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대통령과의 대화 11. 학부모는 교육수요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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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는 교육수요자가 아니다

나교수: , 충분히들 쉬셨으면 이제 다시 토론을 계속하겠습니다. 방금 우리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국영수의 비중을 줄이고 인문학, 과학, 예술 교육의 비중을 늘리고자 한다는 당선인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물론 이건 교육과정을 개편해야 하는 문제이고, 당연히 전문가들과의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당선인 역시 최상급의 교육학자로 불리셨고, 제가 아는 한 교육학자 중 가장 논변이 뛰어난 분이니 만큼 아마 관철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학부모님들은 여전히 안색이 어두우십니다.

오자모: 솔직히 당선인 말씀에 백번 공감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우부친: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당선인 생각대로 교육과정을 개편하면 아마 다들 학원에 가서 모자라는 국영수 공부 시킬 겁니다. 그럼 괜히 사교육비만 늘어나는 거죠. 그런데 당선인께선 이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실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드네요.

이홍주: 그럼 안돼죠. 교육 수요자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셔야지.

송혁재: 뭐요? 수요자요? 그 말씀 자꾸 들을 때 마다 느끼는 건데, 상당히 역겨운 용어입니다. 지금 우리가 장사하는 줄 아세요? 교육이 무슨 시장판인줄 아세요?

이홍주: 자꾸 시장판 시장판 그러면서 시장을 폄하하는 경향들이 있으신데, 그건 조선시대 사농공상 하던 식의 발상입니다. 시장이야 말로 그 어떤 자원 분배 방식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입니다. 학생들은 서로 자기가 원하는 선생님한테 배우기 위해 경쟁하고, 선생님들은 서로 원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경쟁하다 보면 결국 서로가 만족하는 지점에 이를 겁니다. 그 과정에서 학생도 선생도 모두 크게 향상될 것이고요. 이게 뭐가 나쁩니까?

송혁재: 바로 그게 나쁩니다. 교육이란 것은 가격이라고 하는 공통의 척도가 있는 상품과 다릅니다. 그러니 서로 경쟁하고 실적을 비교할 수 있는 경제활동과는 다르단 말이죠. 게다가 공교육은 사회 공동체의 공익을 위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렇게 경제의 잣대, 시장의 기준을 들이대면 결국 사실상 공교육은 사라지고 일개 서비스 상품으로 전락한 교육만 남습니다. 그 결과는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가 되고 말겠죠. 교육이 상품이라면 비싼 값을 치룰 사람이 더 좋은 교육을 받는 것은 불 보듯 훤한 일이니까요. 교육은 상품이 아닙니다. 교육은 공공재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시장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고 제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홍주: 제가 이른바 진보진영 분들에게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게, 제발 주류 경제학 관점을 비판하시려면 용어나 제대로 알아주십사 하는 겁니다. 교육이 어떻게 공공재입니까? 아마 공공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덮어놓고 공공재라고 부르시는 것 같은데, 틀리셨습니다. 공공재라는 것은 공짜로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을 배제할 수 없고, 또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도 기존 이용자들이 큰 문제가 없는 종류의 상품입니다. 무임승차가 가능한 상품이란 것이죠. 이런 상품에 누가 돈을 내겠습니까? 그러니 기업이 상품을 생산하고 제공할 유인이 없어서 공공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교육이 그렇습니까? 독하게 마음만 먹으면 학비를 내지 않은 학생을 얼마든지 학교에서 쫓아낼 수 있습니다. 즉 배제성이 있단 뜻입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그러지 않았습니까? 심훈의 상록수 같은 소설에도 나오잖아요? 또 교육은 다른 이용자가 진입해도 기존 이용자의 편익이 줄어들지 않는 그런 종류의 것일까요? 안 그렇죠. 교실에 학생 수가 점점 늘어나면 원래 있던 학생들의 교육환경이 나빠집니다. 즉 포화성이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 교육은 얼마든지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상품입니다. 만약 교육이 공공재라면 사교육 기업들이 성행하는 현실을 전혀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교육 대통령: 이 장관께서 모처럼 경제학자답게 말씀하시는군요.

이홍주: 당선인도 사회교사 출신이시니 나머지를 설명해 보시죠. 그런데 왜 중학교까지 교육이 무상으로 제공되는지?

