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28.

전교조는 우선 지도부와 활동가의 담배부터 끊도록 하자.

전교조가 처음 등장했을때 가장 호소력 있었던 슬로건은 참교육도 교육민주화도 아니었다. 그것은 "촌지 안 받기 운동"이었다. 전교조가 교단의 기득권층에게 가장 크게 타격을 가함과 동시에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교사들 중 누워서 침을 뱉을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준 사람들이 주장하는 참교육이라면 믿을만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최근 전교조의 위상은 날로 추락하고 있다. 그 원인이야 워낙 복합적이겠지만, "전교조 교사"가  "일반적인 교사와 다른 그 무엇"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런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 크다. 그 와중에 부정적인 측면만 점점 더 부각되었으니 버틸 재간이 없는 것이다. 이 부정적 측면 중 80년대 구 운동권의 언짢은 문화가 노출된것은 전교조를 퇴행적 집단으로 낙인찍히게 만들었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에서 드러난 남성중심의 억압적 운동권 문화에 물들어 버린 것이다.

나는 2006년에 이 80년대 낡은 운동권 문화의 상징으로서 흡연문화를 제기하며, 그것을 탈피한다는 상징적인 행위로서 금연운동을 주창한 바 있다. 그때 전교조 주요 활동가들의 반응은 농담으로 받아들이면서 웃어버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반박하거나, 심지어는 공격적인 반응까지 보여주었다.  심지어 "담배를 나쁘게 보는 문화는 미국놈들의 문화다. 너는 친미냐?" 이런 얼토당토 않은 반응까지 있었다. 하기야 북한이 세계적으로 흡연율이 높은 나라이니.

그 이듬해인 2007년,  나는 1년간 전교조 본부간부로 일했다. 사무실은 지저분했고, 계통이 없었다. 주로 연구 관리, 논평과 성명서 작성등을 담당했는데, 도저히 사무실에서 작업할 환경이 안되어 근처 카페를 전전했다. 당시 위선적인 지도부는 내가 근무태도가 불량하다고 헛소리를 해 대었지만, 그 1년간 무수히 쏟아낸 연구결과, 논평, 성명, 보도자료, 그리고 방송 대담 등에 나가서 보수쪽 발표자들 묵을 친 일 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칭찬도 없었다. 아무 성과 없이 사무실에 죽치고 있는것을 성실함이라고 생각하는 그 지독한 관료주의는 교사들을 어떻게든 교무실에 붙들어 두기만 하려는 교장, 교감의 그것과 너무도 비슷했다. 그때 나는 전교조에 희망이 없음을 직감했다. 나는 당시 이미 스마트 시대를 예견하고 있었던 셈이고, 전교조는 여전히 아날로그였던 것이다.

당시 전교조 본부는 영등포에 민주노총이 있는 건물에 있었다. 전교조는 말이 민주노총의 산하조합이지, 건물에서 차지하고 있는 사무실의 면적이나 굴리는 예산은 민주노총과 대등한 조직이나 다름없었다. 전교조 교사들 중 자신이 민주노총 구성원으로 자동 가입되어 있음을 아는 사람도 의외로 적을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총 산하의 모든 조합 사무실에는 공통점이 있엇다. 그것은 바로 자욱한 담배연기였다. 특히 금연건물이라는 팻말 앞에 버젓이 흡연용 소파와 재떨이 까지 설치해놓고 있었다. 금속노조인지 민주노총 본부인지에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처음 마주치는 로비에 담배피우는 공간을 마련하여 사무실을 찾아오는 손님이 대뜸 담배연기부터 맡게 만들었다.계단이고 화장실이고 엘리베이터 안이고  담배악취 배어있지 않은 공간을 찾기 힘들었다. 심지어 회의실에서도 담배들을 피워대었다. 여기에는 거친 금속노조나 소위 배웠다는 전교조나 차이가 없었다.

