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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는 우선 지도부와 활동가의 담배부터 끊도록 하자.

전교조가 처음 등장했을때 가장 호소력 있었던 슬로건은 참교육도 교육민주화도 아니었다. 그것은 "촌지 안 받기 운동"이었다. 전교조가 교단의 기득권층에게 가장 크게 타격을 가함과 동시에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교사들 중 누워서 침을 뱉을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준 사람들이 주장하는 참교육이라면 믿을만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최근 전교조의 위상은 날로 추락하고 있다. 그 원인이야 워낙 복합적이겠지만, "전교조 교사"가  "일반적인 교사와 다른 그 무엇"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런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 크다. 그 와중에 부정적인 측면만 점점 더 부각되었으니 버틸 재간이 없는 것이다. 이 부정적 측면 중 80년대 구 운동권의 언짢은 문화가 노출된것은 전교조를 퇴행적 집단으로 낙인찍히게 만들었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에서 드러난 남성중심의 억압적 운동권 문화에 물들어 버린 것이다.

나는 2006년에 이 80년대 낡은 운동권 문화의 상징으로서 흡연문화를 제기하며, 그것을 탈피한다는 상징적인 행위로서 금연운동을 주창한 바 있다. 그때 전교조 주요 활동가들의 반응은 농담으로 받아들이면서 웃어버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반박하거나, 심지어는 공격적인 반응까지 보여주었다.  심지어 "담배를 나쁘게 보는 문화는 미국놈들의 문화다. 너는 친미냐?" 이런 얼토당토 않은 반응까지 있었다. 하기야 북한이 세계적으로 흡연율이 높은 나라이니.

그 이듬해인 2007년,  나는 1년간 전교조 본부간부로 일했다. 사무실은 지저분했고, 계통이 없었다. 주로 연구 관리, 논평과 성명서 작성등을 담당했는데, 도저히 사무실에서 작업할 환경이 안되어 근처 카페를 전전했다. 당시 위선적인 지도부는 내가 근무태도가 불량하다고 헛소리를 해 대었지만, 그 1년간 무수히 쏟아낸 연구결과, 논평, 성명, 보도자료, 그리고 방송 대담 등에 나가서 보수쪽 발표자들 묵을 친 일 등…

정신건강이 위험한 교장, 교감, 그리고 교사들

이 글도 몇 해 전에 포스팅 한 글입니다. 그때는 이 블로그가 방문자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묻혀버렸는데, 조금 손질해서 새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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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의 자녀가 정신병 환자의 손아귀 아래에서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고 하자. 어떤 생각이 드는가? 질문이 너무 극단적인가? 그럼 바꿔 물어보자. 당신은 자녀가 영리하고 유능한 정신병자와 둔하고 무능한 그러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 중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가? 당신이 바보가 아니라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답은 학생도, 학부모도 누구도 여기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학생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교사의 정신건강에 대해 너무도 무신경한 것이다. 항공기 승무원 5700명에 대해 정신과 상담의가 1명에 불과하다는 걱정은 하면서, 그 보다 훨씬 사회적으로 중요한 교사 30만명에 대해 정신과 상담의 0명인 현실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 것이다.

설마 교사들의 정신이 문제가 있을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면접 등등에서 그런 사람들은 다 걸러냈다고 믿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신건강은 흔히 생각하는 것 처럼 튼튼한 것이 아니다. 정신질환은 감기만큼이나 쉽게 걸릴수 있다. 인간의 정서적 건강이 매우 불안하고 예민한 균형상태에서 유지되고 있음은 이상 심리학이나 정신병리학 개론 수준의 책만 읽어도 대번에 납득할 수 있는 사실이다. 특히 자아의 존재론적 안전감은 그것을 지켜주는 든든한 배경이 무너질 경우 정처없이 흔들리게 된다. 이렇게 존재론적 안전감이 위태로워질때 자아는 본능적으로 만사를 자아의 안전을 위해 재배치한다. 즉, 정신적 정당방위를 시도하는데, 신체적 정당방위와 마찬가지로 정신적 정당방위는 타인을 희생시켜서라도 우선 자신부터 보전하고자 한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 타인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교사는 늘 타인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하는 …

전교조내 운동권 정파들을 비판함(1)

정파들을 비판함이라고 제목은 되어 있으나, 저는 사실 우리나라 운동판에 정파따윈 없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전교조도 물론입니다. 사실 이 생각은 제가 먼저는 아닙니다. 이미 여러해 전에 어느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심상정 전의원이 우리나라 진보진영에 정파는 없고 족보만 있다(동창회였던가?)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예리한 지적입니다.

그렇다면 저나 심상정의원은 무슨 근거로 정파가 없다고 말한 것일까요? 정파와 족보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유연성과 변경가능성입니다. 사실 정파는 언제든지 바뀔수 있습니다. 옳다고 생각하면 같이 가는것이고, 생각이 바뀌면 째지는게 정파입니다. 하지만 족보는 절대 불변합니다. 설사 다른 집에 양자를 가더라도 어디에서 양자를 갔다는 원천기록은 남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진보진영은  정파는 없고 족보만 있다고 하는 말이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운동권의 이른바 정파는 대개 처음 운동에 발을 들여 놓은 써클의 선배가 누구냐에 따라 결정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학 졸업후에도 그 정파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나이가 40이 되고 50이 되어도 운동권으로 남아 있는 한 그 정파는 거의 유지됩니다. 심의원 말대로 동창회기 때문입니다.

