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새록거리는 클래식 덕질 (2)

제목을 클래식 덕질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지금의 나는 클덕, 클빠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영락없는 클덕이었다. 다만 빠하고는 좀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특정한 연주자나 성악가를 향해 팬질을 하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우리 집에 LP를 감상할 수 있는 이른바 하이파이가 들어왔다. 드디어 카셋트 테이프에 FM방송 녹음해서 음악듣던 옹색함을 벗어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LP판은 너무 비쌌다. 보통 한 장에 2800원 정도 했는데, 이는 짜장면 네그릇을 먹고도 남는 돈이었다. 당연히 이 귀한 LP를 그냥 들을 수는 없었다. LP를 사면 이것을 카셋트 테이프에 녹음했고, 주로 테이프를 듣고 또 들었다.

처음 구입한 LP는 빌헬름 켐프의 베토벤 소나타 전집, 카를 뵘의 모차르트 후기 교향곡 전집, 잉그리드 해블러의 모차르트 소나타 전집이었다. 용돈을 아끼고 아끼면 한달에 LP한 두장 살 정도의 여윳돈이 생겼다. 이걸 더 아끼기 위해 LP를 2000원이라는 놀라운 도매가격에 파는 청계천 일대의 음반 도매상을 뒤지고 다녔고, 특히 종로 3가의 원음사를 수시로 들락거렸다. 부다페스트 4중주단의 모차르트 4중주, 그뤼미오의 모차르트 협주곡, 쿠르트 마주어가 지휘한 슈베르트 로자문데, 그리고 경이로운 목소리로 처음 들었을때 충격을 선사한 프리츠 분덜리히의 슈만 가곡 등이 그때 긁어 모은 애청판들이다. 이렇게 LP가 야금야금 쌓였다. 자꾸 음반 사오는 것을 부모님이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에 일단 집 앞에 있는 소화전 함에 감추어 두었다가, 밤에 식구들이 잠들면 꺼내왔다. 그런식으로 야금야금 늘어난 LP가 무더기가 되자 부모님도 결국 포기했다.

그러나 들을 수 있는 LP판에는 한계가 있었다. 당시에는 이른바 라이센스 판만 구입할 수 있었고, 외국에서 직수입한 판인 이른바 원판은 당시 돈으로 거의 만원을 넘게 주어야 만져볼 수 있었다. 그리고 라이센스 판은 매우 한정된 곡들만 발매되고 있었다. 오페라를 전곡을 듣는다는 것은 언감생심, 거의 대부분 하일라이트 판으로 나왔다. 심지어 피가로의 결혼, 리골레토 같은 거의 대중적인 오페라의 전곡판도 구하기 어려웠다. 요즘 클래식 팬의 필수 소장판인 게자 안다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집이 다 나오기 위해 3년을 기다렸을 정도다.

그러니 독일 원판을 원없이 들어볼 수 있는 곳인 독일문화원의 음악자료실은 나에게 천국이나 다름 없었다. 거기서 들어본 판중 마음에 드는 것은 당시 클래식 라이센스 판을 많이 내던 '성음사'에서 발간한 '월간 레코드'라는 잡지에 기고하여 발매를 종용하기도 했다. 당시 내가 월간 레코드에 기고했던 글들이 제법 폼이 났는지, 팬 레터가 오기도 했다. 진주교대 2학년에 다니는 누나가 팬레터를 보내기도 했는데, 내가 클래식을 즐겨 듣고, 인문학 책 많이 읽는 대학생이라고 생각했는지,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고등학생임을 알고 그만 소식이 끊어졌다.

아버지가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인 친구를 통해, 당시 LP소장량이 전국에서 손꼽히던 서울대학교 음악감상실의 LP에서 녹음을 따오기도 했다. 모차르트의 C단조 대미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 같은 곡을 이런 식으로 처음 들었다. 놀랍게도 당시에는 이런 곡들을 음반으로 들을 수 없었다! 돈만 있으면 심지어 아마존을 통해 외국에서도 음반을 구입할 수 있는  요즘 클덕님들은, 돈이 있어도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없었던 당시 클덕들의  고생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명동에 있는 음악감상실 필하모니, 종로 1가의 음악감상실 르네상스에도 틈만 나면 가서 음악을 들었다. 학교에는 독서실에서 공부한다고 하면서 야자 빠지고, 집에는 야자다닌다고 하면서 독서실 값을 빼돌려서 심야의 호화로운 자유시간을 확보했던 것이다. 그리고 돌아다닌 곳이 음악감상실이라니! 지금 명동 CGV 근처에 있던 필하모니는 보유하고 있던 레코드 판이 입이 벌어질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머리가 벗겨진 두 영감님 디제이들이 몹시 불친절하고 고압적이었다.
반면 르네상스는 음반은 더 적었지만 친절한 디제이 누나들이 있었다. 남자 고등학생이 클래식 음악감상실에 출몰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누나들은 나를 금방 알아보게 되었고, 때로는 공짜로 출입하거나 음료수를 서비스 받기도 했다. 특히 디제이 누나가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한 슈베르트 교향곡 9번이라고 칠판에 써 놓았는데, 아무리 들어보아도 푸르트벵글러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아서 문의한 이후 -그것은 바렌보임이었다- 더욱 대접이 좋아졌다.
그 외엔 나중에 생긴 대학로의 인켈 오디오 월드도 간혹 들렀다. 여기는 30대 아저씨 오덕님들이 자주 오는 곳인데, 스피커 앞에서 지휘하고 있는 아저씨, 베토벤 교향곡 7번의 피날레가 끝나자 스피커 앞에서 오열하는 아저씨 들로 득실거렸다. 여기에 비하면 요즘 말러리아 들은 덕질 축에 들지도 못한다.

때로는 당시 유일한 클래식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에서 음악회를 즐겼다. 당시 서울시립교향악단이나 KBS교향악단의 정기공연에는 4층 꼭대기의 1000원짜리 좌석을 팔았다. 하지만 클래식 공연에 사람이 그렇게 많이 올 턱이 없기 때문에 직원들이 와서 4층 문 닫으니 아래로 내려가라고 했고, 2층의 텅빈 좌석을 골라 앉을 수 있었다.

때때로 협연자로 세계적인 연주자가 오기도 해서 땡잡는 날도 있었다. 1000원짜리 표 사서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 들어갔더니, 그날 피아노 협연에 이마뉴엘 악스 라고 되어 있고, 심지어 연주곡이 브람스 협주곡 2번이라는! 그래서 1000원에 악스의 연주를 거의 한시간 가까이 들을 수 있는 대박을  경험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많이 들은 것은 카셋트 테이프였다. LP를 카셋트 테이프로 녹음한 것은 때마침 불어온 워크맨 열풍과 궁합이 잘 맞았다. 감히 워크맨은 사달라고 할 엄두도 내지 못했기 때문에 가장 저렴한 산요 휴대용 카세트를 샀다. 당시 값으로 30000원이니, 요즘으로 치면 거의 20만원에 육박하는 고가품이었다. 소니 워크맨은 10만원을 거뜬히 넘어 20만원에 육박했는데, 당시 젊은 교사 봉급이 40만원선이었으니 요즘으로 치면 거의 맥북 값이다. 그래도 다니던 학교가 강남구 복판에 있는 학교라 우리반에만 해도 소니 워크맨, 아이와, 파나소닉 등이 즐비했다. 그래도 그 3만원짜리 카세트로 언제 어디서나 스테레오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정말이지 이런 이야기를 왜 계속 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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