하도 답답해서 전교조 본부에서 근무하는 전임자(교사로서 파견나온 사람들)의 흡연율을 조사해 보았다. 2007년 당시 전교조 본부 전임자는 무려 31명이었다. 이 31명의 전임자(말하자면 핵심 전교조 교사라 할 수 있다)들 중 흡연자의 수는 무려 21명이었다. 67%가 넘는 흡연율!
한국의 성인 남성 흡연율이 40%대인 것을 감안해 보라. 평균 남성 흡연율의 1.5배! 제3세계 빈민층, 아니면 북한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흡연율이다. 심지어 교사의 흡연율로는 믿을수 없는 수치다. 교사들의 경우 남교사들조차도 흡연율은 매우 낮다. 그러니 얼마 안되는 흡연자들은 죄다 전교조라는 악담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건 남녀 합친 수치다. 남성 전임자만 따로 분류해 보니 놀랍게도 25명중 19명이 흡연자였다. 흡연율이 76%인 셈이다.  이 정도면 전교조가 아니라 끽교조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있지 않지만 한국의 남자교사들의 평균 흡연율은 30%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자기 자유며 뭐라 할수 없다. 하지만 전교조 활동가라는 변인과 흡연율이라는 변인이 정적인 상관관계를 이루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 즉 전교조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일수록 담배를 피울 가능성이 더 크다는 함수는 전혀 반갑지 않다. 특히 내가 목격한 이들 전교조 본부 전임자들의 담배매너는 극악했다. 이들은 금연장소, 비흡연자가 있는 장소에서 거리낌없이 담배를 피운다는 점에서 거의 노숙자나 다름없는 매너를 보여주었다. 이게 전교조 문화인지, 아니면 특정 지역출신 문화인지는 모르겠다. 상대적으로 서울지부 사무실은 담배에 덜 쩔어 있는 것을 보면 지역 문화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교사는 담배를 피우라고 가르치는 입장이 아니다. 도리어 끊으라고 가르치는 입장이다. 그 이유도 무슨 규율 따위가 아니라 건강에 매우 해롭기 때문이다. 내몸 내가 망치는데 무슨상관이냐는 식의 반응은 교육적으로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니 끊어도 시원찮을 담배인데, 통상적인 교사들보다 몇배나 더 높은 흡연율을 보인다면, 참으로 문제가 아닐수 없다. 그런데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고민이 많은 사람들이다보니" 이렇게 대답해서야 곤란하다. 사람들은 전교조 교사들이 국가의 장래에 대해 세계의 평화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우선 눈 앞의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고 잘 가르치는 고민부터 해야 한다. 그렇다면 담배냄새 풀풀나는 교사는 일단 점수를 깎이고 들어가는 셈이다.

이제 다시 전교조 활동가들에게 요청한다. 담배를 끊자. 남성 조합원 흡연율 10% 운동을 벌이자. 여기에 더하여 '승용차 출근 안하기 운동' 이런것도 좀 해 보자. 뭐라도 개선하는 노력을 좀 보여 보자. 불굴의 의지와 투혼을 자랑해왔던 그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담배를 끊을 수 있다.  담배를 이기지 못하면서 무엇과 싸워 이길수 있겠는가? 해로운줄 알면서도 이기지 못해 담배를 끊지 못하는데, 해로운줄 알면서 학업성취도 평가, 입시교육 하는 다른 교사나 학부모를 무슨 근거로 비난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는 담배가 해롭다는 것은 서양식 사고방식이며, 민족의 전통은 남녀노소가 담배를 피우는 것이라는 궤변까지 늘어놓으면서 담배를 부둥켜 안고 있으니, 또 담배와 관련된 언급만 나오면 신경질을 내며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니 이는 중독증의 전형적인 현상 아닌가?

전교조가 단지 이익집단, 단지 노조가 아니라 참교육을 주장하는 교육운동 단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어떤 집단보다도 고결해야하고, 품위있어야 하고, 지성적이라야 한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니(피우고 난 다음에도 그 냄새는 한동안 몸에 남아서 공기를 더럽힌다. 흡연자는 잘 모르는 사실이다) 고결하지 못하며, 일개 중독성 물질에 매달려서 시름과 고민을 해결한다고 핑계를 대니 품위도 없고, 몸에 해로운 것을 버젓이 알면서도 나만은 예외겠지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니 지성적이지도 않다.

그러니 전교조는 먼저 담배부터 끊어야 할 것이다. 참고로 나도 2004년에 17년간 피웠던 담배를 끊었다. 단 칼에!

권재원의 저서 소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권재원의 저서 소개<대안 경제 교과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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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23.

정신건강이 위험한 교장, 교감, 그리고 교사들

이 글도 몇 해 전에 포스팅 한 글입니다. 그때는 이 블로그가 방문자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묻혀버렸는데, 조금 손질해서 새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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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의 자녀가 정신병 환자의 손아귀 아래에서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고 하자. 어떤 생각이 드는가? 질문이 너무 극단적인가? 그럼 바꿔 물어보자. 당신은 자녀가 영리하고 유능한 정신병자와 둔하고 무능한 그러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 중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가? 당신이 바보가 아니라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답은 학생도, 학부모도 누구도 여기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학생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교사의 정신건강에 대해 너무도 무신경한 것이다. 항공기 승무원 5700명에 대해 정신과 상담의가 1명에 불과하다는 걱정은 하면서, 그 보다 훨씬 사회적으로 중요한 교사 30만명에 대해 정신과 상담의 0명인 현실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 것이다.