교육 대통령: 그건 교육이 가치재이기 때문입니다. 가치재는 공동체나 국가가 판단하기에 모든 구성원이 누릴만한 가치가 있는 상품이기 때문에 제공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공교육 서비스는 엄밀히 말하면 공공재라기 보다는 국가가 구입해서 국민에게 나누어주는 가치재라고 보는 것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할겁니다.

이홍주: (회심의 미소를 띠며) 바로 그게 문제란 것입니다. 만약 교육이 가치재라서 모든 국민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면, 국가는 국민이 선택한 교육에 대해 지불만 해 주면 되는 겁니다. 골라줄 필요까지는 없단 말이죠.
하지만 지금 공교육은 어떤가요? 국가가 국민들에게 교육의 종류, 내용, 그리고 심지어는 그것을 제공할 교사와 학교까지 일방적으로 지정해서 할당하고 있습니다. 이건 국가가 사준다기 보다는 배급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의 선택권은 무참히 짓밟히고 있죠.
예를 들어 볼까요? 발레나 오페라 공연은 가치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는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의 티켓 값을 50% 이상 인하하도록 하고, 그 차액을 대신 지불해 줄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만약 국가가 김갑돌이란 사람에게는 발레 백조의 호수티켓을, 박을수란 사람에게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티켓을 강제로 배당했다면 이게 과연 제대로 혜택을 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때 만약 김갑돌은 오페라를, 박을수는 발레를 보고 싶어 했다면 이건 국가가 선심을 베풀어준다는 미명하에 폭력을 행사한 꼴이 아니겠습니까?
고교 평준화를 좀 보십시오. 교육 수요자들이 원하는 학교와 교사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본인의 희망과 선택이 배제된 채 강제로 학교와 교사가 할당됩니다. 이건 폭력입니다. 이런 폭력적인 처사가 그 동안 국가에 의해 교육이란 이름으로 행해져 왔던 것 아닙니까?

나교수: 간 만에 이장관께서 강펀치를 날리셨습니다. , 송선생님이즉각 반격 하시겠다고 나서시는군요.

송혁재: 그러니까 이 장관께서는 교육 수요자가 원하지 않는 학교, 원하지 않는 교사가 강제로 배당되는 것이 문제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이홍주: 제 말을 아주 정확하게 요약하셨습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이렇게 되면 공급자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국가가 고객을 확보해 주는 꼴이 된다는 거죠. 그러니 학교 입장에서는 개선과 혁신을 위해 노력할 하등의 이유가 없어지는 겁니다. 그러니 학교가 낙후하게 되고, 결국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 수요자들이 사교육 시장으로 몰려드는 것입니다. 어떤 물건을 국가에 의해 강매 당했는데, 그 품질이 신통치 않으면 어쩝니까? 시장에 나가서 또 사는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송혁재: 이 보세요. 교육이 무슨 시장에서 사고 파는 물건인 줄 아세요?

이홍주: 시장에서 물건만 거래된답니까? 서비스도 거래되죠.

송혁재: 아니, 그럼 교육이 무슨 마사지, 미용, 네일아트 같은 서비스업이랑 같다는 말씀이십니까?

이홍주: 본질적으로 뭐가 다릅니까? 고객의 만족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니 송선생님은 좌파라는 분이 직업귀천의식 있으십니까? 고객의 머리를 만져주는 능력을 제공하는 것이나, 고객의 자녀를 가르치는 능력을 제공하는 것 사이에 무슨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까? 음악학원, 피아노학원, 컴퓨터학원 같은 곳도 모두 서비스업으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학교만 유달라야 합니까?
(송혁재가 발끈하며 일어서려는데 원정규가 제지한다)

원정규: 송선생님의 불만이 뭔지는 알겠지만, 일단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일단 학교 교육도 서비스업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송혁재: 가정하든 말든 맘대로 해 보세요. 신자유주의자들 같으니라고.

원정규: 신자유주의 논쟁은 좀 있다가 따로 하기로 하고요. , 이 장관님 말씀에 대해 좀 물어보겠습니다. 학교가 공급자고, 교육이 서비스라고 합시다. 그렇다면 고객이 있어야 하겠죠? 누가 고객인가요? 누가 학교를 선택하는 선택의 주체인가요?

이홍주: 그야 당연히 학부모가 아니겠습니까?

