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홍콩, 싱가포르가 부러웠던 가카와 오세훈. 그러나...

내가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는 타이완,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이 네 지역이다. 그러고 보니 모두 한자문화권이며, 한족이 주류를 이루는 나라들이기도 하다. 물론 홍콩, 마카오를 나라라고 볼수 있느냐는 말도 있겠지만, 엄연히 독자적인 여권과 화폐, 그리고 자치 정부를 가지고 있으니 나라라고 봐야 한다.

그럼 내가 중국 오덕님이시냐 하면 그건 아니다. 난 중국 본토 여행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저 지역들이 아시아의 선진권이라서 그런것도 아니다. 물론 나는 농촌보다는 도시를, 자연스러운 곳 보다는 문명이 발달한 곳을 좋아한다. 나는 잘 발달하고 정비된 현대식 도시 탐험을 좋아하지, 거친 자연속을 헤집고 다니거나, 혹은 "사람 냄새 난다"는 말로 위장된 어지럽고 비체계적인 후진국 거리에서 저렴한 물가를 즐기는 일 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래 사진들은 야경 멋지기로 세계 수위를 서로 다투는 홍콩과 싱가포르의 야경이다. 이 사진들만 봐도 이 도시들이 얼마나 화려하고 세련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나마 이건 일부분에 불과하다. 오세훈과 이명박이 얼마나 이 도시들을 부러워했는지 알만하다. 그래서 여의도에 IFC가 생기고(외양도 실내도 한국이 아니라 홍콩에 온듯하다), 영등포에 타임스퀘어가 들어서고, 동대문 운동장 자리에는 싱가포르의 에스플러네이드와 모양과 기능이 흡사한 독특한 구조물이 들어섰다. 싱가포르 강 주변 풍경을 따라 만들려고 한 것이 청계천이며, 인도에 작은 실개천 조성한 것 역시 싱가포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홍콩이나 싱가포르가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이 두배 혹은 그 이상 높은 나라들임을 생각해 보면 이건 뱁새짓이다. 아무리 도시를 화려하게 꾸며놓은들, 정작 시민들이 그것을 향유할 여유가 없다면, 단지 그것은 공허한 화장빨에 불과하다. 서울 시민들은 홍콩, 싱가포르 시민만큼 돈도 없을 뿐 아니라 시간도 없다. 저 사진들을 보면 야경을 위해 건물 외부에 설치한 조명이 주로 빛을 내고 있으며, 대형 빌딩 사무실의 등은 거의 꺼져있음을 알수 있다. 특히 싱가포르 국제 금융센터 건물은 완전 전멸이다. 저 사진들을 찍은 시간도 심야가 아니라 19시 좀 지난 시간이다.

사무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나와야 야경이건 화려한 도시풍경이건 즐길 수 있는 것이다. 6시 반이면 출근길에 나서서 10시가 넘어야 집에 녹초가 되어 돌아오는 사람에게 화려한 도시, 세련된 풍경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찌보면 싱가포르의 인공섬 센토사에 비하면 소박한 규모인 오세훈의 새빛둥둥섬이 그토록 욕을 들어먹은 이유도 거기 있는 것이다. 시민이 즐기고 향유할 여유가 없을때 디자인 서울은 공허하며, 단지 과시용에 불과하다.

그래서 최근 급격히 경제가 성장했다는 중국 본토는 영 내 구미에 맞지 않다. 사실 중국 본토에도 홍콩 싱가포르 수준의 도시는 충분히 있다. 예컨대 상하이의 일부구간들은 그 세련됨, 거대함, 화려함에서 싱가포르 못지 않다. 썬전이나 꽝저우는 풍부한 물자와 활발한 시장, 북적거리는 마천루가 홍콩에 못지 않다. 심지어 타이페이 같은 도시가 도리어 소박해 보일 정도로 중국 본토에도 크고 화려하고 현대적인 도시는 매우 많다. 세계 초고층 빌딩의 1/3 이상이 중국에서 지어지고 있을 정도로 마천루 하면 이제 중국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화려함과 거대함이 그 나라 인민들과 웬지 같이 녹아있지 않다는 생경함이 느껴지면 여행이 불편해진다. 2008 베이징 올림픽때 외국 손님들에게 중국의 발전상을 과시하기 위해 초고층 빌딩을 마구 짓고, 중국 전통 주택인 4합원 구역을 헐어내거나 커다란 담장으로 가려버리는 것을 뻔히 알면서 어떻게 중국 도시가 이렇게 발전했구나 하면서 감탄만 할 수 있겠는가? 그런 거대함과 화려함은 그로테스크할 뿐이다. 그 큰 빌딩 사이와 뒷골목을 잠깐만 돌아보면 단박에 드러날 일이다. 그 도시가 시민들의 것인지 아니면 시민들과 무관한 단지 장식품에 불과한지.

서울은 어떤 도시인가? 도시인가 정글인가?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