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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교육감의 출소를 보며 깊이 반성합니다. 그리고 다시 결심합니다.

오늘 곽노현 교육감이 출소하였습니다. 비록 무죄로 풀려난 것은 아니지만, 작년 내내 내 가슴을 아프게 했던 것은 교육감으로서 곽노현이 아니라 망년지우로서의 곽노현이 겪게 될 수감의 고통이었습니다. 그 고통이라도 일단 먼저 끝냈다 하니 기뻐할 수 밖에 없습니다.

2012년 하반기는 멘붕의 시기였습니다. "지는 것도 이젠 지쳤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미 411 총선 결과를 보며 갈 길이 어려울 것을 예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멘붕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멘붕하지 않고 과반수를 겨우 넘긴 새누리당이 18대의 초거대 한나라당 같은 위력은 없을 것이니 실망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입법운동을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새누리당 의원을 한 두명만 설득하면 교육상임위를 통과시킬수 있을 정도로 야당 의석수도 만만치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교육개혁 입법안을 만드는 일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러던 중 곽교육감이 영어의 몸이 되었습니다.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이 멘붕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곽감이 비록 직은 상실하였으나 시민사회에서 정치적으로는 이미 사면된것이나 다름 없었으니까요. 그의 정책을 제대로 계승하는 진영이 구축되면 보궐선거도 얼마든지 이길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 대선 전망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래서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되면 위헌판결이 날것이라 보았고, 그 기세를 몰아 미리 준비한 교육개혁 정책을 쏟아 부으면 꿈꾸던 것들을 이루어 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진보, 노동단체의 무모한 욕심때문에 보궐선거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교사들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학교 비정규직 분들도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게다가 그 보궐선거는 미묘한 영향을 주어 박빙이던 대선에도 나쁜 영향을 주었습니다.

대선 결과가 나온 날, 2011년 9월부터 1년 반동안 분투하며 준비했던 모든 꿈과 계획이 무너지는 순간, 너무 괴로웠습니다. 멍하기도 하고. 그래서 페이스북에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요?"라고 짧은 글을 올렸습니다. 멘붕의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정말 알고 싶었습니다. 이제 뭘 해야 할지. 하지만 살짝 멘붕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그 글이 많은 교육운동가들에게 2차 멘붕가해의 역할을 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마저 멘붕의 조짐을 보이자 멘붕의 멘붕을 겪었던 것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멘붕의 위기가 오면 저의 대책없는 낙관주의, 계속해서 다음 일을 찾아나서는 모습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위안이 되었던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내가 "이제 나는 뭘 해야 하나요?"하고 주저 앉는 모습을 보인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엄청난 항의도 들었습니다.

반성합니다. 흔히 교사는 아플 자유도 없다고 합니다. 학생들을 위해 아파도 안되니 자기 관리 잘 하라는 뜻이겠죠. 저는 이제 멘붕의 자유를 반납합니다. 저에게는 멘붕할 권리가 없습니다.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을 것이며, 실낱같은 전망을 찾을 것입니다. 정 안되면 저 혼자라도 자뻑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작년 12월 20일 새벽에 올린 저의 경솔한 멘트 때문에 실망하고 혹은 충격받았던 여러 트친, 페친님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더구나 오늘은 기쁜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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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