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에게 묻는다. 진보 교육의 실력이 달리는게 문제인가, 아니면 진보교육자가 배제된 정책팀이 문제인가?

정말 오랜만에 포스팅을 한다. 거의 3주만인 것 같다. 미디어 오늘에 쓰는 기명 칼럼조차 근근히 채워 나가야 할만큼 생산력이 크게 떨어져 있기도 했고, 또 1월 20일 경에 출간할 신간 편집 작업 하느라 또 바쁘기도 했다. 물론 대선 이후 어느 정도 회복될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 기간동안 대선에서 이래서 졌네, 저래서 졌네 하는 인상비평이 많기도 했지만, 이미 12월 23일에 밝혔듯이 나는 실제 회귀모형을 세워서 통계 검증해 보기 전에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에는 반대하기 때문에 그런 인상비평에 대해 반론할 생각도 가치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대선의 충격이 다 가실만할때 느닷없이 소위 교육평론가 이범의 한겨레 칼럼에서 또 인상비평이 나왔고, 하필이면 그 인상비평 내용의 핵심이 진보진영의 실력부족, 그것도 진보 교육진영의 "실력부족"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고 하는 것이라 그냥 넘어가기 어려웠고, 심한 모욕감마저 느꼈다. 그래서 3주만에 다시 키보드 앞에 앉아서 포스팅을 재개한다. (이범 칼럼 원문 보기)

길지 않은 글이기 때문에 직접 읽어보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겠지만, 독자의 편의를 위해 그의 칼럼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1. 이범은 안철수 캠프와 이수호 캠프 양측에 모두 참가하면서 진보 교육정책의 한계를 절감했다.
2. 첫째, 차등없는 반값 등록금을 강변하면서 보편복지에 집착하는 모습인데, 최종적으로 무상등록금을 생각하면서 그 중간단계로 저소득층에 대한 차등적 무상등록금 같은 유연한 대책(이게 소득순위 1, 2 분위 계층에겐 오히려 더 유리하고, 이들은 반값 등록금 조차 부담스러워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을 낸 이범 같은 인재의 의견을 묵살했다.
3.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도 대학의 86%가 사립이고, 특히 서울·수도권에 국립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상위 사립대에 입학하기 위해 경쟁할 것이 뻔한데 무슨 소용이겠는가?
4. 학생인권만 강조하다 보니 학생의 수업 방해 문제 등, 교권에 대한 정책이 없었다. 이범은 용감하게도 이 문제를 제기하고, 교사의 긴급행동권 등을 제안했지만, 곽노현도 이수호도 듣지 않았다.
5. 따라서 진보진영은 교육정책에 관한한 정책의 대중적 호소력에서 앞서지 못했다. 한마디로 실력이 달렸다(이범을 중용하지 않았다).

자, 그럼 이제 이 다섯가지 테제에 대해 간단한 비판을 가하겠다.

먼저 1번. 이범이 안철수 캠프, 이수호 캠프에 참가하면서 진보교육정책의 한계를 절감했다는 것은 지극히 오만하고 편협한 생각이다. 그 한계는 그냥 안철수 캠프, 이수호 캠프 정책의 한계다. 안철수, 이수호 캠프에서 내어 놓은 정책들을 진보교육정책이라고 주장할 근거도 희박하거니와, 그게 진보교육정책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거의 없다.