진보 운동권에서 조직 내 투표를 할라치면 개인적 선택의 표는 찾아보기 어렵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정파표만 난무합니다. 이게 나중에 제도권 정당을 세운 다음에도 계속된 버릇입니다. 그러나 사단이 난게 통진당 사태죠. 진보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어쩌다가 정파가 이렇게 족보가 되고 말았을까요? 그건 우리나라 양대 정파라는 NL과 PD가 이념적 불임상태에 빠져 사실상 정파로서의 생명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끝났으니 젊은이들은 더 이상 없고 나이들어 가며 뭉쳐있는 일종의 친목회, 동문회에 불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들 중년, 노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중년의 위기속에 정체성은 더욱 붙들고 싶어서 수십년 전의 그 이념에 더욱 집착하게 됩니다.…

추억이 새록거리는 클래식 덕질 이야기(3) 80년대와 클래식

나의 클래식 오덕질은 대학교에 가서도 계속되었다. 내가 대학교에 들어가던 해는 1987년이며, 입학식때가 박종철 열사의 49제와 겹쳐서 분위기가 몹시 어수선했다. 흔히 87학번을 한 학기도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는 세대라고 한다. 87년에는 6월 항쟁의 여파로 동맹휴업과 시험거부가 빈발했고, 88년에는 여소야대 국면에서 민주화의 완성을 요구하느라, 1989년에는 노동자들의 투쟁, 전교조 등으로, 그리고 1990년에는 우리 스스로의 문제가 된 임용고시 등으로 시끄러웠다.

그 와중에도 나는 여전히 클래식 덕질을 계속하였다. 지금 학생들은 까무라칠 얘기지만 3월에 모든 대학 남자 신입생들이 의무적으로 1주일간 입대하여 받는 군사훈련에서도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입대 직전에 구입한 에리히 클라이버가 지휘한 피가로의 결혼을 집에 두고 온 것이었다.

당시에는 월 8회 방문하는 과외를 하면 15-20만원을 받았는데, LP판 한장이 2500원이고, 웬만한 음악회가 만원을 넘지 않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거금이었다. 5-8만원이면 한 달 용돈으로 충분했고, 5만원은 저축하고 나머지 돈은 음반을 구입하거나 음악회 티켓을 구입했다. 그 당시 콘서트 홀은 세종문화회관과 호암아트홀이 전부였다. 새로 생긴 호암아트홀을 선호했다. 같은과 여학생과 안톤 쿠에르티 피아노 독주회를 갔는데, 나는 음악회가 익숙했기에 편안한 복장이었지만, 그녀는 매우 긴장된 시간으로 여겨서 분홍색 투피스를 입고 나타나서 재미있어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밖에도 알바비 모아서 전집 박스세트 구입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게자 안다가 연주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집(12장), 에셴바흐가 연주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7장), 칼 리히터가 지휘한 헨델의 메시아 전집이 그 무렵 최고의 득템이었다. 이래 저래 대학 시절에 수백장의 LP판을 긁어 모았다.(나중에 이걸 CD로 개비하느라 중복 지출된 돈도 엄청나다)

그런데 이 무렵부터 고등학교때 까지는 잡식성이었던 내 취향이 모차르트로 압축되기 시작했다. 대…

독서토론기록 (2) 뒤르껭 ;교육과 사회학;

이 책도 몇 년 전 무산된 교육운동 네트워크의 세미나 흔적입니다.

아주 짧고 간단한 책이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은 근대 공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전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칸트와 뒤르켐을 통해 근대 교육의 상을 잡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근대교육의 상에 비추어 봄으로써 우리는 탈근대 교육의 나아갈 바를 살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하 발제===


제1편 교육의 본질과 역할

1. 교육의 정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

뒤르켐은 우선 교육에 대한 기존의 정의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논문을 시작한다.

밀은 교육을 "우리 본성을 완전하게 만들 목적으로 취하는 모든 행동"으로 정의했다. 뒤르켐은 이 정의는 너무 넓고, 심지어 타인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이라면 뭐든지 교육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혼란을 야기한다고 비판한다.
칸트는 "각 객인의 목적을 가능한 한 완전하게 개발하는 것, 즉, 인간의 모든 능력을 조화롭게 계발하는 것"을 교육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뒤르켐은 이는 사회분업을 무시한 개인주의적 관점이라고 비판한다. 현대사회는 고도로 분업화되어 있으며, 모든 인간이 모든 능력을 계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분업화된 사회에서는 특정 분야에만 정통해도 되며,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공통적 기반을 상실한다고 볼수 없다.

그 외에 공리주의와 스펜서도 비판적으로 검토한 뒤 뒤르켐은 선배들의 공통의 결함이 이상적이고 완전한 교육의 실체를 가정한 데 있다고 결론내린다. 즉 모두에게 타당한 보편적인 교육의 상 같은 것이 있을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훌륭한 교육이 로마시대에는 나라 망칠 교육이며, 반대로 고대의 위대한 교육은 오늘날 전체주의 교육으로 질타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교육은 역사적으로 부단히 변화할수 밖에 없으며, 그 중 하나만 완전하고 나머지는 다 오류라고 볼수 없는 것이다. 교육은 이상이 아니라 제도이며, 따라서 사회구조의 반영이다. 따라서 각 시대마다 그 시대와 사회에 가장 적합한 교육제도가…