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주경복을 도운 교사는 해직, 한나라당 도운 교장은 경징계, 이런 판결이 어디 있나?

11월 29일은 대한민국 사법 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날 중 하나가 될 것이다이날 대법원 2(주심 신영철 대법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로부터 선거자금을 받은 혐의(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 위반)로 기소된 전 서울시교육감 후보 주경북 건국대 교수에게 벌금 300만원을그리고 함께 기소된 전교조 교사 일곱명에게 공직 취소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기 때문이다사건 발생 뒤 4년이나 지나서 하필이면 교육감 재선거를 앞두고 난 확정 판결이다이로써 주경복 교수송원재 교사 등 8명의 해직 교수 및 교사가 나오게 되었다이 중에는 필자의 대학 동기도 포함되어 있다.



얼른 들으면 이들의 혐의는 무시무시하다. 재판부에 따르면 주경복 당시 교육감 후보에게 전교조가 불법한 선거자금을 지원했으며주경복 후보는 이 불법한 선거자금을 받아썼다는 것이다심지어 선거관리위원회가 아무 문제 없다고 유권해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런 판결을 내리고 말았다.
 애시당초 이런 판결이 나오게 된 근거가 된 교육자치법의 교육감 선거와 관련된 내용 자체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앞뒤가 맞지 않는 법은 애매한 사람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사회적 흉기다따라서 대부분 양심적인 법관들은 이런 경우 실정법에 의해서 처벌을 내리긴 하나 피해가 최소화 되도록 판결하는 것이 상례다교육자치법도 그렇다교육감 선거를 교육의 정치중립을 위해 시도지사 선거와 구별되는 것으로 규정했음에도 불구하고그 세부사항에는 시도지사를 선출하는 지방자치법을 준용해 버린 것이다.

 현행 공직선거법과 지방자치법에 의하면 교사와 공무원은 어떤 정당에 가입할 수 없으며특정 후보의 선거운동 등의 행위를 할 수 없다이 근거 조항은 대한민국 헌법이다헌법은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그리고 이 연장선상에서 교사들의 수장인 교육감 역시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의 범주에 포함된다따라서 교육감 선거에 나서려는 후보는 최근 1년 이내에 어떤 정당에도 소속된 적이 없어야 하며어떤 정당 혹은 정당에 속한 정치인도 교육감 선거에는 절대 개입해서는 안 된다.이는 교육감 선거를 여타의 선출직과 달리 교육 선출직이며따라서 일반적인 공직선거와는 다른 교육계의 선거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누가 교육감 후보가 될 것이며누가 교육감 후보의 선거운동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이 규정대로라면 정당이 개입할 수 없으니 교육감 후보는 무소속 후보일 수밖에 없다또 교육감은 정치인으로 규정되지 않기 때문에 정치자금법상의 후원금을 걷을 수도 없다게다가 지방자치법을 준용한 결과 대개는 교사나 교육전문직 출신일 교육감 후보들은 어떤 교사나 교육전문직의 지원도 받을 수 없다교사는 어떤 교육감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할 수도 없고교육정책이나 교육공약을 개발하는 일에 참여할 수도 없다.

 그럼 도대체 교육감 후보는 누굴 데리고 무엇을 가지고 선거를 하라는 말일까정당원도 교사도 다 안 된다면결국 학교에 이권이 걸린 업자들이 판을 치게 된다얼마나 많은가인테리어 업자건축업자교복업자급식업자수학여행업자학원업자출판업자 등이들은 교육감 후보에게 자금을 지원할 수도 있고,자신들에게 더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도록 조작된 정책을 제공할 수도 있고선거 캠프를 운영할 수도 있다.심지어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들까지 마음대로 개입할 수 있다이것이 바로 교육감이 각종 부정부패와 이권개입을 일삼도록 만드는 원인이다그러나 정작 교사들의 조직인 전교조나 교총그리고 교육청 직원들의 조직인 공무원노조는 입에 재갈이 물린 채 자신들의 수장이 결정 나는 선거를 손가락만 빨며 구경하고 있어야 한다막상 누가 교육감이 되느냐에 따라 이해관계가 직결되는 것은 그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제대로 정신 박힌 교사라면 이런 현상에 분노도 느끼고 답답함도 느껴야 한다. 그리고 2008년 당시 전교조 서울 지부는 비록 어처구니 없는 법이긴 하지만 그래도 법은 지켜야 하겠기에가장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교육감 후보를 도울 합법적인 방법을 찾고자 했다. 그 결과 교사들이 후원금을 내는 것은 불법이지만 빌려주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는 점에 착안하였다요즘 유행하는 문재인 펀드안철수 펀드 같은 그런 것들이다게다가 이들은 돌다리도 두드리는 기분으로 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까지 했다당시 선거관리위원회는 후보와 교사 개개인의 채무 관계로 소액의 선거비용을 빌려주고 선거 후 갚는 것은 개인의 채무관계로 공직선거법과 관련하여 문제가 전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그런데 재판부는 같은 헌법기관인 선관위의 지도가 위법하다고 까지 하면서 전례 없는 판결을 하였다.
 하지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당시 사교육업자들로부터 거액의 선거자금을 받았다가 부랴부랴 돌려주고서 옛날 제자들에게 빌렸던 돈이라고 강변했던 공정택 전 교육감에 대해서는 단지 개인 간 채무관계이지 정치자금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심지어 당시 검찰은 전교조가 채무관계를 위장하여 조직적인 불법 정치자금을 조성했다는 식의 마타도어를 하면서이 소설을 입증하기 위해 주경복 전 후보와 전교조 서울시 지부 간부들의 이메일과 친인척들의 계좌까지 샅샅이 뒤지는 만행을 저질렀다.그 범위가 무려 15년 전 거래내역과 이메일부터다공정택과 이들의 차이는 오직 하나 보수냐 진보냐 뿐이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전교조 교사들이 15년 전부터 진보교육감을 출마시킬 모의를 하고그때부터 불법자금 조성 계획을 짜기라도 했다는 듯한 수사는 과잉하다 못해 폭발직전의 수사다이는 순전히 전교조의 지도급 인사들을 모욕하고 겁주기 위한 용도 외엔 아무것도 아니다아니면, "군자산의 약속" 교사 버전 소설이라도 만들 생각인가소설이 너무 지나치다.

사실을 따지자면 오래 전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조달했던 집단은 전교조가 아니라 교장단이다이들은 한나라당에 수백만 원의 불법한 정치 후원금을 정기적으로 바쳤으며심지어 교사들에게 정치 헌금을 강요하기까지 했다하지만 대한민국의 정의로운 법정은 이들에 대해서는 공직 사퇴 기준에 못 미치는 100만원 미만의 벌금형을 선고 하였다법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국가다민주국가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는 법 앞의 평등이다누구나 법 앞에서는 신분이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동등한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그런데 똑 같은 행위가 전교조 교사들이 하면 해직교총 교장들이 하면 경미한 벌금진보 교육감 후보가 하면 해직보수 교육감 후보가 하면 무혐의라면 이것을 어떻게 평등한 법적용이라 할 것이며법이 이렇게 엿가락처럼 적용되는 나라를 어떻게 민주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이는 법정에 선 사람이 누군지와 무관하게 오직 법과 양심에 의해서만 판결해야 하는 법관들의 천칭이 그만 부러진 사건이다그리고 재판받는 사람이 누군지 보지 않으려는 정의의 여신의 눈가리개가 그만 역행하는 시대의 바람에 날아가 버린 것이다부러진 천칭을 들고 있는 법관은 부러진 화살을 맞아도 할 말이 없다.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