다만 진보 교육계에서 나서서 설치는 사람들의 빈곤한 상상력의 한계일 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범 같이 대중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 외에 더 적극적으로 진보적인 교육자, 교육정책개발자를 발탁하지 못한 안이함부터 그들의 빈약한 상상력을 잘 드러내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번. 보편복지라면서 반값등록금에 집착했고, 차등 무상 대학교육이라는 과도기를 거치고 최종적으로 완전무상교육으로 가자는 이범의 주장에 귀기울이지 않았다는 주장. 이건 말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 이건 맞는 말이다. 다만, 보편복지라는 이념적 강령에 집착해서 합리적이고 실현가능한 방안을 내어 놓지 못한 것을 진보교육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 보편복지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려 했던 측은 진보교육진영이 아니라 소위 진보좌파 정치진영이었다. 진보교육진영에서는 이범식 방안 말고도 다양한 과도기 방안이 이미 나와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괄적인 반값 등록금 대신, 우선 국립대학을 완전 무상화 함으로써 지방 국립대의 경쟁력을 높이고, 사립대의 등록금 인하 압력을 가할수 있다는 등의 제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반값 등록금이 박근혜의 차등적 무상지원보다 설득력이 떨어져서 선거에 졌다는 주장은 오버다. 반값 등록금이건, 차등적 무상지원이건, 이 자체가 이번 선거에선 쟁점이 되지 못했다. 이것 때문에 현실성이 높아 보이는 박근혜에게 50대가 몰려갔다는 주장은 안철수 전 후보측 인사들이 흘리고 다니는 말을 은근히 옮겨 적은 것에 불과하다. 한겨레 일반 독자들은 모를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트윗 깨나 하는 사람들은 "복지세상"이라는 필명을 쓰는 어느 블로거가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는 주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3.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방안. 이것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이범만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만약 문캠에서 이걸 고집했다면, 그건 문캠의 문제지, 이걸 무슨 진보교육 진영의 문제처럼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정책을 마련하는 일에 진보교육진영이 철저히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현직 교사와 공무원의 선거캠프 참여가 불법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작 진보교육자들은 손가락이나 빨고 있고, 도대체 무슨 근거로 저 사람들이 교육전문가 행세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명망가들(이범도 그 중 하나다)이 교육정책팀이랍시고 꾸려진 것이 안캠이건, 문캠이건, 혹은 이수호캠이건 공통된 현상이었다.  고등학교 경력이 3년만 넘어도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방안이 별 효과 없다는 것을 안다. 저걸 고집한 것은 진보교육진영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 아니라 진보교육진영이 정작 교육정책팀에서 배제된 한계의 결과다.

그리고 애초에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방안을 끄집어 내었던 민교협 측에서도 이미 이 방안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밝히는 교수들은 많이 있었다.

4. 학생인권 문제와 교권의 충돌 부분은 이수호 후보가 기계적으로 반응해서 실제로 많은 감표요인이 되었던 문제다. 그런데 이걸 이범을 제외한 진보교육진영이 모두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엄밀히 말하면 이건 이수호 후보의 고민의 폭이 좁고, 교육경력이 부족해서 비롯된 일이다.  이 문제를 신중하게 접근하라고 조언한 진보교육진영 사람들은 이범 말고도 많이 있다. 그런데 이수호 후보가 듣고도 무시했을 따름이다. 이건 이수호의 문제지 진보교육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폭력 가해자의 생활기록부 기재 문제에 대해서 곽노현 교육감이 즉각 반대에 나서지 않고 신중하게 반응한것도 주변에서 학생인권과 가해자에 대한 제재 방안 문제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 "진보교육자"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5. 따라서 진보교육진영이 실력이 달려서 정책의 호소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진보교육자들이 진보교육진영을 대표하지 못하고, 각 캠프들이 엉뚱한 국외자들로 교육정책팀을 꾸렸기 때문에 정책의 호소력이 없을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범도 그 국외자 중 한명이다. 안캠프도, 문캠프도 교육정책팀의 면면을 바라보면 정작 학생들을 맞닥뜨리고 살아가는 교육자들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거기서 무슨 현실적인 정책이 나오겠는가? 그러니 "교육"이 아니라 "보편복지" 같은 강령적 이념을 먼저 세우고, 교육을 거기에 종속시키고 맞추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들의 정책이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것은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학입시와 관련된 정책은 지나치게 많고, 교실에서 제대로 된 수업이 이루어질수 있도록 하는 세밀한 방안은 지나치게 부족한 상황이, 대학교, 고등학교 이외의 학교(정작 국고로 운영되는 의무교육 기관)정책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문캠이나 이수호캠프의 교육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이범의 자유이며 권리다. 그런데 그 비판을 마치 자신만 할 수 있는 것 처럼 말할 권리는 없으며, 더더군다나  자신이 한국교육의 모순을 심화시키는 댓가로 수십억씩 벌어들이고 있는 동안 간난신고를 다 겪으며 조금이라도 나은 교육을 해 보고자 댓가는 커녕 희생을 감수해온 진보교육 전체를 싸잡아서 실력이 "달렸다"라는 식으로 말할 권리는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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