설마 교사들의 정신이 문제가 있을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면접 등등에서 그런 사람들은 다 걸러냈다고 믿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신건강은 흔히 생각하는 것 처럼 튼튼한 것이 아니다. 정신질환은 감기만큼이나 쉽게 걸릴수 있다. 인간의 정서적 건강이 매우 불안하고 예민한 균형상태에서 유지되고 있음은 이상 심리학이나 정신병리학 개론 수준의 책만 읽어도 대번에 납득할 수 있는 사실이다. 특히 자아의 존재론적 안전감은 그것을 지켜주는 든든한 배경이 무너질 경우 정처없이 흔들리게 된다. 이렇게 존재론적 안전감이 위태로워질때 자아는 본능적으로 만사를 자아의 안전을 위해 재배치한다. 즉, 정신적 정당방위를 시도하는데, 신체적 정당방위와 마찬가지로 정신적 정당방위는 타인을 희생시켜서라도 우선 자신부터 보전하고자 한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 타인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교사는 늘 타인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존재론적 안전감의 배경에는, 공유되는 신념, 반복되어 온 관행, 자연, 전통, 가족과 같이 비교적 영속적인 친밀한 관계 등이 있다. 즉 아무리 풍파가 닥쳐와도 큰 변화 없이 의존할 수 있는 그런 문화적, 사회적, 심리적 대상들이 있다. 오늘날에는 이런 것들 중 그 어느 것도 안전하지 않다. 요동치는 금융 위기, 일본의 핵발전소 위기 등은 안전하지 않은 현대의 상징이다. 어떤 변화에도  불변이었던 재산의 상징이었던 "금"과 같은 상품은 존재하지 않고,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 "달러"도 한낱 유동성이 되었다. 그 어느 가치도, 제도도, 관행도, 가족관계도 안전하지 않다.

우리에게 학교는 그 동안 비교적 안전한 공간이었다. 입시교육이라는, 그리고 관료주의라는, 권위주의라는 불변의 관행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위협받거나 해체되고 있다. 해체되는 관료주의 하에 교사들은 스스로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되었던 각종 관행들이 무너지는 것을 체감한다. 이제 교사들은 권위와 관행이라는 버팀목이 사라진 상황에 스스로 적응해야 한다. 학생들에 대한 권위는 스스로 만들어야 하며, 학생들과의 친밀감도 저절로 생기지 않아, 늘 협상하고 타협하고 감정노동을 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처도 받아야 한다.

특히 여기에서 몸부림을 치게 되는 존재들은 교감, 교장들이다. 이들은 과거처럼 단지 교장, 교감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음놓고 내릴수 있었던 네크로필리아적 명령들이 번번히 반발과 항의에 부딪치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들은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결국 이들의 명령 혹은 고집이 관철되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은 교사들이 인간적인 감정과 관계가 더 악화되는것이 싫어서 마지못해 하는 것이지, 과거와 같은 내면화된 복종이 아니다. 교장, 교감들 역시 그것을 잘 안다.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예"하는 교사들이 아니라 앙앙불락한 얼굴로 마지못해 하는 교사들과 계속 같은 공간에서 얼굴보며 생활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이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교직원들이 심리적 안전감을 주는 공동체가 되려면 교장, 교감의 권력이 무너져야 한다. 그 권력을 지키려면 자신을 적대시하고 백안시하는 수십명의 교사들 가운데 섬처럼 존재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교장, 교감들을 자기도취적 장애 상태로 이끈다. 그리하여 이들은 난초, 바둑 같은 개인적인 취미에 탐닉하거나, 아니면 교사들을 괴롭히는 가학성 변태행위에서 쾌감을 추구하거나, 아니면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더욱 더 자신의 아집에 집착한다. 이로써 이들은 완전히 자아를 상실하고, 정서적으로 망가진다. 이런 정서적 망가짐은 수시로 솟구치는 분노의 형태로 내장되며, 이는 많은 교장, 교감들을 시한폭탄 같은 존재로 만든다. 문제는 교사들 역시 학생들을 상대로 이런 상태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의 교무실이란 시한폭탄들로 득실대는 무시무시한 장소다. 여기서는 멀쩡한 사람도 상처받기 십상이다.

어쩌면 이것이 공교육보다 사교육을 신뢰하는 이유중 하나인 것 같다. 직접 누가 해 본적은 없지만, 아마도 학원 강사들이 학교 교사들보다 정서적으로 더 건강할 가능성이 크며, 이는 경력이 길어질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권재원의 저서 소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권재원의 저서 소개<대안 경제 교과서들> 

2013. 4. 19.

전교조내 운동권 정파들을 비판함(1)

파들을 비판함이라고 제목은 되어 있으나, 저는 사실 우리나라 운동판에 정파따윈 없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전교조도 물론입니다. 사실 이 생각은 제가 먼저는 아닙니다. 이미 여러해 전에 어느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심상정 전의원이 우리나라 진보진영에 정파는 없고 족보만 있다(동창회였던가?)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예리한 지적입니다.

