친 것일까요? 우선 어느 학교나 수학점수가 그 정도라면 선생님들이 못 가르쳐서라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만약 성립되려면 학교에 따라 학급에 따라 편차가 커야 하는데, 거의 골고루 수학은 못하거든요. 사실 평균이 60-70점 정도가 되어야 정상인데, 평균이 40점 내외에서 맴돌고 있다면 이건 수학이라는 교과 자체가 난이도 조정에 실패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수학선생님들 중에 꽤 많은 분들이 수학이라는 과목에 대한 다소 패권주의적 생각을 갖고 계십니다. 진정한 승부는 다른 과목이 아니라 수학점수에서 결판난다는 식의. 지금 명백히 우리나라 수학교육과정과 또 수학 시험문제들은 지나칩니다. 그러다 보니 역사학자가 되고 싶은 학생이 수학점수 때문에 포기하고, 국문학자가 되고 싶은 학생이 수학점수 때문에 포기하는 등의 어이없는 일들이 발생하는 겁니다.
그것 뿐이 아닙니다. 수업 시간표와 학생들의 학습시간을 블랙홀처럼 독점하다시피하는 수학 시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점수가 낮은 것은 수학시간이 적어서가 아니라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재미가 없을까요? 이 공부를 왜 하는지, 어디 써먹을지도 모르는데, 분량은 엄청 많은데다 어렵기가지 하고 불친절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에서 수학적 기법을 널리 사용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런 용도까지 공감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과학에서 수학을 사용하는 까닭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 까닭이 그렇게 함으로써 개념과 개념의 논리적인 관계를 명확히 하고, 단순화 하여, 추론을 가능하게 때문이라는 것 말입니다. 게다가 수학시험은 사회과학, 자연과학과 무관하게 나옵니다. 그냥 짧은 시간에 누가 많은 문제를 풀어내느냐 하는 승부입니다. 이건 수학시험이라기 보다는 컴퓨터 한테 맡겨도 되는 계산 시험에 불과합니다.

이홍주: 하지만 고등학생들이 풀어야 하는 수학문제가 단순한 연산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교육 대통령: 물론 아니죠. 하지만 수학점수 1,2 점을 다투어야 하고, 또 워낙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에 그 문제들을 일일이 논리적으로 추론해가면서 풀었다가는 절반도 풀기 전에 시험이 끝나고 말겁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추론하기 보다는 문제의 유형별 풀이법을 그냥 익힙니다.
이런 종류의 문제는 이런 식으로 풀고, 저런 종류의 문제는 저런 식으로 풀고 하면서 풀이 패턴을 익히는 겁니다. 이런 패턴들을 많이 가르쳐 주는 선생들이 실력있는 선생이라 불리며, 이런 패턴들을 잘 정리해 놓은 학원이 용한 학원으로 통합니다. 결국 수학 시험은 누가 더 많은 패턴을 암기하고 있느냐, 그리고 누가 그 패턴을 적용해서 계산을 빨리 하느냐를 측정하는 시험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log함수가 대체 왜 쓰이며,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log기호가 나오는 연산문제 푸는 방법을 익히고, 미분·적분이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이해하기 전에 그런 기호가 나오는 문제의 계산법을 외우고 문제를 푼단 말입니다. 이런 식의 교육이 계속 되면 결국 수학 점수는 높지만 정작 수학은 잘 모르는 그런 학생들만 양산되고 마는 것입니다. 문제는 차라리 쉽고 긴 시간동안 풀게 하되, 개념을 분명하게 익히게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홍주: 당선인이 말씀하시는 수학 잘하는 학생 가려내는 문제라면 결국 기본적인 정의와 공리, 정리들을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능력을 측정하자는 것인데, 그 정도로 변별력이 생길까요? 아마 복잡한 계산 없이 기본 개념과 추론만 가지고 시험 치면 상위권 학생들 점수는 거의 비슷비슷 할 겁니다.
교육 대통령: 상위권 학생들 점수가 비슷비슷하면 뭐가 문제가 됩니까? 그 이상의 수학적 능력은 수학 시험이 아니라 여러 사회과학, 자연과학, 기타 여러 일상적 상황에서 활용하도록 해야죠. 구체적인 상황에서 말이죠. 일단 수학의 기본 개념을 익혔으면 그것보다 더 고차적인 능력은 더 복잡한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복잡한 현상을 수학적 개념을 이용하여 패턴화시키고 일반화 시키는 능력이니까요. 그건 수학시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얼마든지 평가할 수 있겠죠.

오자모: 그럼 영어는요?
교육 대통령: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어 혹은 영어라는 이름으로 치러지는 시험에서는 기본적인 문형과 어휘력, 독해력 등을 측정해서 수준이 웬만큼 되는지 정도만 검증하고, 그 이상의 수준은 구체적인 내용과 영역이 있는 외국어 자료를 해석하는 시험에서 해결해야죠. 그러니까 사탐이나 과탐에서 영어로 된 자료를 제시할 수도 있는 법입니다. 거꾸로 영어 시험에 사탐이나 과탐에 나올법한 문제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고요. 하지만 그러자면 가장 큰 고민이 있는데요, 학교 수업이 바뀌어야 이게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송혁재: 교사한테 대체 뭔 불만이 그리 많으십니까?
교육 대통령: 불만이 많을 수 밖에요. 우리 나라에서 교사는 매우 사회적 지위가 높습니다. 그런데 그만큼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죠. 왜 존경을 받지 못할까요? 그 지위만큼의 전문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또 그러려는 노력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사회영역 선생님들은 사회과목을 수학적 기법까지도 동원하는 사회과학이란 점을 망각하고 계시면서 암기과목으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이 분들이 사회 시간에 수학적 기법을 통해 사회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어야 하고, 외국의 논문이나 시사 자료도 거침없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과학 선생님들도 직접 실험을 하거나 관찰을 해서 그 결과를 통계처리하고 공식화해서 수리모형을 세우고 하는 등의 작업을 안 한지 십 수년 씩 된 분들이 태반입니다. 사이언스, 내이쳐 같은 외국의 권위 있는 과학 잡지를 읽거나 수업에 활용하는 경우는 손에 꼽고요. 그러니 과학 역시 암기과목처럼 가르치고들 계시죠. 이렇게 내용이 되어야 할 과목이 암기과목으로 전락하고, 또 그걸 방치하고 있으니 도구를 위한 도구, 국영수를 위한 국영수 수업만 점점 확대되고 있는 겁니다.
송혁재: 그 부분에 대해서는 참 할말이 없네요. 저는 그렇게 합니다만....
(한 동안 다들 침묵)
나 교수: 그럼 좀 쉬었다 갈까요?
교육 대통령: 그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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