원정규: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홍주: 아니 어떻게 그게 잘못된 생각이죠? 너무 당연한 생각 아닙니까?\
원정규: 제가 단언 드리는데 학부모는 결코 교육 수요자가 아닙니다.

이홍주: 그럼 대체 누가 교육 수요자겠습니까? 자기 자식 자기가 원하는 대로 키울 자유가 부정되는 겁니까? 누가 교육비를 냅니까?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사람이 수요자가 아니면 누가 수요자입니까?

원정규: 자기 자식, 자기가 원하는 대로 키울 권리라. 세상 어느 부모에게도 그런 자유는 없습니다. 자식을 마음대로 키울 자유를 부모에게 준다면, 이건 자식 입장에서는 마음대로 성장할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이 되니까요. 그리고 이 경우 자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온전한 권리는 부모가 아니라 자식에게 있다고 봐야겠죠. 자식의 인생이니까요. 그러니 자식은 부모가 원하는 교육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자유가 있다고 해야 합니다. 부모에게는 자녀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각종 지원을 해야 할 의무가 있고, 또 자녀가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권리와 의무는 있겠지만,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까지 결정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러니 엄밀한 의미에서 교육 수요자는 학부모가 아니라 학생입니다.

이홍주: 그건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말씀이십니다. 서울대학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이니 그런가 보다 하지만, 내 자식이고 내가 돈 내는데 그럼 내 맘대로 고르지도 못한단 말씀이십니까? 거 참 요상한 논리네요.

원정규: 만약에 그게 자식이 아니라 애완견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니 원래 사냥개였던 개를 집에서 애완견으로 키우건, 털을 깎아서 완상용으로 만들건 그건 주인 마음일수도 있겠죠. 물론 이것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주장도 많이 있습니다. 사냥개였던 개는 넓은 들판과 마당이 있는 집에서 길러야지 아파트 같은 곳에서 애완용으로 기르는 것은 가혹행위라고요. 개도 그럴지언정 하물며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체인 자녀는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자녀는 당연히 독립적인 인권을 가진 존재입니다. 여러분 자녀 인생의 주인은 여러분 자녀이지 여러분이 아닙니다.

우부친: 하지만 자식 잘못되길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직 어리고 미숙한 아이들이니까 길을 잡아주려는 것 아닙니까?

원정규: 그렇다고 해서 길 자체를 골라주거나 심지어는 강요할 권리는 없습니다. 다만 아주 엉뚱하거나 엇나가는 길이 아니라면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쓰러지지 않고 잘 갈 수 있도록 도와줄 뿐입니다. 그렇게 보면 학부모의 역할은 교사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사는 오늘날 가르쳐야 할 내용과 도와줘야 할 영역이 광범위해지면서 부모가 감당할 수 없어짐에 따라 부모 역할의 일부를 맡아 가진 집단입니다.

오자모 (억울해 하며) 학부모라면 누구나 자기 자식이 점수 잘 받기 바라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교육 시키려고 사교육까지 시키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왜 우리가 수요자가 아니고 선택의 권리가 없다는 거죠?
이홍주: 어머님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송혁재: (벌떡 일어서며) 일리가 있기는 뭐가 있단 말씀이십니까? 명색이 교육 전문가, 교육 당국자가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니 이렇게 공교육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부친(뛰어들며): 아니, 뭐가 어이가 없어? 보자보자 하니까 배웠다고 사람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바보가 아니라면 우리가 세금내서 학교 굴리고, 선생 월급주고 하는 거 부정하지 못할텐데요? 따지고 보면 선생님들 교수님들 월급도 우리 세금에서 나간단 말입니다. 그러니 우린 댁들 고객이라고요. 고객은 왕이다 이런 말도 모르십니까?

원정규: . 세금을 냈으니까 수요자라는 그 말씀을 그럼 일단 받아들여 봅시다. 그런데 두 분께서 내는 세금은 학교 뿐 아니라 병원에도 들어가죠?
우부친: 당연하죠.
원정규: 또 국방에도 들어가죠? 아마 교육과 함께 제일 많이 세금이 들어가는 분야가 국방이 아닐까 하는데.
우부친: 사람 무시하쇼? 그거야 5천만의 상식이 아닙니까?
원정규: 그렇다면 여러분은 국방과 의료에서도 소비자이고 수요자시죠?
오자모: 당연한 걸 왜 자꾸 따지고 그래요?
원정규: 그렇다면 여러분은 국방이나 의료가 여러분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길 바라십니까, 아니면 가장 좋은 방식으로 이루어지길 바라십니까?
우부친: 그게 무슨 소리요? 그게 그거 아닙니까?