그렇다면 저나 심상정의원은 무슨 근거로 정파가 없다고 말한 것일까요? 정파와 족보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유연성과 변경가능성입니다. 사실 정파는 언제든지 바뀔수 있습니다. 옳다고 생각하면 같이 가는것이고, 생각이 바뀌면 째지는게 정파입니다. 하지만 족보는 절대 불변합니다. 설사 다른 집에 양자를 가더라도 어디에서 양자를 갔다는 원천기록은 남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진보진영은  정파는 없고 족보만 있다고 하는 말이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운동권의 이른바 정파는 대개 처음 운동에 발을 들여 놓은 써클의 선배가 누구냐에 따라 결정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학 졸업후에도 그 정파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나이가 40이 되고 50이 되어도 운동권으로 남아 있는 한 그 정파는 거의 유지됩니다. 심의원 말대로 동창회기 때문입니다.

진보 운동권에서 조직 내 투표를 할라치면 개인적 선택의 표는 찾아보기 어렵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정파표만 난무합니다. 이게 나중에 제도권 정당을 세운 다음에도 계속된 버릇입니다. 그러나 사단이 난게 통진당 사태죠. 진보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어쩌다가 정파가 이렇게 족보가 되고 말았을까요? 그건 우리나라 양대 정파라는 NL과 PD가 이념적 불임상태에 빠져 사실상 정파로서의 생명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끝났으니 젊은이들은 더 이상 없고 나이들어 가며 뭉쳐있는 일종의 친목회, 동문회에 불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들 중년, 노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중년의 위기속에 정체성은 더욱 붙들고 싶어서 수십년 전의 그 이념에 더욱 집착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이른바 정파의 내부 결속은 더 강해지고, 외부와의 소통은 마비상태에 이릅니다. NL과 PD는 원수가 되고 "NL+PD"와 다른 민중들은 아예 다른 차원 사람이 됩니다. 두 정파의 차이가 샛강이라면 두 정파와 일반민중들과의 차이는 가히 은하계가 되었습니다. 차라리 빨갱이라고 욕먹던 시절이 더 나을 지경입니다. 이제는 아예 관심의 대상도 아닙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자신이 믿는 바를 한번도 의심하지 않는 습관, 자신의 외부의 시선들을 돌아보지 않는 습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80년대에는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습니다. 군바리들이 정보를 독점하고 온갖 보도통제를 했습니다. (저 역시 보도지침의 잔재에 저항하다 방송사에서 짤린 전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임용고시를 봤죠).  그 시절 비선을 타고 흐릿해질때까지 복사에 복사를 거듭한 타자글씨의 팜플렛들은(심지어는 필사본) 한가닥 진실의 샘물이었습니다. 그걸 돌려보고, 보자마자 불태우면서 "어리석은 백성들은 속고 있지만, 우리는 진실을 알고 있다."는 우쭐함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아닌게 아니라 그 우쭐함이 실상 운동의 큰 동력이었습니다.  자본론의 번역자가 체포되던 시절, 골방에 모여앉아 거친 제본의 자본론을 강독하고, 때론 단파 라디오로 한민전 소리도 몰래몰래 들으면서 말입니다. 사실  당시에는  TV, 신문만 접하던 민간인(?)들보다 운동권들은 확실히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비선 등을 통해 더 넓은 정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러다가 고약한 버릇이 두 가지 생겼습니다.하나는 시민들의 상식적인 생각을 무시하는 버릇입니다. 저들은 자본에게, 파쇼에게, 미제에게 세뇌되어, 허위의식에 사로잡혔다, 우리만 진실을 알고 있다라는 생각 말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접하는 정보원에 대해 무비판적이 된 버릇입니다. 이 엄혹한 시절에 목숨걸고 전달되는 이 소중한 정보와 사상을 어떻게 의심한단 말입니까? 그 결과 신문에 나오는 사실은 의심하면서도 문건으로 전달되는 정보는 100% 수용하고, 의심이 생기면 오히려 의심이 생긴다는 사실, 즉 "자신의 사상적 허약성"을 자아비판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누구나 금단의 정보를 얻을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저에게 미제에게 세뇌된 정보만 접해서 그렇다고 합디다. 하지만 저 역시 그분이 말하는 소위 미제에 세뇌되지 않은 그 정보를 충분히 찾아 봅니다. 물론 원한다면 누구나 그 정보를 얻어 볼수 있습니다. 청소년들 조차 손쉽게 그런 정보를 얻어 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운동권(?)은 더 이상 특별히 더 많은 정보를 가지지 않습니다. 도리어 정보화에 지체되고, 영어 등 국제감각에서도 지체되었습니다. 80년대 후예들의 영어와 정보화 울렁증은 이들이 접하는 정보의 폭에서 일반인보다도 협소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상식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가진 협소한 정보를 "신앙"하는 버릇만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한국 진보진영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더 이상 "진보적이지 않고", 도리어 "후미에 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주제에 시민들을 내리깔며 오만하다는 것입니다.

