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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돋는 클래식 덕질(3)- 나의 오페라 디바들

오페라, 발레에 푹 빠져 살아온 세월이 삼십년이 넘는다. 그 긴 세월 동안 여러 디바들을 좋아했다. 청소년기때, 청장년기때, 그리고 지금 여러 디바들이 나와 함께 세월의 다리를 건너갔다. 

1. 청소년기때의 디바: Edith Mathis

나의 청소년기때의 디바는 에디트 마티스였다. 주로 모차르트, 바하에서 강점이 있는 참 예쁜 목소리의 소프라노다. 안젤라 게오르규나 안나 넵트렙코보다 훨씬 이전에 활동한 날씬한 오페라 가수의 원조뻘 된다. 
별처럼 빛나는 디바로 불리웠고, 괴테가 "모든 여성적인 것이 인류를 구원한다."라고 말할때 그 여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 돈 지오반니의 체를리나, 그리고 마술피리의 파미나 처럼 실제로  순결하고 지혜로온 구원의 여인상을 맑은 소리로 들려주었다. 특히 마술피리에서는 대본을 보며 상상했던 파미나와 너무 싱크로율이 높아서 놀랄 정도였다. 
중년 이후에는 바하, 헨델의 교회음악, 그리고 슈만, 브람스의 가곡으로 활동범위를 옮겨서 60대가 될때까지도 헤맑은 목소리를 유지했다. 
먼저 피가로의 결혼을 한 곡 들어 보고,(어제나 지금이나 에디트 마티스를 능가하는 수잔나는 없다)

피가로의 결혼 4막 수잔나 아리아

마술피리의 파미나와 파파게노의 2중창 하나 들어본다.



2. 청장년기때의 디바: Natalie Desay

나와 함께 늙어간 나와 비슷한 또래의 소프라노다. 아직도 메트로폴리탄에서 맹활약 하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생생해지는 소리와 달리 DVD등을 통해 본 그녀의 얼굴에는 어쩔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1990년대에는 나탈리 드세이라는 이름은 나에게 무조건 CD를 구입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모차르트, 헨델, 그리고 벨리니까지. 물론 그 당시에는 화려한 외모의 안젤라 게오르규에 밀리고, 그리고 최근에는 역시 섹시한 외모의 안나 네트렙코나 디아나 담라우에게 다소 밀리는 감이 있지만, 오페라는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듣는 것이다. 

바로크, 콜로라튜라에서부터 벨칸토까지 여유있게 소화하는 나탈리 드세이는 한때 부당하게도 "조수미의 라이벌"이란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졌었다. 하지만 안된 말이지만 그건 한국인들의 오버다.

먼저,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아리아 하나 감상해 보고, 



그리고 그녀의 매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배역인 호프만 이야기의 인형 올림피아...


3. 가장 최근의 디바: Danielle de Nise

요즘 세대로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디바는 다니엘 드 니스다. 이 아름다운 소프라노는  독특하게도 르네상스, 바로크 등 고음악에 정통하다. 발레 솜씨도 뛰어나서 아치스와 갈라테이아에서는 피날레에서 전문 발레리노와 파드되를 추기도 했다. 헨델이 그녀의 장기인데, 헨델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내가 놓칠리가 없다.

먼저 헨델의 "울게 하소서" 독창으로 들어보고



역시 헨델의 율리오 체사레에 나오는 클레오파트라 아리아 하나 감상한다.


헨델 율리오 체사라 아리아


포스팅이 도움 되었으면, 지속적인 포스팅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주인장이 쓴 책들도 한 번 읽어보는 센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