원정규: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국방부터 살펴볼까요? 지금이 전쟁 중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분은 작전장교들이 작전을 수립하기를 바라십니까, 아니면 작전에 대해 여론조사를 해서 여러분들이 원하는 작전을 수립하기를 바라십니까?
우부친: 말도 안 되는 소리. 작전을 어떻게 여론조사로 정합니까? 장교들이 짜야죠.
원정규: 그 까닭은 전쟁의 목적은 승리하는데 있는 것이지 국민들의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겠죠?
우부친: 당연하지 않습니까? 인기 얻을 것 같은 작전을 세웠다가 나라가 패망하면 그놈의 인기가 다 뭔 소용이겠습니까?

원정규: 그럼, 병원은 어떨까요? 여러분이 병원에 갔을 때 여러분이 원하는 치료 방법과 여러분이 원하지 않으나 병을 낫게 하는 치료방법이 있다면 어떤 게 더 좋은 치료방법이겠습니까?
오자모: 당연히 병을 낫게 하는 거죠.
원정규: 그리고 어떤 치료 방법이 병을 낫게 하는지 판단은 누가 내리죠? 환자가 내립니까? 아니면 환자 보호자가 내립니까?
오자모: 그거야 당연히 의사가 내리죠.
원정규: 아니, 이런 상황을 어떻게 감내하십니까? 이거 완전 공급자 중심주의 아닙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국방이나 의료의 수요자 아닙니까? 세금도 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수요자가 공급자의 판단을 따른단 말입니까? 고객은 왕 아닙니까?
우부친: 그거야, 그런 일들은 전문가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렇죠.

원정규: 그러니까 작전은 장교들에게 맡기고, 치료는 의사들에게 맡기는 것이 수요자들에게 맡기는 것 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바람직하다는 것이죠?
우부친: 그렇죠.
원정규: 좋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여러 공공 서비스들 중 유독 교육만 수요자 중심이라야 하는 까닭이 뭡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럴 거면 전문적인 교사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건전한 양식을 가진 성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게 하지, 상위 5%에 드는 학생들이 죽도록 공부해야 겨우 교사가 될 정도로 까다롭게 선발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더군다나 교육의 직접 당사자인 학생도 아닌 학부모들의 뜻대로 학교가 움직여야 할 까닭이 어디에 있죠?
오자모: 그거야, 내 자식 맡겨 놓았으니까 그렇죠.
원정규: 아니. 그럼 의사는 환자 부모가 내 자식 맡겨놓았으니까라고 말하면 부모가 원하는 대로 치료해야 하나요?
오자모: 그건 아니죠. 의사는 자신의 전문성과 소신에 따라 최선을 다해 병을 치료해야죠. 그게 부모가 원하는 것이니까요.
원정규: 그렇다면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보고 치료를 해야 하나요, 아니면 환자의 부모나 가족이 원하는 방향으로 치료해야 하나요?
오자모: 당연히 환자를 보고 해야죠. 가족이 무슨 상관이에요? 아픈 건 환자잖아요?
원정규: 그러니까 병원에서 수요자는 가족이 아니라 환자 본인이 되겠죠?
오자모: 그렇죠.
원정규: 그렇다면 교육에서 수요자는 부모일까요 아니면 학생일까요? 교사가 우선 귀를 기울여야 할 대상은 학부모일까요 아니면 학생일까요?
오자모: 물론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요, 애들 말만 듣고 어떻게 교육을 해요? 애들은 아직 미숙하고 잘 모르잖아요?