80년대를 함께 호흡했던 동지 여러분들..(저는 이제 이 동지란 말도 도통 듣기 싫습니다. 어떻게 뜻이 같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일반 시민들에게 전혀 친화력이 있는 말도 아닙니다. 이런 자뻑용 사투리는 쓰지 말아야 합니다.) 아니 동료 여러분들.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히 생각해 봅시다. 지금의 우리 고립, 우리의 무력, 우리의 자괴감이 과연 신자유주의 때문에, 조중동 때문에, 미제의 압박때문에, 순전히 외부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물론 자신이 믿어왔던 바, 더군다나 수십년 믿어왔던 바를 의심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믿어왔던 바가 "종교"가 아니라 "이념"이고 "운동"라면, 사실 매 순간 남김없이 의심해야 합니다. 시민들의 상식적 생각이 우리 생각과 다를때 저들이 세뇌된 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오만함도 버려야 합니다.

사실 저는 NL과 PD를 다 거쳐온 놈이고, 지금은 NL, PD 양측에게 모두 원수가 될 작정을 하고 있는 놈입니다. 처음 NL이었다가 뛰쳐나온 이유는 도통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식반론, 30년대 항일무투의 일반화, 또한 반민주적인 수령론 등에 대해 질문하자 도리어 질문한다고 집단적으로 화를 내었기 때문입니다.
PD에서 뛰쳐나온 이유는 89년 이후 현실사회주의권의 완전 소멸(몰락도 아니고 소멸입니다. 기억에서조차 사라져 버렸고, 그걸 되살리자고 생각하는 사람마저 없다는 점에서)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여전히 전위당론, 정투/경투, 통전론 등만 되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두진영 모두 공히 소련과 그 언저리는 모조리 망했고, 북한은 분명 우리가 지향할 목표가 아님이 명백해졌는데도, 즉 제시했던 모델이 이미 소멸했는데도, 미동도 하지 않는 그 경직됨을 우직함과 신념으로 착각하는데 질렸기 때문입니다.

서론은 이 정도 해 두고, 앞으로 NL과 PD의 운동론을 틈날때 마다 낱낱이 비판하려 합니다. 사실상 이미 사회적으로 80년대 같은 영향력을 발휘할 가망이 거의 없어진 저 이념들을(인정할 건 인정 합시다), 굳이 확인사살하려는 것은 저 유령들이 진보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이미 스스로 무엇을 되게 할 힘은 상실한 저 이념들이, 새로운 무엇이 되는 것은 붙잡고 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운동입니까? 진보를 가로막는 것을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진보를 가로막는 것이 과거 우리의 신념들이라면, 그것들은 무슨 근거로 진보의 거센 물결앞에 소멸되지 않을 특권을 가진단 말입니까?

"너의 당파성,계급성이 의심스럽다"이런 질문이 혹시 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대답을 말하자면 나도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당파성과 계급성이 있을 이유가 뭐람? 이게 제 답입니다. 지금 상태는 진실을 보다 가까이 알기 위해, 데카르트처럼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다 의심하는 단계기 때문입니다.

블로그 주인이 쓴 책들 소개

2013. 4. 10.

추억이 새록거리는 클래식 덕질 이야기(3) 80년대와 클래식

나의 클래식 오덕질은 대학교에 가서도 계속되었다. 내가 대학교에 들어가던 해는 1987년이며, 입학식때가 박종철 열사의 49제와 겹쳐서 분위기가 몹시 어수선했다. 흔히 87학번을 한 학기도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는 세대라고 한다. 87년에는 6월 항쟁의 여파로 동맹휴업과 시험거부가 빈발했고, 88년에는 여소야대 국면에서 민주화의 완성을 요구하느라, 1989년에는 노동자들의 투쟁, 전교조 등으로, 그리고 1990년에는 우리 스스로의 문제가 된 임용고시 등으로 시끄러웠다.

그 와중에도 나는 여전히 클래식 덕질을 계속하였다. 지금 학생들은 까무라칠 얘기지만 3월에 모든 대학 남자 신입생들이 의무적으로 1주일간 입대하여 받는 군사훈련에서도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입대 직전에 구입한 에리히 클라이버가 지휘한 피가로의 결혼을 집에 두고 온 것이었다.

