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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대선 패배가 누구탓인지 친노 비노 하기 전에 데이터 분석할 체제부터 갖추자

아쉽지만 결국 문재인 후보가 패했다. 내 평생 처음으로 지지한 민주당 후보였다. 심상정은 사퇴했고, 김소연 후보나 김순자 후보는 너무 비정치적이었다. 어쨌든 그렇다 치고.
갖가지 뒷말들이 나온다. 안철수가 나오면 되는 거였다, 안철수가 너무 미적거렸다, 이 정책이 이랬다, 저 정책이 저랬다 등등.

그런데 이런 말들은 다 그냥 말이다. 학문적으로 말하면 모두 가설일 뿐이다. 그리고 가설이라도 세우려면 변인을 설정해야 하고, 그 변인 설정에 대한 이론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것도 없다. 그냥 자기 신념을 말할 뿐이다. 그러니 이런것들을 분석이라고 내놓고 책임질 사람이 누군지 백날 떠들어 봐야 소용없다. 항상 나님 보다 너님이 더 책임이 크다는 결론이 나올 뿐이니 말이다.

논쟁을 할때는 느낌과 신념이 아니라 팩트를 가지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다투는 온갖 논객들이나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팩트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유일하게 내세우는 것은 단일화 이전에 1:1 시물레이션에서 안철수가 더 유리했다는 것 정도인데, 그것 역시 당시 안철수는 맥시멈이었고, 문재인은 추세적 상승이었다라고 말하면 빅이되면서 결론이 안난다. 그 밖에도 이정희 보수 대단결 방화쇠론, NLL론, 노무현 반감론 등 여러가지 이유들이 나오고 자칭 정치평론가들이 온갖 이설들을 늘어놓지만, 모두 근거가 없으니 일종의 감상문 내지 소설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썰을 풀기 시작하면 정치평론가나 유아인이나 차이가 없어진다.

그러니 지금은 이것 저것 따져볼 때가 아니라 데이타를 꼼꼼하게 수집할 때다. 사실 선거 결과 분석은 다른 분석보다 더 쉬울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변인이 투입될 경우 문재인 지지자에 속할 확률이 어떻게 변하는가에 대한 회귀모형을 세워서 매 시점 시점 실제 변인을 투입해서 결과를 분석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그 정도 수준으로 꼼꼼한 데이터가 수집되어 있는것 같지는 않다. 그럼 메타분석이라도 해야 한다. 이빨로 싸우지들 말고.

제일 좋은 방법은 YTN에서 했던 것 처럼 신뢰할만한 패널 그룹을 확보한 뒤 지속적으로 조사를 해서 응답의 추이를 관찰하는 것이다. 50000명 정도의 패널이 확보되면 이들 중 2000명을 무작위 추출해서 수시로 추이를 살펴보는 것은 거대 정당에겐 일도 아니다.

지지율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경향성이다. 이번 선거에선 민주당이 전혀 하지 않았지만, 이번 선거로 예를 들면 이렇다. 어떤 정책을 개발하면 그것을 변인으로 투입해서 문재인 지지자가 될 확률이 이전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꼼꼼히 체크한다. 그래서 영양가 높은 것들을 골라 공약정책을 만든다.
안철수 후보가 사퇴했을때, 계속 지원을 기다리면서 단일화를 완성하는 쪽과 "졸라 땡큐" 한 마디 던진 뒤 문재인을 부각시키면서 광폭행보 하는 것 각각 투입해서 어느 쪽이 지지자들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는지 체크한다. 광폭행보쪽이 더 크게 나오면 구태여 선대본 해체하지 말고 그냥 더 크게 밀고 나가면 되는 것이고, 아니라면 안철수가 원하는 것을 더 많이 들어주어야 한다.

하다못해 네가티브 하나를 하더라도 다 이런식으로 해야 한다. 국정원녀 같은 경우도 첫날 바로 신병확보가 어려울 것 같으면 다음날 오전이라도 긴급 패널조사해서 다음 행동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패널을 연령, 성별, 계층, 지역별로 꼼꼼히 분류하여 어떤 정책, 혹은 발언을 할 경우 어느 계층이 심하게 동요하거나 움직이는지 모두 시물레이션 해야한다. 판별분석이나 로짓 분석을 수시 때때로 돌려야 한다.