원정규: 그럼 학부모는 어떨까요? 학부모 말만 듣고 어떻게 교육을 하겠습니까? 학부모는 단지 그 한 두 명의 아이만 길러봤을 뿐입니다. 예를 들면 학부모들은 아이가 열 살이 되면 어떤 변화를 겪는지 경험해 보지 못했거나 한 두 번 경험해 보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교사들은 그 나이 또래의 어린이들만 최소 수백 명에서 최대 수천 명까지 아이들을 길러본 사람들입니다. 더군다나 해마다 계속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들만 전문적으로 길러본 전문가입니다. 예컨대 중학교 교사라면 학부모가 한두 번, 한두 명 겪어 보았을 사춘기 청소년들을 수백 명에서 수천 명까지 전문적인 안목을 가지고서 집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이렇게 교육을 전담하는 전문가들 앞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큰 차이가 있을까요? 오히려 학생은 자기가 교육에 대해 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생님 시키는 대로 하지요. 하지만 학부모는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제법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수요자 중심이라고 말하면서 학부모의 뜻에 따라 학교가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까?

우부친: 이보세요. 애초에 당신네 교육자들이 교육을 똑바로 했으면 누가 이런 식의 말을 하
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원 교수 말씀을 들어 보니 마치 교육은 우리 교육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테니 무식한 학부모는 빠져라 뭐 이런 것 아닙니까? 이게 말이 됩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당신네 월급도 다 우리가 낸 세금에서 나온단 말입니다.
오자모: 맞아요. 정말 너무 하시네요.
원정규: 좋습니다. 그렇다면 장교들은 사병들의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작전을 수행해야 하겠군요. 그런데 젊은 장병들의 부모들은 당연히 자식들의 안전을 원할테니, 그 희망대로 웬만하면 후퇴하거나 항복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겠군요.
우부친: 그건 좀....
원정규: 그렇다면 공교육은 학부모가 원하는 교육을 해야 하나요, 아니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교육을 해야 하나요?
오자모: 그건 좀 말씀 드리기 어렵네요. 하지만 전 납세자입니다.
원정규: 세금을 낸 것이 과연 공교육을 구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럼 가난해서 세금을 적게 내거나 내지 않은 사람의 자녀는 학교에 다니지 말아야 하지 않습니까?
오자모: 그런 뜻은 아니고요.
원정규: 그럼, 현재 자녀들이 장성했거나 혹은 독신이라서 자녀가 없는 사람들은 교육세를 내지 말아야 할까요?
오자모: 그건 아니라고 봐요.
원정규: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수요자도 아니면서 요금을 내고, 요금을 내지도 않았는데 서비스를 이용하는 셈이 아닙니까? 그럼 학교에 다니는 자녀 수가 많을수록 교육세를 더 많이 부과해야 공정하지 않겠습니까?
우부친: 그건 안 되죠. 납세는 국민의 의무이니까 공평하게 부과 되어야죠.