당시에는 월 8회 방문하는 과외를 하면 15-20만원을 받았는데, LP판 한장이 2500원이고, 웬만한 음악회가 만원을 넘지 않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거금이었다. 5-8만원이면 한 달 용돈으로 충분했고, 5만원은 저축하고 나머지 돈은 음반을 구입하거나 음악회 티켓을 구입했다. 그 당시 콘서트 홀은 세종문화회관과 호암아트홀이 전부였다. 새로 생긴 호암아트홀을 선호했다. 같은과 여학생과 안톤 쿠에르티 피아노 독주회를 갔는데, 나는 음악회가 익숙했기에 편안한 복장이었지만, 그녀는 매우 긴장된 시간으로 여겨서 분홍색 투피스를 입고 나타나서 재미있어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밖에도 알바비 모아서 전집 박스세트 구입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게자 안다가 연주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집(12장), 에셴바흐가 연주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7장), 칼 리히터가 지휘한 헨델의 메시아 전집이 그 무렵 최고의 득템이었다. 이래 저래 대학 시절에 수백장의 LP판을 긁어 모았다.(나중에 이걸 CD로 개비하느라 중복 지출된 돈도 엄청나다)

그런데 이 무렵부터 고등학교때 까지는 잡식성이었던 내 취향이 모차르트로 압축되기 시작했다. 대학교때는 거의 내내 모차르트만 듣다시피했다. 그리고 간간히 헨델, 베버, 슈만, 쇼팽을 들었다. 초등학교때 그렇게 좋아했던 베토벤은 거의 듣지 않았고, 그때나 지금이나 바흐는 잘 맞지 않았다. 현대음악도 조금씩 듣기는 했는데,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을 자주 들었고,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도 들었다. 그러나 당시 나는 음악을 듣는다고 말하지 않고 모차르트를 듣는다라고 말할  오덕이 다시 더 치밀한 오덕이 된 셈이다.

혹자는 당시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대학가를 휩쓸었는데, 이렇게 클래식음악을 즐기는 취향이 어떻게 가능했냐고 반문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 질문이 오히려 이상하다. 물론 이때가 이념적인 학생운동의 절정기이기는 했다. 우리는 선배 세대들의 낭만적인 학생운동은 노동계급의 관점이 결여된 소부르주아 자유주의로 난타했으며, 1988년부터 붐을 일으킨 마르크스-레닌주의로 중무장한 이념 세력으로 변모하였다.

'노동자', 이 말은 선이며 성스러운 단어였고, '부르주아' 이 말은 악이며 근절되어야 할 대상을 지칭했다. '지식인' 이 말은 기회주의자의 유사어로 경멸의 의미를 담아서 사용하였다. 노동자 계급이 최고이며, 노동자 계급이 하는 일이 옳으며, 노동자 계급의 취향을 기준으로 미의 기준, 가치관 모든 것을 다 수정해야 한다고 외치고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음악을 즐겨듣고, 강의실 구석의 피아노를 연주하곤 했던 나의 취향은 그 열렬한 좌익투사(pd)들에게 오히려 칭찬의 대상이었지, 소부르주아 근성을 버리라는 요구 따위는 들은 바 없다.
또 나중에 소련 음반 수입이 허가되어 쇼스타코비치의 음반들이 대량 유입되었는데, 그 악명높은 pd지도부로부터 쇼스타코비치만 듣고 다른 부르주아 취향은 버리라는 어떤 비판도 요구도 받아본 바 없다.

얼마 전에 어떤 진보인사가 자신은 대학교때 감히 클래식 음악 듣는다는 말도 못 꺼내고, 그래서 이불 속에 숨겨놓고 듣곤 했다고  누가 쓴 것을 보았는데, 기가 막혔다. 내가 다닌 학교는 학생운동의 메카와 같은 곳이고, 그가 다닌 학교는 학생운동이 거의 없었던 학교였기 때문이다. 이후 나는 그가 대학교때 학군단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는데, 클래식 음악 듣는것이 반민중적 부르주아 취향이라 꺼린다고 하면서 군복을 입고 캠퍼스를 활보하는 일은 어떻게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80년대때 그 pd그룹 한복판에서 한때 노동자계급의 혁명을 외치고, 그러다가 투옥직전까지 가기도 했지만, 늘 클래식 음악을 들었고, 음악회를 갔으며, 당시 나의 동지들 중 그 누구도 그런 취향을 가지고 문제삼는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나는 음악회를 가면서 저렴한 좌석을 '프롤레타리아 지정석' 이런식으로 지칭하는 일따위는 하지 않는다. 나는 클래식을 즐기는 것이 부르주아적 취향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