사실은 이걸 선거때만 할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계속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입법안을 올려야 정당 지지율이 올라가는지 챙겨야 한다. 대선 후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당 지지율이다. 정당지지율보다 높은 지지율을 거둔 후보는 개인기나 매력이 대단하지 않고서는 나오기 어렵다. 정당지지율은 평소 얼마나 지지받을만한 정책을 잘 만들어 내었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니 패널조사를 주기적으로 또 수시로 하는 것은 정당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방대한 데이터가 수집되면, 이게 바로 대선의 무기다.

새누리당은 이런 것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여론조사 가장 잘하는 집단 중 하나인 여의도 연구소가 있다. 이들은 그 동안 잘 누적되고 검증된 패널을 보유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혹은 삼성연구소가 은근히 데이터를 준다. 막판에 문재인 바람이 부는 조짐이 보이자 마구 던지기 시작했는데, 이것 마구잡이가 아니다. 계산된 거다. 아무리 혐오스럽고 무분별한 네가티브라도 0.5~1% 씩 스크래치가 난다. 그 스크래치를 모아서 이긴거다.

그럼 민주당은? 이런 체제도 마인드도 갖춰져 있지 않다. 아직도 주먹구구로 감의 정치를 하며, 이른바 판세를 기준으로 선거를 치룬다. 이렇게 무전략, 몰과학적으로 선거에 임한다면 바람을 일으키는 것 외에 도전자가 이길 방법이 없다. 그나마 경영인 출신 정세균 고문이 선거 막판 10여일을 남겨두고 캠프를 지휘하면서 메시지와 정책이 먹혀들어가고 후보 문재인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데이터는 없지만 경영경험에서 얻은 촉이었다. 앞으론 이런 식의 선거는 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지금은 누가 누구 탓을 할 근거가 거의 없는 상태라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다만 후보탓인지 정당 구성원 탓인지는 가릴수 있다. 사실은  후보가 당선되지 못했을 경우 그 책임은 당에서 지는 것이 정상이다. 존 케리가 부시에게 패한 뒤 퇴진 요구를 들었단 말은 들어본적이 없다. 이후에도 케리는 계속 상원에서 민주당을 대표하고 있었다. 후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매우 비겁한 행동이다. 후보는 정당의 전략을 이행하고 그 정책을 널리 알리는 사람이다. 만약 정당이 짜 놓은 전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보가 고집을 부려서 기어코 뻘짓을 했다거나, 혹은 모 후보처럼 꼼꼼하게 수첩에 써준것도 못읽고 헛소리를 한다거나 했다면, 그건 후보의 책임이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는 매우 성실한 후보였다. 캠프의 그 누구도 문후보가 캠프의 요구를 이행하지 못했거나 몽니를 부렸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정당 구성원들의 책임을 찾아야 한다. 그 기준은 친노냐 비노냐 이런 허황된 기준이 아니라 구체적인 데이터에 기반해야 한다. 현재로서 가장 확실한 데이터는 각 지구당별 총선 득표율대 대선 득표율이다. 그래서 총선당시 민주당 득표율-새누리당 득표율과 대선때 문제인 득표율-박근혜 득표율의 값을 구하면 된다. 전자를 A 후자를 B라 하자. 그래서 B-A를 구하자. 만약 이 값이 +인 지구당이 거의 없다면 이건 전략을 잘못 짠 것이니 중앙선대위에서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인 지구당과 -인 지구당이 섞여 있다면, -인 지구당의 위원장은 책임을 져야 한다. 마침 친노계열이 위원장인 지구당이 -가 많다면 친노가 책임을 져야 한다. 기준은 객관적이라야 한다.

자, 그러니 민주당은 지금 헛소리로 싸우지 말고 딱 두가지만 해라.

1) 앞으로 세밀한 지지율 변화를 예측해가며 정책 개발하는 연구소 설립과 대규모 투자
2) 각 지구당별로 B-A값 구해서 -인 지구당 위원장 명단 뽑기

그럼 아마 이른바 쇄신파는 자기들이 쇄신대상이라서 쇄신파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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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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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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