원정규: 하지만 아무런 혜택도 보지 못하면서 세금만 뜯기는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자녀가 없거나 이미 다 성장해서 학령기 자녀가 없는 사람들 말입니다.
오자모: 혜택을 못 보긴요? 만약 학교가 제대로 안 굴러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안 그래도 버르장머리 없는 애들이 엉망이 될 거 아니에요? 그렇게 막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무슨 짓을 할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요? 갑자기 길가는 사람한테 칼질이나 안 할지.
원정규: 그렇죠? 우리가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가 나를 공격하거나 해칠 것이라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우리가 어떤 사업을 시작할 때 마다 적절한 인재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도 그나마 다 공교육 덕분입니다. 이렇게 그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게 되면, 이를 사회적 자본이 풍부하다고 말합니다. 즉 공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이 사회적 자본을 늘리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공교육의 진정한 수요자는 누구이겠습니까?
오자모: 우리 사회네요.
원정규: 그렇습니다. 공교육의 수요자는 사회이며 그 수혜자는 사회의 구성원입니다. 사회는 공교육 기관에게 올바른 사회 구성원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사회는 시민들로 이루어져 있죠. 그러니 여러분이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자녀의 부모로서 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주권자로서 내는 것입니다. 세금을 낸 보상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 가족이 교육 받은 사람들 속에서 믿을 수 있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으로 받는 것이지 결코 내 자녀의 점수, 내 자녀의 석차로 받는 게 아닙니다. , 이 말에 뭐 잘못된 거 있습니까? (이홍주를 보며) 그러니 제발 학부모가 교육 수요자라는 등의 말씀은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송혁재를 보며) 그리고 공교육은 상품이 아니니 수요공급으로 말할 수 없다는 등의 말씀도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송혁재: (갑자기 배신 당했다는 듯이)아니, 그건 또 왜 그렇습니까?
원정규: 공교육은 실제로 서비스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고객이 사회이며 공동체라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워낙 남발되어 별 의미가 없어지긴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공교육 기관에서 가르치려면 교사 자격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는 가르치겠다고 나서는 수 많은 사람들 중 고객인 사회가 그 사람을 선택했다는 구입인증서 같은 것입니다. 또 그 타당성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대단히 엄격하고 어려운 임용절차를 통과해야만 공교육 기관의 교사가 될 수 있는 것 역시, 여러 교육 서비스 기능 보유자들 중 가장 우수한 사람을 사회가 수요자로서 선택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송혁재: 수요자? 판매자? 이제 잘 하면 학교평가, 교원평가도 정당화 하시겠네요?
원정규: 당연하죠. 교사와 학교가 고객인 사회에 대해 자신들의 실적을 평가받고 책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저는 학교평가나 교원평가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교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원교수님 보다는 실제 정책을 집행할 당선인의 뜻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육 대통령: 저 역시 교원평가제와 학교평가제를 정비해서 실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홍주:(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이제야 저와 당선인이 뜻이 맞아 떨어지기 시작하는군요. 그래요. 선생님들 평가 받아야죠. 그래야 자극도 되고 경쟁도 하고 또 책임감도 생기죠.
송혁재: (냉소적으로) 어이구,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잘들 노십니다. 그래 결국 서울대 출신에 제도권 박사끼리 가재는 게 편이라도 하시겠다는 겁니까?
교육 대통령: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제가 학교 평가, 교원 평가를 실시하겠다고 해서 이장관님과 뜻이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장관께서는 학교와 교사가 돈을 내는 학부모들의 평가를 받으라는 것이지만, 저는 학교와 교사가 시민사회의 평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학교나 교사도 분명 일종의 공권력인 이상 시민사회의 감시와 견제가 없으면 타락합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와 교사도 사회가 자신들에게 부과한 책무를 얼마나 충실하게 실행했는지 평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송혁재: 말 장난 하지 마세요. 결국은 교사들 줄 세우고, 구조조정 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교육 대통령: 그 놈의 구조조정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하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구조조정의 공
포를 떠들고 다니셨지만, 심지어 신자유주의 이명박 정부에서조차 교사들이 구조조정 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어차피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줄을 세울거냐고 말씀 하셨는데, 줄을 세우지는 않겠습니다. 교사들이 1등부터 100등으로 순위를 받는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창의적이고 민주적인 시민들을 양성하는데 노력한 교사들은 응분의 보상을 받고, 나태하고 반인권적이고 권위적으로 군림한 교사들은 당연히 재교육을 받거나 퇴출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장관께서는 학교의 학업성취도를 공개해서 학부모들의 심판을 받는 쪽을 수요자의 평가라고 하셨습니다. 제 생각은 그것과 다릅니다. 저는 학교가 얼마나 민주적인지, 수업이 얼마나 자유롭고 창조적인지를 공개해서 시민사회의 심판을 받는 것이 수요자의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기준을 세워 학교평가와 교원평가를 실시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바깥에서는 민주니 자유니 떠들었지만 정작 교실에서는 지루한 일방통행 수업과 권위적인 태도로 일관한 거짓 진보교육자들도 가려지겠죠.
저는 지나치게 고루하고 권위적은 교사들은 재교육을 통해 새로운 민주적이고 창의적인 리더십을 갖추도록 하겠지만, 이런 거짓 진보교사들은 모조리 퇴출시킬 것입니다. 몰라서 안한 것, 안 되서 못한 것은 용서 되지만 알고도 안한 것, 그러면서 하는 척 하고 위장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과오니까요. 제가 교사들을 줄 세워서 구조조정할거라고 걱정하셨다면, , 맞습니다. 구조조정 할 겁니다. 다만 그 기준과 종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오자모: 그럼 학부모들은 이제 어떤 위치에 있게 되나요? 평가하고 선택하는 수요자나 고객의 위치가 아니라면, 학부모의 자리는 어디인가요?
교육 대통령: 안 그래도 그 말씀을 꼭 드리려고 했습니다. 사실 이 자리를 마련한 것도 그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였거든요.
나교수: (PD와 사인을 주고받다가) , 그렇다면 여기서 한 호흡을 쉬고 다음 시간에 학부모의 올바른 위상이라는 별도의 주제로 새로 토론을 시작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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