마르크스도 밥은 굶어도 딸들에게 피아노 레슨을 시켰으며, 무너져가는 다락방에 살면서도  목돈이 생기자 생필품이 아니라 피아노를 샀다. 마르크스의 딸들은 노동자들의 모임에서 음악회를 열기도 했으며, 이때 연주된 음악은 노동가요, 혁명음악 따위가 아니라 모차르트였다. 누군가가 여기에 대해 문제제기한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그룬트리세' 서설에 옛시대의 예술작품을 즐기는 취향은 그냥 취향이라고 설명했다. 이걸 가지고 문제 삼는 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의 재롱을 보며 즐거워하는 것을 어린이 시절로 퇴행하려는 시도라고 문제삼는것 만큼이나 어리석으니까. 불행히도 마르크스는 이 이상의 미학을 전개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80년대 당시 극렬 운동권이었던 나에게 클래식은 들으면 좋은것이며, 모든 계급이 평등하게 누려야 할 것이었다. 따라서 내가 꿈꾸던 세상은 클래식 같은 부르주아 취향을 가진 자가 뽕짝 취향의 자를 무시하지 못하는 세상이 아니라, 노동자들도 부르주아 취향을 얼마든지 누릴수 있는 그런 세상이었다. 이런 신념은 지금도 그대로이며, 이게 나중에 곽노현 교육감의 문예체 교육론과 만나기도 한 계기다.
블로그 주인이 쓴 책들 소개

2013. 4. 6.

독서토론기록 (2) 뒤르껭 ;교육과 사회학;

이 책도 몇 년 전 무산된 교육운동 네트워크의 세미나 흔적입니다.

아주 짧고 간단한 책이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은 근대 공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전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칸트와 뒤르켐을 통해 근대 교육의 상을 잡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근대교육의 상에 비추어 봄으로써 우리는 탈근대 교육의 나아갈 바를 살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하 발제===


제1편 교육의 본질과 역할

1. 교육의 정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


뒤르켐은 우선 교육에 대한 기존의 정의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논문을 시작한다.

밀은 교육을 "우리 본성을 완전하게 만들 목적으로 취하는 모든 행동"으로 정의했다. 뒤르켐은 이 정의는 너무 넓고, 심지어 타인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이라면 뭐든지 교육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혼란을 야기한다고 비판한다.
칸트는 "각 객인의 목적을 가능한 한 완전하게 개발하는 것, 즉, 인간의 모든 능력을 조화롭게 계발하는 것"을 교육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뒤르켐은 이는 사회분업을 무시한 개인주의적 관점이라고 비판한다. 현대사회는 고도로 분업화되어 있으며, 모든 인간이 모든 능력을 계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분업화된 사회에서는 특정 분야에만 정통해도 되며,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공통적 기반을 상실한다고 볼수 없다.

그 외에 공리주의와 스펜서도 비판적으로 검토한 뒤 뒤르켐은 선배들의 공통의 결함이 이상적이고 완전한 교육의 실체를 가정한 데 있다고 결론내린다. 즉 모두에게 타당한 보편적인 교육의 상 같은 것이 있을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훌륭한 교육이 로마시대에는 나라 망칠 교육이며, 반대로 고대의 위대한 교육은 오늘날 전체주의 교육으로 질타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교육은 역사적으로 부단히 변화할수 밖에 없으며, 그 중 하나만 완전하고 나머지는 다 오류라고 볼수 없는 것이다. 교육은 이상이 아니라 제도이며, 따라서 사회구조의 반영이다. 따라서 각 시대마다 그 시대와 사회에 가장 적합한 교육제도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마치 논리적으로 구상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면 앞서와 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 정당, 정치기구, 과학의 발달수준, 산업발달수준과 교육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것과 분리되면 교육체제는 이해불가능하다. 따라서 교육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이 체제와 제도를 역사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이런 연구 결과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불변하는 몇몇 요소들을 추출할수 있으며, 이를 통해 교육의 예비적 개념을 정립해서 이론적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2. 교육의 정의

역사적 고찰의 결과 뒤르켐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찾는다.
1)교육은 세대간에 이루어진다. 2)교육은 성인이 아동, 청소년 세대에게 영향을 주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 영향이 어떤 종류이며, 어떤 식으로 주어지는가가 바로 그 사회의 성격과 연결된다.
또한 역사적 경향 속에서 뒤르켐은 교육이 점점 다양화 전문화 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심지어 완전평등사회라도 직업의 분화가 교육의 다양성을 초래한다. 절대적인 동등성, 동등한 교육은 선사시대에나 가능한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교육은 각 사회분업에 적합한 영역별 전문교육의 분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전문교육들에도 공통의 기반이 있다. 그것은 계층 직업을 불문하고 가르쳐야할 공통의 사상, 정서, 관습이다. 모든 사회는 그 나름의 이상적인 인간상과 의무를 지덕체 측면에서 설정하기 마련이며, 이것은 특히 종교가 기반을 상실한 근대사회에서는 결정적인 사회통합 기제다.

따라서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교육의 기능은
1) 사회가 구성원에세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신체, 정신적 제 기능의 육성과 계발, 2)특정 사회집단(분업에 의한)에서 공통적인 여러 기능의 계발(전문교육)  이 두가지다.

이 둘은 사회의 역동을 보여주는데, 사회는 어느정도 동질성을 가져야 유지된다. 그러나 다양성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사회통합과 분업, 이 둘은 모두 중요한 과제며, 이는 교육에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마치 한국교육과정의 국민공통과정과 전문심화과정과도 같이.

이리하여 뒤르켐은 교육을 정의하기를 "교육은 아직 사회생활의 준비가 되지 않은 어린 세대들에 대한 영향력 행사로, 그 목적은 전체 사회로서의 정치사회와 그가 종사해야 할 특수환경 양편에서 요구하는 지덕체 특성의 육성과 계발이다."

3. 정의의 적용: 교육의 사회적 성격

교육은 어린세대 사회화를 위한 여러 방법으로 구성되는데, 바로 이들을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 형성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사회적 존재는 인간이 타고나는 소질이 아니며, 자연적으로 발달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는 새 세대가 등장할때마다 자신을 새겨넣어야 할 백지에 직면한다. 교육은 타고난 소질을 계발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새로운 존재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생활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과학적, 성찰적 사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속에서 기능수행이 어려워진다. 따라서 과학 학습이 의무로 요구된다.마찬가지로 문화, 체육 조차도 이런 사회에서의 기능수행을 위해 요구되며, 따라서 교육된다.

그렇다면 개인을 사회라는 폭군의 압제에 적응시키는 것이 교육인가? 아니다. 인간은 사회 안에 살기 때문에 인간이다. 도덕은 개인의 실천이성이 아니라 공동생활에서 연유되는 것이며, 지식 역시 사회적으로 형성된 기본개념, 방법론 등에 의존한다. 만약 사회에서 얻은 것을 제거한다면 인간은 동물이 되고 만들것이다. 따라서 교육은 억압이 아니라 도리어 개체를 성장하도록 도와주고 참인간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4. 교육과 국가의 역할

따라서 교육은 가정의 소관사항이 아니다. 교육은 사적과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는 교육에서 소극적 행위자일수 없다. 교육의 방향을 지시하는 근거다. 아동이 사회에 적응하도록 부과될 사고, 정서의 내용을 교사에게 제공, 상기시켜 주는 것은 국가의 임무다. 만약 교육적 영향의 사회적인 방법의 시행을 보증하지 못한다면, 교육은 사적 신념의 시녀가 되고 말며, 이는 교육의 기본목적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국가의 수업독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학문의 진보는 개인의 창의가 허용되어야 빠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의 다양성은 보장하데, 그 면허권은 국가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국가는 까다롭고 신중하게 교육에 관여한다.

따라서 사상, 감정의 공동체를 국가가 억지로 만드는 것은 불가하다. 국가는 다양한 의견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기저에 있는 공통성 즉, 이성의 존중, 과학의 존중, 민주적 도덕의 기초를 이루는 사상과 감정의 존중 등을 바탕으로 교육의 대강을 규정하고, 그것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을 역할로 삼아야 한다. 국가의 영향력은 덜 공격적이고, 한계내에서 현명하게 행사해야 실질적인 효력을 볼 것이다.

5. 교육력과 교육방법

개인은 어느정도의 기질적 차이는 타고난다. 그러나 그것을 구체적인 결과로 만드는 것은 교육의 영향력이다. 같은 공격적 기질을 타고난 아동도 교육의 결과에 따라 범죄자가 될수도 개혁가가 될수도 있다. 즉 소질과 사회적인 역할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으며, 이 거리를 교육이 아동에게 인도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한 적절한 수단은 교사와 아동의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 아동은 암시받기 쉬운 자연스러운 수동성의 상태에 있으며, 교사는 우월한 위치에서 아동에게 힘을 미칠수 있다. 교사나 부모의 모든 행위나 사태는 반드시 아동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며, 순간순간의 수많은 무의식적 영향을 남긴다.

따라서 교육은 즉각, 순간적, 분명한 성공을 추구하거나 여기 따라 일희일비하면 안되며, 일관성을 갖고 꾸준히 계속되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교사의 권위다. 교사의 권위는 아동의 수용성에 작용하는 우월한 힘(교육력)의 가장 중요한 근원이다. 교사는 아동이 장차 살아가야 할 사회에서 직면할 의지, 의무의 화신이라야 한다. 따라서 교사의 권위는 순전히 도덕적 우월에서 비롯된 것이라야 한다.
이 도덕적 권위는 교사가 의지력을 가지고, 자신의 기능과 직무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을때 비로소 구성된다. 따라서 교사의 권위는 자유와 배타적이지 않다. 교사의 권위는 의무와 이성이 가진 권위의 한 측면이다. 아동은 이런 권위의 우월성에 복종하도록 훈련받아야 하며, 그래야 장차 양심적으로 발견한 권위도 존중하게 될 것이다.


블로그 주인이 쓴 책들 소개

새로운 시대의 교육과 교육운동의 길을 찾아 출항합니다

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연히 학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